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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일보 신춘문예 작가들이 추천하는 이 책] 이진숙 수필가-하기정 ‘건너가는 마음’

‘건너가는 마음’ 표지/사진=독자

한 문장, 하나의 어휘에서조차 발걸음이 쉽게 옮겨지지 않는 책이 있다.

책을 읽는 동안 사전을 통해 낯선 단어를 확인하고 작가의 생각을 탐색하느라 온 마음을 기울이게 된다. 책을 덮는 것이 아쉬워 일부러 게으름을 피우기도 한다. 작가의 섬세함과 진지함이 고스란히 담긴 책은, 저자의 마음이 나에게 건너오고 다시 누군가에게 이어 달려가려는 충분조건을 지닌 것이다. 하기정 시인의 산문집 『건너가는 마음』이 바로 그렇다.

이 책은 단번에 읽기보다는 천천히 음미하며 읽게 된다. 문장을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레 멈추게 되고, 그 멈춤 속에서 독자는 생각과 감정을 들여다보게 된다. 그래서 이 산문집은 바쁜 일상에서 잠시 속도를 늦추고 싶은 이 계절에 더욱 잘 어울린다. 

『건너가는 마음』의 문장들은 일상의 작은 틈에서 태어난다. 귀가 예민해지는 시간에 걷는 산책에서 얻은 삶의 단상들, 빗소리를 들으며 떠오르는 사유, 어이없는 죽음 앞에서 망자를 잊지 않겠다는 다짐, 시간을 눈으로 보게 만드는 낯선 감각들이 조용한 울림으로 다가온다. 사소해 보이는 순간들이 저자의 시선을 거치면서 삶의 본질로 확장되고, 우리가 무심히 지나쳤던 일상의 결들이 사실은 삶을 지탱하는 중심임을 이 산문집은 잔잔하게 일깨운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시인의 언어에 대한 감수성이다. 현실과 실현, 이별과 별리, 삼삼한 삶,반절과 절반처럼 닮은 말들 사이의 미묘한 간극을 살피게 하고, ‘불현듯’을 ‘불 켠 듯’으로 감각하는 방식은 의미 이전에 느낌으로 독자에게 다가온다. 숙성과 성숙의 차이를 조심스레 구분해 내는 문장들에서, 언어를 대하는 저자의 태도가 얼마나 섬세하고 정직한지 알 수 있다. 독자는 그 세심함을 읽는 동안 자연스럽게 작가의 철학을 공유하게 된다.

이 책에서 말하는 ‘건너감’은 단순한 이동이 아니다. 그것은 마음이 다른 마음을 향해 가닿는 과정이며, 상처로부터 조금 멀어지는 일이고, 오래 붙잡고 있던 감정을 내려놓는 연습이다. 작가는 이러한 마음의 움직임을 과장 없이 담아냈다. 소란스럽지 않으면서 깊이가 있으며, 삶을 정직하게 바라본 사람만이 쓸 수 있는 문장의 밀도를 지녔다.

작가는 주변 사물과 자연을 향한 애정이 각별하다. 집 앞 소나무에 집을 짓는 까치 부부를 응원하면서 상량문을 지어주고, 물난리를 피해 나무 둥지로 열을 지어 오르는 개미군단을 보면서 그들의 안전을 기원한다. 이처럼 이 글에는 이해하기 위해 속도를 늦추는 마음, 멀리서 지켜보며 응원하는 마음, 조용히 곁을 지키는 마음이 문장 사이에 스며 있다. 그래서 이 산문집을 읽고 나면 잠시 멈춰 서게 된다. 글 속에서 만난 온기가 독자의 마음으로 옮겨 오기 때문이다.

『건너가는 마음』은 결국 사람과 사람 사이에 다리를 놓는 책이다. 그 다리를 건너며 독자는 내면과 마주하고, 삶의 방향을 조용히 점검하게 된다. 화려하지 않지만 오래 남는 따뜻함을 지닌 이 책은, 마음에 그늘이 내려앉을 때 다시 펼치고 싶은 산문집이다. 책을 덮은 지금도 이렇게 속삭이는 듯하다.

“괜찮아, 천천히 건너가도 돼.”

이진숙 수필가는

전직 국어교사. 전북일보 신춘문예 수필 부문에 당선. 최명희문학관에서 “혼불” 완독 프로그램 14년간 진행. <우리, 이제 다시 피어날 시간> 오디오북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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