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에 찍히면 죽는다' 업계 풍토에 속앓이…상대의 입장 청취하는 '소통의 길' 만들어야
<< "통(通)하였느냐?"
지식의 통섭(通涉)과 사회적 소통이라는 말이 사회적 화두가 된 지는 오래다. 최근 경제에서도 융·복합 산업이 생존과 시장 선점의 주요한 요인라는 인식이 자리잡고 있지만 소통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각계에서 소통이 요구되고 있지만 경제에서도 벽은 엄연하다. 더욱이 '밥줄'과 직접적으로 연결된 경제분야에서 기존의 시장 구조는 난공불락의 성으로 인식되고 있다.
'벽을 허물자'를 경제 분야에서는 산업·금융·건설 등 각 분야에 산재한 불통의 장벽을 진단하고 해결책을 모색해 본다. 산업 부문에서는 기업 규모, 이업종 등 산업계 안팎에서 불통으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점을 진단하고 해결책을 모색해 본다. >>
도내 A사는 삼성 계열사에 물건을 납품한다. 문제는 두 단계를 거쳐야 납품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지정 대리점 두 곳을 통해야 대기업에 납품할 수밖에 없는 구조 속에서 원가부담은 A사가 지게 된다. A사 관계자는 "한 곳만 거쳐도 이해를 하겠지만 유통단계 하나를 지날 때마다 7% 이상의 비용이 추가되고 결국 원가 낮추기는 우리몫이 된다"고 토로했다.
현대자동차에 금속 제품을 납품하는 B사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물가상승률에 비해 갈수록 납품가는 낮아지지만 인상을 요구할 수도 없는 입장이다. 도내에 위치한 현대차는 주로 상용차를 생산하기 때문에 인상요구를 할 기회마저 드물다. B사 관계자는 "일반 승용차는 신제품 출시가 비교적 자주 있어 이때마다 납품가 인상 요구라도 내비칠 수 있지만 상용차는 신제품 출시가 드물어 협력업체가 가격 부담을 안고 가는 실정이다"고 귀띔했다.
익산에 위치한 C사는 더욱 열악한 처지다. 원자재 가격이 지난해에 비해 두배 넘게 올라 납품가를 6% 가량 올려달라고 요구했다가 "물량을 다른 경쟁회사에 주겠다"는 통보를 받고 가격을 6% 이상 낮췄다.
도내 기업의 95% 이상을 차지하는 것은 중소기업이다. 하지만 중소기업은 대기업에 비해 항상 '을'이다. 중소기업은 유동성 확보와 안정적인 판로라는 측면 때문에 대기업 납품을 뿌리치지는 못한다. 더욱이 '대기업에 찍히면 죽는다'는 업계 풍토 때문에 속앓이만 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중소기업에서는 자연스럽게 "죽겠다!"는 외침이 나온다.
중소기업중앙회가 지난해 중소기업 260곳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서도 원자재 가격 상승분을 제품가격에 전부 반영해 납품한다는 업체는 조사 대상의 2.3%에 불과했다. 대기업의 원가 떠넘기기는 유통업도 마찬가지다. 대형 유통업체에서 할인 행사를 감행할 때 일방적으로 납품가를 '후려치는' 행태가 공공연하다는 게 중소 납품업체의 하소연이다.
무역협회 관계자는 "현대차가 세계에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었던 요인 중 하나는 중소기업이 어느정도 원가 부담을 지기 때문이다"고 지적했다.
대기업 입장은 다르다. 자회사를 통해 납품을 받는 대기업은 수십 개의 협력업체를 중간(자회사)에서 관리해야 품질의 일관성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소비자의 눈이 높아진 만큼 품질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협력업체의 제품을 검증하는 자회사가 필수적이라는 것. 또한 유통업계에서 일방적인 가격 떠넘기기 관행은 거의 사라졌다고 항변한다. 대형 유통업체 관계자는 "최근에는 납품업체에 불공정거래를 강요해 가격 떠넘기기를 할 수 없다"면서도 "과거보다 개선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러한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벽은 고질적인 문제다. 벽을 허물기 위한 첫 단추는 단연 '소통'이다. 이윤을 창출하는 두 집단은 상대방의 입장을 청취하려는 태도가 관건이다. 전북 카네기연구소 관계자는 "해답은 원론에 있다. 결국은 각자의 입장을 듣는 자세가 중요하다. 중소기업은 피해의식을 버리고 대기업은 중소기업과 교집합을 만드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한편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달 16일 '상생협력 및 공정거래협약'을 맺은 엘지·두산·롯데 등 3개 그룹 18개 계열사를 상대로 중소기업과 맺은 하도급 이행 여부를 평가한 결과, 10개사가 우수·양호 등급을 받았으며, 나머지 8개사는 약속 이행이 미흡해 양호 이상의 등급을 받지 못했다고 발표했다. 이 제도는 도입된 지 2년 반이 지났지만 대기업들의 지원약속이 상당수 헛구호에 그치면서 양호 이상 등급을 받는 기업들의 비율이 좀처럼 높아지지 않는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대기업이 상생을 외치지만 납품업체의 희생을 강요하는 관행 때문에 대기업의 구조조정과 원가절감이 중소기업의 납품단가 인하로 연결된다는 것.
공정위 관계자는 "양호 등급에 이르지 못한 기업도 공정거래를 위한 3대 가이드라인 도입, 현금성 결제비율 우수, 원자재가격 인상 등에 따른 납품단가 조정 등의 협약을 체결해 공정거래 정착을 위하여 노력한 점이 인정된다"고 말했다. 이어 "양호 등급(85점) 이상에 이르지 못한 대기업은 금년 상반기 중 부족한 점을 보완해 재협약을 하도록 유도할 계획이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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