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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도립국악원이 2024년 전라북도 어린이예술단 신규단원을 모집한다. 전라북도 어린이예술단은 음악 예술에 관심 있는 어린이를 예술 인재로 키우기 위해 지난 2000년도에 창단했다. 전북도는 도내 재능 있는 아이들이 어린이예술단 활동을 기반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예술단원과 예비 단원, 수습생 교육을 무상 지원하고 있다. 어린이예술단 신청 접수는 오는 15일부터 22일까지 전라북도 및 전북도립국악원 홈페이지에서 하면 된다. 응시 대상은 도내 거주 초등학교 2학년부터 중학교 3학년까지로 오는 27일 실기 및 면접을 거쳐 최종 합격자를 발표할 예정이다. 선발된 단원은 전라북도 어린이예술단원으로 활동하게 되며 매주 1~6시간씩 파트별 오케스트라 합주 교육을 지원받게 된다. 특히 예술단원의 경우 각종 기획공연과 해외 초청공연 등 다양한 무대 활동 참여 기회가 주어지며, 연 3회의 음악캠프 교육 등 전북도립국악원 내 예술단과의 교류 및 다양한 연계 활동도 진행된다. 예비 단원은 저학년 아이들의 개인 기량 및 합주 역량을 높이기 위한 교육과정으로 운영되며, 개개인의 역량에 따라 예술단원으로 승급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수습생은 평소 음악에 흥미는 있으나 음악교육 기회를 접하기 어려운 어린이를 대상으로 진행된다. 자세한 사항은 전북도립국악원 운영팀(290-6448)으로 문의하면 된다.
대한무용협회 전라북도지회 제18대 지회장에 노현택 현 지회장이 당선됐다. 대한무용협회 전라북도지회(이하 전북무용협회)는 지난 6일 한국소리문화의전당 국제회의실에서 제62차 정기총회를 개최하고 향후 4년간 협회를 이끌어 갈 임원진을 선출했다. 이날 총회에는 대의원 명단을 제출하지 않은 남원, 정읍을 제외하고 전주, 군산, 익산, 김제 등 4개 지부의 대의원 20명이 참석해 노현택 지회장 재선출에 모두 찬성했다. 임기는 4년이다. 전북무용협회를 함께 이끌어갈 부지회장은 김명신 군산시지부장, 고명구 익산시지부장, 김창안 김제시지부장 등 3명이 선임됐다. 또 추천을 받아 김은선 김제시지부 대의원과 조수남 군산시지부 대의원을 감사로 선출했다. 전북무용협회 노현택 지회장은 “18대 전북무용협회 회장으로 다시 선출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하다”며 “전북무용협회를 중심으로 전북지역 각 지부가 하나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노현택 지회장은 이어 “전북지역 춤꾼들이 전문예술가로서 품위를 유지하고 존경받을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도울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전북무용협회는 이번 총회에서 지회장의 임기를 재임에서 단임으로 수정하는 회칙 개정안을 의결했으며, 대한무용협회 승인 후 시행된다.
사단법인 전통문화마을이 지난 한 해 동안 진행한 ‘전북 학교예술강사 지원사업’을 성황리에 종료했다.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와 교육부의 협약에 따라 문체부, 전북도교육청, 전북도의 지원을 받아 진행된 학교예술강사 지원사업은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이하 진흥원)에서 학교문화예술교육 활성화를 위해 도내 초·중·고에 국악, 무용, 연극, 공예, 디자인, 만화애니, 사진, 영화 분야의 예술강사를 파견하는 사업이다. ㈔전통문화마을은 ‘예술로 마음을 풍요롭게! 학교를 행복하게!’라는 슬로건 아래 예술교육의 기회를 확대하고 활성화를 통해 학생들이 심미적 정서함양과 예술적 문화적 소양을 갖춘 창의적 인재를 양성하는데 앞장섰다. 실제 작년 한 해 초·중·고등학교 총 609개 학교의 845개 교육과정에서 국악, 무용, 연극, 공예, 만화·애니메이션, 디자인, 영화, 사진 분야 등 총 10만 4922시간의 예술 교육을 실시했다. 이외에도 이들은 예술강사의 역량강화를 위한 ‘2023 예술강사 파워 UP! 역량강화 연수 프로그램’과 ‘예술강사 모니터링’을 실시하는 등 도내 학생이 양질의 예술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지원했다.
△글제목: 나는 기차를 좋아한다 △글쓴이: 육하영 (전주양현초 4년) 나는 기차를 좋아한다. 그래서 나의 장래 희망도 기관사이다. 내가 좋아하는 열차는 한국 철도 공사 8200호대 전기 기관차와 서울 교통 공사 5000호대 전동차이다. 한국 철도 공사 8200호대를 좋아하는 이유는 무궁화호를 견인하고 그 디자인이 마음에 들기 때문이다. 앞으로 약 3~4년 뒤면 무궁화호가 폐지되는데, 폐지 후 수명이 남은 8200호대 전기 기관차들은 어떻게 될지 궁금하다. 다음으로 서울 교통 공사 5000호대 전동차는 특유의 구동음과 내가 좋아하는 서울 지하철 5호선에서 운행하는 열차이기 때문에 좋다. 나는 그중에서도 1세대 열차를 좋아하는데 노후되어 폐차가 되면 많이 아쉬울 것 같다. 나의 고장 전주에도 하루빨리 전철이 생기길 희망한다. ※ 이 글은 2023년 전북일보사·최명희문학관·혼불기념사업회가 주최·주관한 <제17회 대한민국 초등학생 손글씨 공모전> 수상작품입니다.
△글제목: 누나의 생일 △글쓴이: 송민찬(전주금암초 5년) 얼마 전 누나의 생일이었다. 누나는 성격이 많이 털털해서 선물을 크게 신경 쓰지 않았으나 그래도 누나에게 무슨 선물을 해야 할지 고민이었다. 용돈이 많은 것도 아니어서 선물을 고르는 일은 엄청 어려운 일이었다. 고민 끝에 누나의 선물을 결정했다. 누나는 이제 고3이다. 미술 대학 준비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림 연습 많이 하라고 노트 2개를 준비했다. 누나가 선물을 받고 마음에 들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었기에 내가 설렜다. 누나에게 “누나 생일 축하해.” 하며 선물을 전해줬는데, 누나는 “응 그래, 고마워.” 아무 감정 없는 듯 말했다. 정말 정말 마음에 들지 않아도 조금 더 기쁜 표현을 해주기를 바랐는데, 조금 서운했다. 다른 사람들은 모르겠지만 나는 무척 속상했다. 누나는 친구들에게 매년 생일 때마다 비싸고 멋진 선물들을 받아 배달되어 오는데 그래서 내 선물에 흥미가 없는 듯하다. 누나는 항상 웃기고 재미있지만, 누나의 무뚝뚝함은 너무 싫다. 내가 누나를 바꿔볼 수도 없으니 그냥 무시하려고 했는데 누나의 그런 행동은 내 마음속 한편에 안타까움으로 남아 있다. 누나와 친하게 지내면서 살고 싶다. ※ 이 글은 2023년 전북일보사·최명희문학관·혼불기념사업회가 주최·주관한 <제17회 대한민국 초등학생 손글씨 공모전> 수상작품입니다.
한국전통문화전당이 오는 19일까지 전주 디저트 공모전 ‘전주한입’을 진행한다. 전주음식 관광상품 개발 사업의 일환으로 진행되는 이번 공모전은 유네스코 음식창의도시인 전주의 음식 문화와 역사를 배워보며 전주를 더 깊이 이해하고 경험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마련됐다. 이번 공모전은 디저트 상품을 개발해 상품화가 가능한 전주시 소재 사업자를 대상으로 △전주의 특색을 살린 디저트 △전주 10미(味)를 활용한 디저트 △전주 특산물(복숭아, 배 등)을 활용한 디저트 △전주 대표 관광지 테마를 활용한 디저트 등 장르에 상관없이 응모가 가능하다. 다만, 음료와 아이스크림은 제외되며, 기존에 상품화돼 판매 중인 상품은 접수가 불가하다. 공모전은 1차 서류심사와 2차 실물 심사를 통해 최종 5개 작품(1등 1팀, 2등 2팀, 3등 2팀)을 선발할 예정이다. 최종 선정된 5개 팀에게는 상품화 지원금과 개별 맞춤 컨설팅을 비롯해 리플렛 제작, 이미지 촬영, 홍보영상 등 다양한 혜택이 지원된다. 공모는 한국전통문화전당 홈페이지 공지사항에서 공모신청서를 내려받은 후 이메일(ktcc_hansik@naver.com)로 접수하면 된다. 자세한 사항은 한국전통문화전당 한식창의센터(063-281-1582)로 문의하면 된다.
남원문화원이 최근 진행한 제23회 남원향토문화대상 시상식이 성황리에 마무리됐다. 이날 박송미(문화장)·백청자(효열장)·장현미(공익애향장)씨 등 총 3인이 제23회 남원향통문화대상을 받는 영예를 안았다. 남원문화원은 시상식에 앞서 지난달 11일 제4차 이사회를 열고 문화장, 효열장, 공익애향장 등 3개 부문의 수상자를 선정했다.
