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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군포로 출신 탈북자 이순옥씨

완주출신 국군포로 탈북자 이순옥씨가 조만간 중국에서 귀국할 예정인 가운데 여동생 옥선씨와 유선씨가 부모님의 사진을 들고 컴퓨터에 저장된 사진을 어루만지고 있다.../홍성오기자 홍성오(desk@jjan.kr)

 

"돌아가신 줄 알았던 오빠를 50여년 만에 만날 수 있다니, 이렇게 좋은 일이 어디 있습니까. 아들 생각에 제대로 눈을 감지못한 아버님과 어머님의 한(恨)이 이제야 풀릴 것입니다.”

 

6·25전쟁 54돌을 맞은 25일 오후 완주출신(현재 전주시 팔복동) 국군포로 탈북자 이순옥씨(75)와 3명의 가족이 중국 베이징 주재 한국 대사관의 보호를 받으며 한국에 돌아올 날을 기다리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이씨의 가족들은 감격에 겨워 제대로 말조차 잇지 못했다.

 

지난해 완주에서 전주시 서신동으로 이사한 이씨 집에는 여동생 이옥선씨(73)와 유선씨(61) 등 친지들이 모여 옛날 가족사진 등을 꺼내보며 재회의 순간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다. 여동생들은 빛바랜 단 1장의 사진속에 늠름하게 서 있는 오빠 모습을 보고 또 보지만, 지나간 반세기 동안 생이별한 얼굴이라 좀처럼 뗄 수가 없었다. 둘째오빠의 유일한 사진 1장이 혹여나 어디로 사라질까 두려워 컴퓨터 메인 화면에 옴짝달싹 못하게 넣은 뒤 다섯손가락에 감촉이 없을 만큼 만져보고 또 만져본다.

 

가족은 생전에 아들소식을 애타게 기다리며 통한의 눈물을 흘린 아버지와 어머니의 벽사진까지 꺼내 아들 곁으로 옮긴 뒤 반가운 소식을 전하지만 대답없는 설움에 눈시울만 붉힌다.

 

동생 옥선씨와 유선씨가 49년에 국군에 입대해 5년째 복무중인 둘째오빠를 마지막으로 본 것은 1953년 휴전 몇달 전 무렵. 피에 물든 낙동강을 전우들과 함께 건넜다는 얘기를 여동생에게 곧잘하던 오빠는 3일간 집에 머문 뒤 다시 전투에 참여했고, 이후 가족과 생이별이 시작됐다. 전사통지서까지 받았던 가족은 현충일과 6·25전쟁 기념일이 돌아올 때면 국립묘지에 비석 하나 없는 현실에 애를 태웠고, 생사여부조차 확인못해 제사는 엄두도 못냈다.

 

이씨의 바로 아래 동생인 옥선씨는 "당시 오빠에게 편지를 자주 보냈으나 답장은 뜸했다”며 "오빠가 편지봉투 안에 넣어 보낸 사진 1장이 50여년 동안 늙지 않은 오빠의 모습으로 남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다”고 말했다.

 

옥선씨는 "다음달 13일과 25일이 어머니와 아버지 제삿날인데 오빠가 그 안에 꼭 돌아왔으면 좋겠다”면서 "임실군 갈마리에 묻힌 부모님의 산소에 8남매가 두손 꼭 잡고 찾아뵙고 싶다”고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이젠 늙어버린 얼굴이지만 오빠에게 가장 예쁜 모습을 보이겠다는 여동생들은 중국에 있는 오빠가 무사히 한국에 돌아올 수 있도록 간절히 열망했다.

 

한편 이씨 가족은 지난 2일 최초 둘째오빠의 생존소식을 듣게 됐으며, 8남매중 7째인 이순택씨(58)가 지난 20일 둘째 형님을 만나기 위해 중국으로 급히 떠났다.

 

홍성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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