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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리 조엘, 무결점 공연으로 '팝의 전설'증명

무대 양쪽의 대형 화면에 '피아노 맨'(Piano Man)이라는 제목이 뜬 후 노래 가사가 자막으로 흘렀다. 두 시간 가까이 열정적인 공연을 펼친 빌리 조엘(Billy Joelㆍ59)이 하모니카에 이어 피아노를 연주하자 일어선 1만2천 관객이 일제히 노래를 따라 부르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조엘은 15일 오후 서울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연 첫 내한공연에서 '팝의 전설'이라는 별칭에 걸맞은 훌륭한 무대를 꾸몄다. 아름다운 피아노 연주와 흥겨운 로큰롤, 매력적인 보컬이 완벽하게 조화를 이룬 '무결점의 공연'이었다. 이날 관객의 귀를 즐겁게 한 것은 무엇보다 끝없이 이어지는 히트곡 행진이었다. 1970년대 초에 데뷔 후 30년 넘게 팝계 정상에 머무르고 있는 조엘은 국내 팬의 귀에 익숙한 곡을 계속해서 들려줬다. 거의 모든 곡의 전주가 흘러나올 때마다 객석에서는 환호와 박수가 터졌다. 피아노 앞에 앉은 그에게 조명이 비친 후 격렬한 피아노 연주가 흘렀다. 공연의 막을 올린 '앵그리 영 맨'(Angry Young Man)이었다. 곧바로 대형 히트곡 '마이 라이프'(My Life)가 이어졌다. 20대부터 50대 이상 폭넓은 연령층의 관객은 박수와 환호로 '팝의 전설'을 반겼다. 이어 "감사합니다. 안녕하세요. 코리아"라고 한국말로 인사한 그는 "1978년 곡으로 음반 '52nd 스트리트'(52nd Street)에 수록된 곡을 부르겠다"고 소개한 후 그의 최대 히트곡 중의 하나인 '어니스티'(Honesty)를 열창했다. 환갑을 앞둔 나이지만 조엘의 목소리는 여전히 달콤했고 매력적이었다. 고음도 무리없이 잘 소화했고 공연 후반부에서도 목소리의 힘이 떨어지거나 잠기는 듯한 느낌은 없었다. '뉴욕 스테이트 오브 마인드'(New York State Of Mind)에서는 색소폰과 피아노가 어울린 격조 높은 무대를 꾸몄다. '스트레인저'(Stranger)'는 서정적인 휘파람으로 시작된 후 흥겨운 리듬이 이어진 곡이었다. 이날 그의 공연이 특히 신났던 것은 그의 음악이 부드러운 발라드보다는 리듬이 강한 로큰롤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는 역동적인 피아노 연주를 이끌었고, 드럼과 기타의 강한 비트가 뒤를 받치며 멋지게 조화를 이뤘다. '무빙 아웃'(Moving Out) 때는 흥을 이기지 못한 일부 관객이 좌석을 박차고 무대 앞으로 몰려가 춤을 췄다. '리버 오브 드림스'(River Of Dreams) 때는 노래를 부르던 조엘이 갑자기 연주를 멈춘 후 관객에게 일어서서 함께 즐기자고 권하기도 했다. '잇츠 스틸 로큰롤 투 미'(It's Still Rock'n Roll To Me) 때는 피아노 대신 마이크를 잡고 마이크 지지대를 빙빙 돌리며 흥을 돋웠다. 히트곡 퍼레이드는 그게 끝이 아니었다. '저스트 더 웨이 유 아'(Just The Way You Are), '위 디든트 스타트 더 파이어'(We Didn't Start The Fire)', '쉬스 올웨이스 어 우먼'(She's Always A Woman) 등 국내 팬에게 잘 알려진 곡은 계속됐다. 공연에서는 특히 무대 연출이 눈길을 끌었다. 조엘이 직접 참여한 무대 연출에는 30t의 무대 장비가 투입됐고 브리트니 스피어스, 이글스, 엘튼 존 등의 무대와 조명을 디자인한 스티븐 코헨 제작총괄감독도 무대 제작에 참여했다. 천장부터 무대 중간 부분까지 계단식으로 설치된 조명 장치는 멜로디에 맞춰 형형색색으로 바뀌며 분위기를 띄웠다. '신스 프롬 언 이탈리안 레스토랑'(Scenes From An Italian Restaurant)으로 본 공연을 마무리한 그는 무대 앞으로 다가가 관객의 손을 일일이 잡아 준 후 무대 뒤로 물러갔다. 열띤 앙코르 요청을 받고 다시 등장한 후 '온리 더 굿 다이 영'(Only The Good Die Young)을 부른 그는 최고 히트곡 '피아노 맨'으로 공연의 대미를 화려하게 장식했다.