한국전통문화전당은 작년 한 해 동안 문화예술 사각지대에 놓인 지역 내 문화소외계층을 대상으로 진행한 ‘우리놀이 사회공헌 프로그램’을 최근 마무리했다고 3일 밝혔다. 실제 프로그램은 지난 2022년 11월부터 총 45회 운영됐으며 △화가투 △고누 △쌍륙 △칠교, 실외놀이인 △제기차기 △사방치기 △투호놀이 △딱지치기 △달팽이놀이 등 다양한 실내외 문화체험 활동이 지원됐다.
2024년 전북일보 신춘문예 당선작이 확정됐다. 시 부문에 최형만 씨의 ‘알비노’, 단편소설 부문 신가람 씨의 ‘미지의 여행’, 수필 부문 김서연 씨의 ‘움쑥’, 동화 부문 정종균 씨의 ‘우주보안관이 된 우리 엄마’가 선정됐다. 2024년 전북일보 신춘문예에는 시 부문 344명·1308편, 단편소설 부문 149명·161편, 수필 부문 183명·412편, 동화 부문 103명·112편 등 총 779명·1993편이 응모됐다. 전북일보는 예심과 본심을 거쳐 4개 부문의 당선작을 선정했다. 2024 전북일보 신춘문예 당선자 및 당선작 △시=최형만(55·경남 창원시 진해구) ‘알비노’ △단편소설=신가람(34·전북 전주시) ‘미지의 여행’ △수필=김서연(62·전북 김제시) ‘움쑥’ △동화=정종균(32·광주광역시) ‘우주 보안관이 된 우리 엄마’ 본심 심사위원 △시=김용택(시인), 문신(시인, 우석대 교수) △단편소설=송하춘(소설가, 전 고려대 교수), 김병용(소설가, 백제예대 교수) △수필=백가흠(수필가, 계명대 교수) △동화=김자연(아동문학가, 전북작가회의 회장)
동의 없이 찾아오는 황량한 새벽에 잠에서 깨면 먼저 어디에 누워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어둠 속에서 헤매는 시선들로 창밖의 희미한 불빛들과 귀신의 형상처럼 걸려있는 신문배달 유니폼을 찾아내면 절반은 온 것이다. 꿈인지 현실인지 분간하는 방법도 어렵지 않다. 막으려 해도 비집고 새어나오는 입김이 결마다 갈라진 입술을 거쳐 코끝까지 서리를 맺히게 하니 아마 꿈속에서 이렇게 시린 계절은 없으리라. 어쩌면 그 새벽에 눈을 뜨게 되는 건 서서히 몸이 굳으며 동사가 되기 직전 발악하는 한 생명의 마지막 배웅일 수도 있을 것이다. 몸을 움직이는 데도 절벽에서 뛰어내릴 만큼의 결단이 필요하다. 침낭 덕분에 몸 곳곳에 어설픈 온기를 품고 있는데 여기서 나가는 순간부터는 온몸이 떨리는 추위에 마치 내 안에 꿈틀거리는 모든 신경세포들이 내게 역정을 내는 느낌이다. 그 때문인지 살 끝 곳곳이 더 찌릿찌릿하면서 따가워진다. 새벽 2시 15분. 천천히 아주 조심스럽게 팔을 올리며 귀에서 귀마개를 빼면 창 밖에서 철로를 지나다니는 기차들의 소리가 벌써부터 야단법석이다. 그나마 지하철은 유난떨지 않고 얌전하게 지나가는 편이지만 가장 고약한 녀석은 주기적으로 석탄을 나르는 열차다. 지나갈 때마다 박자가 맞지 않는 온갖 신호음으로 생색을 내며 열차의 길이는 또 얼마나 긴지 30초 남짓의 시간동안 도시 전체를 흔드는 소음이 이어진다. 언제쯤 익숙해질까. 익숙해지긴 할까. 2평 남짓의 기숙사에 처음 발을 디딜 때 엄지손가락만한 바퀴벌레 다음으로 나를 반겨주던 게 8줄의 철로들이었다. 오랫동안 잠겨있던 듯 먼지 가득한 창틀의 창문을 열자마자 철로들이 격하게 환영하는 것처럼 뿌연 먼지바람이 내 안면을 가득 매웠다. 그러고는 쓸데없이 우수에 젖어 감성적인 생각이 들기도 했다. 철로에는 삶과 죽음이 한데 어우러져 있다는. 비단구렁이처럼 철로를 따라 꿈틀거리는 열차들이 생생한 도시의 삶을 비춘다면 또 한편엔 나오기 힘든 쇠창살 같은 철로들 위로 확 뛰어내려 죽어버리기 딱 알맞은 배경이었으니까. 저 철로들은 어디에 더 가까울까. 동적인 삶, 정적인 죽음. 철로들은 찰나에 생긴 고요함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머릿속에서 서성거리는 생각들과 어색한 인사를 하고 있으면 문이 부서질 듯 세 번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누군가의 굵직한 목소리도 들리기 시작한다. “오키테!” 며칠 전에 어학원에서 배운 단어다. 오키루. 일어나다. 명령어에는 루를 지우고 테를 붙이니 일어나라는 말일 것이다. 방에서는 귀찮은 듯 “하이!(네)”라고 대답하고는 그제서야 애벌레처럼 침낭 밖으로 몸을 뺀 뒤 부랴부랴 배달유니폼과 헬맷을 집어 들고 한기로 가득 채워진 방안을 벗어난다. 신발을 꺾어 신은 채로 쥐구멍 같은 계단 통로를 내려와 중앙거실로 나오면 이미 오타군이 따듯한 우롱차를 마시고 있다. 만화로 대학 진학을 준비하고 있는 19살 학생인데 저 나이에 신문배달을 하는 것만으로도 철이 일찍 든 편이다. 일을 시작한 지 2주 정도 되었을까. 다른 직원들과 조금씩 안면도 트고 일본어로 간단한 안부 인사정도의 소통이 가능하기 시작한 때에 오타군은 거실 한 쪽에 있는 내게 본인이 만든 파스타를 조심스럽게 건네주었다. 아무 야채가 들어가 있지 않고 소금과 오일만 들어가 있는 파스타였는데 이미 오타군이 자주 저렇게 해 먹는 걸 곁눈질로 봐서 알고 있었다. 나는 한국식으로 고개를 숙이며 감사하다는 표현을 전했고 오타군은 별 거 아니라며 나이와 어울린 쑥스러움을 눈가의 주름에 내비치며 먹어보라고 권했다. 겉보기에는 파스타면만 삶은 모양을 취하고 있지만 포크로 면을 살짝 비벼주니 그 안에 있던 올리브오일이 흘러나오며 슬며시 오일파스타의 윤기를 뽐냈다. 먹고 싶지 않은 비주얼이긴 했지만 오타군의 오랜 연습의 결과인지 간도 잘 배어있고 보기보단 훨씬 괜찮은 음식이었다. 그동안 배운 단어들과 문장들을 겨우 조합해서 어설픈 발음으로 오타군에게 말을 걸어보았다. “정말 맛있네요. 근데 오타군은 왜 매일 이것만 먹습니까?” 문장으로 된 일본어가 내 입에서 나온 게 처음이었는지 오타군은 살짝 놀란 눈치였지만 이내 내 말을 곧장 이해하고선 나조차도 알아듣기 쉬운 단어를 선택해 대답했다. 어쩌면 나를 위한 배려였을까. “야스이까라.(싸니까). 저거 하나에 90엔이에요.” 그는 손짓으로 주방 선반에 있는 파스타면 봉지를 가리키며 쌀보다 싼 음식이 필요하다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의도치 않게 선명한 그와의 첫 만남이었다. 몸을 녹이며 차를 마시고 있는 오타군과 잘 잤냐는 형식적인 인사를 주고받으면 뒤이어 다나카, 요시다, 그리고 창 위엔이라는 22살 중국인 유학생까지 줄줄이 이어 나온다. 전부 잠이 덜 깬 채로 까치집 머리를 하고선 기계처럼 인사를 주고받는다. 다들 무언가를 원망하는 표정들이지만 원망해야하는 대상이 이 암흑같이 깜깜한 새벽의 현실이 아니라 본인 자신이라는 걸 깨닫고선 찬물 세수로 잡생각들까지 겨우 씻어낸다. 출근카드를 넣을 때면 이제 잠은 다 깬 상태다. 신문사에 무료로 배급되는 짠맛 섞인 물 한 통을 챙기고선 오토바이 안장에 넣고 서로 약속된 것처럼 각자의 위치로 오토바이를 옮겨놓는다. 그러면 저 멀리 도로 한복판에 대형트럭이 멈춰 서는 게 보이고 그때부터 우리 지사에 할당되는 신문 2800부를 전부 나르기 시작한다. 한 뭉치마다 100부씩 묶여있으니 대여섯 명의 직원들이 두, 세 번씩 나르면 금방 끝나는 일이다. 조간신문의 경우 330부, 석간신문의 경우 180부를 배달해야한다. 다른 말로 하자면 새벽에는 4시간 안에 300곳을, 오후에는 2시간 안에 150곳이 넘는 장소들을 들락날락해야하니 일이 끝나고 나면 잠에서 깼을 때 설한의 고통이 그리워질 만큼 온 몸이 땀에 젖어있다. 