매년 반복되는 이상고온…농심이 멍든다
초여름. '애멸구'와 한판 씨름이 예상되는 이 시기에 농민들은 한 시도 긴장을 놓을 수 없다. 무엇보다 1년지기 농사의 초기에 발생하는 애멸구는 때를 놓치면 겉잡을 수 없는 피해로 이어진다. 최근 이 애멸구 발생이 서해안 일대를 타고 급격히 증가하고 있으며 특히 지난 2007년 막대한 피해를 입은 부안 계화면 인근에도 역시 애멸구의 습격이 시작됐다.
▲ 서해안 논 애멸구 공습 '비상'
모내기를 마친 푸르른 논이 드넓게 펼쳐진 부안군 계화면. 바다와 맞닿은 이곳은 전국에서도 손꼽히는 쌀 생산지다. 하지만 최근 이 일대는 그야말로 비상이다. 농가의 최대 적이라 할 수 있는 엄청난 양의 애멸구가 활동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지난 2001년 발병 이후 2007년 전국 1만 4317ha에 달하는 농지에 줄무늬잎마름병이 발생해 농가들이 대규모 피해를 입었다. 당시 겉잡을 수 없이 퍼진 이 줄무늬잎마름병은 부안군 계화면 농지 면적 3114ha 중 2016ha를 덮쳤고, 결국 그 해 수확률은 평년의 10% 내외에도 미치치 못하는 참단한 결과를 낳았다.
당시 계화면을 비롯해 서해안 일대에는 잎마름병이 퍼지면서 거의 모든 농가가 피해를 입었다. 계화면 관계자들은 급격히 증가한 애멸구 개체수가 피해 규모 확대에도 영향을 끼친 것이라고 했다.
이 잎마름병은 벼에 생기는 바이러스성 병해의 일종으로 주로 애멸구가 병원균을 옮기면서 발생한다. 벼 이삭이 열리지 않거나 잎이 말라 죽게 되고 심한 경우 1년 농사를 망칠 수도 있어 '벼 에이즈'라고 불린다.
한 번 발생하면 꾸준한 방제와 예방 노력에도 3~4년 이상 지속되면서 피해가 발생하는 줄무늬잎마름병은 아직도 완벽히 회복되지 않고 있다.
최근 전북 농업기술센터가 공중포충망에 포획된 벌레들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10마리 남짓이던 것이 올해 5월 27일까지 무려 597마리로 늘어 60배 가까이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센터측은 포충망은 공중 1m 높이에 설치돼 있어 기존에 벼에 붙어 살고 있는 애멸구들은 포획되지 않는 점을 감안한다면 공중포충망에 날아든 애멸구는 중국에서 유입된 것일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더욱이 벼 20주당 애멸구 성충이 11마리 이상으로 나타나면 위험한 수준으로 판단하는 데 이번 조사에서는 평균 46마리로 나타나 역시 대책 마련이 시급한 상황이다.
▲ 주범은 '지구 온난화'
지역민들과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이같은 피해가 발생하는 근본적인 원인은 '지구 온난화'다.
환경 오염으로 인한 지구의 평균 기온이 전국적으로 약 1℃ 가량 상승하는 등 온난화 현상이 가속화되고 있는 데다 바다와 인접한 이 지역은 내륙보다 평균 기온이 높게 유지된다.
30년 이상 농사를 지었다는 한 농민은 하지(夏至)를 전후해서 모내기를 시작했던 어린 시절에 비하면 한 달 보름이 빨라졌다며 문제가 심각하다고 혀를 찼다. 이렇게 농민들은 지구 온난화의 심각성을 피부로 느끼고 있었다.
춥지 않은 겨울을 보내면서 이모작이 활성화됐고 인근 농가들은 겨울에도 대부분 보리나 유채를 심어 계속 농사를 짓는다. 이로 인해 추수가 끝난 겨울이면 추위와 배고픔으로 죽어야 할 애멸구들이 보리와 유채로 옮겨붙어 영양을 섭취하면서 무사히(?) 월동을 하게 된다.
그러다 추위가 조금씩 누그러지고 모내기가 시작되면 이들은 다시 벼로 옮겨와 계속 활동하면서 벼 잎을 타고 잎마름병을 옮기게 된다. 이렇게 죽어야 할 애멸구들이 죽지 않고 겨울을 나면서 또 다시 한 해를 살며 개체수를 늘리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무엇보다 모내기 시작도 점차 빨라져 계화면은 이르면 5월1일부터 시작하는데, 동시에 애멸구의 활동으로 인한 피해 발생 시기도 앞당겨지고 있다. 이 역시 온난화에서 기인한다는 분석이다.
국내종 해충인 애멸구는 병에 걸린 벼의 즙액을 빨아먹으면서 독을 갖게 되고, 일단 보독된 애멸구는 다음 세대까지도 계속 전염 능력을 갖게 된다.
▲ 예방외엔 '뾰족한 수' 없어
계화면은 한 농가당 경작 규모가 4~5㏊에 달해 타지역 평균 1㏊에 비해 매우 큰 편이다. 때문에 피해 규모도 클 수 밖에 없다. 특히, 일찍 모내기에 들어가는 조생종 벼의 경우 잎이 약하기 때문에 월동한 애멸구들이 빨리 옮겨와 왕성하게 벼를 흡즙해 피해가 가장 크다.
하지만 아직까지 애멸구들이 옮기는 잎마름병에 대한 치료제가 없다. 한 번 발생하면 결국 벼는 말라 죽거나 열매가 맺히지 않는 등 처참한 피해로 이어진다.
때문에 병을 옮기는 애멸구가 발생하지 않도록 예방하는 것이 가장 쉽고 빠른 대안이다.
부안처럼 줄무늬잎마름병 상습 발생 지역에서는 저항성 품종을 선택할 필요가 있다. 수익 발생을 위해 빨리 심고 외지로 전량 판매 가능한 조생종을 심고 있지만 이는 애멸구로 인한 잎마름병 피해를 촉진시키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전문가들은 중생종이나 만생종을 선택할 것을 권한다. 더불어 육묘상 약제처리를 함께 실시해 발생 자체를 철저히 억제하는 것이 좋다.
부안처럼 보리후작지역·조기재배가 이루어지는 곳은 특히 애멸구 같은 매개충의 사전 방제가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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