  • 방송·연예
  • 연합
  • 2008.11.17 23:02

장기하 "홍대 출신 '달찬놈' 떴다네요"

'홍대 밥'을 먹은 지 몇 년 안되는 장기하(26)가 인터넷을 통해 유명세를 타고있다. 인터넷 검색창에 '장기하'를 치면 '장기하 서울대' 등 관련 검색어부터 마이클 잭슨이 그의 노래에 립싱크하는 패러디 동영상까지 네티즌의 높은 관심이 드러난다. '달찬놈', '장교주', '인디계의 서태지'로 불리기도 한다. 올 여름 8년 만에 서울대 사회학과를 졸업한 그는 인디밴드 '눈뜨고 코베인'의 드러머이자 인디밴드 '장기하와 얼굴들'에서 보컬 겸 작사ㆍ작곡ㆍ기타ㆍ퍼커션을 맡고있다. 장기하와 얼굴들이 새삼 신선한 것은 송창식처럼 목젖을 울리며 말하듯 노래하는 복고 창법, 포크록이라지만 장르가 불분명한 구수한 음악 덕이 가장 크다. 또 네티즌 사이에서 크게 히트한 '달이 차오른다, 가자'를 부를 때 장기하는 양팔을 아래 위로 휘저으며 춤을 춘다. 그의 뒤에는 세명의 밴드 멤버 외에도 검정 선글라스를 낀 2인조 여성댄서 겸 코러스 팀 '미미 시스터즈'가 등장한다. 인디 밴드 특유의 카리스마를 집어던진 보컬, 밴드의 공식을 깬 멤버 구성으로 청각과 더불어 시각적인 효과도 거뒀다. 이 노래 덕에 '달찬놈' UCC도 다량 제작됐다. 장기하와 얼굴들은 세곡이 담긴 데뷔 싱글 '싸구려 커피'를 발표했다. 최근 만난 그는 꽤 멀끔했고, "유명해졌다"는 말에 "인터뷰를 많이 하는 게 달라진 점"이라고 대수롭지 않은 듯 말했다. 그는 여느 인디밴드 보컬과 달리 어린 시절부터 메탈리카와 레드 제플린에 심취하지도, 주류 대중음악 가수들에 대한 반감도 갖고 있지 않았다. "스멀스멀 음악을 하게 됐어요. 초등학교 저학년, 또래 친구들은 이순신 전기를 읽을 때 저는 TV에 나온 소방차, 도시의 아이들을 좋아했죠. 이후 서태지와 아이들의 엄청난 팬이기도 했고 학창 시절 장기자랑 때 키가 크다는 이유로 양현석 씨 역할을 맡기도 했죠. TV를 벗어나서 음악을 들은 역사가 길지 않아요."음악도, 독서도 폭넓지 않았던 그가 산울림과 신중현의 음악에 귀기울인 것도 2002년 결성된 눈뜨고 코베인의 드러머로 활동하면서 부터다. 멤버들이 "너무 무식해서 안되겠다"고 하나 둘 들려준 선배들의 음악에 역시 스멀스멀 빠져들었다. "교회 중고등부 찬양팀에서 드럼을 쳤어요. 대학 입학하면 밴드를 하고 싶었죠. 물론 사회학자가 되겠다는 의지도 있었지만. 학과에서 이것저것 하다보니 음악과 관계없는 일로 2년을 보냈어요. 정신을 차려 3학년 때 학과 친구들을 모아 밴드 '아무래'를 결성하고 춤 잘 추는 애들도 영입했죠."아무래의 교내 단독 공연을 본 눈뜨고 코베인의 두 멤버(기타, 베이스)가 장기하에게 드러머 자리를 제안했다. "저를 영입하려는 세가지 이유를 대더군요. 