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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예술가들의 해방구이자 쉼터였던 ‘새벽강(대표 강은자)’이 2016년 이후 중단했던 기획전시를 10년 만에 다시 시작한다. 새벽강은 지난해 12월 열린 강은자 대표의 소장품전을 계기로 정기기획전인 ‘월간 새벽강, 다시 예술’ 프로젝트를 본격 가동한다고 11일 밝혔다. 이번 프로젝트는 매달 새로운 미술전시를 통해 일상 속 예술의 확장성을 모색하기 위해 마련됐다. 그 첫 번째 순서로 열리는 1월 기획전 ‘RESTART’는 새벽강의 전시 재개를 알리는 신호탄이다. 이번 전시에는 지난 2000년부터 2016년까지 새벽강에서 개인전을 개최했던 작가 17명이 참여했다. 참여 작가는 고형숙, 곽승호, 김누리, 김미경, 김범석, 김윤숙, 김춘선, 박홍규, 서용인, 신명덕, 유대수, 이일순, 장근범, 정인수, 조헌, 한숙, 허인석 등이다. 과거 동문사거리에서 다가동으로 이전한 새벽강은 현재 대중에게 ‘노포 맛집’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원래는 지역 예술인들의 소통공간이자 문화담론을 생산하던 사랑방 역할을 해왔다. 이번 전시는 이러한 공간의 역사성을 되살려 예술과 풍류가 공존하는 문화공간으로 다시금 자리매김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강은자 대표는 “이번 전시는 새벽강이 다시 예술공간으로 재인식되는 시작점이 될 것”이라며 “앞으로 매달 새로운 기획을 통해 예술가와 관람객이 소통하는 기회를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이번 전시는 오는 31일까지 진행되며, 이후에도 매달 새로운 작가와 작품들을 선보이는 정기 전시 체제로 운영될 예정이다. 박은 기자
색채로 세상과 대화하는 청소년 작가 박승원이 2026년 새해의 문을 여는 특별한 전시를 선보인다. 누벨백미술관(관장 최영희)은 오는 14일부터 18일까지 박승원 첫 개인전 ‘마음을 그리는 색’을 개최한다고 11일 밝혔다. 이번 전시는 전주 용흥중학교 졸업을 앞둔 그가 그동안 캔버스에 꾹꾹 눌러 담아온 내면의 기록이다. 그는 자신의 작업에 대해 “밝은색은 기분이 좋을 때의 마음이고 어두운색은 조용해지고 싶은 마음”이라며 그림이 곧 자신의 감정을 투영하는 거울이라고 고백한다. 박승원군의 시선이 머무는 곳은 거창한 풍경이 아니다. 일상의 작은 사물과 곁을 지키는 동물, 그리고 기억 속의 찰나이다. 그는 남들이 지나치기 쉬운 작은 것들에 의미를 부여하고 색을 입혀 자신만의 서사를 완성한다. 정교한 기교에 매몰되지 않은 솔직한 붓질은 보는 이에게 더 큰 해방감과 위로를 선사한다. 박승원 군의 어머니 황은영 씨는 “혼자 그림을 그리며 시간을 보내는 법을 스스로 배워갔고 그 시간들이 지금의 작업으로 이어지고 있다”며 “이번 전시가 아이에게 한 발, 한 발 더 큰 걸음을 내딛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지난 2023년과 2024년 장애청소년 우수작품 초청전에서 가능성을 증명했던 박승원 작가. 그의 이번 개인전은 “나는 나야!”라는 당당한 선언이자,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표현해온 시간의 기록이다. 전시를 기획한 최영희 관장은 “박승원의 작품은 잘 그린 그림을 넘어, 정직하게 마음을 그려온 시간에 대한 기록”이라며 “지역에서 성장하는 작가의 시작을 함께 지켜보고, 예술이 한 사람의 삶을 어떻게 지탱해왔는지를 관람객들과 나누고자 한다”고 말했다. 박은 기자
‘섬진강의 화가’ 송만규 화백이 호남평야의 젖줄이자 고난의 역사를 품은 만경강의 물길을 화폭에 담아 서울 나들이에 나선다. 오는 15일부터 2월 3일까지 서울 종로구 문화공간 길담에서 열리는 초대전은 동학의 평등정신부터 일제강점기의 수탈, 그리고 새만금으로 이어지는 만경강의 생명과 평화의 서시를 수묵의 깊이로 펼쳐 보인다. ‘만경강, 생명과 평화의 물길’을 주제로 열리는 전시는 완주 밤티마을 발원지에서 시작해 익산과 김제를 거쳐 서해로 향하는 만경강 200리 물길을 따라 얻은 영감의 기록이다. 만경강은 전라도 사람들의 삶과 농토, 계절의 숨결을 가까이에서 받아내며 오늘까지 흘러온 생명의 젖줄이다. 송 화백은 이번 전시에서 만경강이 통과해온 역사의 층위를 세밀하게 보여준다. 특히 만경강은 신분차별 없는 세상을 꿈꿨던 동학농민군들의 평등의 정신이 깃들어 있다. 비록 그들의 믿음은 시대 앞에 무릎 꿇었지만 강물은 뜨거웠던 기억을 잊지 않고 물의 기억으로 간직해왔다는 점을 주목했다. 문화공간 길담은 초대의 글에서 “섬진강과 만경강, 이름이 크게 불리지 않은 물길들 그 곁에서 피고 지는 작은 꽃들과 풀들, 조용히 숨 쉬는 생명들이 담겨 있다”며 “그의 그림 속 강은 상처를 품고 있으되 그 자리에 머물지 않는다. 잘린 듯 보이는 물길에도 다시 이어질 여백이 있고, 고요한 수면 위에 이미 생명이 돌아올 자리가 남아 있다”라고 밝혔다. 1955년 완주 출생인 송만규 화백은 최근 일본에서 개인전 ‘송만규 민중미술, 나의 진경산수’를 열고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이외에도 ‘섬진강 서시-삶과 역사에 대한 예찬’, ‘강물은 흘러서 어디로 가나’ 등 매해 개인전을 열었다. 저서로는 <섬진강, 들꽃에게 말을 걸다> <강의사상> <들꽃과 놀다> 등이 있다. 2018년 전북대상, 2024년 여산문화상 등을 받았다. 박은 기자
