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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김용옥(金容玉) 편]한 견인주의자의 고독한 불빛

▲ 김용옥 시인

하루에도 열두 번 옷깃을 스치며

 

얼굴 마주해도 눈 맞추지 않는

 

너는 너대로 나는 나대로

 

너의 외로움

 

나의 쓸쓸함

 

한 뼘 살 속 깊이 쑤셔 쟁여놓고

 

한 보퉁이 판매 상품처럼

 

너는 너대로 나는 나대로,

 

네 외로움을 파실래요.

 

천근만근 제각각 제 짐 지고 가는

 

우리는 날마다 쓸쓸한

 

쓸쓸한 동행.

 

- '동행'에서

 

'하루에도 열두 번 옷깃을 스치며/ 얼굴 마주해도' '너는 너대로 나는 나대로/ 너의 외로움/ 나의 쓸쓸함'이 되는 이 '외로움과의 동행'이 김용옥(1948-) 시의 주조음을 이루고 있다. '외로움과의 동행', '쓸쓸함과의 동행'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면서 그런 속에서도 생존을 지탱해 가야만 하는 단독자로서의 고독과 외로움이 절절하다.

 

그러나 그가 고통을 이처럼 담담하게 이야기하기까지의 과정에는 남몰래 흘린 수많은 눈물과 좌절의 자맥질 과정, 거기에서 값지게 건져 올린 깨침의 세계가 있었으리라. 그런 의미에서 김용옥의 시 '동행'은 그가 진정한 자유인이요, 자활인으로 가기 위한 통과의례적 제의(祭儀)의 성격을 지니게 된다.

 

화장기 없는

 

여인의 얼굴이다.

 

내 발에 맞는 신발을 신고 걷는

 

우연적 필연이다.

 

지천으로 너불려 있는

 

돌멩이 밭에서

 

나의 의미가 된

 

돌멩이 하나다.

 

감추지 못한

 

맨 손이다.

 

맨 발이다.

 

맨마음이다.

 

- '나의 시는' 전문

 

'화장기 없는/ 여인의 얼굴' 그것은 '맨 손이다// 맨 발이다// 맨 마음이다'와 같은 있는 그대로의 실존적 자아에 대한 응시와 통찰을 통해 시인은 비로소 '지천으로 너불려 있는 / 돌멩이 밭에서/ 나의 의미가 된/ 돌멩이 하나'를 골라잡아 비로소 안정을 취하게 된다. 이는 모든 집착과 아집을 버리고 원래의 나로 돌아가 차분하게 나를 바라보고 응시하는 회광반조(廻光返照)의 세계, 곧 한없는 겸손과 하심(下心)의 세계다.

 

밥숟가락은

 

비어 있어서 밥을 뜬다

 

그리고,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

 

비워진다

 

너는,

 

누구의 밥숟가락이냐

 

- '밥숟가락' 전문

 

그러나 색즉시공이요 공즉시색이듯이 땅 없이 어찌 하늘을 바라고 오늘 없이 어찌 내일을 기약할 수 있으리오. 오수(汚水) 속에서 아름다운 연꽃이 피어오르듯 김용옥에게 있어서의 '밥'은 그의 생존이요 꿈이요 또한 내일의 희망과도 다르지 않는 경건하고 도 엄숙한 현실이다. 그러기에 '사람을 살게 하기 위해서/ 비워진다'는 '비어 있기에 밥숟가락을 들어야 한다.'는 안티테제로 바뀌어져야 한다.

 

비어 있음의 연속은 생명의 단절을 의미하기에, 밥숟가락이 비어 있을 때마다 우리는 밥숟가락을 찾아 나서야만 한다. 그가 우리 앞에 던진 '너는/ 누구의 밥숟가락이냐'고 한 이 단호하고도 엄숙한 화두 앞에서 우리는 치열한 본능과 욕망의 처절함을 배면에 깔고 비정한 세상을 온몸으로 고발한 한 견인주의자(堅忍主義者)의 고독한 불빛에 귀 기울이게 된다.

 

/시인·백제예술대학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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