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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여기는 끝났어”…전국 벤치마킹하던 예술촌이 ‘유령 마을’로

전성기 5년 만에 공가, 폐가만 남은 골목…상권마저 사라져
아파트 재건축 가닥…"예술마을로 성공하지 못해 아쉬움 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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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일 대낮의 전주시 덕진구 선미촌 골목은 사람 없는 폐업소들만이 가득했다. /  문준혁 기자

“처음에는 뭐라도 들어오는 가 싶었는데, 지금은 유령마을 같아.”

지난 7일 오후 2시, 전주시 완산구 서노송동. 한때 전국 지자체의 벤치마킹 행렬이 줄을 이었던 ‘서노송 예술촌(옛 선미촌)’을 찾았다.

전주시청 대로변 빌딩숲 뒤편, 좁은 골목 안으로 발을 들이는 순간 도심 한복판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인기척이 없었다. 바람에 뒹구는 고지서 수십장이 바닥을 뒤 덮고 있었다. 뿌연 먼지를 뒤집어 쓴 채 벽 한쪽을 차지하고 선 전신거울만이 덩그러니 기자를 맞았다. 잠기 문, 허물어져 가는 벽, 손때 묻은 간판들…어느 것 하나 사람의 온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대낮임에도 골목 안은 을씨년스러움이 가득했다.

선미촌은 전주시청 대로변 이면도로 일대에 성매매 업소들이 밀집해 형성된 곳으로, 주민들 사이에서 오래도록 ‘선미촌’이라 불려왔다.

전주시는 2014년, 선미촌 내 성매매 업소의 폐쇄와 도시재생을 공식 선언했다. 이후 일부 건물을 매입해 소규모 공원과 성평등 전주, 새활용센터, 미술관, 노송늬우스 박물관 등을 하나씩 조성하며 점진적인 도시 재생 사업을 펼쳤다. 그 결과 지난 2021년 마지막 업소가 문을 닫으며 수 십 년에 걸친 선미촌의 성매매 업소 역사는 막을 내렸다.

이후 선미촌은 전국 도시재생의 교과서가 됐다.  ‘도시재생 일번지’,  ‘정책 우수 사례’ 라는 수식어가 따라 붙었고 국토부장관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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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미촌 곳곳의 건물은 과거의 형태를 유지한 채 방치되고 있다. 일부 건물은 출입에도 제한이 없고 어두워  한낮에도 을씨년스러웠다. / 문준혁 기자

사업 종료부터 5년이 지난 현재, 선미촌 골목은 사실상 버려져 있다. 성매매 업소를 쓰였던 건물들은 거주자만 사라졌을 뿐, 대부분 원형 그대로 방치돼 있었다. 문은 자물쇠로 굳게 잠겨 있었고, 내부에는 집기류와 가구들이 먼지를 뒤집어쓴 채 남겨져 있었다. 일부는 문이 열린 채 안이 훤히 들여다보였다. 

대로변에서 마을 안쪽으로 이어지는 도로에는 간간이 행인들이 지나쳤지만, 업소들이 밀집했던 골목 안쪽은 달랐다. 기자가 머문 수십 분 동안 골목을 오간 사람은 손에 꼽았다.

길에서 만난 주민 A씨는 “선미촌은 끝났어”라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성매매) 업소들이 있었을 때는 여기서 사는 사람들, 식당 하는 사람들 수십 명이 있었는데, 이제 이 골목에는 나밖에 없지.”

예술촌 재생 사업이 시작될 때를 떠올린 그는 “초기에는 뭐라도 들어오나 싶었는데 아무것도 없어. 월세 물어보는 사람도 없고. 누가 여기 와서 살려고 해?”라고 반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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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상가 건물. 문준혁 기자

기자가 확인한 선미촌 일대의 상권은 사실상 전무했다. 카페 한 곳, 음식점 한 곳, 이발소 하나, 동네 마트 하나. 재생 사업 초기 시의 지원을 받아 문을 연 곳들이 전부였다.