새벽 배달 업무는 5시간 안에만 마무리하면 되지만 서둘러 오전 6시 30분까지 맞춰 끝내면 숙소 근처의 철교에서 다채로운 경치가 어우러진 주황빛 일출을 간신히 볼 수 있다. 온통 검은색뿐인 내 하루 중 일상에서 유일하게 색감을 느끼게 되는 순간이기도 하다. 색을 느낄 수 있는 시선들을 눈에 자주 담으면 내 안에 있는 시커먼 먼지같은 것들이 벗겨질 수 있다는 마지막 발악인 것일까. 세상의 색깔이 어두워 보이는 것도 이젠 나만의 불치병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 거울 속에 보이는 한 인간의 얼굴부터 사계절 내내 우기를 알리듯 폭우에 지친 우중충한 장마의 모습을 띄고 있고 표정이라고는 무표정 말고는 미세한 다른 어떤 표정도 가늠할 수 없다. 손가락으로 입가 양 쪽을 찢어 억지로 미소라는 것을 만들어보아도 그 어색하고 불편한 기색에 오히려 더 거부감이 생기게 되고 안색마저 죽어가고 있는 짐승들의 표본이다. 미소를 지어 본 적이 언제였을까. 그때였을까 생각해내면 너무 멀리 돌아가 버리고 아니면 그때인가 싶으면 그때는 행복해서 지은 미소가 아니었다. 한 때는 눈부신 일상을 그리기도 했고 마주하기도 했다. 햇빛이 온 몸에 닿으면 서서히 스며들어 피부결의 일부가 된 듯 서로 한 몸을 이루며 어쩌면 그 온기들로 인간의 혈색과 세상의 색들이 갖춰지는 것일까. 어느새 조금씩 피어오르는 해가 억지로 기지개를 키고 있다. 이미 알고 있었다. 어차피 사랑이란 건 사랑만으로 되는 게 아니라는 걸.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다르지 않을까 하는 알 수 없는 기대감과 어리석음으로 스스로를 더 초라하게 만들었다. 사랑에는 돈이 있어야 하고 돈이 있어야 두 사람의 미래가 있을 수 있었다. 풋내기 때의 연애에서는 하룻밤 사랑만으로도 사랑이 되기도 하지만 30대 때의 사랑은 물질주의에 틀어박혀 버리고 서로의 보폭만 눈치보며 주변을 맴돌기만 한다. 내가 변한 것일까. 그 사람을 원망할 자격도 없다. 원망이 늘어나면 오히려 더 비참해지는 신세한탄으로 이어지며 그 때의 순간들을 안주삼아 술을 찾게 될 것이다. 이렇게 마시는 술은 술맛이야 좋겠지만 예상치 못한 더 안 좋은 결과를 초래하고 만다. 전화를 하거나 눈물을 보이는 하찮고 창피한 순간들. 적적한 고요를 즐기며 잠에 드려 할 때쯤 누군가 방문을 두드린다. 정직원인 요시다였다. 요시다가 내 방에 온 건 처음이었다. “점장이 찾아요.” 일본인들은 왜 저렇게 다 친절할까. 저 간단한 말을 하면서도 내게 보이는 찰나의 웃음들과 정성껏 안내하려는 손의 움직임들. 어쩌면 일본이라는 나라의 인식을 좋게 심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다가 나는 한국인이라는 생각으로 돌아오며 정신을 차린다. 1층에 있는 사무실로 내려가자 혼자 업무를 보고 있는 점장이 나를 보자마자 사무실 한 쪽에 있는 테이블을 가리키며 앉으라고 손짓했다. 머릿속은 복잡했다. 내가 뭘 잘못했을까. 배달오류라면 쪽지를 붙여놓았을 것이고 배달지가 새로 생겼다면 그것도 쪽지를 붙여놓았을 것이다. 사무실의 한 구석에서 점장의 눈치를 보고 있으니 영락없이 교무실에 끌려온 중학생의 모습이었다. 만약에 큰 잘못이라도 저질러 쫓겨나게라도 된다면 당장 내일부터 거리에 나앉게 된다. 뭐 그것도 나쁘지 않겠지만. “일은 괜찮죠?” 점장은 아직 내가 일본어가 짧은 것을 알고 쉬운 단어만 골라 물었다. 아마 일 적응에 대한 안부인사 정도가 될 것이다. “네. 좋습니다.” 덕분에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육체적으로 힘들지만 이 정도는 쉽게 견딜 수 있다고 말을 하고 싶었지만 더듬거리며 단어를 떠올리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당신에게 충성하고 있다는 태도와 눈빛을 보여주니 점장도 옅은 웃음기를 보이며 긴장을 풀어주기 시작했다. “별 건 아니에요. 김 상. 혹시 수금 업무도 해보는 건 어때요?” 수금에 관해서는 직원들과 넌지시 얘기했던 적이 있었다. 오타군이 점장의 지시를 받고 부랴부랴 외출을 하길래 어디가냐고 물었더니 수금을 간다고 했었다. 떠나버리는 오타군 뒤로 얌전히 있던 다나카가 수금을 하면 수금한 금액 10%의 인센티브가 있다며 한 달에 50곳 정도만 수금해도 보너스로 쏠쏠하다는 얘기가 불현 듯 떠올랐다. “어려운 건 없어요. 그냥 지로용지 가지고 가서 수금하러 왔다고 하고 돈만 받아오면 돼요. 영수증도 그 자리에서 손으로 써서 주면 되고.” 어차피 오후 배달이 끝나면 할 일도 없었다. 읽을 책도 바닥난 상태였고 일본어 공부만 하기에는 따분함이 몰려오던 시기일 뿐더러 혼자서 술을 마시는 것도 이제 지긋지긋한 상태였다. 돈이 급한 건 아니었지만 이런저런 잡다한 생각들을 지워주기 위한 활동으로 적합할 것 같았다. “네. 좋습니다. 점장님. 혹시 하다가 힘들면 말씀드려도 될까요?” “그럼요. 언제든지요.” 일을 막 시작할 무렵, 점장은 신문배달 업무와 숙소생활에 관해 유의사항 같은 것들을 하나하나씩 일러주곤 했다. 출근시간 새벽 2시 20분은 반드시 지킬 것, 비가 올 때는 무조건 우비를 입을 것, 월급은 매월 24일에 지급, 숙소에 외부인 출입은 금지, 저녁 8시 이후에는 숙소에서 소란피우지 말 것, 공용주방 설거지는 곧바로 할 것 등 다양한 규칙들이 있었는데 대부분 일반적인 상식과 매너 비슷한 것들이었다. “아. 그리고 배달하는 집에 신문이 3개정도 쌓였으면 사무실에 보고해야 해요.” 배달지의 오류거나 집주인이 여행을 갔을 수도 있으니 그 단순한 뜻을 이해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점장은 내가 그 말의 숨은 뜻에 대해 이해하지 못했다는 걸 단번에 알아차렸다. “요즘 혼자사시는 분들 중에 자살하는 사람들이 많거든요.” 나중에 알고 보니 신문사가 일본 경찰청과 자살방지 협약을 맺었다고 했다. 대강의 내용들은 배달원들이 수금이나 배달 때문에 날마다 가정집에 들락날락하며 자살에 대한 징조나 이미 자살한 사람에 대한 초기 발견에 있어 도움이 될 수 있으니 경찰은 배달원들에게 일종의 협조를 구하는 것이다. 점장의 얘기를 듣고 나니 괜히 소름이 끼치기도 했다. 눈앞에 시체를 마주하는 것이 태연하게 지나갈 수 있는 일은 아닐 테니까. 점장과 얘기를 마치고선 그 다음날부터 곧바로 수금 업무에 투입됐다. 말이라도 걸거나 모르는 업무에 대해 요청하면 어떡해야하는지 걱정의 마음도 앞섰지만 점장 말대로 수금만 금방 끝내버리는 단순한 일이었다. 방문 전 매니저가 먼저 전화를 걸어 수금하러 방문해도 되겠냐는 허락을 받아놓고 가기 때문에 허탕을 치는 일도 없었다. 자동이체 하는 방법을 알려드리면 되지 않냐고 단순한 궁금증을 물어보자 그렇게 되면 서서히 밥줄이 끊기게 되니 알아서 하라는 매니저의 핀잔을 듣고 말았다. 이노우에를 처음 만난 것도 수금 업무 때문이었다. 어두운 새벽에는 신문을 넣을 우편함 찾기에만 급급하기 때문에 집집마다의 분간은 하지 않는데 알고 보니 이노우에의 집은 내가 조간신문을 직접 배달하고 있는 집이었다. 족히 50년은 되었을까. 대문 앞에는 이미 사람의 손길을 떠난 지 오래된 자전거가 문지기처럼 문을 지키고 있었고 그 옆에는 이노우에(井上) 한자가 써있는 철제 재질의 우편함이 성인 가슴팍 높이에 걸려있었다. 사람 양팔 길이의 대문을 열고 들어가면 도심과는 어울리지 않는 아담한 정원이 눈에 들어왔고 그 다음에는 손님들을 언제라도 환영하겠다는 듯 활짝 열린 거실 사이로 이노우에가 슬리퍼를 신으며 부랴부랴 사람을 맞이한다. 