노래를 만들 줄 알고, 드럼을 치고, 댄서를 세우는 걸 보면 근본주의적인 록 마니아가 아니라 마음이 열려있는 사람일 거라더군요. 그 자리에서 오케이 했어요. 그들은 펑크 밴드를 하고 있었는데 제가 레드핫칠리페퍼스에 빠져있었기에 펑크 밴드를 해보고 싶었죠. 그런데 연습실에 가보니 산울림 음악을 하고 있더군요. 하하."지난해 군에서 제대한 그는 눈뜨고 코베인으로 활동하면서 알게 된 '얼굴 되는' 멤버들을 영입해 장기하와 얼굴들을 결성했다. 얼굴도 되는 멤버들은 실력마저 좋았다고. 그는 "화려한 기술을 가진 연주자보다 쉬운 박자여도 정확하고 안정감있게 연주하는 사람이 필요했다"고 한다. 그의 창법도 가창력과 기교에 치중하기보다는 정직하다. 애창곡이 그룹 H.O.T의 노래인 '노래방 가수'였다는 그는 노래 부르는 것보다 곡을 만드는게 좋아지기 시작했고, 만들다보니 가장 잘 부를 수 있는 노래가 나왔다는 설명도 덧붙인다. "송창식, 정태춘, 배철수, 김창완 등의 선배님들은 음표에 가사를 끼워맞추지 않고, 일상에서 쓰는 말을 보존하며 노래합니다. 전달도 잘 되고 듣기도 좋죠. 말이라는 건 늘 일상 속에 있으니 조합하는 방식이 새로우면 되는거죠. 20~30년 전 노래를 듣다보니 그 방식이 한국말로 노래하는 이들에게 당연한 것이라는 걸 알았죠. 지금은 당연한 방식이 없는 것이고, 그래서 우리를 특이하게 보는 것 같아요."인디 레이블 붕가붕가 레코드에서 발매한 데뷔 싱글은 직원들이 장당 단가 1천원에 가내수공업으로 제작했고 3천장이 넘게 팔렸다. 수록곡은 노랫말이 직설적이고 도발적이며 머리 속에서 연상 작용을 일으킨다. '벽장 속 제습제는 벌써 꽉 차 있으나 마나 모기 때려잡다 번진 피가 묻은 거울을 볼 때마다 어우 약간 놀라~미지근한 콜라가 담긴 캔을 입에 가져가 한모금 아뿔싸 담배 꽁초가~'('싸구려 커피')'그렇게 빨리 가다가는 죽을 만큼 뛰다가는 사뿐히 지나가는 예쁜 고양이 한 마리도 못 보고 지나치겠네~'('느리게 걷자')그는 "가사를 쓸 때 최대한 솔직하자는 주의"라며 "그 시기에 내 머리를 장악하고 있는 걸 소재로 해야 재미있게 나온다"며 "실제 콜라를 마시다가 담배꽁초를 먹은 적이 있다"고 웃었다. "우리 음악은 대중가요이지 추구하는 장르는 없어요. 노래를 만들고 걸맞는 사운드에 옷을 입히면 된다는 식이죠. 포크록이 된 것은 초기 단계에 제가 할 수 있는 자원을 200% 활용한 결과입니다. 수중에 있는 악기가 기타였고, 가진 지식을 알뜰하게 사용해서 시작한 거죠. 많은 분들의 관심이 자본으로 연결되면 다른 시도도 할 수 있죠. 재미있으면 하고 없으면 안 할거예요."정규 음반은 내년 2월에 발매한다. 데뷔 싱글은 이들의 명함인 셈이다.

