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0개 스튜디오 거래…국내 최대 인화 공장…부산이 고향이지만 전주서 20여년 사업
미래학자 존 나이비스트는 <하이테크 하이터치(high tech, high touch)> 에서 첨단기술이 도입될수록 사람은 점점 고감성의 소비재를 갈망한다고 역설했다. 디지털 카메라의 보급으로 온라인에서 시공을 초월한 사진올리기가 가능해졌지만 손에 잡히는 실체로서 사진을 보유하고 싶은 욕구도 그만큼 커졌다. 하이테크>
국내 최대 사진 인화 공장이라 불리는 전주시 인후동 ㈜디지탈포토 박성군 회장(62)은 "디지털 카메라가 보급될수록 사진에 대한 양적인 수요는 점점 늘고 있다. 이제는 사진 몇 장이 아닌 책(앨범)의 형태로 자신의 모습을 간직한다"면서 "새로운 것에 안주하기 보다는 어떻게 만드느냐가 관건이다"고 강조했다.
▲매월 3만장 인화 작년 매출 42억
지난 12일 회장실을 찾았을 때 '백발'을 질끈 묶은 박 회장은 새로운 제본기를 설계하던 중이었다. 회장실에 놓인 대각선 약 130㎝ 길이의 화면에는 회사 내부 문서와 인터넷이 띄워져 있었다. 그는 실시간으로 거래처의 접수, 인화·출고 과정 등의 공정 상태를 확인하고 있었다.
커다란 화면과 함께 눈에 띈 것은 사진 병풍이었다. 책상 뒤에 오롯이 자리잡은 2개의 사진병풍이 인화 공장의 운영자임을 간접적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지난 2002년 설립한 ㈜디지탈포토는 사진인화 등으로 지난해 42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올해에는 50억원의 매출을 예상하고 있다. 매월 사진 3만장을 인화한다. 전국 900여개의 사진 촬영 스튜디오가 주거래처다. 개인 고객은 온라인상에서 직접 거래하고 있다. 베트남·필리핀에도 외주 편집실을 두었다.
단순한 인화뿐 아니라 콘셉트에 맞춰 사진을 배열하고 편집해 앨범으로 제작한다. 박 회장은 "촬영이 이뤄진 사진 파일을 받아서 인화 등을 거친 뒤 앨범에 다양하게 구성하는 작업을 하는 곳이다"라고 설명했다.
▲롤 모델 없어 시행착오 겪기도
사진 인화의 대형화가 처음부터 의도한 바는 아니었다. 1억원~5억원에 달하는 장비를 필요 이상으로 구입하게 되면서 대형화됐다. 박 회장은 "보통 인화·출력 장비 3대~4대로도 회사를 운영하는데는 문제가 없었지만 남의 말을 듣고 이것저것 구입하다 보니 20대 가까이 구입하게 됐다. 지금도 2대는 휴식 중인데 제조사가 부도까지 나버려 이 기계에서 부품을 빼서 쓰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문제는 처음 사업을 시작할 때 롤모델이나 벤치마킹 대상이 없었다는 점이다. 그는 "뭘 어떻게 해야 되는지 몰랐다. 일부 회사는 국제표준 ISO 9000·14000을 회사 이력에 넣기 위해 받기도 하지만 우리는 업무 구성에서 절실하게 필요했다"고 밝혔다.
가장 큰 어려움은 디지털에 대한 인식이었다. 사업 초기 '사진=작품'이라는 인식 때문에 일부 거래 대상은 필름이 아닌 파일화된 사진은 사진이 아니다는 인식이 팽배했던 것. 새로운 것에 대한 거부감은 비용이 대체했다. 기존 작업보다 대형화·자동화 공정으로 50% 이상 원가를 절감했기 때문이다.
박 회장은 "아날로그 방식은 사람의 눈이 기준이다. 작업자 기분에 따라서 색감이 바뀌지만 컴퓨터는 색에 대한 일정한 기준으로 신속하게 작업을 하며 비용을 줄인다"고 설명했다.
▲유선방송사 접고 새로움에 도전
박 회장은 부산 태생이지만 서울에서 학창시절을 보냈다. 전자공학을 전공한 엔지니어로 라디오·턴테이블·다리미 등을 만드는 공장을 경영하기도 했다. 이후 30대부터 전국의 난시청 지역을 돌아다니며 유선방송 관련 사업을 했던 그는 지난 1985년 도내에서 사업을 시작했다. 전주·진안·임실·고창에서 유선방송사를 만들어 안착했다.
그는 "유선방송은 특정 지역에서 사업권만 따면 독점일 만큼 경쟁이 없는 시장이었다"면서 "이후 케이블 방송사 간 M&A가 본격화되면서 유선방송을 접었다"고 밝혔다. 이어 "유선방송 사업을 하던 중 인터넷 망 구축사업을 접하면서 하드웨어와 소프트 웨어를 접목시키는 산업을 구상, 아마추어 사진작가로 활동했던 아내의 영향으로 사진 인화 사업을 구상했다"고 말했다.
2000년대 초반은 디지털 카메라의 대중화로 사진업계에 필름 대신 파일화가 진행됐던 시기였다. 유선방송사를 처분한 종자돈으로 새로운 사업을 벌여 시설투자를 감행했다.
그는 "전주에서 돈을 벌었으니 전주에서 사업해야 한다는 마음이 들었다. 사람을 편안하게 하는 전주의 인심에 이끌렸다"면서 "자꾸 새로운 것을 고안해야 업계에서 생존할 수 있다. 앞으로는 B2B(Business to Business)뿐 아니라 개인 고객 부문을 강화, 개인이 홈페이지에서 직접 사진을 구성해서 앨범을 주문하면 제작·배송하는 시스템을 활성화 시킬 계획이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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