정원의 일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수국들은 이미 수명을 다한 상태였다. 꽃이 핀 형체는 어렴풋이 드러난 걸 보니 아마 잎 정리에 손을 뗀 지 얼마 안 된 모양이었다. “한국인?” 70대 노인이라기엔 잔잔한 호수같은 평온함이 첫인상에 가득했다. 수많은 순간들을 거쳐 이제는 당신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놀랍지 않고 대수롭지 않은 듯한 그 평온함. 아마 이노우에는 누군가 그의 목에 칼을 대도 살려달라 목 놓아 애원하지도 않을 것이다. “네. 어떻게 아셨어요?” “한국인들은 특징이 있지. 웃음기가 없는 얼굴과 단정한 머리.” 듣고 보니 맞는 말이었다. 아무것도 하기 싫을 만큼 피곤해도 세면대에서 머리는 꼭 감는, 이유 없이 밝은 표정을 짓고 있으면 되레 이상한 사람 취급하는 한국인들. 어쩌면 한국이라는 나라는 남에 대한 시선이 강박처럼 자리 잡고 도저히 행복할 수 없는 세상에서 얼굴에 띄는 미소는 절대로 있을 수 없는 곳인 걸까. 생각해보니 우울한 말이었다. 대화가 길어지면 문장 곳곳마다 못 알아듣는 말들이 늘어날 테니 서둘러 수금하러 왔다며 둘러댔다. 하지만 이노우에는 대뜸 내게 따듯한 차를 한잔 하고 가라며 권했다. 어색한 상황이 이어질 것 같은 느낌에 처음 한 번은 사양했지만 이미 준비를 하고 있는 이노우에를 보며 발걸음을 무겁게 옮겼다. 실례하겠다는 말을 시작으로 신을 벗으며 밖에서 처음 보았던 거실로 들어서자마자 연한 살색의 다다미가 간격을 맞춰 다소곳하게 펼쳐져 있었다. 이노우에는 중앙에 있는 좌식형 테이블에 앉아있으라는 듯 그의 허리처럼 꾸부정한 손짓을 건넸다. 조심스럽게 눈치를 보며 코타츠 안에 다리를 넣으니 온 몸이 녹아버릴 듯한 따듯함에 긴장이 풀려버렸고 시선은 자연스럽게 집의 곳곳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그 시선들 사이에 가장 오래 머문 시선은 아마 거실 구석에 깔끔히 자리잡고 있는 제사상이 될 것이다. 때깔 좋은 원목 수납장 사이에 그의 부인으로 보이는 나이 지긋한 여인의 사진이 중앙에 놓여있었고 그 아래 바닥에는 몇 개의 향과 바로 먹어도 이상하지 않은 과일, 정갈한 식사까지 정성스레 준비돼있었다. 도둑질을 하듯 조심스럽게 살피던 내 눈길들을 이노우에도 금방 눈치챘다. “내 아내야. 두 달 전에 죽었지. 그래서 매일 오마이리 하는 중이야.” “오마이리요?” 오마이리를 이해하지 못하자 이노우에는 눈을 감고 두 손을 모아 기도하는 모습을 하며 몸으로 단어의 뜻을 알려주었다. 매일 아내를 기리며 기도를 하는 모양이었다. 음식도 매일 준비하는 것이냐고 물어보니 같이 먹으면 심심하지 않다며 쑥스러운 듯 의미 담긴 웃음을 지어보이며 끓인 차를 내어왔다. 잔에 차를 따라주는데 이노우에의 손이 덜덜 떨려 하마터면 내게 쏟아버릴 것 같은 걱정이 들었지만 다행히 별 문제없이 잔이 채워졌다. 걸러지는 찻잎 사이로 쏟아지는 선명한 초록빛 물줄기가 파도를 일렁이며 잔이 채워졌고 일본의 다도문화를 몰라 그래도 예의를 차리겠다는 모습을 위해 무릎을 꿇고 앉아있으니 이노우에는 손사레치면서 편하게 앉으라며 내 자세를 다시 바로 잡았다. “옛날에 선물 받은 녹차야. 뜨거우니 천천히 마셔봐.” 두 손을 모아 잔을 들어 먼저 향을 맡아보니 녹차의 쓴 향보다는 산 속 곳곳에 담겨있는 피톤치드처럼 상쾌한 내음이 코 속으로 들어와 정신까지 맑아지는 느낌이었다. 천천히 입술 끝에 녹차를 적셔 온도를 확인하고 조금씩 들이키자 코로 맡았던 향이 다시 퍼지며 부드러운 녹차의 맛이 입 안에서 맴돌았다. 뜨거운 물에 티백을 담가 마시던 싸구려 녹차와는 아예 다른 차의 종류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차는 잘 모르지만 이게 좋은 차인 건 알겠습니다.” 이노우에는 그의 나이와 어울리는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잠깐의 정적이 흐르고선 나도 모르게 그가 아내를 위해 차린 상에 시선이 멈추었다. 노인의 얼굴과 주름에서는 생기 넘치는 감정을 읽기 어렵지만 그가 겪고 있는 상실감이라는 감정에 대해서는 느낄 수 있었다. 사실 그의 아내가 죽었다고 했을 때부터 그의 뒷모습에서 느껴지는 공허한 무언가가 공간에 있는 모든 공기의 무게를 더 탁하게 만드는 듯 했다. 언젠가의 이별에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해두었는지 일생동안 함께한 사람을 한순간에 잃은 것에 비해서는 초연해보이기도 했지만 멋쩍게 건네는 미소 사이로 그 쓸쓸하고 외로움이 사무치는 감정들마저 숨기지는 못했다. 짐작해보려도 했지만 이건 찰나적으로도 짐작이 가능한 게 아니었다. 수십 년이 넘는 세월이 힘껏 담겨있는 서로의 사랑과 이별에 대한 소중한 감정들을 이제 사회에서 발버둥치는 풋내기가 느끼기엔 넘볼 수 없는 미지의 영역이었다. 그랬기에 내 안에서 어떤 위로의 표현을 써야할지 헷갈리고 말았다. 마당에 있는 수국을 보며 쓸쓸하진 않냐고, 집 곳곳에 깃들어있는 아내의 흔적들 때문에 외롭진 않냐고, 이제 아내를 보지 못하는 것이 눈물을 참아야 할 만큼 힘들진 않냐고 선뜻 오지랖을 건넬 말들도 생각했지만 괜한 위로가 될 것 같았다. 다른 수금 업무가 있다고 뻔한 거짓말을 둘러대며 천천히 나갈 채비를 하니 이노우에는 시간을 많이 뺏어 미안하다며 가는 발걸음을 하는 내 어깨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그의 기운에서 느껴지는 외로움 때문인지 다음에는 더 오래 있어도 괜찮냐는 말을 건네자 이노우에는 선뜻 그러라며 언제든 차를 끓여놓고 기다리겠다는 가벼운 농담을 건넸다. 그와 헤어지고 기숙사로 돌아오는 길에 문득 울적한 기분이 들었다. 그 이유를 생각해보니 어쩌면 그가 마지막으로 건넨 말이 머릿속에서 맴돌았기 때문일 것이다. “참 오랜만이구만. 누군가와의 대화.” 기숙사에 들어서자마자 항상 그랬듯 답답한 헬맷을 벗어 서랍장 위에 올려놓고 구겨져있는 침낭에 쓰러질 듯 뻗어버렸다. 그리고 잠자코 천장을 바라보며 머릿속에서 가져온 생각들은 이노우에와의 대화와 그가 느끼고 있는, 아니 느끼고 있을 거라 추측하는 감정들에 대해 회상하기 시작했다. 도달하는 결론은 결국 한 가지뿐이었다. 그의 하루하루는 얼마나 쓸쓸하고 외로울까. 고타츠의 온기가 몸에 남아있었는지 누워있던 기숙사의 바닥은 그날따라 유독 얼음장같이 차가웠다. 이노우에를 처음 만나고 그 이듬달부터 수금을 위해 다시 그를 찾아갔을 때부터 아마 우리는 친구가 될 준비를 하고 있던 것 같다. 나는 한인시장에만 있는 태양초 고추장과 신라면을 사들고 첫날 마신 차에 대한 답례를 했고 이노우에는 내 선물을 진심으로 고마워하는 것처럼 보였다. 전형적인 일본인들의 가식적인 연기가 아니었기에 오히려 기분이 좋은 건 내 쪽이었다. 두 번째 방문부터는 처음 그와 나 사이에 있던 어색한 교류마저 떨쳐버릴 수 있었다. 어쩌면 나 혼자 가지고 있던 외국인 울렁증이었을 수도 있겠지만 그와의 대화에서 어려운 말이 오가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니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노우에 집에 있는 고타츠가 내 모든 살결들을 부드럽게 보듬어줬기 때문에 그것만으로도 그의 친구가 될 수 있는 명분이 충분했다. “자네는 내가 따분하지 않나보군. 