국립민속국악원은 올해 판소리마당 ‘소리 판’ 완창무대에 출연할 소리꾼을 공개 모집한다. 신청 자격은 판소리 다섯 바탕 중 한 바탕을 완창할 수 있는 19세 이상 소리꾼이며, 심사를 통해 5명을 선발해 무대 운영 지원과 출연료를 제공한다. 접수 기간은 오는 14일부터 같은 달 16일 오후 1시까지며, 이메일(nice12s@korea.kr)로만 신청할 수 있다. 2020년부터 이어온 ‘소리 판’ 완창무대는 관객의 이해를 돕기 위해 사설집을 제작·제공하는 국립민속국악원의 대표 기획 공연이다. 공연은 오는 4월 18일부터 11월 21일까지 국립민속국악원 예음헌에서 열리며, 명창 초청공연(1회)과 공모로 선정된 소리꾼들의 완창무대(5회) 등 총 6회로 운영된다. 자세한 공모 내용은 국립민속국악원 누리집에서 확인할 수 있으며, 문의는 전화(063-620-2325)로 가능하다. 김중현 국립민속국악원장은 “명창 초청공연과 완창무대를 함께 구성해, 판소리의 전통을 오늘의 무대로 이어가고자 한다”며 한 바탕을 온전히 이끌어 갈 역량 있는 소리꾼들의 많은 참여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전현아 기자
2026년 전북도립미술관(관장 이애선)이 문턱을 낮추고 도민들의 일상 속으로 더 깊숙이 파고든다. 올해 도립미술관이 내건 키워드는 ‘대중’이다. 그간 동시대 담론과 사회적 메시지에 집중하며 다소 무거웠던 학술적 색채를 덜어내고, 이름만 들어도 설레는 세계적인 화가의 전시와 지역의 예술적 자부심을 고취하는 기획전을 준비했다. 가장 기대를 모으는 전시는 7월부터 10월까지 본관에서 열리는 ‘피카소 도예’ 특별전이다. 국립현대미술관(MMCA)의 지역동행사업 일환으로 추진되는 이번 전시는 현대미술의 거장 파블로 피카소가 현대 도예에 미친 영향과 미술사적 가치를 조명한다. 수도권에 집중된 우수 콘텐츠를 지역민들에게 공유한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크다. 전북 미술사 연구 시리즈는 두 차례에 걸쳐 진행된다. 먼저 3월부터 6월까지는 정읍출신의 세계적 설치미술가 전수천(1947~2018)의 회고전 ‘언젠가 거인은 온다’가 마련된다. 한국인 최초 베네치아 비엔날레 특별상을 받은 그의 회화, 조각, 설치, 퍼포먼스 등 방대한 작품세계를 입체적으로 구성한다. 10월부터는 전북 민중미술의 구심점이었던‘온다라미술관(1987~1992)’을 재조명해 지역 민족 민중미술운동의 흐름을 학술적으로 살핀다. 지역 청년작가들의 해외시장 진출을 돕는 전략적 전시도 이어진다.‘2026 전북청년전’은 세계적 아트페어인 프리즈 서울과 키아프 서울이 열리는 8~9월에 맞춰 서울 분관에서 개최된다. 글로벌 미술시장의 관심이 집중되는 시기에 전북 작가들을 직접 노출시켜 실질적인 홍보 효과를 거두겠다는 취지다. 이외에도 3월에는 지난해 수집한 기증·구입 작품을 선보이는 ‘신소장품전’이 열리며, 하반기에는 도내 시·군 공립미술관과의 협력전시가 추진된다. 다만, 미술관 운영의 외부 변수도 존재한다. 6월 지방선거 결과에 따른 조직 변화 가능성과 오는 9월 이애선 관장의 임기 종료가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그간 조직 내외부에서 불거진 갈등과 구설을 딛고 현재의 계획이 안정적으로 추진될 수 있을지가 향후 과제로 꼽힌다. 유치석 학예연구팀장은 “올해는 동시대 담론 비중을 조정하는 대신 도민들이 기다려온 대중적 전시와 전북미술의 속살을 보여주는 기획에 집중했다”며 “지역미술사를 체계화하고 대중과 호흡하는 미술관이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박은 기자
몸의 감각에서 출발해 움직임의 흐름을 탐색하는 실험이 지역에서 열린다. 움직임 연구 모임 SOS함께나누기_JB에서 진행하는 Special Session ‘서로’가 오는 10일부터 다음 달 14일까지 중화산동 홀드랑스튜디오에서 총 6주간 매주 토요일 오후 1시부터 진행된다. 참가비 1회 1만 원. ‘서로’는 즉흥 움직임이나 오픈잼에 대한 경험이 없는 움직임 초보자들을 위한 프로그램으로 자신의 몸 상태를 차분히 느끼고 작은 움직임부터 시작하는 시간을 제안하는 움직임 프로그램이다. 프로그램은 ‘서로’라는 이름과 같이‘나와 타인, 몸과 몸 사이의 관계’를 의미하며, 혼자가 아닌 함께 존재하는 몸의 상태를 존중하는 데 초점을 둔다. 이번 프로그램은 춤을 잘 추는 것을 목적으로 두기보단, 각기 다른 몸을 가진 사람들이 서로의 삼각과 상태를 인정하며 함께 움직이는 시간을 지향한다. 