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사 선정 제도 개선 필요" 지적도
전북의 한 여행사 대표가 정·관계 인사들에게 선물과 촌지를 돌렸다는 의혹이 정치권 수사로까지 확산하면서 4ㆍ11 총선 판도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경찰은 지난 16일 A 여행사 대표 유모(53)씨의 명예훼손 혐의를 수사하는 과정에서 우연히 전ㆍ현직 국회의원과 도의원, 전북도청·교육청 공무원, 경찰 간부 등에게 선물과 현금을 건넨 내용과 명단을 확보했다.
이 자료에는 도내 정ㆍ관계 인사 400여명의 이름과 선물과 현금을 건넨 날짜 등이 자세히 적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이에 따라 명단에 적힌 정치인과 공무원 등을 소환해 여행사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대가성 특혜가 있었는지를 집중적으로 파헤치고 있다.
금액이 많거나 횟수가 잦았으면 뇌물수수 혐의가 적용될 수 있다고 판단, 대가성이 있는 것으로 간주해 사법처리할 계획이다.
경찰 수사가 뇌물수수로 확대될 조짐을 보이자 도내 정가에서는 총선 판도에 큰 영향을 미칠 이번 사건의 수사 결과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여행사 리베이트' 의혹의 발단 = 지난달 27일 발신자를 알 수 없는 괴문자가 휴대전화로 불특정 다수에게 전달됐다.
전북도 감사관실과 도청 공무원, 도의원 등 1천600여 명에게 도청 소속 공무원 B(55)씨를 음해하는 문자메시지가 유포된 것.
이 문자메시지는 'B씨는 교육에는 관심 없고, 부하직원 부인을 겁탈해도 되는 겁니까?'라는 내용이었다.
이 사실을 뒤늦게 접한 B씨는 "문자메시지의 내용은 사실과 전혀 다르며 나를 음해하려는 것"이라며 전북경찰청에 수사를 의뢰했다.
사건을 수사하던 경찰은 지난 16일 이 문자메시지가 도내 A 여행사 대표 유씨의 컴퓨터에서 발송된 것을 확인, 여행사 사무실을 압수수색했다.
경찰은 컴퓨터 하드디스크를 분석하는 과정에서 우연히 전ㆍ현직 국회의원과 도의원, 전북도청·교육청 공무원, 경찰 간부 등에게 선물과 현금을 건넨 내용과 명단이 담긴 자료를 찾아냈다.
이 여행사는 지난 15년간 도와 도의회의 국내외 연수와 여행 대부분을 대행해 왔다.
실제로 유씨는 도의회 고위관계자와 유착관계가 깊다는 소문도 나돌았다.
경찰은 이런 정황을 포착, 유씨에 대한 명예훼손 혐의와 함께 '여행사 리베이트' 의혹도 병행해 수사에 착수했다.
◇ 경찰 수사 '갈팡질팡' = 하지만 경찰은 압수수색을 통해 명백한 자료를 확보했지만 전ㆍ현직 국회의원과 도의원, 경찰 간부 등이 포함된 탓인지 초기 수사에 소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경찰은 이 같은 리베이트 정황을 파악하고서도 사흘이 지난 18일에야 유씨에 대해 출국금지요청을 했고, 유씨에 대한 조사는 20일이 돼서야 시작했다.
2차 압수수색 역시 20일에 이뤄졌다.
경찰의 수사 지연으로 유씨는 닷새간의 시간을 벌게 됐다.
유씨가 증거를 없애고 리베이트와 관련된 정ㆍ관계 인사들과 말을 맞추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경찰이 리베이트 의혹을 처음 포착한 16일 곧바로 추가 압수수색과 함께 유씨의 신병 확보에 주력했다면 리베이트 의혹을 밝혀내기 수월했을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이후 경찰의 미흡한 수사에 대한 여론의 질책이 이어지자 경찰은 그제야 경찰청 사이버수사대와 광역수사대, 수사 2계 등 수사관 22명을 동원해 '여행사 리베이트' 전담수사팀을 구성했다.
수사전담팀을 구성한 경찰은 현직에 있는 모 부군수를 포함해 관련 공무원 30여명을 소환하는 등 수사에 박차를 가했다.
경찰은 현재 1차 소환 조사를 마치고 명단에 포함된 정ㆍ관계 인사 400여 명 중 뇌물수수혐의가 의심되는 20여 명을 추려냈다.
경찰은 이들을 조만간 소환할 계획이다.
◇'후폭풍' 4ㆍ11총선까지 갈까 = 경찰은 유씨가 2007년부터 이들 20여명에게 명절 선물과 현금 등을 지속적으로 건넨 것으로 보고 있다.
이들이 받은 선물과 현금은 개인당 수십만원에서부터 최고 300여만 원.
명단에는 전ㆍ현직 국회의원과 도의원, 총선 예비후보 등이 포함된 만큼 이들이 여행사 선정과 관련해 리베이트를 받았는지에 따라 사법처리가 불가피, 총선 판도가 요동칠 것으로 보인다.
유씨로부터 금품이나 선물을 주기적으로 받은 총선 예비후보자들의 구체적인 이름이 거론되고 있기 때문이다.
파문이 확산하자 이번 리베이트 의혹에서 자유로운 총선 예비후보들은 관련자들에 대한 공세에 나섰다.
유희태 민주통합당 전주 완산갑 예비후보는 "이번 사태로 4.11 총선을 앞두고 정치 불신 확산이 우려된다"며 "경찰은 하루빨리 진상을 조사해 한 점 의혹 없이 진실을 밝히라"고 요구했다.
김완자 민주통합당 전주 완산을 예비후보도 "민주당에서 높은 도덕성과 청렴성을 갖추지 못한 후보는 공천 배제 1순위에 해당한다"며 리베이트 의혹을 받는 후보들을 정면으로 겨냥했다.
방용승 통합진보당 전주 덕진 예비후보는 "총선 예비후보 외에도 많은 정치인이 연루된 것으로 알고 있다. 이번 기회에 지위고하를 불문하고 철저히 수사해서 근본적인 대책을 세울 수 있는 계기가 마련돼야 하며 관련 총선 예비후보는 후보직을 사퇴해야 한다"고 압박했다.
◇제도 개선 계기 되나 = 이번 의혹과 관련, 여행 업계는 '터질 것이 터졌다'는 반응이다.
도내 자치단체와 의회의 1회 해외 연수 비용은 수백만원에서 많게는 수천만원에 달하지만, 여행업체 선정은 대부분 수의계약을 통해 이뤄지는 것으로 드러났다.
도내 한 여행업체 관계자는 "시ㆍ도 의회나 자치단체의 국내외 여행업체 선정은 대부분 개인적인 친분관계에 의해 결정된다"며 "이미 업체와 입찰가가 정해져 있어 견적을 내봐야 소용이 없다"고 말했다.
실제로 남원시의회와 무주군의회의 해외연수는 수년 전부터 한 업체에서 도맡고 있다.
지방의회의 경우 여행이나 연수에 관련한 법규가 없어 여행업체 선정에 대해 감시할 방법이 없고 감사 대상도 되지 않는 탓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시민단체와 여행업계에서는 이번 기회에 관행적으로 이어져 온 여행업계의 로비 행태를 뿌리 뽑자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참여자치전북시민연대는 "지금까지 공무 또는 연수를 위한 국내외 여행 대행업체 선정이 수의계약으로 이뤄져 업자의 로비가 만연한 상황"이라며 "부패의 고리를 원천적으로 차단하려면 제도와 규정의 개정 보완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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