2020년부터 이곳에서 카페를 운영 중인 B씨는 “유동인구가 없어 장사가 되는 편이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그는 “예전엔 미술관이나 공원에서 행사나 플리마켓이 열리면 연계 손님이라도 있었는데, 선미촌 관리가 소홀해지면서 그마저도 끊겼다”고 했다.

재생 사업이 표방한 ‘예술마을’의 흔적은 골목 곳곳의 벽화와 글귀로만 남아 있었다. 사람은 사라졌지만, 그림은 지워지지 않은 채 빈 골목을 지키고 있었다. 현재 실질적으로 운영 중인 예술 공간은 ‘뜻밖의 미술관’과 ‘새활용센터’ 단 두 곳뿐이었다.

뜻밖의 미술관 관계자는 “선미촌이 관심받던 초기에 더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수요를 이어갔어야 했다”며 씁쓸함을 감추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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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운영되지 않는 ‘노송늬우스 박물관’.

선미촌 재생의 상징이었던 ‘노송늬우스 박물관’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성매매 업소 특유의 유리방 구조를 그대로 살려, 선미촌의 아픈 과거와 재생의 현재를 한 공간에 담아냈던 이곳은 지난해 3월 운영을 중단했다. 굳게 잠긴 유리문에는 ‘본건물 매매’라는 현수막만 붙어 있었다. 전주시는 당시 “건물 노후화와 임대인과의 협의 불발”을 폐관 이유로 밝혔다.

이 박물관 조성을 총괄했던 김해곤 작가는 사라진 공간 앞에서 착잡함을 감추지 못했다.

“선미촌을 문화공간으로 살리기 위해 정말 많은 준비를 했고, 작품도 좋았습니다. 그런데 여러 원인이 겹치면서 결국 실패라는 결과를 맞았죠.”

그가 꼽은 몰락의 원인은 세 가지였다. 코로나19 확산, 일부 주민들의 공간 사유화, 그리고 전주시의 의지 변화.

“김승수 시장에서 우범기 시장으로 단체장이 바뀌던 시기에, 사업의 일관성을 유지하기 위한 노력이 있었어야 했는데 그게 어렵게 됐죠.”

2026년 현재, 선미촌은 또 다른 전환점을 맞이하고 있다. 이번엔 ‘재건축’이다.

2024년부터 선미촌 일대 두 블록, 약 2만㎡ 부지에 600세대 규모의 주상복합 아파트를 짓는 가로주택정비사업이 추진 중이다. 조합도 이미 결성됐다. 조합 관계자는 “지난 3월 조합인가가 났고, 선미촌 내 예술 시설 처리 문제는 지금 시와 막 얘기를 시작한 단계”라고 밝혔다.

전주시는 운영 중인 미술관과 센터를 위한 대체부지 확보를 검토 중이라고 밝혔지만, 재건축 완료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조합 관계자 역시 “절차가 많아 시간이 꽤 소요될 것”이라고 했다. 재건축이 시작되기 전까지 선미촌은 또 한 번의 긴 공백을 버텨야 한다.

220억 원을 쏟아부어 성매매 골목을 예술마을로 바꾸겠다던 계획은, 슬럼화된 골목과 ‘매매’ 현수막으로 돌아왔다. 재건축이 완성되면 선미촌의 역사는 상당 부분 지워질 것이다.

김해곤 작가는 끝내 이렇게 말했다.

“아파트가 들어서더라도, 시가 선미촌의 건물 하나라도 사서 문화공간을 만들거나 역사를 기록으로 남겨줬으면 합니다.”

을씨년스러운 골목에는 오후의 햇살도 깊숙이 들어오지 않았다. 벽에 새겨진 그림들만이 아무도 없는 골목을 묵묵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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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밖의 미술관’과 ‘새활용 센터’만이 예술마을로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사진은 뜻밖의 미술관. /  문준혁 기자

문준혁 인턴기자

문준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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