프로그램의 출발점은 즉흥 움직임이 무용 전공자와 같은 특정한 경험을 가진 사람들의 영역처럼 느껴지는 현실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시작됐다. 프로그램을 기획한 탁지혜(프로젝트서로 대표, SOS함께나누기_JB 리더)씨는 “우리는 누구나 움직일 수 있는 몸을 가지고 있음에도 어떻게 움직여야 할지 몰라 도전조차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며 “즉흥에 들어가기 전 아주 기초적인 단계부터 몸을 느껴보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실제 ‘서로’에서 말하는 ‘준비’는 연습이나 훈련의 개념이 아니다. 숨이 편한지, 몸에 힘은 어디에 들어가 있는지, 가만히 서 있을 때 몸이 어디로 기울어 있는지 등 일상적인 감각을 알아차리는 과정을 뜻한다. 이러한 감각을 통해 움직임을 억지로 만들어내는 것이 아닌, 몸이 스스로 움직임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돕는다. 프로그램은 걷기, 멈추기, 손을 들어 올리는 등 누구나 일상에서 경험하는 움직임에서 시작된다. 걷기의 속도나 크기, 방향을 달리해보면 같은 동작에서도 전혀 다른 감각과 움직임이 만들어질 수 있음을 체험한다. 기획자는 이 프로그램의 핵심 키워드로 ‘감각’과 ‘용기’를 꼽는다. 그는 “기술을 배우는 시간이 아닌 내 몸의 감각을 따라 작은 움직임이라도 시도해 보는 용기가 중요하다”며 “이를 통해 ‘내 몸에도 나만의 움직임이 있다’는 감각을 직접 느끼길 바란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그는 “이 시간이 끝난 뒤 춤을 떠올렸을 때 부담보다 호기심이 먼저 떠오른다면, 그것만으로도 의미 있는 변화”라며 “전문가의 춤과 시민의 움직임이 서로를 이해하고 응원하며 공존하는 환경이 전주에서 자연스럽게 만들어지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프로그램 참가 신청은 구글 폼(forms.gle/JNiEVkCh2QuXWjB67)을 통해 가능하며, 이 밖의 자세한 사항은 전화(010-7128-9397)로 문의하면 된다. 전현아 기자
2026년 병오년(丙午年)의 시작을 알리는 강렬한 붉은 에너지가 화폭 위에서 펼쳐진다. 교동미술관에서 오는 25일까지 특별기획전 ‘붉은 기운, 시간을 건너다’를 선보인다. 이번 전시는 생명력과 역동성을 상징하는 ‘붉은색’을 화두로 삼아 이를 동시대 회화의 관점에서 재조명하기 위해 마련됐다. 특히 지역 문화예술의 중심지로서 수준 높은 예술 경험을 제공하고 동시대 회화 흐름 속에서 특정 색채가 갖는 가치를 되짚어보는 계기를 제공하고자 한다. 전시의 핵심은 색채적 관점에서 해석한 시간과 공간의 연결이다. 작품들은 자연과 풍경, 꽃, 인물 그리고 보이지 않는 추상적인 감정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형상 속에 투영된 붉은색을 탐구한다. 이때 붉은색은 단순히 시각적 자극에 머무르지 않고 민족의 얼과 염원, 그리고 삶의 열정과 희망을 상징하는 매개체로 기능한다. 이번 전시에 참여하는 작가들의 면면도 다채롭다. 전북미술의 큰 별인 고(故) 김치현 작가의 ‘계절’을 비롯해 송재명, 김미라, 박종수, 이희춘 등 개성이 뚜렷한 중견작가 20명이 참여해 저마다의 색깔을 뽐낸다. 이들은 서양화의 강렬한 임파스토 기법부터 한국화의 단아하고 깊이 있는 채색법, 현대적인 혼합 매체와 디지털 프린팅(Digital printing)까지 아우르는 작품을 통해 세대와 장르를 초월한 예술적 대화를 시도한다. 작가들은 각기 다른 매체를 통해 붉음의 정서를 시각화하며 작품 속에 과거의 기억과 현재의 감각, 그리고 미래에 대한 기대를 입체적으로 녹여냈다. 관람객들은 작가들이 구축한 붉은 궤적을 따라가며 개인의 감정을 환기하고, 시대를 관통하는 보편적인 공감의 경험을 제공한다. 교동미술관 관계자는 “이번 기획전은 우리 삶 속에 면면히 이어져 온 붉은 기운의 의미를 되새기고 새해의 역동적인 에너지를 나누는 자리”라며 “앞으로도 지역 예술 생태계를 풍성하게 할 다양한 연계 프로그램과 기획을 통해 시민들과 소통을 이어갈 것”이라고 전했다. 박은 기자
유양순 문인화 작가가 오는 30일까지 전주 대자인병원 이음길에서 네 번째 개인전 ‘동행, 자연과 삶’을 열고 있다. 이번 전시는 자연의 흐름과 인간 삶의 궤적을 수묵 문인화로 풀어낸 작품 17점을 선보인다. 전시 제목처럼 유 작가는 자연을 감상의 대상에 머무르지 않고, 삶과 나란히 걷는 동반자로 바라본다. 붓끝이 지나간 자리마다 번지는 먹의 농담과 여백은 자연의 숨결이자 인간 삶의 리듬을 상징한다. 부드러운 수묵의 선 위에 더해진 절제된 캘리그라피 문장은 작품에 사유의 깊이를 더하며, 관람객에게 일상의 속도를 잠시 늦추는 사색의 시간을 건넨다. 작가는 “자연의 순리와 인간 삶은 결코 분리될 수 없는 상생의 관계”라며 “작품 속 여백을 통해 각자의 삶을 돌아보고 따스한 위로를 느끼길 바란다”고 전했다. 운산(雲山) 유양순 작가는 한국문인화협회 초대작가이자 심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대한민국서예전람회·한국서예대전 초대작가, 세계서예비엔날레 우수작가로 선정되는 등 활발한 작품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2025년에는 전북일보가 주관한 제41회 전북대상을 수상했다. 이번 전시는 병원을 찾는 이들에게 자연과 삶이 나란히 걷는 풍경을 조용히 전한다. 전현아 기자