다른 젊은 사람들은 나를 전염병 걸린 사람처럼 취급하고 도망가던데. 아니면 그 고타츠 때문인 건가?” 이노우에는 한국 노인들한테는 경험해보지 못한 센스있는 농담을 잘했다. 그만의 특별한 능력인건지 일본 노인들의 유머감각이 뛰어난 건지 헷갈렸지만 누군가의 농담에 아주 오랜만에 미소를 지어보았다. “고타츠 때문인 것도 있습니다.” 고작 두 번째뿐이지만 오래된 습관이 몸에 밴 것처럼 한쪽 구석에 있는 그의 아내 제사상을 살펴보니 지난번과는 다르게 상차림이 조촐해졌다. 오래돼 보이는 사진들과 편지들, 그녀의 장식품으로 보이는 것들이 상의 대부분 자리를 차지했고 외로운 향초만 홀로 기운을 차리고 있었다. “내가 아내하고 50년을 넘게 같이 살면서 그 사람이 좋아하는 음식이 뭔지도 모르더라고. 그래도 매일 일어나자마자 기도는 해.” 상차림을 보고 있던 내게 이노우에는 거실너머 주방에서 과일을 깎으며 혼자 떠들어댔다. 어쩌면 아내에 대한 일말의 죄책감과 미안함을 내게 대신 하소연하는 듯 했다. 나는 순간적으로 그와 있는 시간에서 그의 아내 얘기만 나오면 이노우에는 급격하게 우울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아마 그는 내가 모른다고 생각할 것이다. 아무렇지 않게 웃음을 짓고 농담을 건네고 활기찬 대화를 이어갔지만 그 모든 게 아무렇지 않지 않았다. 그러고선 정적을 깰 무언가가 생각이 났는지 이노우에는 안방에 들어가 기초한국어 책을 가져와 고타츠 위에 펼쳤다. “치매에 바둑이랑 언어 배우는 게 좋다는 데 바둑에는 영 흥미가 없어가지고 말이야. 그래도 언어는 외우기만 하면 될 거 아닌가?” 오랜만에 활자로 된 한국어를 책에서 보니 괜스레 반갑기도 했다. 책 사이에 껴있는 노트에는 안녕이라는 글자만 몇장씩 적혀 있고 그 다음에는 안녕하세요, 안녕히 가세요, 반갑습니다를 포함한 대부분의 인사말이 적혀 있었다. 삐뚤삐뚤 쓰여 있긴 했지만 똑같은 그림을 베껴서 그리려는 것처럼 펜을 정성껏 다루는 이노우에의 모습이 머릿속에서 그려졌다. “엄청 열심히 하셨네요. 글씨도 잘 쓰셨어요.” 이노우에는 오른손 중지 한쪽에 생긴 굳은살을 보여주며 어린 아이처럼 자랑했다. 그러고선 책의 접힌 부분을 펼치며 이상한 부분이 있다며 내게 물어볼 것이 있다고 했다. “아이시떼루는 보통 한국말로 뭐라고 하나?” “‘사랑해’라고 합니다.” “근데 그거는 명령어 아닌가?” 처음엔 이해하지 못했다가 이노우에가 말을 천천히 해준 덕에 겨우 이해할 수 있었다. 이노우에가 받아들인 뜻은 결국 간단했다. 어떤 행동을 하라고 하는 ‘해’라는 말의 명령어를 글자로만 외우고 있었기에 그 말이 왜 사랑이라는 아름다운 단어 옆에 있냐는 말이었다. “그러면 일반적으로 한국말로는 ‘사랑하고 있다’고 말해야 되지 않겠나? 영어도 I LOVE YOU는 나는 당신을 사랑하고 있다, 일본어도 아이시떼루도 지금 사랑을 하고 있다는 말이니까.” 생각해보니 맞는 말이었다. ‘사랑해’라는 말보다 ‘사랑하고 있어’라는 말이 사랑과 더 잘 어울리는 말이었다. 한국어로 ‘해’라는 말에는 ‘하고 있다’는 말의 줄임말 격으로도 사용된다는 말을 설명하자 이노우에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말 하나 때문에 사랑을 해야만 하는 것처럼 보여 지는군. 마치 부모가 어린 아이에게 강요하는 것처럼 말이야.” 어쩌면 이노우에의 말대로 은혜와의 관계는 무언가의 힘에 이끌리는 강요의 관계처럼 돼있었을까. 그간 잠잠히 스쳐지나간 마음 속 메아리들이 귓가에 하나둘 울리기 시작했다. 사랑은 행복이라 배웠으니 행복하지 않아도 행복한 척이라도 해야 하는. 사랑과 결혼의 비극을 선명히 보았기에 그 결말을 누구보다도 알고 있었지만 우리는 특별해서 반드시 행복할 거라는. 하나같이 정확한 이유 없이 우리의 사랑은 꼭 그럴거라는, 꼭 그래야만 한다는 말들. 그렇게 현실에서 혼자 비틀거리니 은혜는 주저없이 떠났을 것이다. 도망친 것은 은혜였을까. 나였을까. 이노우에와의 마지막 만남은 그의 집에 네 번째 방문했을 때였다. 세 번째 방문에는 그와 이런저런 수다를 떨다보니 3시간씩이나 흘러 뻔뻔하게 저녁식사까지 신세를 지고 말았다. 그래서 수금을 위한 네 번째 방문 때는 간단히 김밥과 제육볶음을 준비해 지난 저녁신세를 갚을 심산이었다. “곧 여행을 떠날 생각이야. 아주 오랫동안. 더 이상 여기에 있기 좀 힘들거든.” 돌이켜보면 이별은 항상 갑작스러웠다. 그 말을 듣자마자 나는 그와의 만남이 이제 없을 거라는 확신을 했고 이럴 줄 알았으면 그가 먹어보고 싶다는 잡채를 좀 만들어 올 걸 하는 아쉬움이 내 미간에 어렴풋이 묻어났다. 여기에 있기 힘들다는 말은 이미 거실 한쪽에 자리잡고 있던 그의 아내 사진들이 사라진 흔적들을 보며 짐작할 수 있었고 집안 곳곳도 짐정리를 마친 상태였다. “여행지는 정하셨어요?” “아직은. 한국을 가볼까? 내가 한국어를 좀 하잖아.” 유일한 일본인 친구와 그간에 생긴 정 때문인지 이별 소식을 듣고 나서는 그의 농담에도 웃음이 나오지 않았다. 아주 한 때, 감성적인 인간이라면 많은 감정들을 진심으로 흐느끼니 삶에 더 활력이 있을 것이라는 결론을 내기도 했지만 이때만큼은 살아 숨 쉬는 수많은 감정 속에 어두운 감정만 잘 느끼는 사람이라면 오히려 삶이 더 불행할 것이라는 것도 깨달았다. 결국 인간의 삶속에 행복과 불행은 같이 머무는 것이다. “네. 가셔서 한국인 애인이라도 만들어 보세요.” 이노우에는 인위적으로 느껴질 만큼 크게 웃음소리를 내며 내게 한 방 먹었다는 듯 엄지를 내밀었다. “좋은 생각이야. 죽음에 맞설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사랑이라는 말도 있으니까.” 나름 정성스레 싸온 음식들을 그와 같이 먹으며 고타츠의 온기가 잘 느껴지지 않을 무렵부터는 서서히 헤어질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는 내 신문사의 주소로 종종 편지를 하겠다고 말했지만 진심으로 믿지는 않았다. 그러면서 일본인이라도 된 듯 당신이 편지를 보내주면 정말로 반갑고 기쁠 것이라며 과장된 연기를 하고 말았다. 아마 그 어색한 연기는 이노우에도 눈치를 챘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되돌아가는 발걸음 속에도 마당 한 쪽에 이미 시들대로 시들어버린 수국만 덩그러니 눈에 들어왔다. 그 후로 일주일 쯤 지났을까. 이노우에의 집 우편함에 신문이 하나 둘 쌓이자 그가 말한 여행이 시작됐다는 걸 쉽게 알 수 있었다. 신문함에 신문이 세 개가 쌓이는 날이 되고선 문득 그가 죽어버린 건 아닌지 직업병이 섞인 걱정이 되기도 했다. 손길이 닿지 않은 듯 나란히 겹쳐있는 신문 3개의 모습은 나같은 사람들에겐 이미 상징적인 장면이 되어버렸으니까. 이노우에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면 안타까운 죽음이라 할 수 있을까. 이생에 남은 미련이 없으니 이만하면 됐다는 삶과의 안녕은 깔끔한 작별인사가 아닌가. 이노우에라면 죽음이 있기에 고귀한 삶이 완성된다는 의미를 이해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의 죽음과 여행, 어느 쪽을 더 응원해야 하는 걸까. 무엇이 되건 어차피 이별이었지만 어느 쪽이든 가슴에 사무친 은밀한 응원이 될 것이다. 조간 배달이 끝나고선 이노우에가 여행을 갔다는 사실을 말하러 사무실에 들어서니 매니저가 기다렸다는 듯이 택배가 왔다고 내게 알려주었다. 날 아는 사람이 없을 텐데 택배라니. 커다란 택배상자에 적혀있는 보낸 이를 살펴보니 이노우에였다. 곧장 그 무거운 택배상자를 낑낑거리며 숙소로 가져와 열어보니 손바닥만한 편지와 그의 집에 있던 고타츠가 담겨있었다. ‘미안하네. 김 군. 오늘은 고타츠를 미리 데워놓지 못했어.’ 마지막까지 이노우에다운 농담이 담긴 편지를 읽고선 편지를 덮으려 하자 편지지 끝자락에 한글로 쓰여져 있던 문구를 미처 보지 못할 뻔했다. 이제는 한결 깔끔해진 글씨들. ‘그동안 고마웠습니다. 안녕’
