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일반기사

[우리시대의 성공기업인] ③최영재 천양제지㈜ 대표

"2년여 공장서 자며 특수한지 개발"…UN관저 등 해외 수출 전주 한지 우수성 알려

지난 2007년 UN 반기문 사무총장 관저의 접견실과 UN 한국대표부 룸이 한지로 꾸며져 화제가 됐다. 한브랜드 중 하나인 한지는 지난해 미국·캐나다 등에 친환경적인 벽지로 수출도 이뤄졌다. 이같은 한지의 산업화·세계화를 이끄는 중심에 천양제지㈜의 최영재 대표(44)가 있다. 국내에서는 대형 아파트에 납품하는 등 전주 한지의 우수성을 알리고 있다. 이런 분주함 뒤에는 그가 '죽기 살기'로 몰두했던 한지의 다변화에 대한 열망이 있었다.

 

"지난 80년대 중반부터 중국산 화지(畵紙) 등이 범람하면서 국내 시장의 99%를 잠식했습니다. 사양산업이던 한지산업을 일으키기 위해서는 변하는 시장에 적응해야 했습니다. 기술 개발과 함께 직원을 설득하는 작업이 힘겨웠습니다. 지금은 상품의 다양화에 주력하고 있습니다."

 

2대째 가업을 잇는 그는 "한지의 현대화는 하루 아침에 이뤄지지 않았다"며 시장에 대한 관심과 꾸준한 노력, 그리고 기술을 지닌 '사람'을 강조했다.

 

2003년부터 대표를 맡은 그는 '사장님'의 아들이었지만 20년 전 제지공장에서 종이를 건조시키는 보일러와 제조과정에서 발생하는 폐수를 관리하는 직원으로 입사했다. 주경야독으로 보일러 관련 기사 자격증을 따고 공장에서 경리·영업 등의 업무를 거쳤다.

 

그 과정에서 시장 상황은 점점 악화됐다. 최 대표는 "제가 입사할 때만 해도 전주에 30여개 있던 제지공장이 현재는 5개만 남았다"면서 "지난 2000년부터 새로운 판로 개척이 절실해져 한지 벽지나 인테리어 한지, 아트 한지 등 인쇄가 가능한 특수지로 눈을 돌렸다"고 말했다.

 

그의 넘치는 의욕 만큼 일은 진척되지 않았다. 당시에는 시장이 형성되지 않았던 특수 한지를 만들기 위한 기술을 개발하려면 기술자였던 직원들을 설득해야 했기 때문이다.

 

"사장 아들이었지만 오히려 심도 있는 기술을 알려주지 않더라고요. 특수지를 생산하려면 기술자가 필수인데 현장에서 남들보다 더 열심히 해도 기술을 터득할 수가 없었고 특수지 생산에 대해 직원들의 이해를 얻지 못해 한계에 부딪혔습니다."

 

최 대표는 일본의 특수지 제작 공장에 견습생으로 들어갔다. "3개월 동안 짐 나르기, 배달하기, 초지 만들기 등 궂은 일을 한 뒤 특수지를 만드는 기술을 어느정도 익혀 왔습니다."

 

다시 1년 동안 직원을 대상으로 설득 작업을 거친 뒤 본격적인 개발에 들어갔다. "공장 한켠의 소파에서 자면서 기계를 다시 세팅하고 원하는 제품이 나오지 않으면 멀쩡한 기계를 중간에 뜯고 조립하는 일을 2년 정도 했습니다. 돈은 못 벌고 과정은 힘들었습니다."

 

최 대표는 "이걸 성공하지 못하면 무덤을 파야겠다는 심정으로 도전했다"면서 "아버지가 고생한 것을 일생동안 지켜본 만큼 실패하면 안 된다는 강박도 생겼다"고 회상했다.

 

막상 특수지를 개발했지만 문제는 판로였다. 국내 100여곳의 거래처에 샘플을 보내고 일일이 설명해도 시큰둥한 반응이었다. 그래서 박람회를 공략했고 스타마케팅을 추구했다. 유명 작가가 원하는 종이를 만들어 협찬했다. 기존에 생산하던 라인의 가동을 멈추고 작가가 주문한 한지를 만들면서 다소 손해를 보기도 했지만 그 뒤 명사를 중심으로 입소문이 났다.

 

"자천타천으로 판로를 개척하기 위해 작가들을 후원했습니다. 보통 작가가 주문한 종이를 만들 때마다 3500만원 가량의 비용이 들었지만 그래도 제조 노하우가 쌓이고 가장 필요한 사람이 유용하게 쓸 수 있어 즐거웠습니다."

 

작가들과의 인연으로 최근에는 한국화 작품을 구입해 벽지와 블라인드 등에 응용하고 있다.

 

최 대표는 최근 한지 붐을 타고 '무늬만 한지'인 종이의 사용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그는 "참살이 열풍으로 닥나무가 아닌 펄프를 원료로 한 종이가 한지로 둔갑해 저렴한 가격으로 시장에 나와 소비자의 눈을 흐리고 있다"고 아쉬워했다.

 

근래 인기를 얻고 있는 한지 벽지는 아토피가 심한 아들 때문에 만들게 됐다. 최 대표는 "아들이 아토피가 너무 심해 혹시나 하고 한지를 방에 붙였는데 효과가 있었다. 그 뒤 닥나무를 이용한 제품을 만들게 됐다"고 귀띔했다.

 

올해에는 종이 생산에 머물지 않고 본격적으로 상품의 다변화를 꾀하고 있다. 한지 비누·샴푸·로션 등과 같이 닥나무 잎 추출물을 이용한 제품과 한지 장판 등 인터리어 용품으로 영역을 확대했다.

 

"한지 업계가 전체적으로 영세한 만큼 선도업체로서 더욱 개발에 힘써야 하는 사명감이 강합니다. 정부에서 일부 지원을 받기는 하지만 일년 매출 30억원 중 10억원은 기술과 디자인 개발에 쓰고 있습니다. 시장을 내다보고 적응하기 위해서는 이런 연구 개발이 필수적이기 때문입니다."

 

이세명
다른기사보기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

0/ 100
최신뉴스

국회·정당국회, 이 정부 첫 예산안 경제부처 심사 돌입…728조 놓고 여야 공방

정치일반지방선거 경선 시작도 안했는 데 ‘조기과열’…전북서 극심한 피로도

자치·의회전북도-캠코, 유휴 국유재산 자활사업 모델 부상

사회일반전북서 택시 기사 등 운전자 폭행 사건 꾸준

전주전주시 기업 유치 헛구호 그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