동학농민혁명 지도자들을 형상화한 뮤지컬이나 전통 공연은 그동안 여러 차례 무대에 올랐다. 그러나 현대무용이라는 장르로 다시 만난 김개남 장군의 모습은 분명 색달랐다. 지난해의 마지막 날 전북대 삼성문화회관에서 선보여진 파사무용단의 현대무용 작품 ‘개남(開南)-우지개에 가려진 세상을 다시 열다’는 익숙한 역사적 서사를 벗어나, 한 혁명가의 내면과 시대의 질문을 몸의 언어로 풀어낸다. 1894년 갑오년, 조선 팔도의 농민들이 일제히 일어섰던 동학농민혁명의 중심에는 전봉준과 김개남이 있었다. 작품은 이 가운데서도 새로운 세상 건설을 누구보다 서둘렀던 김개남 장군의 고뇌와 투쟁, 좌절에 집중한다. 그가 염원했던 세상은 끝내 완성되지 못했지만, 무대는 그 미완의 과제가 오늘날에도 여전히 현재진행형임을 조용히 환기한다. 공연은 설명을 앞세우지 않는다. 반복되는 동작과 긴장감 있는 호흡, 절제된 움직임 속에서 무용수들의 몸은 억압받는 농민의 형상이 되고, 저항의 선으로 변주된다. 집단 군무에서는 동학농민군의 연대와 결의가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작품의 하이라이트는 4장 ‘그리하여 죽창을 들다’였다. 무용수 전원이 붉은 죽창을 들고 펼치는 격렬한 춤사위는 당시 농민군의 결단과 열정을 응축해 보여준다. 강렬한 에너지 속에서도 현대무용 특유의 섬세한 춤사위가 살아 있으며, 동작이 세밀해질수록 관객은 몸을 숙여 무대에 더욱 몰입하게 된다. 무대 위에 특별한 구조물은 없었지만, 영상 디자인은 작품의 정서를 촘촘히 완성했다. 빛과 이미지의 변화만으로 시대의 긴장과 감정을 효과적으로 구현하며, 무대와 움직임이 유기적으로 호흡했다. ‘개남(開南)’은 김개남 장군을 영웅으로 단순화하지 않는다. 시대의 부당함 앞에서 행동했고 변혁을 꿈꿨으나 좌절을 겪을 수밖에 없었던 혁명가로 그를 다시 불러냈다. 황미숙 파사무용단 대표는 “전주에 내려와 공연을 시작한 지 5년째로, 지역의 민주주의 정신과 역사적 토대가 있었기에 이 작품을 무대에 올릴 수 있었다”며 “자료와 기록이 많지 않은 김개남 장군을 작품화하기까지 많은 고민과 노력이 필요했지만, 역사적 진실이 조금이라도 더 드러나길 바라는 마음으로 준비했다”고 말했다. 이어 “이 작품이 일회성에 그치지 않고 다시 관객을 만날 수 있도록 앞으로도 이어지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전현아 기자
전북지역에 이주·귀촌하며 만난 작가들이 ‘원주율’을 주제로 한 근작들을 한자리에서 선보이는 전시가 열리고 있다. 회화 중심의 예술가 그룹 ‘뉴중앙’ 회원인 김상덕, 김시오, 미노리, 최은우, 하태훈 작가가 지난 12월 30일부터 교동미술관(대표 김완순) 2관에서 함께 열고 있는 ‘원주율’ 전이다. 이들은 각자의 시선으로 더듬어진 삶의 순환과 세계를 이야기한다. ‘원주율’이란 타이틀이 붙은 이번 전시는 거주지의 이동에 따라 발생하게 되었던 소속감 상실이나 이방인 같았던 정체성을 표현하는 열쇳말이다. 작가들은 삶의 막연한 끝을 알면서도 덧없는 삶을 지었다 부쉈다 반복하는 세계 안에서 희망이 깃들어 있길 소망하는 마음을 시각화했다. 형상과 재료, 표현방식이 달라 작가만의 조형적 특징이 대비되는 양상을 볼 수 있다. 전시에 참여하는 김시오 작가는 “삶의 순환과 세계를 이루는 질서를 이야기하는 이번 전시는 원주율처럼 이상적인 원형을 그러내며 무한히 이어지는 심미적 조화를 표현한다”며 “완벽에 가까웠다고 믿고 싶은 원형의 세계를 통해 창조적 영감과 자극을 느끼길 바란다”고 소개했다. 전시는 11일까지. 박은 기자
애미아트가 한 해의 끝자락, 노래와 춤으로 시대의 서사를 풀어내는 연말 공연을 선보인다. 30알 오후 3시, 치명자산성지 평화의전당 유항검홀에서 펼쳐질 애미아트의 기획공연 ‘왕의 꿈 금척’이 바로 그것. 전석 유료(1만 원). 이번 공연은 혼란의 시대 속에서 새로운 세상을 꿈꾸었던 인물들의 선택과 운명을 상징적으로 풀어낸 작품이다. 말로는 다 전할 수 없는 마음을 노래와 춤, 움직임의 언어로 담아내며, 격동의 역사 속에서 피어난 인간의 고결한 의지와 내면의 갈등을 무대 위에 섬세하게 그려낸다. 공연은 ‘혼란의 시대 속에서’라는 프롤로그를 시작으로, 장군의 길, 몽금척, 단심의 깃발 등 장면별 서사를 따라 전개된다. 쓰러져 가는 나라를 다시 일으켜 세우기 위한 책임의 무게와 결단의 순간, 칼과 운명 앞에 선 인물들의 선택이 음악과 춤으로 펼쳐진다. 