빛을 본 적 없는 이들의 텅 빈 거리는, 마른 종이 같다 해질녘 길에서 엎드린 사람은 하얀 얼굴로 꿈을 꾼다지 바람이 숨죽여 우는 것처럼 엎질러진 노을의 흔한 표정도 없이 저녁도 하얗게 지는 거라지 빛의 소란을 평정하는 백색의 밤 통증으로 휘어진 길목마다 몽롱한 회색빛 언어가 따라왔다 불면은 몸의 바깥이어서 색을 찾아가는 혈류에 잠기면 먹구름도 무지개를 그릴 텐데, 뜨겁게 타오른 바람이 굴절되고 있다 한 떼의 컬러가 증발할 때마다 멘델이 나누는 우열의 방식은 멜라닌 색소로 흘러드는 새하얀 비명들 그늘로 가는 누군가를 보면 투명한 홍채로 걸어간 순례처럼 바짝 끌어당긴 어둠을 안고 있다 붉어지는 방향으로 몸을 트는 동안 진짜 꿈을 꾸고 싶은 사람들 작은 온기에도 날마다 타고 있다 * 유색 동물에서 날 때부터 피부나 머리카락, 눈 따위의 멜라닌 색소가 없거나 모자라는 것
새 살처럼 연한 쑥을 쓰다듬는다. 여름이 되면 수수깡처럼 속이 비어버리는 터라 봄이 다 지나기 전에 살찐 쑥 우듬지를 뚝뚝 잘라 저장해 두었는데, 추석을 며칠 앞두고 산적을 할 요량으로 양하밭을 더듬다가 뜻밖에 우북한 쑥 무더기를 보았다. 사위어가는 불땀처럼 흔적을 지우고 재만 남았던 자리여서 더욱이 놀랐다. 장례를 치르고 어머니 옷을 태웠다. 요양병원에서 하루 날을 잡고 나와 당신 살림을 미리 정리했던 터라 유품이랄 것도 없었다. 병원 생활에 꼭 필요할 물건만 챙겼으니 옷가지 몇과 전화기가 전부였다. 잘 마른 쑥을 불쏘시개 삼아 작은 보따리를 던졌다. 그 안에는 입어보지도 못한 외투도 있었다. 물색이 너무 곱다고 저어했지만 상점주인과 내가 우측 좌측 밀어붙여 장만한 옷이었다. 영 내키지 않으면 나중에라도 바꾸자고 했을 터인데 날 따뜻해지면 나들이옷을 하겠다고 두었다. 기껏 딸 집에 한 번씩 다녀가는 어머니다. 시골살이하는 내 집 뜰에서 새싹 보는 것을 좋아했다. 잡초 사이에서 올라오는 머위나물이며 쑥을 한주먹 뜯어 와서는 먹기도 아깝게 이쁘다며 웃었다. 꽃 밴 수선화를 보고도 그랬다. 어디에 있다가 작년 모습 그대로 얼굴을 내미는지 신기해했는데 환절기 때면 한 차례씩 앓았던 당신에겐 어린 싹들이 더없이 대견했을 것이다. 그마저 오래 보지 못했다. 다음 해에는 입원을 하고 말았다. 병실에 있는 동안 꽃철은 두 번이나 지나갔지만, 외투는 나들이 한 번 못 해보고 결국 불더미 속에서 사그라졌다. 전화기만 가져와 서랍에 넣어 두었다. 이제는 소리도 없는 껍데기지만 어머니의 전화기는 내게도 특별한 물건이다. 아파트에서 혼자 사셨는데 가까이 지내던 내가 수시로 전화를 하며 시시콜콜한 얘기를 주고받았다. 때로 받지 않을 때가 있었다. 외출했을 것을 가정해 어림한 시간까지 기다리다 끝내 연락이 되지 않을 때는 쭈뼛쭈뼛 머리카락이 섰다. 번번이 전화선이 빠져 있거나 전화기가 잘못 놓여 있었다. 이렇게 한번씩 소동이 나는 것을 친가나 외가도 알게 돼 외갓집에 가시면 외삼촌이, 큰집에 가면 사촌 오빠가 어머니 잘 도착했다고 전화를 줬다. 하지만 시장이나 병원같이 예고 없는 출타가 문제였다. 협박도 하고 사정도 해가며 어머니의 목에 걸리게 된 전화기였다. 병원에서도 침대 난간에 걸어두고 자식들의 전화를 받았는데 딸네 뜰을 생각하는지 쌉싸름한 머위나물이며 연한 파나물, 된장 풀어 끓인 쑥국 이야기를 자주 했다. 어머니 가시고 흑백사진처럼 어두운 나날이 갔다. 당신과 연락이 안 되면 사색이 되어 뛰어다니던 나를 아시면서. 잘 도착했노라고, 여긴 날마다 봄날이고, 지천에 나물과 꽃이 가득하다고 전화 한 번 주면 안 되는 것인지. 겨우 연락이 닿은 어머니를 붙들고 어린아이처럼 울던 나를 떠올리며 가슴이 먹먹해지는 것은 나뿐인 건지. 얼마나 먼 길이길래 아직도 도착을 못 한 걸까. 한살이 마친 꽃자리처럼 어머니 떠난 자리가 허전해질 때면 무시로 전화기를 뒤적였다. 전화기 속에서 친구들은 손주 자랑으로 앞다툰다. 나 역시 꼬물거리는 손짓, 발짓이 귀여워 내 손주도 아닌데 몇 번이고 사진과 동영상을 돌려본다. 이집 저집 카톡 사진들을 훑는데 이게 웬일인가. ‘엄니 핸드폰’이 카톡에 떴다. 어머니가 쓸 때는 기능이 단순한 폴더폰이어서 카톡을 사용할 수 없었다. 가슴이 뛰었다. 액정을 뒤로 밀었다. 분명 어머니 번호가 맞았고 반갑기보다 무서웠다. 시아버지 초상을 치른 후 ‘아버님’ 이란 번호로 전화가 와서 놀란 적이 있다. 남편 명의로 해 드렸던 전화기를 받아와 다시 사용하면서 생긴 일이었다. 그때 망자들의 세상도 어디에 있을 것만 같다는 생각을 했다. 이 세상 좋아졌으니 저세상에도 변화가 있어 전화기 하나씩은 손에 들려있을지도 모른다는 맹랑한 상상을 했었다. 조심스럽게 화면을 늘렸다. 가슴이 쿵쾅거렸다. 앳된 여자의 진달래 빛 상의가 환했다. 손가락 사이로 눈, 코, 입이 선명해졌다. 피부가 희고 잇속 보이는 웃음이 언뜻 우리 자매들을 닮은 것 같기도 했다. 전화번호를 반납했으니 새 주인을 만난 것이 당연했다. 번호 잃은 어머니의 전화기는 멍텅구리가 되어 서랍 속에서 잠자고 있음을 잘 알면서도 ‘엄니 핸드폰’ 속 그녀를 자주 훔쳐보았다. 대강의 일상을 읽으며 취향이나 성격까지 마음대로 가늠했다. 여행지에서의 거침없는 웃음이 화면 안에서 쏟아질 때는 나도 덩달아 입이 벙그러졌다. 요즘은 연애를 하는 모양이었다. 남자는 까무잡잡하고 이목구비가 반듯해 어디서 본 듯 낯설지 않았다. 어머니 가시고 우리 형제는 한동안 대화가 없었다. 혼자 보기 아까워 잠잠한 형제들의 단체 톡 방에 그간 이야기들을 나열했다. 아버지처럼 안경을 꼈다는 얘기도 했지만 모두 아무 말이 없었다. 노을을 바라보듯 어머니를 보내고 제각기 가슴에 검게 타 들어간 구석을 어쩌지 못하고 있었다. 박완서 작가의 <움딸>이란 소설을 읽은 적이 있다. 시집간 딸이 죽고 사위가 새 장가를 가서 맞은 부인을 전처의 친정에서는 움딸이라고 부른단다. 불탄 쑥밭에서 새로 돋은 가을 쑥을 움쑥이라고 부르는 이치와 같았다. 딸을 잃은 친정어머니와 전처의 흔적을 보아야 하는 새 부인이 서로 편한 관계일 리 없다. 소설 속에서 새 부인은 절대 움이 틀 수 없는 불모지에 있다. 하지만 아이의 외할머니 마음에 딸 같은 정이 움트는 것을 누가 말릴 수 있겠는가. 터무니없는 일이지만 가슴에 오래 남았었다. 뜬금없이 동생한테 문자가 왔다. “어머니 번호 쓰는 사람 행복한가 봐, 보기 좋네.” 풀숲을 헤매던 손이 움쑥을 쓰다듬으며 평온을 만났듯이 요즘도 한 번씩 전화기에 새 소식이 움트면 형제들과 대화를 엮는다. 서로의 불탄 마음 언덕을 어루만지며 보듬는다. 이렇게 어머니는 조금 더 우리를 돌보다 갈 모양이다. 열여덟 살에 시집을 왔다고 했다. 목화를 따다가 들녘 사람이 된 어머니는 솜털보다 순한 사람이었다. 쑥 향이 코 끝에 맴돌다 바람을 타고 흩어진다. 바람 닿는 그곳에도 쑥이 돋았는지 전화 걸고 싶다. 우리 형제들의 웃음이 만발한지 물어보고 싶다.
