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사 도장은 책임 무게 사람을 향한 안전의 가치
최근 아는 인테리어 시공자로부터 아파트 발코니 확장 행위허가 신청을 의뢰받은 적이 있다. 공동주택관리법에 따른 발코니 확장, 비내력벽 철거 등은 행위허가 대상이다. 2006년 1월부터 발코니 확장이 합법화되었지만, 합법화된 것은 ‘확장 자체’이지 ‘허가 없는 확장’이 아니다.
며칠 후 시공자로부터 전국 프랜차이즈 같은 업체에 행위허가 신청을 맡겼다는 답이 왔다. 무슨 얘기인가 싶어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행위허가 전문 업체들이 ‘전국 어디서든 가능’이라는 문구를 내걸고 있었다. 행위허가, 방화판, 유리, 입주민동의서, 승강기 보양 등이 하나의 상품처럼 묶여 있었고, 엄연한 법적 절차인 ‘행위허가·신고’가 마치 인터넷 쇼핑몰의 최저가 검색 대상이 된 듯했다.
그러면서 붙인 한마디는 “건축사님은 너무 비싸다”였다.
전국 단위로 박리다매를 내세우는 업체들의 가격에 맞춰, 지방에서 묵묵히 현장을 지키는 우리에게 “왜 이렇게 비싸냐”는 원성이 돌아올 때면 건축사로서 쌓아온 자긍심에 깊은 상처가 된다. 더 참담한 것은 현장의 풍경이다. 구조 안전을 검토하고 도면을 그려 적법성을 증명하는 전문 업무가, 시공사 하청업체의 ‘엘리베이터 보양비’와 한데 묶여 견적서의 한 줄로 전락하고 있다. 승강기 바닥을 덮는 합판 조각의 단가와, 건물의 구조 안전을 검토하고 법적 책임을 지는 건축사의 기술료가 동일 선상에서 합산되는 현실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몇 년 전 건설업체의 설계 겸업 허용 건의에 건축계가 시끄러웠던 적이 있다. 그러나 어쩌면 우리는 알게 모르게 외면해온 부분에서 이미 건설사의 하청업체가 되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건축사는 ‘대행업자’가 아니다. 우리는 공간의 질서를 바로잡고, 불법과 위법 사이에서 안전의 경계선을 긋는 전문가다. 건축사의 도장은 단순한 행정 절차가 아니라 책임의 무게이며, 결코 서비스 품목이 아니다.
공공발주사업에는 설계 및 감리대가 기준이 있고, 민간사업에도 업무대가기준이 있다. 하지만 현장에는 ‘1식’으로 표현되는 대가가 명확하지 않은 업무들이 있다. 행위허가·신고 업무가 그렇다. 협회 차원에서 이러한 업무에 대한 표준 업무대가를 마련하고, 지나치게 낮은 단가로 시장을 교란하지 않도록 자정과 홍보, 지속적인 모니터링을 해나가야 한다.
비록 시장의 물결이 박리다매와 편의주의로 흘러갈지라도, 건축사라는 이름 뒤에 숨겨진 자부심만은 결코 헐값에 넘기지 않기를 소망한다. 우리가 긋는 선 하나, 우리가 찍는 도장 한 번에 담긴 ‘사람을 향한 안전’이라는 가치는 그 어떤 최저가 견적서로도 살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