  • 방송·연예
  • 연합
  • 2008.11.17 23:02

윤종신 "'예능늦둥이'가 프로그램 5개 합니다"

그가 힘들어 잠시 쉬려고 하면 화면에는 '어르신 힘들어 잔다'는 자막이 뜬다. 또 상대방의 말에 귀를 기울이면 '귀가 얇은 어르신'이라는 해설이 붙는다. 1969년생. 아직 만으로 마흔이 되지 않았고 며칠 전에야 첫 아들의 돌잔치를 치른 그이지만 언젠가부터 TV 예능 프로그램에서 그는 체력이 약하고 후배들의 보살핌을 받아야하는 '어르신'이 됐다. 그래도 좋다. '예능 늦둥이'로 사랑받고 있으니까. "'예능 늦둥이'라는 말을 신정환 씨가 붙여줬는데, 듣자마자 느낌이 팍 왔어요. 어감이 아주 좋았습니다."윤종신이 가수에 이어 '예능 늦둥이'로 종횡무진 활약 중이다. 지난달 한 조사에서 '가장 호감 가는 예능 늦둥이'로 뽑히기도 한 그는 현재 무려 다섯개의 프로그램에서 끼를 발산하고 있다. "사실 평소에 운동을 열심히 하는 '청년'입니다.(웃음) 예능 프로그램에서 보이는 제 모습은 실제와 같아요. 저더러 연기를 하라고 하면 에너지 소모가 참 많을텐데, 그냥 제 성격 그대로를 편하게 보여주면 되니까 다섯개 프로그램을 해도 그다지 힘들지는 않아요. 또 캐릭터가 '어르신'으로 설정됐으니 힘들면 힘들다고, 아프면 아프다고 해버리면 되니까요. 실제로 귀도 얇구요.(웃음)"SBS TV '일요일이 좋다 - 패밀리가 떴다'와 '야심만만2 -예능선수촌', MBC TV '황금어장 - 라디오 스타'와 '명랑 히어로' 등 네 개 프로에 출연하던 그는 19일 첫선을 보이는 MBC '음악여행 라라라'에도 참여하게됐다.

  • 방송·연예
  • 연합
  • 2008.11.17 23:02

강인 "연기.연예.가요 대상 석권하고 싶어요"

