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유성 물고기 줄고 담수어 종·개체수 증가…간척사업으로 기수역 생태환경 급변
김제에서 부안으로 가는 길, 동진대교 주변은 육지에서 내려온 강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강 하구, 기수역(汽水域)이었다. 강과 바다가 끊임없이 실어 나른 유기물은 하구 갯벌 생명력의 원천이었다. 영양분이 풍부한 하구에 자리잡은 저서생물은 기수역의 물고기에게도 넉넉한 먹잇감이었다. 또한 하구는 어류가 산란을 하거나 어린 물고기가 잘 자랄 수 있는 최적의 공간이었다.
민물과 바닷물을 오고가면서 살아가야 하는 기수역의 물고기는 몸속의 체액과 주변 물속의 염분 농도가 평형을 유지해야 살 수 있다. 회유하는 물고기들이 기수역에서 적응하는 시간을 보내는 것도 이 때문이다. 경계를 오가는 이들이 누리는 풍요는 바로 수 만년 동안 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노력해 온 결과다. 그리고 여전히 제 몸의 많은 에너지를 쏟아야 한다.
국립수산과학원 중앙내수면연구소가 지난 2006년에 실시, 이듬해 내놓은 '동진강 어류상 조사' 결과에 따르면 동진대교 일대 기수역에는 23종의 물고기가 서식한다. 출현 빈도는 숭어보다 기수역 상류까지 서식하는 가숭어가 33.2%로 가장 높았다.
다음은 멀리 3000km 떨어진 필리핀 해역에서 해류를 타고 고향을 찾아온 실뱀장어가 23.1%를 차지했다. 두줄망둑보다 민물에 더 적응한 민물두줄망둑이 18%로 뒤를 이었다. 마치 꽁치처럼 날씬하고 아래턱이 길게 튀어나온 줄공치와 치리가 각각 5%를 차지한다.
또 맛이 좋아서 조선시대 왕실에 진상했다는 웅어, 회유성 어류로 바다에서 성장하고 강 하구에서 산란하는 도화뱅어, 식용으로 널리 이용되었으나 최근 수질오염 등으로 매우 희귀해진 국수뱅어도 눈에 띈다. 몸이 긴 막대처럼 가늘고 긴 실고기도 있다.
고유종은 모두 3종이 확인됐다. 물 흐름이 느리고 탁한 하천 중·하류 진흙이 있는 곳에 사는 '가시납지리', 유속이 완만한 곳이나 저수지에 주로 사는 '치리', 진흙바닥인 조간대와 하구의 웅덩이에서 서식하는 '점줄망둑'이 그 주인공이다.
가시납지리와 치리는 일시적으로 하구에 머무르는 경우가 있긴 하지만 민물에서만 살 수 있는 1차담수어다. 그런데 어떻게 기수역의 하부라 할 수 있는 이곳에서 발견되었을까? 이유는 바로 새만금 방조제에 있다.
동진강 어류 조사 시기인 2006년 3월 중순은 새만금 방조제 최종 물막이 공사를 한 달 가량 앞둔 시점으로 해수의 양이 줄어 염분 농도가 낮아진 때였다. 또한 바닷물의 힘이 약해지면서 상시 노출 갯벌이 늘어났고, 육지 식물이 자리를 잡는 육지화가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었다.
당시 조사를 담당했던 국립수산과학원 중앙내수면연구소 이완옥 박사는 "새만금 방조제가 완공돼 바닷물이 들어오지 못한다면 10여종의 기수역 물고기가 사라질 것" 이라고 밝혔다.
이는 2009년 한국농어촌공사의 동진강 하구 삼각망 채집조사 결과가 뒷받침한다. 하구 어류조사 결과 모두 13종이 채집되었는데 역시 가숭어가 우점종이고, 풀망둑, 웅어 등 기수역 물고기가 서식하고 있었다.
여전히 새만금 방조제 수문을 통해 적게나마 바닷물이 들고 나기 때문이다. 반면 담수화의 영향으로 붕어, 잉어, 치리 등 담수어의 종류와 개체 수는 많이 늘었다.
"회유성 물고기가 여전히 기수역에 서식하긴 합니다. 하지만 개체수가 많이 줄었습니다." 매년 새만금으로 흘러가는 해창천 어류 모니터링을 하고 있는 생물다양성연구소 양현 소장의 설명이다.
그런데 사라져가는 하구 생물들에 대한 기록이 충분하지 않다. 1984년 이후 20여년만에 나온 국립수산과학원 중앙내수면연구소의 '동진강 어류조사 보고서'가 소중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수 만년 동안 한 곳을 지키며 살아왔던 생물을 기록하는 것은 어쩌면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일 것이다. 또한 이 보고서는 유역변경으로 인해 섬진강의 고유 어종인 왕종개, 줄종개, 섬진강자가사리가 동진강 상류에 서식하면서 잡종형성과 같은 유전자 교란이 심각하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동진강 하구 생태계 변화와 상류지역 물고기 유전자 교란에 대한 지속적이고 체계적인 조사가 필요한 이유다.
/이정현(전북환경운동연합 정책기획국장)
※ 공동기획: 만경강 생태하천가꾸기민관학협의회·정읍의제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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