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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최진성(崔辰聖)편 - 초현실적 영원 추구하던 순정의 시인

▲ 최진성 시인

풀잎도 숨을 죽인 듯

 

따뜻한 햇빛이 꽃밭을 굽어보던 한 낮

 

光이는 왜 잠자리를 잡았을까

 

그리고 또 놓아주었을까.

 

채 말도 못한 두 살짜리가

 

꽃가지에 앉아 있는 잠자리를 잡았다가 놓아준다.

 

아직 둔한 손가락을

 

살그머니 내밀면

 

잠자리는 날아갔다가

 

다시 제 자리로 돌아온다.

 

몇 번인가 되풀이하다가

 

점점 가까이 날다가

 

힘을 알아보다가

 

마음을 놓았는지

 

날지 않고

 

손가락을 흘겨보면서

 

뱅뱅 제자리를 돈다.

 

잡힐 듯 말 듯

 

제법 光이를 놀린다.

 

그러다가 잡히고 만다.

 

정말 신비가 흐른다.

 

光이와 잠자리

 

잠자리와 光이

 

문득

 

조공(祖公)의 고사(故事)가 말이다.

 

......

 

눈 앞 꿈이 다 이러한가.

 

-「光이와 잠자리」 전문

 

장자(莊子)의 제물편에 나오는 '호접지몽(胡蝶之夢)'을 연상케 한다. 장자가 꿈속에서 나비가 되어 꽃들 사이를 즐겁게 날아다녔다가 깨어 보니, 자기가 꿈속에서 나비가 된 것인지, 나비가 꿈에 장자가 된 것인지, 도무지 구분이 안 되었다는 것이다. 꿈이 현실인지 현실이 꿈인지, 도대체 장자가 나비이고, 나비가 곧 장자인지 알 수 없는 물아일체의 경지, 아니 우주의 절대경지에서 보면, 장자도 나비도, 꿈도 현실도 구별이 없는 태허(太虛)의 세계런지도 모를 일이다. 다만 보이는 것은 만물의 변화에 불과할 뿐이다. 그의 시는 『光이와 잠자리』에서처럼 천진난만하기 그지없는 어린 아이와 나비의 이야기, 곧 그 어떤 두려움과 경계심도 없는 선계(仙界)의 한 풍경이 그려지면서 현실과는 좀 거리가 있는 듯한 선취(仙趣)의 세계를 보이고 있다.

 

'최진성 시인은 옛 선비의 먹 맛을 아는 시인'이라는 이동주의 말마따나 그는 평생을 평교사로 떠돌면서 오로지 학생들을 가르치고 후배 문인들을 이끌어 주면서 틈이 나면 바둑과 술을 즐기고, 산에 오르기를 좋아한 동양적 선비풍의 시인이었다.

 

『방장부方丈賦』 란 시집 후기에서 '자연에서 오는 아름다움과 구도자처럼 환상어린 나의 체험은 마침내 시를 쓰고자 산을 찾았는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산에 살고 싶어 시를 썼는지도 모르겠다.'할 정도로 현실에서 흔들리고 상처받은 본래적 자아의 심혼, 곧 시도(詩道)를 산에서 되찾고 싶어 했다. 그래서인지 그의 시는 마을과 산과의 거리만큼이나 항상 무언가 그립고 아쉽고 서러운 데가 있는 순정의 서정이 그의 시의 바탕을 이루고 있었다.

 

전북 장수읍 개정리에서 출생한 최진성 시인(1928-2003)은 1953년 『신조』란 시조집에 「풍년」을 발표하여 데뷔하면서 전주여고와 남원농고 등에서 국어과 교사로 근무하였다. 특히 한국문인협회 전북지부장을 맡아 『전북문단』 창간호를 ('87,12)를 발행하면서 지역 문인들의 양성과 이 고장 문학의 활성화에 남다른 애정과 적극성을 보였다.

 

순수한 자연 관조 정신을 바탕으로 무위(無爲)의 노장사상과 불교의 연기에 인생의 본질을 교직하였으며, 초현실적인 영원주의를 추구하면서, 인생의 참모습을 부단히 탐구한 순정의 시인으로 기억되고 있다.

 

/시인·백제예술대학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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