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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의 중심이었던 우물] "마을 역사·문화 깃든 우물·샘 관리해야"

덮개 씌워지고 매립돼...시암제 풍습도 사라져 / 도내 음용수 가능 60곳, 방치된 곳 환경 개선을

▲ 정읍시 흑암동 상흑마을 우물.

매년 칠월칠석 전날이 되면 정읍지역의 여성들은 직녀를 향해 바느질과 길쌈을 잘 하도록 재주를 빌었고, 동네 남정네들은 영험한 효과가 있다는 새 물을 받기 위해 마을의 공동 우물을 청소하고 시암제를 지냈다.

 

깨끗하게 퍼내고 청소된 공동 우물에 새 물이 조금씩 차오르는 새벽이 되면 그 앞에 큰 상이 차려졌다. 처음 떠올린 물을 정안수로 올리고 온갖 음식이 진설되면 주민은 늦은 밤까지 마을의 안녕과 건강을 염원했다.

 

정읍의 각 마을마다 칠월칠석을 맞아 성대하게 치러지던 시암제는 지난 1908년 9월 상수도가 보급된 뒤 점차 자취를 감춘다. 상수도 시설이 확대되는 것에 발맞춰 공동 우물에는 덮개가 씌워지기나 쓰레기가 채워지며 매립됐다. 오랫동안 영험한 효과를 자랑하던 산골의 샘터도 버려지거나 메워지기 시작했다. 시암제도 여러 음식 대신 새 물을 담은 정안수와 쌀에 초를 꽂아 불을 밝히는 것으로 간소화됐다. 현재는 그 마저도 양수기로 물을 퍼내는 것으로 시암제를 대체하고 있다.

 

상수도의 보급과 함께 소중했던 우물과 샘과 관련된 문화가 사라지고 있다. 예로부터 마을형성에 필요한 필수 요건이자 생명의 젖줄 역할을 하며, 이를 매개로 사람들이 만나고 이어지던 정보와 사연들도 사라졌다. 더욱이 이런 아쉬움이 채 가시기도 전에 우물은 환경을 해치는 지하수의 오염원으로 지목됐다.

▲ 정읍시 흑암동 하흑마을 우물.

하지만 최근 환경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그동안 방치되던 마을 단위의 샘과 우물에 대한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이에 마을 단위의 공동우물과 샘에 대한 대대적인 환경 개선을 통해 다시금 자원으로의 개발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한국문화원연합회 전북도지회가 올해 문화 조사사업으로 과거 생명수로 각광받던 도내의 샘과 우물을 표본 조사했다. 8월 현재 80%까지 조사가 이뤄진 결과에 따르면 도내 생명수는 일부 산간 지역에 남아 있는 음용수를 모두 합해도 60개소에 머물렀다.

 

지역별로는 무주 산악지역 7개소, 군산 섬지역 6개소, 부안 사찰 및 산간지역 10개소 순창 산간지역 4개소, 고창 산간지역 8개소, 임실 산간지역 10개소, 장수 산간지역 5개소, 김제 6개소, 정읍 4개소 등이었다.

 

현재 우리의 관심에서조차 멀어져 버린 우물과 샘들은 지역에 따라 여전히 생명수로의 기능을 수행하고 있는가 하면 관리가 되지 않고 방치된 우물에는 온갖 오염물질이 모여져 지하수 오염의 근원지가 되어 가고 있는 상태다.

▲ 정읍 신정동 정해마을 우물.

이런 현실을 고려하듯 최근 환경부와 한국수자원공사, 국토교통부는 지하수의 오염과 오·남용을 막기 위해 지하수법을 제정하고 지난 2005년 12월부터 △지하수의 무분별한 개발과 이용억제 및 오염방지 △지하수이용부담금 부과·징수제도 도입 △불법 지하수개발·이용 시공업자 처벌 △지하수 공내 청소 등 사후관리제도의 도입 △지하수관련업체 종사자 교육의무화 등 개정안을 시행하고 있지만 개선은 요원한 상태다.

 

마을의 공동 우물과 샘에 대한 관리는 현행 지하수법상 어느 지역이나 지방자치단체장의 책임과 지휘를 받도록 명기되어 있다. 모터가 설치되어 있는 마을의 공동 우물의 경우 그나마도 우물 소유자의 관리와 행정의 관리를 받고 있다.

 

하지만 소규모의 마을에 산재한 작은 샘과 공동 우물은 모터가 설치되지 않아 해당 관청의 지휘를 받을 수 없어 관리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이런 우물은 관리 주체가 없이 방치돼 있거나 마을의 흉물로 전락하면서 지하수 오염의 근원이 되고 있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서는 소규모 우물도 관리를 통해 오염원으로서의 위험을 차단하고 마을공동체의 역사와 문화가 담긴 자원으로 되살려야 한다는 지적이다.

 

곽형주 정읍시 영원면 슬로공동체 추진위원장은 “과거의 마을의 샘과 우물들은 사람들이 정보와 삶의 애환을 나누던 공간이었다”면서 “광역상수도가 보급돼 편해지기는 했지만 우리가 마시는 물은 여전히 안심할 수 없어 정수기를 사용하는 형편이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마을에 곳곳에 남아있는 소규모 수자원에 대한 고민은 특정인의 문제가 아니라 모두의 문제”라고 덧붙였다.

▲ 이용찬 정읍문화원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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