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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정희수(丁希秀) 편] 순천(順天)하는 한 그루의 나무

▲ 정희수 시인
전주 출생 정희수 시인은 전주 동암고등학교에서 36년간 봉직하다 교장으로 정년퇴직(2007)한 시인인데, 그의 시는 생명의 근원인 '물'과 이념의 푯대인 '하늘'에 관심을 갖고, 물처럼 유장한 흐름과 하늘처럼 드높은 이상과 천리(天理)를 좇아 자신을 가다듬고 세상을 감싸 안으려는 따듯한 생명시를 쓰고 있다.

 

한 촉의 새순

 

마른 땅 헤치고 나와

 

쑤욱 쑥 솟아난다

 

섬돌 밑 갈라진 틈서리

 

닳아진 보도블럭 사이

 

남문시장 쓰레기통 옆에서도

 

부드럽게 손 뻗고 나온다

 

.....

 

최루탄, 그 돌팔매 아래서도

 

일제히 일어선다, 자유는

 

- '지금 자유는' 중에서

 

이른 봄, '보도블록 사이' '최루탄, 그 돌팔매 아래서도' '쑤욱 쑥 솟아오른' '한 촉 새순'의 강인한 생명력에 옷깃을 여미면서, 그것을 시인은 생명을 가진 것들의 '자유의 의지'와 동일시한다. 자유는 무릇 생명을 가진 것들이 태어나면서 조물주로부터 부여 받은 천부의 권리라고 보고, 그런 자유가 보장된 삶의 터야말로 낙원이고 파라다이스라는 주장이다. 이러한 생면주의가 '밟아도/ 밟히면서도/ 다시 일어서는 /꽃이여, 풀꽃이여/ 너에게서 내 길을 배운다' ('풀꽃을 위하여')로 이어지고 있다.

 

 

내가 바라보는 하늘은

 

늘 푸른 하늘이게 하소서

 

세상이 어둡고 막막하더라도

 

하늘만은 언제나 푸른 하늘이게 하소서

 

사람들은 서로 속이고, 미워하고,

 

질투하고, 싸우더라도

 

내 가까이 있는 하늘은

 

푸르고 푸른 그런 하늘이게 하소서

 

오늘과 내일은 서로 다르지만

 

너와 나 또한 다르지만

 

스스로의 빛깔대로, 바라보는 대로, 있는 그대로

 

하지만 마음이 통하는 그런 빛깔이게 하소서

 

살아 있는 것들과 죽은 것들

 

그 모든 것들도 함께 품어 안는

 

그러한 넓은 가슴의 하늘이게 하소서

 

빈 종이 위에라도 몇 줄 선을 그으면

 

모든 생명들 살아서 일어나는

 

그런 하늘이게 하소서

 

- '내가 바라보는 하늘은' 전문

 

이상과 현실이 공존하는 혼돈 속에서도 그가 일찍이 그리던 '맑게 드높은 푸른 하늘'을 다시 찾게 된다. 이 시를 읽으면 '순천자(順天者)는 존(存)하고, 역천자(逆天者)는 망한다.'는 명심보감의 한 구절을 떠올리면서, 그의 순천(順天)하는 낙관주의(optimism)의 인생관을 엿보게 된다. 그것은 순리와 천명(天命)을 좇는 덕치(德治)주의와 동맥으로 여기에 정희수의 시의 '원초적 건강성', 곧 '늘 푸른 하늘' 철학이 자리하고 있다. '세상이 어둡고 막막하더라도/ -언제나 푸른 하늘', 곧 하늘의 섭리를 따르고자하는 경천(敬天) 사상에서 비롯된 양성 지향의 생명관은 천성(天性) 그대로가 '있는 그대로' '살아서 숨 쉬는 그런 하늘'에서 더욱 구체화 된다.

 

그러고 보면 그가 꿈꾸는 하늘(세상)은 '어둡고 막막한/ 세상'에서 → '언제나 푸르고 푸른/ 하늘', 그러기에 '인위(人爲)'가 아닌 '있는 그대로의' 하늘, '살아 있는 것들과 죽은 것들/ 함께 품어 안은' →'넓은 가슴의' 하늘이요, '빈 종이 위에라도 몇 줄 선을 그어' → '모든 생명들 살아'나게 하는 포용과 생성(生成) 그리고 자비(慈悲)의 하늘이다.

 

이렇듯 그의 하늘은 '나무를 보며 열매를 생각하듯/ 어둠을 보고 빛을 깨달'아 '구름을 위하여/ 바람을 불러 모으'는('그리움은' 일부) 생에 대한 통찰로 미래지향적 건강성을 확보하고 있다.

 

/시인·백제예술대학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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