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비타 고산산촌유학센터 센터장
한마디로 특이한 이력을 가진 분이다. 미술가로서 오랫동안 프랑스에서 미술공부를 하고 아프리카에서 작업과 함께 아이들과 함께 보내다 귀국한 사람이다.
어떻게 언제 이곳에 오셨냐는 질문에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자신의 이력과 생각을 쏟아내는데 어디서 자르고 질문을 더 해야 할지 모를 정도로 이곳에 온 확신과 의지가 한마디 한마디에 묻어 있었다.
미술 공부를 하면서 오랫동안 지리산 어디엔가 자리를 잡고 농사를 짓고 싶어했던 꿈이 마치 자신을 위한 공간이 이곳이라는 감동으로 불쑥 나타난 셈이다. 이곳에서 생활한 지는 불과 4개월에 지나지 않지만 그동안의 여러가지 해결하지 못한 과제들이 자신을 위해 남겨놓았다는 듯이 일을 하고 있었다.
아이들에게는 한없는 사랑과 애정을 보이다가도 원칙을 벗어난 행동에는 용서가 없는 분이다. 한때 도시에서 '영재 아카데미'를 운영하였지만 아이들을 제대로 길러보자는 욕심에 쉽게 산촌유학센터에 오게 되었다. 그녀는 자신이 오랫동안 배운 것들을 아이들에게 나누어 주고 싶어 한다. 미술을 통해 인간관계, 사람과 사람의 정을 느끼게 하고 자연의 생명력을 그림을 통해 아이들이 스스로 찾아가게 하는 조력자 역할을 하고 있다. 또한 명상을 통행 끊임없이 자신을 훈련시키고 있다.
그녀에게는 지역에 살고 있는 사람, 자연환경, 산과 들, 저수지, 나무 한그루까지도 모든 것이 아이들을 위한 천혜의 자원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마을 어른들과의 점심식사는 이제 마을과 함께 하기 위한 첫걸음에 불과하다고 할 수 있다. 저수지를 통한 명상과 새로운 마을의 풍물을 만들기 위한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었다. 이렇듯 그녀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인적, 물적, 지적 자원을 활용하려는 욕심이 끊임없이 꿈틀대고 있었다.
그녀가 처음 이곳에 와서 아이들에게 부탁한 것은 동네에서 어른들을 만나면 무조건 인사하기였다. 아이들에게는 생소한 문화였다. 안면이 있거나 친인척이 아니면 쉽게 인사하거나 다가가기 쉽지 않은 문화에서만 생활을 하다가 모르는 어른들에게 인사를 하라고 한 것은 산촌유학센터가 지역에서 함께 가꾸고 일구어 나가야 한다는 취지와 지역의 어른들이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라고 보고 실천활동으로 시작한 것이다.
개인적으로 미술작업을 위한 공간을 마을에 마련을 해 놓고 있지만 아이들과의 생활로 제대로 작업을 할 수 있을 지 의문이 될 정도로 아이들에게 쏟는 사랑의 폭은 그 누구보다도 넓고 깊어 보였다.
/이근석 NGO객원기자(전북의제21 사무처장)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