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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대 'SSK 개인기록연구실' 〈압축근대와 농촌사회〉개인기록 통해 본 '압축성장'의 현대사

20세기 중반 이후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여러 나라들은 매우 큰 폭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하였다. 동아시아의 이처럼 유례없는 ‘압축 성장’은 당연히 세계적으로 학술적, 정책적 관심의 대상이 되어, 그 원인에 대한 많은 연구가 이루어졌다. 그간의 연구 성과를 아주 간단하게 요약하면, ‘압축 성장’의 핵심 동력은 국가에 있다. 즉 서구사회와 달리 이미 강력하게 구축되어 있었던 국가의 관료기구, 대중과 시장을 설득하고 동원할 수 있었던 국가의 능력, 국가 관료의 근대적 마인드 등이 동아시아의 빠른 성장을 가능하게 한 주요 요인이라는 것이다.

 

전북대학교 ‘SSK 개인기록연구실’ 연구팀이 주목하고 있는 연구의 주제는 동아시아의 압축 성장이 개인, 마을 공동체, 지역사회에서 드러나는 양상이다. 예를 들면 국가에 의해 계획된 근대화 정책이 구체적인 현장, 즉 지역사회, 마을, 그리고 마을 주민과 어떤 방식으로 만나게 되는가, 주민들은 근대화 정책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해석하는가, 그리고 지역사회의 단위에서 국가(정책)과 마을(주민)의 만남이 어떤 결과를 만들어내는가 하는 것이 우리 연구팀의 주요 관심이다.

 

이것은 동아시아의 경제성장에 대한 그 동안의 연구들과는 관점과 방법론에서 뚜렷한 차이를 지닌다. 주로 거시 지표를 중심으로 전체 사회의 성장과 변화를 추적하는 기존의 연구와 달리, 우리 연구팀은 거시 지표에서는 드러나지 않는 ‘작은 사람들’의 삶 속에서의 변화를 들여다본다. 그 자그마한 생활세계 속에서 비로소 지역사회와 마을 공동체 내에서 진행된 구체적인 근대 경험이 모습을 드러낼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연구팀이 주목한 자료는 ‘개인기록’, 특히 한 개인이 스스로의 생활을 기록한 일기이다. 일기는 한 개인이 자신의 경험과 생각들을 적어놓은 사적인 기록이다. 그러나 일기를 쓰는 개인의 경험과 생각들은 자신이 속한 사회문화적 환경 속에서 이루어지고 형성된다. 따라서 일기는 한 개인이 보고 듣고 느낀 바를 통해서 과거의 역사적 사건이나 사실들을, 당시의 시공간적 상황에서 가장 생생하게 복원할 수 있는 중요한 사회적 자원이다. 조금 개념적으로 정리하면 일기는 변화하는 사회와 문화 속에서 개인의 물질적, 사회문화적, 정신적 위치 정보를 담고 있기 때문에, 전체 사회 또는 민족국가 수준의 사회변동과 지역사회 및 공동체 수준의 변동 사이의 상호작용 과정을 개인의 경험을 통해 보여준다. 또한 일기는 하루하루의 일상을 시간 순서로 정리한 시계열 자료이다(어떤 공식자료도 하루 단위로 수십 년간의 역사를 기록하지는 않는다). 즉 일기는 총체적이고 역사적이며 현장적이고 구체적이다.

 

지난 3년간 우리는 임실군 신평면의 한 농민, 최내우(1923-1994)의 일기(〈창평일기〉)를 해독, 입력, 해제, 출판하면서 보냈다(전북대출판문화원, 이정덕 외) 〈창평일기〉는 1969년부터 1994년까지 약 26년 동안의 일상을 하루도 빠짐없이 기록한 놀라운 기록이었다. 일기 속에는 개인, 가족, 마을공동체 세계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근대화의 물결 속에서 그들이 경험하는 국가와 시장, 문명, 도시, 이념 등이 세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즉 일기 속의 세계는 개인과 마을이 접촉하고, 수용, 적응, 대응하는 근대, 즉 ‘해석된 근대’의 세계이다.

 

이 책은 연구팀이 3년 동안 현대 지역사의 자료창고인 일기 분석을 통해 얻어낸 결과를 묶은 첫 번째 성과물이다. 책은 크게 2부로 나뉘어 있다. 1부는 일기를 비롯한 개인기록에 접근하는 연구팀의 시각과 연구방법을 정리하였다. 그리고 2부에서는 〈창평일기〉의 내용을 통해서 한국사회의 압축근대와 지역사회 및 주민 생활의 변화를 분석한 글들을 모아 실었다.

 

이 책을 통해서 일기 속의 세계에서 발견되는 지역 현대사가 현대 한국사회의 성장과정과 어떻게 다른지, 또 어떻게 결합되어 있는지를 소소하게 발견해가는 즐거움이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국가의 제도와 법률 너머에서 마을사회만의 질서와 윤리가 작동하고 있음을 발견하고, 국가가 권장하는 농업 기계화, 신품종 및 새로운 농업기술에 직면한 농민들의 인식과 수용태도를 확인하는 것도 새롭다. 또한 국가의 거대한 개발정책이 마을주민을 어떻게 설득해서 추진해 가는지, 주민들은 또 이것을 어떻게 해석하고 대응하는지를 살펴볼 수도 있다.

 

서구의 한 역사학자에 의하면, 개인기록은 그동안 역사학과 사회과학에서 간과되었던 작은 사회변동이 보다 근본적인 변동을 이끌어내는 방식을 이해하는 데 유용한 자료이다. 이 말은 공식적인 역사에 자신들의 목소리를 담지 못했던 평범한 사람들의 삶이 전체사회의 큰 역사와 연결되어 있고, 결국 평범한 사람들에 의해 역사는 만들어지는 것이라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 책은 이러한 인식에 기초한 지역 현대사 분석의 한 매듭이면서, 향후 보다 다양한 자료들 간의 비교를 통해 시간적, 공간적으로 확장된 범위에서의 비교분석을 시작하기 위한 출발점이기도 하다.

△필자 이성호 씨는 전북대 SSK개인기록연구실 전임연구원으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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