특히 정몽주와 이성계, 이방원으로 이어지는 인물들의 대비는 한 시대의 종언과 새로운 질서의 탄생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며 작품의 긴장감을 높인다. 작품의 제목이자 핵심 모티프인 ‘금척’은 칼과 폭력이 아닌 하늘의 뜻과 이상, 새로운 질서를 향한 꿈을 상징한다. 전란과 혼돈 속에서도 인간이 끝내 놓지 않았던 희망과 미래에 대한 염원을 담아내며, 역사적 서사를 넘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깊은 울림을 전한다. 애미킴 애미마트 이사장은 “준비 시간이 넉넉하지 않아 아쉬움도 남지만, 짧은 시간 동안 공연을 준비하며 스스로를 위로하고 다독이는 시간이 됐다”며 “연말을 맞아 관객과 함께 조용하지만 깊은 울림을 나누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무대 위의 노래와 춤으로 전하는 이번 공연으로 과거의 이야기이자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건네는 위로와 성찰의 메시지로 전달되길 바란다”고 덕붙였다. 전현아 기자
빛이 머무는 대상과 그림자가 만들어낸 장면을 포착하여 회화로 옮긴다면 어떤 모습일까. 청년 작가들의 회화 전시를 기획해 공간을 운영해온 공간시은(대표 채영)에서 이영은 초대전 ‘Lingering Moments’를 열고 있다. 작가는 일상에서 시선이 머물던 장면들의 이면을 회화라는 매체로 탐구한다. 그래서 이번 전시에서는 빛을 ‘피어나는(blooming)’ 현상으로 보기보다는 '머무는(limgering)' 상태로 바라봤다. 동시에 빛이 머무는 동안 만들어진 감각들을 단순히 시각적인 것에 그치지 않고 그 대상과 장소에 따라 기억과 감성을 자극하도록 화면을 구성했다. 작가는 일상의 오브제와 빛을 세심하게 묘사하며 색감과 질감으로 전환하는 작업을 선보여왔다. 특히 멀리서 보면 자연스러운 색채와 빛으로 아름답던 빛이 가까이 다가갈수록 흐릿하고 모호해지는 묘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마치 소멸되는 존재의 의미와 삶의 순환을 은유적으로 담아내 왜곡된 형태 속에 본질을 선명하게 드러낸다. 전시장에는 그림자를 바라보았던 기억을 환기시키는 작품을 중심으로 18점이 전시됐다. 이를 통해 작가는 그림자가 갖고 있는 의미가 아닌 그림자가 머물던 시간과 장소, 사물과 사람 등 각자의 기억 속 감각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따스한 빛의 효과를 담은 색과 이를 얇게 중첩한 붓질의 질감이 화면에 몰입하게 만들며 회화 작품들은 전시장 곳곳의 유리창을 통해 들어오는 빛과 그림자들과 묘한 대응을 이루며 새로운 감각적 경험을 제공한다. 이 작가는 작가노트에서 “화면을 구성하고 색조를 조정하는 과정은 대상을 향한 첫 시선과 변화하는 시선을 주고받는 경험과 맞닿아 있다”며 “흔적을 마주하는 순간에는 다른 시공간에 있는 존재와의 만남이 피어난다”고 설명한다. 그러면서 “경험을 소재 삼아 시공간이 교차하는 장면을 형상화하고 이중적인 색조로 그 이면에 관한 감성을 조율하며 빛과 함께 피어나는 일상의 새로운 순간을 마주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영은 작가는 홍익대학교 대학원에서 미술학과 회화전공 박사학위를 받았다. 2009년부터 그룹전과 개인전을 열며 자신의 작품세계를 펼치고 있다. 전시는 내년 2월 28일까지. 박은 기자
깊은 밤, 산속이라는 폐쇄된 공간에서 시작되는 두 사람의 삽질은 곧 인간의 내면을 파고드는 질문으로 확장된다. 창작연극 ‘구덩이’가 오는 29~30일, 창작소극장 무대에 오른다. 공연은 29일 오후 7시, 30일 오후 5시와 7시, 총 세 차례 진행되며 러닝타임은 30분이다. 작품은 서로를 잘 알지 못하는 두 인물이 한밤중 산에 올라 구덩이를 파기 시작하며 전개된다. 멀끔한 정장 차림의 여자는 아무런 이유도 설명하지 않은 채 서툰 손놀림으로 땅을 파고, 별이 쏟아지는 밤에 우산을 든 남자는 그 모습이 답답해 대신 삽을 잡는다. 말없이 삽을 주거니 받거니 하는 사이, 정체를 알 수 없는 짐승의 울음소리가 점점 가까워지고 두 사람의 삽질은 점점 더 빨라진다. 작품은 실패와 좌절, 수치심과 죄책감, 두려움과 무력감 등 삶의 바닥에서 마주하는 감정들을 상징적인 상황으로 풀어낸 작품이다. 작가는 바닥에 떨어진 상태에서 이 글을 쓰기 시작했다고 밝힌다. 끝났다는 생각이 수없이 들더라도 끝은 쉽게 오지 않으며, 불빛 한 점 없는 미궁 속에서도 버티며 나아가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 자신을 지탱해 주었다는 고백은 작품의 정서로 고스란히 스며 있다. 특히 ‘구덩이를 파는 행위’와 ‘우산’이라는 대비되는 상징은 절망 속에서도 완전히 무너지지 않기 위한 최소한의 선택을 떠올리게 한다. 도망치고 싶은 순간마다 “도망치지 말고 우산이라도 펼쳐 보라”는 내면의 외침은 무대 위 두 인물의 행동을 통해 관객에게 조용히 전달한다. 재)전북특별자치도문화관광재단 ‘2025 문화예술육성지원사업’에 선정돼 보조금을 지원받아 제작이번 공연은 최나솔·이종화가 주최하며, 이정이 극작을, 이종화·김서영이 연출을 맡았다. 공연의 티켓 예매는 포스터 내부에 첨부된 QR코드를 통해 가능하다. 전현아 기자