아이돌 그룹 '슈퍼주니어'의 강인(23)이 갖는 매력은 다방면으로 넘쳐나는 에너지가 아닐까 싶다. 가수를 넘어 TV 예능 프로그램의 단골출연자로, 그리고 MBC FM '친한친구'에서는 DJ로 맹활약 중인 그는 영화 '꽃미남 연쇄테러사건'으로 작년 영화배우로 데뷔했고 27일 두 번째 영화 '순정만화'를 통해 관객들을 만난다. 영화 개봉을 앞두고 만난 강인은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쉴 새 없이 쏟아내기에 바빴다. 마치 영화에 푹 빠져 다른 영역의 활동은 잊고 있는 듯, 자신의 연기에 대한 세세한 설명에서부터 촬영장에서의 에피소드, 개봉에 대한 기대 등을 끊임없이 늘어놨다. 여느 아이돌 그룹 출신 배우들처럼 그저 한번 '도전해 본다'는 데 의의를 두는 연기자 변신이 아닐까 하는 우려가 흐려질 무렵 그는 "연기는 오래전부터 가지고 있던 꿈"이라고 털어놨다. "가수의 연기 도전에 대해 남들이 어떻게 생각할지 알고 있어요. '한 우물만 파지 못하고 여기저기 찔러본다'는 편견이 있을 수도 있고 '영화에 진지하게 임하지 않는다'는 의심도 있겠죠. 하지만 신경 안써요. 연기는 오래 전부터 꿈이었고 앞으로도 길게 보고 계속해 나갈 분야이니까요"상명대 영화학과 03학번인 그는 사실 1학년이던 2003년 선배의 단편 영화 '옆집 아들'에 출연하고 수업 과제로 직접 단편영화를 연출한 '영화인'이다. 고 1때부터 시작된 기획사 SM엔터테인먼트의 연습생 시절 그가 가장 많은 노력을 기울였던 것도 연기 연습이었다. '순정만화'는 출연 전부터 그와는 두 가지 각별한 인연이 있던 작품이다. 하나는 원작인 만화와 관련된 것이고 다른 하나는 류장하 감독에 대한 것이다. "팬들로부터 '순정만화'의 만화책 선물이 유난히 많았어요. 팬들이 강숙이란 인물이 저와 정말 닮았다며 꼭 읽어보라고 하더군요. '한번 읽어볼까' 생각하던 중 영화 캐스팅 제의가 들어왔어요. 영화사에서 시나리오를 받아 읽어보니 무뚝뚝하면서도 능글맞은 게 정말 저랑 똑같더군요"강인은 류 감독의 전작 '꽃피는 봄이오면'(2004년)을 10번 넘게 봤을 정도로 류 감독의 팬이기도 하다. 강인은 "연습생시절 멤버들과 함께 '꽃피는 봄이오면'을 DVD로 빌려봤는데 멤버 13명 모두가 이 영화이 팬이 돼버렸어요. 영화 속 장면을 따라하며 멤버들이 음악에 맞춰 트위스트를 추기도 했었다"고 말했다. 만화가 강풀의 동명 만화가 원작인 '순정만화'는 상상도 못한 상대에게 빠져버린 네 남녀의 연애 이야기를 담고 있다. 강인은 연상의 여성 하경(채정안)과 사랑에 빠진 연하남 강숙 역으로 출연하며, 유지태와 이연희도 커플로 등장한다. 강인은 영화에 대해 "천사같은 감독님과 저를 각별히 아껴주시는 촬영감독님, 연기하는 것을 볼 수 있는 것만으로 큰 가르침을 준 지태 형 덕분에 촬영이 끝나는 게 싫을 정도로 재미있었던 경험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영화 속 연애의 상대인 채정안에 대해서는 "서로 호흡을 맞춰가며 하는 연기의 재미를 가르쳐줬다"며 특히 고마워했다. "10시간 가까이 키스신을 찍은 적도 있었지만 그래도 정안 누나는 제겐 꼭 형같은 사람이에요. 조언도 많이해주고 연기하는데 배려도 아끼지 않아서 연기하는 데 큰 도움을 줬어요. 남들 못 듣게 조용히 '이런 동작을 한번 살려봐라', '너 그런식으로 하면 연기 못한다는 소리 듣는다'라며 조언해주기도 하고 '하경이는 좀 더 사랑받고 싶어. 강숙의 사랑하는 마음을 보여줘'라며 다독거려주기도 했어요"영화 속 '연상녀 연하남' 커플에 대해 "사랑하기만 한다면 나이가 뭐가 중요해요. 2~3살 연상까지는 사귀어본 적 있어요"라며 또래의 쿨함을 보여주던 그는 '10년 후 자신의 모습을 상상해 본적 있느냐'는 질문에는 진지한 답변을 내놨다. "10년 안에 방송사의 연기 대상과 연예 대상, 가요 대상 모두를 석권하고 싶어요. 예능프로그램에서도 활약하고 싶고 슈퍼쥬니어로 가요 대상도 타고 싶기도 하지만 연기자로서의 꿈도 잘 가꿔 나갈 생각입니다. 이번 영화로 관객들로부터 '잘 하네' 혹은 '열심히 하네'라는 반응을 얻는다면 좋겠네요. 노력하는 모습이 쌓이면 연기자로도 팬들과 자주 만날 수 있겠죠"