이제는 감격에 겨워 눈물을 흘린다는 말이 어떤 느낌인지 알 게 되었습니다. 수상 소식을 듣자마자 나오지 않는 목소리를 겨우 부여잡고 장난전화가 아니냐는 말만 되풀이 하고 말았네요. 같이 있던 아내가 손을 잡아준 덕분에 벌벌 떨리던 손도 겨우 진정할 수 있었습니다. 제게 올해의 사계절은 따듯한 계절 없이 전부 시린 계절이었습니다. 봄에는 대상포진에 걸려 입원을 했고 여름에는 수술했던 허리디스크가 또 말썽을 부려 입원, 가을에는 목디스크 수술 진단에 겨울에는 식중독으로 응급실까지. 그래서 그런지 수상소식을 아내에게 전하자마자 조용히 속삭이더군요. 그래서 그렇게 아팠나보다라고. 그래도 조금씩 썼습니다. 컴퓨터가 없으면 휴대폰으로 썼고 허리와 목이 아프면 누워서 썼고 바쁘면 새벽에 일어나 썼습니다. 이렇게 10년 동안 써보니 제게 습작행위란 마치 영혼의 벗인 느낌인 들어 여전히 타자기에 손을 올릴 때면 설레는 감정들 먼저 달래줘야 합니다. 돌이켜보면 부모님께 감사하다는 말을 많이 못했습니다. 시인으로 저명한 이병기 선생의 호를 따라 이름을 지어주신 아버지, 멋모르고 쓴 제 첫 소설의 제목까지 정해주신 어머니에게 감사함을 전하고 싶고 이 모든 게 사랑이었다는 걸 다시 느끼고 있습니다. 그리고 10년은 묵묵히 써보라는 아내의 조언이 없었다면 지금쯤 글과 어색한 사이가 돼있었을 겁니다. 결혼 후 행복만 전해주는 예쁜 아내에게도 감사를 전합니다. 마지막으로 ‘조금씩’의 견고한 힘을 다시 되새겨준 전북일보사에도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이 상에 담긴 책임감을 갖고서 좋은 글로 다시 보답하도록 하겠습니다. △신가람 씨는 전남대 철학과와 서강대 언론대학원을 졸업했다. 중도일보에서 지난 2021년까지 기자로 일했으며, 현재 다양한 문단 활동을 하고 있다.
돌아보면 어디서부터 걸었는지 모를 길을 걸었습니다. 열심히 걸어가면 뭐라도 있겠지 싶은 마음이었죠. 늦은 나이에 문창과에 들어가면서 바닥부터 다시 걸었습니다. 남들이 노후 자금을 생각할 때 시 한 줄 떠올리는 스스로가 못내 안타까웠지만, 그래도 좋았습니다. 역시나 타고난 천성은 버리지 못하는가 봅니다. ‘푸른 하늘’이라는 시제로 시를 쓰던, 이제는 까마득한 유년의 어느 날이 이제야 그 길을 찾은 듯합니다. 이 시를 구상하던 날은 그랬습니다. 무더웠던 여름날 산 중턱의 저수지였어요. 해지는 모습을 보면서 볼까지 붉었는데 마음은 왜 그렇게 춥던지요. 크리스마스이브에 마침내 제가 사는 이곳에도 첫눈이 내리던 날, 다시 저수지를 찾았습니다. 볼에 닿는 산바람에 가슴이 기우뚱하는데 당선 전화를 받았습니다. 제가 그토록 가고 싶은 길, 그 길이었습니다. 친구와 지인을 비롯해 감사한 분들이 많습니다. 그중에서도 「신춘문예공모나라」 문학 카페는 제가 수시로 드나드는 집과 같아서 그곳에서 편안했습니다. 더불어 오봉옥 교수(시인)님께서 바닥의 걸음마를 제대로 가르쳐주지 않았다면 지금의 저는 없었을 겁니다. 축구에 진심인 교수님과 저는 통화를 할 때면 손흥민의 얘기로 한참을 떠들지만, 말하지 않아도 우리는 같은 길 위에 섰음을 압니다. 이 마음을 전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신 심사위원님들과 전북일보사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여름날의 저수지에 내려앉은 그 노을도요. △경남 진해 출생인 최형만 씨는 서울디지털대학교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했다. 문단에서 다양한 활동을 이어오며 제8회 원주생명문학상, 제14회 중봉조헌문학상, 제13회 천강문학상을 받았다.
기별은 없고, 어머니 영가를 모신 선운사로 향했습니다. 도솔암까지 가는 길엔 눈발이 날렸고 참 멀다고 생각하는 동안 짧은 겨울 해가 걱정이 됐습니다. 지나는 경내 차량이 태워준다고 했지만 못 본척했습니다. 어머니에게 씩씩한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었습니다. 마지막 오르막길을 오르면서도 동생들에게 보였던 늠름함을 잃지 않았는데 빼꼼히 열려있는 법당 문을 보는 순간 눈물이 솟구쳤습니다. 바로 들어갈 수가 없어, 마당 너머 보살들이 머무는 마루 끝에 앉아 오른손 왼손을 번갈아가며 뜨거운 것을 닦아냈습니다. 온갖 무장들이 흘러내렸습니다. 절간에서도 나부끼는 성탄 축하 현수막은 어머니의 답장 같았습니다. 아쉬운 소리 못하는 우리 어머니, 하늘에 닿을만한 기도는 얼마큼일지. 이제 정말로 씩씩하게 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롱이 다롱이, 놓기 아까운 글들을 내려놓고 제 글을 택해주신 심사위원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친정같은 정읍수필 문학회 문우님들께도 감사드립니다. 글 쓰는 것이 사치 같았던 환경에서도 늘 지지해 주는 내 가족, 사랑합니다. 무슨 인연일까? 내게 와 주신 최윤정 선생님 하늘만큼 감사하고, 아직도 어머니의 기도를 필요로 하지만 내게 글 동냥 시켜가며 빠져나간 영혼을 붙잡아준 동생에게 그동안 전하지 못한 말 전합니다. 고맙다. △방송통신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한 김서연 작가는 현재 정읍수필문학회 회원으로 다양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글쓰기는 즐겁고, 책을 읽는 일이 행복한 세상이 언젠가는 도래하리라는 터무니없는 믿음! 어쩌면 그런 게 이 세상 모든 글쟁이들의 마음속 깊은 곳에 도사리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며, 이번 전북일보 신춘문에 응모한 소설들을 살펴보았다. 그런 믿음이 아니라면 글쓰기의 과정 속에 통과해야 하는 고통스러운 모색과 끝도 없이 무한반복되는 되새김의 시간을 어떻게 견디겠는가. 어떨 때는 풍자나 은유, 어떨 때는 깊은 침잠을 통해 길어 올린 잠언적 성찰... 작가들은 제각각 고통과 희망 사이의 팽팽한 긴장을 견뎌내며 자신만의 글쓰기 방식을 구축해 나간다. 이번 심사에서 가장 주목한 것은 응모자들이 자신이 펼쳐놓은 작품 세계 속에서 충돌하는 긴장과 갈등을 어떻게 관리하는가, 그리고 그 과정을 통과해 도달한 지점에는 어떤 미감이나 어떤 메시지가 존재하는가였다. 150여 편의 응모작 가운데 최종적으로 3편의 작품을 검토했다. 먼저, “초상화와 사진관”은 검정 색조를 적절히 상징처럼 사용하며 시의성 있는 소재를 다뤘으나, 플롯의 흐름을 문장이 뒷받침하지 못했다는 점이 아쉬웠다. 문장은 뜻을 담는 그릇이다. 조금 더 넉넉하게 키우길 바란다. “박쥐와 거미”는 무척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박진감 있게 끌고 간 것이 눈길을 끌었다. 하지만, 결말부로 갈수록 앞에서 제시된 호기심을 제대로 충족시켜주지 못했다. 글쓰기란 어쩌면 자문자답하는 것이지만, 그 과정에서 독자의 동감을 설득하는 과정을 동반해야 한다는 점을 염두에 두기 바란다. 우리 심사위원은 한 마음으로 “미지의 여행”을 당선작으로 결정했다. 이 작품은 그간의 소설작법에 비추어 보면 출발점이 불친절한 편이며 듬성듬성 무언가를 빠트리고 있는게 보여 처음엔 아슬아슬했다. 하지만, 이게 작가의 의도라는 것을 깨닫는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 그 빈틈이 메워지면서 작품의 골조가 세워지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도, 읽는 즐거움을 안겨줬다. 그리고, 이 작품의 말미에 이르면 이 작가가 도달한 어떤 깨달음이나 발견이 우리들에게 깊은 울림을 안겨줬다. 신문을 배달하다가 수금을 하며 사람을 만나고, 만남을 통해 세상을 보는 새로운 눈을 얻는 과정이 잔잔하게 그려진다. 그 과정을 따라가다 보면 독자 또한 차츰 깨닫는 게 있다. 우리가 얼마나 많이 관습적 사고를 하는지, 이야기의 영역은 새로운 사고와 도전에 의해 얼마든지 넓혀질 수 있다는 것을! 미덥고 기쁘다. 축하보다 정진을 당부한다. 이제 정말 더 길고 긴 문학의 미로 속으로 걸어가야 한다. 길을 찾으려는 열망이 끝내 길을 찾게 해준다. / 심사위원 송하춘 소설가, 김병용 소설가