전통 소리의 진수를 한 상 가득 차려낸 무대였다. 왕기석창극단의 기획공연 ‘맛있는 창극 다섯바탕뎐’이 지난 27일 전주 한벽문화관 한벽극장에서 열리며 연말 전주의 소리판을 뜨겁게 달궜다. 약 2시간 동안 이어진 이날 공연은 판소리 다섯바탕의 정수를 통해 전통 창극의 깊이와 오늘의 현재성을 함께 확인하는 자리였다. 공연 시작 전부터 극장 로비는 관람객들로 붐볐다. 왕기석창극단의 첫 전주 공연이라는 점과 함께, 판소리 다섯바탕의 대표적인 눈대목을 한 무대에서 만날 수 있다는 기대감이 객석을 가득 채웠다. 무대는 익숙한 레퍼토리에서 출발했지만, 단순한 하이라이트 나열에 머무르지 않았다. 왕기석 명창의 축적된 소리 내공과 제자들의 단단한 수련이 어우러지며 ‘입체창극’이라는 기획 의도를 설득력 있게 구현해냈다. 공연은 적벽가 중 ‘조자룡 활 쏘는 대목’으로 힘차게 막을 올렸다. 장쾌한 소리와 긴 호흡은 관객을 단숨에 소리판 한가운데로 끌어당겼다. 이어 춘향가의 어사·장모 상봉 대목에서는 해학과 풍자가 살아났고, 흥보가 화초장 대목에서는 판소리 특유의 익살과 서민적 정서가 극장 안을 웃음으로 채웠다. 심청가의 심봉사 눈 뜨는 대목에 이르러서는 분위기가 일순 숙연해지며 객석은 울음바다로 바뀌었고, 수궁가의 토끼 배 가르는 대목에서는 다시 경쾌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웃음과 눈물이 교차하는 소리판의 본령이 고스란히 살아난 순간들이었다. 특히 인상 깊었던 대목은 왕기석 명창과 그의 제자, 또 그 제자의 제자까지 3대가 한 무대에 오른 점이다. 세대가 겹겹이 이어지며 쌓아 올린 소리는 판소리가 과거에 머문 전통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도 살아 숨 쉬는 예술임을 보여줬다. 왕 명창이 중심을 단단히 잡고, 그 위에 제자들의 기량과 젊은 소리꾼들의 생동감이 더해지며 무대는 자연스러운 호흡을 이어갔다. 이번 공연은 창극단의 첫 전주 무대라는 점에서 앞으로의 행보를 가늠하게 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전통을 보존하는 데 그치지 않고, 다섯바탕이라는 익숙한 레퍼토리를 통해 관객과의 접점을 넓히겠다는 방향성이 분명히 드러났다. 과장된 연출 없이 소리와 서사에 집중한 무대는 ‘전통 창극이 오늘의 관객과 어떻게 만날 수 있는가’에 대한 하나의 답을 제시했다. 이날 ‘맛있는 창극 다섯바탕뎐’은 단순한 연말 공연을 넘어, 왕기석창극단이 전주에서 펼쳐갈 새로운 소리판의 출발을 알리는 무대로 남았다. 해학과 비애, 전통과 현재가 어우러진 소리의 진수성찬은 관객들에게 긴 여운을 남기며 막을 내렸다. 전현아 기자
미디어아트·회화·조각 등 서로 다른 분야의 예술가들이 협업으로 구축한 팝업전시 ‘적층’이 전주 구도심에서 열리고 있다. 고지은, 유정, 채지욱 작가는 개별 작업과 공동 협업으로 프로젝트를 선보이며 서로 다른 감각과 경험이 교차할 때 생성되는 새로운 미적 가능성을 탐구한다. 작품은 미디어‧조각‧회화를 아우르며 동시대 창작환경 속에서 ‘개별 창작의 감각을 넘어서는 작가 간 새로운 연결의 가능성’을 조명한다. 전주 구도심에 자리한 공간(현무1길 35, 3층)에서 진행되는 전시 ‘적층’은 현대사회 작가집단과 창작에 대한 문제의식을 공유한 세 작가가 서로의 결핍과 욕망을 적층하듯 쌓아 올리며 하나의 집단을 이루는 과정에서 출발했다. 개인으로 혼자일 때보다 자유롭게 창작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협력 구조를 실험하며 급변하는 예술환경에 휩쓸리거나 버티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협력의 층위 자체를 창작의 기반으로 삼으려는 시도를 담아낸다. 전시는 27일까지 이어지며 공간은 목요일부터 월요일 12시~17시 운영된다. 화요일과 수요일은 휴무이다. 주말에는 상설 도슨트가 있어 희망 시 들을 수 있다. 박은 기자
현대 청년 세대의 자존감 풍경을 정면으로 응시하는 전시가 전주에서 열리고 있다. 오는 28일까지 뜻밖의미술관에서 선보이는 안현준 개인전 ‘Self-Discrepancy; 자존감 불일치’는 개인이 스스로 인식하는 자아와 타인이 바라보는 자아 사이의 간극을 시각적으로 드러내며, 동시대 사회의 심리적 구조를 탐구한다. 명시적 자존감과 암묵적 자존감의 불일치는 오늘날 SNS와 사회적 인정의 구조 속에서 더욱 증폭된다. 안현준은 이러한 현상을 개인의 문제를 넘어 사회적 징후로 바라본다. 작가는 지역에서 사진작가로 활동하며 겪은 경험, 즉 스스로 인식하는 정체성과 타인이 부여하는 이미지의 차이에서 작업을 출발시켰다. 이번 전시는 전주·인천·부산을 오가며 12명의 참여자를 인터뷰한 결과를 토대로 구성됐다. ‘스스로 인지하는 나’와 ‘타인이 바라보는 나’, 그리고 ‘도달하고 싶은 나’라는 질문을 통해 수집된 응답은 사진과 드로잉, 언어의 파편으로 전시장에 배치된다. 