  • 방송·연예
  • 연합
  • 2008.11.17 23:02

여장부 역할이지만 가녀린 여자입니다

탤런트 도지원(40)은 TV 드라마에 자주 얼굴을 비치는 배우가 아니다. 최근 출연한 MBC TV 2부작 '우리들의 해피엔딩'을 제외하면 2002년 비슷한 시기에 종영한 SBS TV '여인천하', '엄마의 노래' 이후 출연한 드라마는 2005년 SBS TV '토지' 뿐이다.가물에 콩 나듯 브라운관을 찾고 있지만 출연할 때마다 쉽게 잊히지 않는 강렬한 이미지를 남겼다. '여인천하'에서는 '뭬~야'라는 유행어를 히트시킨 경빈 박씨로열연했다. '토지'에서는 조준구의 아내 홍씨 부인 역을 맡아 주인공 최서희를 상대로 극악한 연기를 펼쳤다.도지원이 19일부터 전파를 타는 MBC TV '종합병원2'로 3년 만에 시리즈 드라마에 출연한다. 현대극으로는 '엄마의 노래' 이후 사실상 6년 만이다."그동안 드라마를 고르기가 쉽지 않았어요. 저는 여린 성격의 연기도 잘 해 왔는데 '여인천하' 이후 카리스마가 부각되는 배역 제의만 계속됐습니다. 그러다가 '우리들의 해피엔딩'은 따뜻한 내면을 드러내는 캐릭터라 출연하게 됐어요. 이번 드라마의 배역도 강한 듯하지만 사적으로는 여자다운 면을 가진 인물이라 흔쾌히 출연을 결심했습니다."'종합병원2'에서는 응급실을 책임지는 응급의학과 스태프의사 송혜수 역을 맡았다. 응급실 안에서는 긴박한 일을 척척 해결하는 '여장부'지만 선배 의사 김도훈(이재룡 분) 앞에서는 가녀린 여자가 되는 인물이다.그는 캐스팅된 후 응급실을 들락거리며 의사들의 삶을 가까이에서 살펴봤다. 사흘 동안 병원에 직접 머물며 수술 장면 등을 보며 의사로서의 감을 익혔다."심폐소생술 등을 배우며 여러 체험을 했지요. 그러면서 의사에 대해 가졌던 생각도 많이 바뀌었습니다. 인간의 생명을 다루는 게 보통 일이 아니며, 의사는 참으로 고달픈 직업이라는 것을 체감했어요."이번 드라마에 출연하게 되면서 노도철 PD와는 '우리들의 해피엔딩'에 이어 연속으로 인연을 맺게 됐다. 노 PD는 MBC TV 시트콤 '안녕, 프란체스카', '소울 메이트' 등을 연출했으며 '종합병원2'는 첫 미니시리즈 연출작이다."노도철 감독님은 상당히 꼼꼼한 편이며 하나씩 짚어가며 세밀하게 촬영하는 분입니다. 저와 스타일이 잘 맞는 것 같아요. 감독님은 본인이 생각한 그림이 나오지 않으면 수십 번 촬영을 반복하는 고집을 가졌지요. 편집과 연출 스타일도 독특한 것같습니다."노 PD의 꼼꼼한 촬영 덕분에 육체적으로 심한 고생을 한 적도 있다. 구급차용 침대 위의 좁은 공간에서 환자 위에 올라가 3~4시간 동안 심폐소생술을 하는 연기를했던 것."침대 위의 공간이 좁아서 양무릎을 올려놓기가 힘들 정도였습니다. 침대 양끝에 무릎을 겨우 걸쳐 놓은 채 반복해서 촬영하느라 너무 힘이 들었지요. 이 장면을 찍은 후 다리와 허리에 무리가 생긴 바람에 3일 동안 제대로 걷지 못했습니다."대단한 인기를 누렸던 원작의 후속편에 출연한다는 부담감은 없을까."2편에 출연한다는 이유로 1편을 일부러 찾아서 보지는 않았어요. 1편의 장면을자세하게 아는 것보다 어렴풋한 느낌을 갖고 연기하는 게 더 낫다고 생각했습니다.1편의 뒤를 이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은 갖지 않는 게 낫지요. 오히려 2편만의 색다른느낌을 주도록 노력하겠습니다."'실제 모습보다 화면 속 이미지가 더 강한 것 같다'는 말에 그는 "싫은 소리를 잘하지 못하고 숫기 없는 내성적인 성격"이라고 웃으며 "나에게 없는 면을 끄집어내서 표출하는 것이 연기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 방송·연예
  • 연합
  • 2008.11.17 23:02

