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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진강, 생명의 길을 묻다] (29)강 하구의 '길'

둑길 따라 곳곳에 근대화의 자취

부안 계화 1호방주제 구간, 둑길을 따라 걸으며 지도를 바꾼 근대 간척사업의 역사를 만날 수 있다. (desk@jjan.kr)

바람이 분다. 언제나처럼 새만금엔 바람이 분다. 수년전까지만 해도 그 바람을 타고 수만리를 날아온 도요물떼새가, 그 바람을 타고 한겨울 숭어떼가, 그 바람을 타고 오는 밀물에 작은 배들이 몸을 실었다.

 

지난 11일, 모처럼 따뜻한 봄바람을 맞으며 허철희 부안생태문화활력소 대표와 유칠선 생태해설사, 그리고 두 신입 활동가와 함께 동진강 휴게소 제방에서 출발해서 계화도까지 걸었다.

 

▲새들의 마지막 보루, 학당·장돌·문포 하구 습지

 

 

1968년에 완공된 계화 2호방조제. (desk@jjan.kr)

동진대교를 건너 제방 안쪽의 작은 둑길로 길을 잡았다. 이 일대는 고부천을 만나 몸을 불린 동진강이 원평천을 만나자마자 드넓은 갯벌에 몸을 푼 곳이다. 수년 전까지만 해도 갯골을 따라 푸른 강물이 휘감아 흐르고, 육지에서 실어 온 흙과 유기물이 만든 기름진 갯벌이 펼쳐졌다. 그 뒤로 붉은 칠면초와 갈대 군락이 넓게 자리를 잡았던,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하구 습지 중 하나였다.

 

예전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아직도 넓게 펼쳐진 갈대군락은 수면과 어우러져 멋진 경관을 연출해낸다. 농발게와 대추귀고동을 품었던 갈대는 이제 새로운 생명을 품었다. 발을 내디딜 때마다 "푸드덕, 푸드덕" 장끼와 까투리가 여기저기서 솟아오른다. 고라니, 너구리 발자국도 배설물도 흔하다. 먼 길 떠날 채비를 마친 큰기러기는 강 둑 너머 논에서 큰 엉덩이를 들고 먹이를 먹느라 바쁘다. 세계적으로도 2천 마리 밖에 남지 않은 저어새는 새만금에서 겨울을 나느라 스푼 같은 부리로 열심히 강바닥을 젓고 있다.

 

2006년 물막이 이후에도 문포, 장돌, 학당의 갯등은 갈 곳 잃은 도요물떼새는 물론 겨울 철새들이 많이 찾았던 곳이다. 먹이를 섭취할 수 있는 갯벌이 크게 줄어들면서 동진강 하구 문포와 만경강 하구 화포 염습지 갯등이 그나마 먹이를 찾아 헤매는 새들의 숨통을 틔워주었기 때문이다.

 

▲포구, 그 쓸쓸함에 대하여

 

이 같은 평화로운 풍경은 잠시, 방수제 공사 구간이 시작되면서 불도저와 대형 트럭·굴삭기의 소음이 바람을 가른다. 마치 4대강 공사장을 방불케 하는 현장은 동진강 방수제 3공구다. 제방 아래 갯벌을 밀어서 평탄화 작업을 하고, 갯등을 퍼올려 제방용 흙을 쌓고 있었다. 강 건너 장돌 학당마을 앞 하구도 공사판이다.

 

새만금 바깥쪽에 33km의 거대한 방조제가 있고, 내측의 평균 수위를 -1.6m로 낮춘 지금, 광활한 면적의 갯등이 추가로 드러났다. 이 땅만으로도 충분해 보이는데 무엇이 급해서 새만금의 생태적 자산을 날려버리는지 안타깝기만 하다. 비상한 기러기떼가 어디에 내려야할지 망설이다 선회 끝에 멀리로 날아간다.

 

한 시간 남짓 걸으니 어느새 국토지리원이 정한 동진강의 마지막 종점부 문포다. 문포는 한 때 쌀을 실어 나르던 동진강의 큰 포구였다. 2006년 새만금 물막이 전까지만 해도 바로 앞 갯벌에서도 생합을 잡고 물고기를 잡았다고 한다. 하지만 옛 포구의 영화는 간데없이 긴 그물을 내리지도 못한 실뱀장어 배와 선외기 몇 대만이 할 일 없이 닻을 내리고 있을 뿐이다. 10여 가구 남짓 남은 동네도 적막하기만하다.

 

▲근대의 흔적을 따라 걷는 길

 

문포에서부터 본격적인 계화 1호방조제 제방 길이다. 왼쪽으로는 넓은 간척평야가 펼쳐져 있고 오른쪽으로는 갯등 사이로 흐르는 푸른 물이 눈에 들어온다. 멀리 심포 거전의 민가사 섬이 보인다. 4대강 공사로 소란스런 금강을 떠나온 가창오리 수 만 마리가 수면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 가마우지, 고방오리, 비오리, 홍머리오리…. 유칠선 해설사의 설명이 바쁘게 이어진다.

 

제방 아래쪽으로 제방을 보호하기 위해 바다 쪽으로 길게, 일정한 간격을 유지하며 쌓여 있는 돌무더기, 풀에 덮여 제방과 한 몸이 된 것처럼 보이는 텅 빈 초소가 인상적이다.

 

시대의 한계를 딛기 위한 기술자들의 노력과 땀방울, 실향민의 눈물과 쓸쓸한 귀향, 소금기 머금은 땅에 남은 농민들의 애환을 떠올리며 걷다보니 어느새 계화 조류지가 내려다보인다. 수변의 갈대 군락과 둑길의 소나무, 200ha에 이르는 수면이 보기가 좋다. 바닷물의 영향으로부터 제방과 간척지 3,968ha를 보호하기 위하여 만들어졌다. 간척 평야와 하구 갯벌, 그리고 넓은 저류지가 한 곳에 있으니 많은 새들이 이 곳을 찾아서 '조수보호구역' 으로 지정되어 있다.

 

제방 길은 계화도 양지 포구에서 끝이 난다. 물때가 사라지고 갯벌이 메말라가면서 만선의 깃발을 달고, 그레를 메고, 경운기에 몸을 싣고 물때에 맞춰 돌아오던 아름답고 숭고한 포구의 풍경은 이제 사진 속에서만 남았다.

 

그런데 근대화의 기억이 고스란히 담긴 아름다운 이 길이 세상에 소개되기 전에 사라질 판이다. 어처구니없게도 내측의 방수제를 쌓는데 필요한 토석을 얻기 위함이란다. 지난해 말 슬며시 2호 방조제를 헐어 내다가 염분 피해 우려와 계화도의 상징을 주민 협의 없이 헐 수 없다는 반발에 막혀 중단된 상태다. 하지만 농어촌공사는 주민들과 합의를 통해 제방을 헐겠다는 입장에 변화가 없으니 안타까울 뿐이다.

 

/ 이정현(전북환경운동연합 정책기획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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