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무관심한 계절은 빙점 이하에서 눈보라를 친다.
갈증난 상채기를 콜록이며
오늘은 엄동 가설극장에서
마저 남은 피 한 점을 후후 모닥불 피우고
내일을 방문하는 거랑뱅이들.
빵 한 조각에 혹사되어
이제는 차라리 잠자는 기도가
폭력으로 거리를 질주하고
未遂의 의욕들이 죽음으로 시위하는 흉참한 내력 속에
내일을 방문하는 오솔길에
핏방울 뿌리는 오늘의 풍속이다.
차라리 역도의 악명으로 이름을 팔고 싶었다. - 「엄동의 계절」에서, 1961
그의 데뷔작인데 현실에 대한 비판과 저항이 남다르다. '눈보라친 빙점의 계절', '남은 피 한 점 후후 모닥불'을 피우며 내일을 기약하는 '거렁뱅이'들의 모습, 이는 젊은 날 시인이 느끼는 자신의 모습이다.'남은 피 한 점', '흉참한 내력', '핏방울 뿌리는 오늘의 풍속' '차라리 역도의 악명'등, 4.19 전후 독재와 맞서 피를 흘린 대학생들의 울분과 육성적 몸부림이 절절하다.
산에 드는 순간, 길은 사람의 길이 아니다. 그것은 신의 발자국, 하느님의 발자국 냄새가 난다. 그같은 하늘의 냄새에 젖어서 새들은 지저귀고, 푸나무들은 우거져서 산 정상 너머 하늘 쪽으로 낙락장송 뻗어 오르고, 어디선가 물소리 어느새 하늘을 만나고 기뻐서 저리 졸졸거리며 귀갓길 내려닫고 있질 않는가. - 목천의 인생론집
『희망시 인내동 사랑가』에서, 2012년
'신(神)'을 찾고 '하느님'을 찾아 산(山)에 드는 시이의 모습, 그것은 '침묵은 산의 얼굴이니라/ 숭고는 산의 마음이니라/ 나 또한 산을 닮아보리라'하던 지난 날 신석정 선생의 모습을 어느새 닮아 있었다. 대학 시절 〈신영토〉 동인이었던 송하선 시인도 '이전 그의 시에서는 젊은 객기? 같은 것이라고 할까. 하여간 아직 정리되지 않은 거칠거칠한 무엇이 그의 내부로부터 꿈틀대고 있는데 그로부터 40년의 세월이 흐른 뒤의 그는, 이제 젊은 시절 가슴 속에 끓어오르던 '피'의 분출은 볼 수 없고, 세월의 윤회와 자연의 이법에 따르는 순명의 몸짓을 보이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돌멩이들이 저렇게 돌아오다니
아지랑이 피던 봄날에
끓는 나의 피
공중으로 돌팔매질하던 그 돌멩이들이
저렇듯 고목 한 가지에 죄다 걸려서
햇볕 바스러지는 나날
허공에서 익은 피 주렁주렁
저렇게도 환하게 돌아와 인사를 하다니 -「홍시」에서, 2005년
'젊은 날의 돌멩이'들이 저렇게 '홍시'가 되어, '환하게 돌아와 인사를 하다니'......, 이 또한 순명(順命)의 모습이다. 그 사이 참으로 많은 세월이 흘렀다. 시고 떫던 봄날의 '땡감'이 말랑말랑한 '홍시'가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불면의 가을밤이 오갔으리오.
시선일여(詩禪一如)요 도(道)를 닦는 수행자의 모습이다. 그래서 오늘도 시인은 산에 들어 침묵 속에 마음을 합장하고 진정 나를 비워 자연과 내가 하나가 되는 선객(禪客)의 길을 걷고 있다. /시인·백제예술대학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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