나폴레옹 전성기·몰락 과정 등 EBS '다큐10+' 18·25일 방송

EBS TV '다큐10+'는 나폴레옹의 전성기와 몰락과정을 보여주는 다큐멘터리를 18일과 25일 오후 11시10분에 차례로 방송한다.18일 '나폴레옹, 유럽을 지배하다'에서는 160㎝도 안되는 작은 키에 왼손잡이였던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어떻게 유럽을 제패했는지 알아본다.1804년 12월 2일 35살이던 나폴레옹은 최고가 되려던 자신의 꿈을 실현한다. 코르시카 출신의 젊은 중위가 당시 유럽 전역을 뒤흔든 혁명의 물결에 몸을 던져 결국장군의 자리에 오르고, 사랑하는 여인 조세핀과 결혼한 후 전장에 나가 잇단 승리 끝에 마침내 프랑스에서 가장 높은 자리에 오른 것이다.자신의 제관식을 영국에서도 거행하고 싶었던 나폴레옹은 1805년 군함 2천 척과20만 명의 병사를 이끌고 영국 침공 계획을 세운다. 그러나 나폴레옹의 함대는 당시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함대를 보유한 영국의 적수가 되지 못한다. 나폴레옹은 영국을 포기하고 유럽 대륙으로 눈을 돌렸으나 당시 오스트리아와 러시아는 나폴레옹에 대항하기 위해 영국과 동맹을 체결한 상태였다.25일 '나폴레옹의 몰락'에서는 등장 만큼이나 드라마틱했던 나폴레옹의 몰락 과정을 조명한다.나폴레옹은 자신의 제국이 커져가자 스스로를 신과 같은 존재로 여기며 제국을 이어나갈 아들을 원했다. 그는 조세핀과 이혼한 후 오스트리아 황제 프란츠 1세의 딸인 19세의 마리 루이즈 공주를 새 아내로 맞아 아들을 얻는다.그러나 1812년 봄 보좌관들의 조언을 무시하고 60만 대군을 이끌고 러시아를 침공한 나폴레옹은 승리를 자신했지만 쓰라린 패배를 맛본다. 설상가상으로 그 해 12월 5일 파리에서는 쿠데타가 발생하고, 전 유럽이 나폴레옹에 대항하는 연합전선을 구축하면서 결국 나폴레옹은 권좌를 잃고 유배를 떠난다.

  • 방송·연예
  • 연합
  • 2008.11.17 23:02

스노 패트롤 "폭우속 공연한 한국 또 가고파"

