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 허호석(許琥錫)편
아침 이슬
아기바람
새소리까지 모두 걸었습니다
거미는 몇 번이나
하늘을 내다봅니다
처마 끝 새 하늘이 걸렸습니다
부신 해가 철렁 걸렸습니다
발자국 소리도
지껄임 소리도
아이들은
하늘을 도르르 말아
해를 가져갔습니다
거미는 구멍 난 하늘을 다시 깁고
온 마을은 햇살의 나라가 됩니다.
- '아침 아이들' 전문
'거미줄'이 '아침 이슬'이 되고, 그 '아침 이슬'이 다시; '아기 바람'으로 되었다가, '새소리' 가 되었다가, 그것이 다시 '해'로 점차 시상이 반전되어 가면서 해맑은 아침 거미줄 마을의 풍경이 신비롭게 펼쳐지고 있다.
'거미줄'에 '아침 이슬'이 총총히 맺혀 있는데, '아기 바람'과 '새소리'가 그 거미줄에 걸려 살랑거리고 지저귀더니, 급기야는 '아침 '해가 철렁 ( 그 거미줄에) 걸려' 출렁거리고 있다는 발상이다. 참으로 신기하고 산뜻한 순수 직관의 은유적 상상력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돌연 개구쟁이들이 나타나 그 거미줄을 '도르르 말아' '구멍 난 하늘을 다시 깁'는 거미줄 나라'의 아침 풍경이다. '거미줄'이 '하늘'이 되고 '하늘'이 다시 '햇살'로 의미 전이를 거듭하면서 그의 시는 경이롭고 낯설은 치환 은유의 진경 속에 사물에 대한 인식의 폭과 자성의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말갛게 익어가는 산열매 속엔
맑은 물소리가 알알이 박혀 있다
그 물소리 하나 똑 따서
입에 넣으면
아! 새콤한 산의 향기
말갛게 익어가는 산열매 속엔
맑은 햇살이 알알이 박혀 있다
그 햇살 하나 똑 따서
입에 넣으면
아! 사르르 녹는 빨간 해.
- '산열매' 전문
이 시에서도 '햇살'이 등장하여 마지막 대미를 장식하고 있다. 분별과 차별이 없는 '물소리'가 '산열매'가 되고, 또 '햇살'이 그 열매 속에 '알알이 박혀' '빨간 해'가 되어 사르르 내 몸속에서 녹는다는 초월적 동심의 발상. 이처럼 어린 아이들의 세계에서는 물소리와 산열매, 나무와 동물, 사물과 자연도 우리와 같이 감정을 가진 정령의 존재로 인지한다. 이것이 천진한 동심이다. 한사코 분별하고 차별하는 성인들의 미시적 분류(classification)에서 벗어나 거시적이고 종합적인 사유의 통찰력, 곧 동일화의 정신으로 삼라만상이 서로 소통하고 어울리는 낙원의 정신이 그의 시의 바탕을 이루고 있다.
진안 출신 허호석(1937~) 시인은 서울문리사범대학을 졸업(1962)하고 초등학교 교사로 근무하다 퇴임하였다. 1977년 '아동문예'와 1983년 '월간문학'으로 등단,그의 동심은 자연과 사물이 하나가 되는 물아일체의 은유 속에 우주에 대한 인식의 폭과 자성의 영역을 신비롭게 넓혀가고 있다.
예술의 대 명제는 '새로워야' 한다. 새로움은 예술의 생명이다. 시도 예외일 수 없다. 새로움은 어디서 오는가? 낯선 데서 온다. '낯설다'는 것은 익숙함에서 벗어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 의미에서 그의 시는 신선하고 낯설다. 이러한 낯설음이 우리의 무딘 감성에 충격과 신선한 감동을 주면서 그가 천명한 '동시도 시다'란 그의 시관(詩觀)을 입증하고 있다.
/시인·백제예술대학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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