본심에서 숙독한 작품은 11명의 작품 35편이었다. 치열했던 예심을 통과한 만큼 응모작들은 일정한 수준에 도달해 있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요즘 유행하는 시의 어법과 형식을 무리하게 끌어쓰는 경향이 강했다. 자기 시를 쓰지 못하고 검증된 시 쓰기에 편승하려는 모습은 우려스러웠다. 그런 시는 화자가 시의 언어에 끌려다니다가 결국에는 지지부진해질 수밖에 없다. 얼마쯤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용기 있게 자기 시를 쓰려는 작품을 앞자리에 놓았다. 그중에서 눈여겨본 작품은 「새점 봅니다」 외 4편, 「주말 극장」 외 2편, 「알비노」 외 2편이었다. 「새점 봅니다」는 무심한 듯 툭툭 던지는 시어들이 적재적소에 적중하고 있었다. 차분한 어조 속에 쉽게 휘어지지 않을 이미지의 뼈대를 감춰놓는 수법도 믿을 만했다. 그러나 일상의 순간을 스케치하듯 가볍게 그려나가는 수준에서 더 나아가지 못했다. 무심한 어법이 조금 더 팽팽하게 긴장했으면 좋겠다. 「주말 극장」은 화자가 시의 서사를 완벽하게 장악하고 있었다. 시상 전개가 활달하고, 언어의 내적 활력이 시 읽는 즐거움을 주었다. 함께 투고한 작품들도 소홀히 읽을 수 없을 만큼 완성도가 높았다. 그러나 참신하거나 새로운 인지적 각성을 주지 못했다. 기성 시인의 시적 유전자가 너무 많이 발현된 건 아닌지 고민해보기를 바란다. 「알비노」는 시적 긴장이 팽팽한 작품이었다. 시어들이 종횡으로 충돌하는 힘이 좋았다. 언어를 운용하는 폭이 넓고, 그 넓이가 시적 사유로 가득 채워지고 있었다. 기성의 시 문법과 의도적으로 거리를 두려는 것 같아서 좋았다. 내적 서사가 좀 더 긴밀했으면 좋았겠다는 아쉬움이 남지만, 앞으로 충분히 극복해나갈 것이라는 믿음을 주었다. 논의 끝에 「알비노」를 당선작으로 뽑았다. 시인으로 첫걸음을 떼는 투고자의 시적 근거가 되기에 충분하다고 판단했다. 새로운 시인의 탄생을 축하하며, 전북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자의 무게를 견디는 시인이 되기를 바란다. / 심사위원 김용택 시인, 문신 우석대 교수
좋은 동화는 누가 읽어도 ‘좋다’라는 생각이 드는 작품일 것이다. 이런 동화는 발상이 재미있거나 울림이 있고 이야기 구성의 완결성이 높은 작품이다. 본심에 오른 작품은 제목과 관점이 새로웠다. 하지만 이야기를 밀고 가는 힘이 아쉬웠다. 문제 해결 방식도 아이 스스로 노력하고 맞서기보다 등장시킨 대상물에 의존하도록 구현되었다. 판타지를 구현할 때 동화라고 해서 아무런 장치도 없이 마법이 일어나고 그냥 사라져 버리는 건 곤란하다. 이번 본심은 이런 관점에 중심을 두고 심사에 임했다. 최종심에 오른 작품은 <거짓말 가방>과 <우주보안관이 된 우리 엄마>이였다. <거짓말 가방>은 발상이 새롭고 요즘 아이들에게 심각한 ‘거짓말’을 소재를 다루어 눈길을 끌었다. 그러나 판타지 설정에 있어 엄마가 샀던 하얀 에코백이 거짓말을 담는 가방으로 변하는 전개가 결정적으로 설득력을 주지 못했다. <우주 보완관이 된 우리 엄마>는 어린 수아를 두고 죽음을 맞이해야하는 아픈 엄마와 딸의 이별 과정을 담담하게 구현한 동화다. 부모와 자식 간의 이별은 그 어떤 슬픔보다 아프고 괴로운 일이다. 어린 아이일수록 엄마의 죽음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엄마는 어린 딸에게 달나라에 외계인이 숨어 있어 그 외계인과 싸울 수 있는 지구인으로 엄마가 선택되었다고 한다. 엄마를 따라가겠다는 딸에게 한 번 달나라에 가면 오래 걸리니까 안 된다며 대신 망원경으로 항상 지구를 내려다보겠다는 발상자체가 새롭다. 절제된 이야기 전개로 울림을 주는 이 작품은 뜻하지 않게 부모와 이별한 어린 친구들에게 위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깔끔한 문장도 이 작품의 지닌 미덕으로 꼽을 수 있다. 다만 어른 시각의 상황 전개가 조금 아쉬웠다. 동화 한편을 완성시키는 일이 만만하지 않다는 것을 잘 안다. 앞으로 더 정진해서 크게 발전하리라 믿는다. /심사위원 김자연 아동문학가
수필은 본디 1인칭 문학의 정수, 작자 자신을 작품에 내어 놓음으로 삶의 본질과 인생의 다양한 형상을 제시한다. 그 방법이나 진솔함이 소설과는 빗겨서 있는 장르임을 감안할 때, 수필이 가진 직접적인 감동과 울림은 더욱 크게 다가온다. 본심에 올라온 이십여 편의 작품을 꼼꼼히 읽었다. 작품마다 아름다운 문장과 오랫동안 갈고 닦은 글쓰기 솜씨에 탄복하여 쉽사리 당선작을 가리지 못했다. 대부분 수사 가득한 문장이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모두 화려한 옷을 입고 있으니 글의 본질에 닿는 것도 쉽지 않았다. 지나친 수사와 묘사, 문장에 대한 유려함이 오히려 수필이 가진 장르적 덕목을 가리는 듯했다. 작자의 글쓰기 솜씨는 훌륭했으나 생명력 넘치는 작품은 드물었다. 2024년 전북일보 신춘문예 수필부문 당선작으로 「움쑥」을 선정했다. 지나친 감정 과잉과 지나친 수사가 넘쳐나던 와중, 「움쑥」은 읽는데 가장 편안하고, 잔잔한 감동을 남긴 작품이었다. 무엇보다 진심 가득한 글이었다. 어머니를 잃고 장례를 치르는 과정과 남은 유품을 정리는 작자의 심정이 진솔하게 느껴졌다. 문장은 담백하고 안정적이며 절제되어 있어 읽는 이로 하여금 내적 울림이 크게 남은 작품이었다. 어머니의 전화번호를 누군가 새로 쓰게 되면서 겪는 복합적인 감정의 서술은 이 작품의 가장 아름다운 대목이었다. 시절이 흉흉하여 시나 소설이, 산문이 타인의 마음을 움직이기 힘든 때임에도 좋은 작품을 만나 심사가 행복했음을 고백한다. 당선자에게 축하를 보낸다. 부디, 많은 사람들의 얼어붙은 마음을 여는 작품 많이 쓰시길 고대한다. / 심사위원 백가흠 소설가
한국영화인총연합회 전북도지회 선거관리위원회는 나아리 회장이 단일 후보로 연임이 확정됐다고 1일 밝혔다. 나 회장은 “처음 목표 그대로 협회 발전을 위해 임원, 회원들과 정진할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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