5인조 록그룹 스노 패트롤(Snow Patrol)은 2006년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 무대에 올라 폭우 속에서 열띤 공연을 펼쳤다. 이들의 히트곡 '체이싱 카스'(Chasing Cars)는 인기 미국 드라마 '그레이 아나토미'에 삽입돼 인기를 모으고 있다. 최근 몇 년 동안 빠른 속도로 국내 팬을 확보해가는 이들이 2년 만에 신작 '어 헌드레드 밀리온 선스'(A Hundred Million Suns)를 내 놓고 연합뉴스와의 이메일 인터뷰에 응했다. 스노 패트롤은 인터뷰에서 2년 전 내한 공연 때의 느낌부터 전했다. "한국에 머무른 동안 계속 비가 내렸습니다. 관객은 빗속에서도 아주 열정적으로 놀았지요. 화려한 색의 장화와 비옷들의 향연이 기억납니다. 굉장한 장면이었지요. 최고의 시간을 경험했습니다. 꼭 다시 가서 공연하고 싶어요."(톰 심슨, 키보드)아일랜드와 영국 출신 멤버로 구성된 이들은 2004년 '파이널 스트로'(Final Straw)에서 '런'(Run) 등을 히트시키며 주목받았다. 2006년 '체이싱 카스'가 수록된 '아이스 오픈'(Eyes Open)을 500만 장이나 팔며 브릿팝계의 스타로 떠올랐다. "이번 음반에서는 이전의 발라드 같은 노래를 반복하지 않으려고 노력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체이싱 카스'나 '런'의 일부 소절만 기억할 뿐인데 이번 음반에는 그런 템포나 멜로디에 맞는 곡은 없어요. 이전 음반이 헤어짐의 슬픔에 관한 것이었다면 게리 라이트바디(보컬, 작곡)가 이번에 쓴 곡은 남녀관계의 긍정적인 면이나 사랑을 찾아가는 과정 등 밝은 분위기를 담았습니다."첫 싱글은 '테이크 백 더 시티'(Take Back The City)다. 게리 라이트바디가 자신의 고향인 아일랜드 도시 벨파스트에 대한 애정을 담았다. "이 노래를 듣는 팬들이 자신이 태어난 도시를 떠올릴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지금은 도시가 좋지만 몇 년 후에는 한적한 시골 생활이 좋아질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은퇴할 시기가 되면 농사를 지으면서 시골 생활을 즐기고 싶습니다."(조니 퀸, 드럼)"저도 가장 편안하게 느끼는 곳은 고향입니다. 최근 제가 태어난 스코틀랜드 바다 근처에 집을 장만했지요."(톰 심슨)이 음반은 러닝타임이 16분18초에 달하는 대작 '더 라이트닝 스트라이크'(The Lightning Strike)가 마지막 트랙을 장식한다. 서사시 같은 웅장한 느낌으로 록 음악의 깊은맛을 전하고 있다. "이번 음반 수록곡 중에서 이 트랙의 첫 곡인 '왓 이프 디스 스톰 엔즈'(What If This Storm Ends)를 가장 좋아합니다. 비틀스의 '어 데이 인 더 라이프'(A Day In The Life)처럼 큰 변화를 준 곡입니다. 뮤지션으로서 그렇게 크고 웅장한 곡을 연주한다는 것은 굉장한 경험이지요."(조니 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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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8.11.14 23:02

20대 기부천사는 문근영? 모금회측 "맞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이하 모금회)에 지난 6년간 8억5천만 원을 익명으로 기부한 20대 연예인이 배우 문근영(21)으로 밝혀졌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측은 13일 "익명의 기부자는 문근영 씨"라고 공식적으로 확인했다. 이날 오전까지만 해도 모금회 측은 기부자 측의 요청이라며 기부자의 신원에 대해 함구했고 문근영 측도 '모르쇠'로 일관했지만, 연예계 안팎에서는 문근영의 과거 기부 행적 등을 들어 그가 기부자일 것이라는 추측을 제기했다. 이에 앞서 모금회는 이 기부자가 2003년부터 2008년까지 모두 8억5천만원을 기부해 개인 최고액 기부자로 기록됐다고 밝히면서, 그의 기부 행태가 정기적이라기보다 광고모델료 등을 받았을 때 5천만~1억원 가량의 거액을 서슴없이 내놓는 식이라고 설명했다. 문근영은 2003년 '장화홍련', 2004년 '어린신부'를 거치며 스타덤에 올랐고, 그간 모금회에 기부한 사실이 간헐적으로 포착되는 등 평소 기부 활동을 많이 해와 모금회 측의 함구에도 불구하고 이번 선행의 주인공으로 유력하게 거론됐다. 문근영은 수 년째 '기적의 도서관'에 후원금을 기탁하고 전남 해남군 땅끝마을에 어려운 학생을 위한 공부방을 마련해 주는가 하면, 소아암ㆍ백혈병 치료에 써달라며 5천500만 원을 기부하고 광주시에 학생들을 위한 장학금으로 3천만 원을 기탁하는 등 꾸준히 자선활동을 해왔다. 또 최근에는 3년 간 독서운동단체 행복한아침독서에 모두 1억 원을 기부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는 등 그의 숨은 기부는 계속해서 속속 드러나고 있다. 한편 문근영 측이 기부를 하며 함구하는 이유는 '조용한 선행'을 실천하려는 뜻이 가장 크지만, 혹시라도 있을지 모를 악플을 피하기 위한 것도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연예가에서는 "좋은 일을 해도 뜻을 왜곡해 악플이 달리는 세상이고, 실제로 그동안 문근영의 선행에도 딴죽을 거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에 조심스러워하는 것도 있을 것"이라고 진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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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8.11.14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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