참여자가 인식하는 자아는 표정과 행동이 드러나는 정면 사진으로, 타인이 바라보는 모습은 통제되지 않은 뒷모습 사진으로 제시된다. 아직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이상적 자아는 콩테, 목탄, 펜으로 그린 스케치와 메모 형태로 표현돼 추상적 이미지로 남는다. 안현준은 일상과 비일상, 개인과 사회처럼 쉽게 나뉘지 않는 경계에 주목해온 작가다. 이번 전시에서도 서로 대립하는 듯 보이는 자아의 층위들이 이분법이 아닌 다층적 관계 속에서 형성된다는 점을 드러낸다. 전시는 관객에게도 질문을 건넨다. 나는 어떤 사람으로 인식되고 있으며, 또 어떤 모습으로 보이고 싶은가. 그 간극을 마주하는 순간, 자존감의 구조를 다시 사유하게 한다. 이번 전시는 전북특별자치도 문화관광재단의 2025년 문화예술육성지원사업 선정으로 마련됐다. 전현아 기자
가족 관객을 위한 창작음악극 ‘말하는 인형과 말없는 마을’이 무대에 오른다. 전통음악을 바탕으로 동시대 사회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창작음악집단 장악원악사들이 선보이는 이번 작품은 오는 27일 우진문화공간 예술극장에서 공연된다. 단절과 침묵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사회에 ‘대화’와 ‘관계 회복’이라는 화두를 던지는 이번 공연은 오후 3시와 7시, 두 차례에 걸쳐 관객을 만난다. 작품의 배경은 2070년, 서로 이웃해 살면서도 말을 건네지 않는 가상의 공간 ‘전주 슬로우존 9구’다. 인사도 안부도 사라진 이 마을에 어느 날 말하는 인형이자 로봇인 ‘AI 피노키오’가 등장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대화를 시작해주세요”라는 피노키오의 순진한 질문은 말을 잃은 어른들의 일상에 작은 균열을 만들고, 관객을 침묵의 원인과 공동체의 의미로 이끈다. ‘말하는 인형과 말없는 마을’은 개인주의가 깊어지고 관계의 경계가 두터워진 오늘의 사회를 은유적으로 비춘다. 위험 앞에서도 서로를 외면하게 되는 현실, 도움의 손길을 주저하게 되는 풍경을 허구의 이야기로 풀어내며 모든 세대가 공감할 수 있는 메시지를 전한다. 가족음악극 형식을 통해 어린이에게는 상상력을, 어른에게는 성찰의 시간을 선물한다. 공연은 마음을 울리는 가사와 멜로디로 ‘누구나 흥얼거릴 수 있는 우리음악’을 지향해온 장악원악사들의 색깔을 고스란히 담았다. 조선시대 최고 음악기관 ‘장악원’을 모티브로 한 이 단체는 전통음악의 선율과 현대적 서사를 결합하며 꾸준히 활동해왔다. 문화가 있는 날 청춘마이크, 전북 우리가락 우리마당, 청년예술 퀵 등 다수의 공공문화사업에 선정되며 실력을 인정받았다. 출연진으로는 피노키오 역의 최서영을 비롯해 김유빈, 박필순, 임채경, 장성민이 무대에 오른다. 장악원악사들은 이번 공연을 통해 “우리는 언제부터 서로에게 말을 잃었는가”라는 질문을 관객과 함께 나누며, 관계 회복을 향한 작은 출발점을 제시할 예정이다. 전현아 기자
삶의 전환기를 지나 다시 창작의 흐름으로 돌아온 여성 작가들의 목소리를 담은 기획전이 이당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멈춤과 단절의 시간을 지나 예술로 다시 이어지는 여성들의 감각과 회복의 과정을 조명하는 기획전 ‘열두 갈래의 길’은 경력단절을 하나의 공백이나 결손이 아닌 감정과 정체성이 축적된 시간으로 바라보는 데서 출발한다. 이번 전시에는 고나영, 구로미, 권재희, 김상미, 문귀화, 박현민, 엄진안, 정현주, 최민영, 최선주, 최화영, 황미란 등 12명의 작가가 참여한다. 이들은 출산과 돌봄, 건강 문제, 생계의 부담, 혹은 잠시 멈춰 서야 했던 선택의 시간 속에서 한동안 창작을 이어가기 어려운 시기를 겪었다. 그 시간들은 각자의 삶 속에서 서로 다른 경험과 인식으로 축적됐고, 작가들은 이를 바탕으로 다시 작업을 이어갔다. 창작이 재개되는 과정에서 형성된 정서와 인식의 변화를 화면 구성과 색채의 선택을 통해 보여준다. 실제 작가들은 각자의 기억과 감정, 신체적‧심리적 경험을 회화로 풀어내는 데 집중했다. 단절 이후의 복귀를 단순한 재시작이 아닌 감각과 정체성의 회복으로 제시하기 위해서다. 따라서 ‘열두 갈래의 길’은 경력의 중단을 실패나 후퇴로 규정하지 않는다. 작가들은 관람객에게 ‘경력은 누구의 기준으로 끊어지고 또 어떻게 다시 이어지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전시를 기획한 이당미술관은 여성예술가의 지속가능한 창작 환경과 예술의 공공적 역할을 모색하고 예술이 개인의 회복을 넘어 사회적 연대의 장으로 확장될 수 있음을 제안한다. 전시는 31일까지. 박은 기자
전통 악기와 밴드 사운드의 결합으로 주목받아온 크로스오버 팀 #13(샵일삼)이 연말 단독공연으로 관객을 만난다. ‘#13 샵일삼 단독콘서트’가 오는 28일 오후 6시, 전주시 완산구 더바인홀에서 열린다. 샵일삼은 국악의 선율을 바탕으로 록과 재즈, 월드뮤직의 감각을 결합해 자신들만의 독창적인 사운드를 구축해온 팀이다. 전통과 현대의 경계를 유연하게 넘나드는 음악적 시도와 에너지 넘치는 무대가 강점으로 꼽힌다. 이번 공연에서는 샵일삼의 대표 프로젝트인 ‘사철가(EX)’ 레퍼토리 5곡과 새롭게 선보이는 ‘팔도유랑’ 레퍼토리 3곡이 무대에 오른다. 사계절의 흐름과 감정을 음악으로 재해석한 구성으로, 계절이 지닌 순환의 의미와 삶의 정서를 섬세하게 풀어낸다. ‘사철가(EX)’는 빠르게 흘러가는 일상 속에서 자신과 주변을 돌아볼 여유를 잃어버린 현대인의 모습을 출발점으로 삼은 작품이다. ‘사계(四季)’가 아닌 ‘생각할 사(思)’의 의미를 담아, 지나간 계절 속 행복했던 순간을 다시 떠올리길 바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꽃이 피고 지고, 얼었던 땅이 녹아 새싹이 돋듯 음악을 통해 관객의 마음에도 작은 여유와 온기가 스며들기를 기대한다. 입장료는 전석 4만4000원이며, 2025 전주미니재즈페스티벌 관람객은 50% 할인된 2만2000원에 관람할 수 있다. 예매는 네이버 예약을 통해 가능하다. 이 밖의 자세한 사항은 전화(010-8443-8299)를 통해 문의할 수 있다. 전현아 기자
각자의 개성과 안목으로 자연과 일상의 풍경을 담아낸 김두해‧이흥재‧선기현 작가가 뜻 깊은 3인 전시회를 마련했다. 세 작가는 독특한 인연으로 맺어진 사이다. 고등학교 영어 교사였던 이흥재 작가에게 김두해‧선기현 작가가 전시회를 제안했고, 얼결에 시작된 전시회가 어느덧 36회째 이어지게 됐다. 1988년 첫발을 뗀 ‘삼인전’은 두 차례 휴지기를 거쳤지만, 현재까지 매년 같은 이름으로 관객과 만나고 있다. 꾸준함 자체가 하나의 이력이 된 셈이다. 미술관 솔에서 열리는 ‘제36회 삼인 김두해‧이흥재‧선기현전'에서는 중견의 입지에 올라선 3명의 작가가 자신만의 감각으로 풀어낸 작품 27점을 선보인다. 서로 다른 재료와 작업 방식, 개념에서 출발한 작품들은 작가의 예술세계를 또렷하게 드러내는 동시에 관객의 감각을 환기시킨다. 김두해 작가는 유화를 두텁게 발라 심화된 마티에르와 평면적 구성이 돋보이는 작품 11점을 내놓았다. 화면 대부분을 비워둔 채색으로 채우거나 화면 상단 한쪽만 살짝 보여주는 작품 등 추상과 반구상을 넘나드는 작품들을 주로 배치했다. 특히 그의 신작 ‘별밤’은 지난해 12월 3일 비상계엄을 표현한 작품으로 작가의 감정이 고스란히 투영돼 눈길을 끈다. 선기현 작가는 자연에서 얻은 영감을 소재로 캔버스를 채웠다. 봄‧여름‧가을‧겨을 등 사계절을 표현한 작가는 수채화 같은 느낌을 강조했다. 평소 두툼한 질감을 선호하지 않는다는 작가는 붓이 화면에 머무르는 시간을 최소화해 붓결이 살아 있는 담백한 화을 완성했다. 이흥재 작가의 사진은 점묘법으로 그린 회화 그림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폭설과 몽우(이슬비)가 내리는 자연을 앵글에 담아낸 작가는 관객에 감정의 전이라는 신세계를 제공한다. 찰나를 포착한 작품 8점은 작가 스스로 자연과 교감하고 얻어낸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두근거리다’, ‘설레이다’, ‘The Blue’ 등의 명제는 작가가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순간 마주한 감정이다. 23일 미술관 솔에서 만난 이흥재 작가는 “세 명의 작품을 보면 너무나 다르다는 걸 알 수 있을 것”이라며 “성격이나 작품 표현 방식은 다르지만 가치관이 비슷하고 작업에 대한 철학이 유사하다. 그렇기 때문에 오랜 시간을 함께 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세 명이 만난 것은 ‘그냥’ 만나게 된 것”이라며 “평생의 반려자처럼 오래도록 함께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매년 연말 삼인전을 열고 함께 여행을 떠난다는 이들은 올해 전시를 마무리한 뒤 거제도로 여행을 떠날 계획이라고 귀띔했다. 또한 40년의 세월을 이어온 ‘삼인전’의 역사 등을 기록해 책으로 발간할 계획이다. 전시는 29일까지. 박은 기자
540억 투입 전주시립미술관, 소장품 예산은 1억...내실 부족 우려
권일송 시인 30주기 추모 및 순창문학 출판기념회 성료
정읍 칠보 유무형 문화유산 백과사전⋯㈔정읍문화유산연구회, ‘하늘과 땅과 사람과’ 출간
[신간] 황보림 시집 ‘꽃 피는 레미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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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녕대군의 '또다른 글씨'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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