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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영 동학혁명기념관장 '동학비사, 만고풍상 겪은 손'] 잘못 알려진 동학사상 재정리

2014년 동학농민혁명120주년을 맞아 1월부터 필자는 〈동학비사, 만고풍상 겪은 손〉를 집필하기 시작했다.책을 쓰게 된 동기는 크게 셋이다. 첫째는 1994년 동학농민혁명100주년 전후로 동학에 대한 다양한 경험을 하면서 잘못 알려지고 부족한 동학사상과 역사에 대한 집대성이었다. 둘째는 필자가 동학역사공부의 스승으로 모셨던 삼암 표영삼 선생의 저서 〈동학〉이 2권까지 출간되었으나 노환으로 환원함으로써 제일 중요한 3권이 미작으로 출간되지 않은 아쉬움에서다. 셋째는 많은 사람들이 동학 하면 전봉준 장군과 동학농민혁명을 떠올리는 것에 대한 그 근원이라 할 수 있는 동학창도주 수운 최제우 선생에 대한 자세한 조명을 하고 싶어서이다.그래서 작년부터 본격 집필을 시작했으나, 필자가 근무하는 전주 동학혁명기념관이 120주년을 맞아 전시관 및 낙후시설 정비공사에 몇 개월 걸렸고, 전국에서 연달이 개최되는 기념행사에 참석하는 등 집필에 몰두하기에 부담스러워 중단하였었다. 그러다가 올 5월쯤 신인간 출판사에서 전격 필자의 내용을 책으로 출간할 계획이니 집필을 완성하여 달라는 제안에서 다시 필을 잡았다.이번에 출간된 〈동학비사, 만고풍상 겪은 손〉은 전체 내용 중 상권에 해당된다. 상권의 내용은 수운 최제우 선생의 일대기와 동학에서 파생된 신흥종교, 그리고 동학농민혁명약사 순서로 구성했다. 내년 2016년에 출간 예정인 하권에는 동학2대교주 해월 최시형 선생과 전봉준장군을 중심으로 한 동학농민혁명에 대한 이야기를 중심으로 다룰 예정이다.상권을 집필하면서 가장 큰 고민은 동학의 어떤 내용을 중심에 둘까였다. 교중기록을 우선하다보면 한 교단의 교조라는 위상문제로 역사의 사실에 멀어질 수 있다. 관변기록을 우선하다보면 역사의 죄인이라는 초점에 맞춰져 역사의 진실이 왜곡 될 수 있다. 학계의 논문에 우선하다보면 학술적 차원에서의 대중성을 잃을 수 있다는 우려에서 역사의 공감에 거리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그래서 필자는 이러한 다양한 문헌을 종합적으로 검토했으며,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게 중심과 객관성에 우선하고 역사의 사실과 진실에 접근할 수 있도록 내용을 전개한 것이다. 또 학문적 위상도 손상되지 않도록 신경을 썼으며, 가능한 대중성에 초점을 맞춰 이야기를 전개하는 방법을 택하였다. 그런데 수많은 동학 관련 책들의 이야기들의 내용들이 겹치는 문제가 있었다. 그래서 비사(秘史)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한 것이다.사실 비사라고 하지만 잘 알려지지 않았을 뿐이고 관심들이 없었을 뿐이다. 그래서 비사(秘史)다. 어떤 의미에서는 동학(東學)그 자체가 잘 알려지지 않은 비사이다. 우리 역사에 관심이 있고 많이 알고 있다고 하는 분들도, 필자가 보기에는 동학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올해 8월 초 KBS에서 방영한 역사저널 그날에서 동학농민운동편이 화제가 되었다. 담당 아나운서가 해설자의 설명에 감정이 격해져 눈물을 흘리는 사태가 발생했다. 동학혁명이 발생한 원인 중에 하나가 조병갑의 가혹한 착취였다. 전라도 고부에서 전봉준 장군을 중심으로 동학농민군들이 혁명을 일으키자 조병갑은 도망갔다가 파직되어 섬으로 유배되지만 곧장 복직한다.1898년 6월 2일 해월 최시형 선생은 서울로 압송되어 교수형을 당한다. 그런데 사형선고를 내린 고등재판소 판사 중에 조병갑이 끼어있었다. 담당 아나운서는 조병갑이 파직되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막상 조병갑이 다시 복직하여 해월 선생에게 사형을 선고하는 판사가 되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던 것이다. 뒤틀리고 어이없는 우리 역사의 이면을 알게 된 것에 감정이 격해 진행자가 눈물까지 흘리는 일이 발생한 것이다.구한말 조선이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하는 과정에 동학농민혁명은 좌절하고 여전히 권력을 유지하며 해월선생에게 사형선고를 내리는 조병갑으로 대표되는 탐관오리들이 친일파로 연결되고, 지금도 대한민국의 기득권세력으로 군림하는 현실! 영화 암살이 성공적으로 흥행하는 것을 불편해 하는 사람들에게는 동학이나 친일파 문제는 알려져서는 안 될 역사이다. 우리 사회의 기득권을 쥐고 있는 세력들은 동학-일제-해방으로 연결되는 시대를 제대로 기억하려 하지 않는다. 우리 역사에서 근대와 현대사는 가능한 적게 언급하려 하고 일본과 관련된 것은 가능한 긍정적으로 해석하려 한다. 비사(秘史)가 있다면 이렇게 해서 생겼을 것이다.

  • 문학·출판
  • 기고
  • 2015.09.18 23:02

[양복규 명예교육학박사 '굴뚝속의 호롱불'] 시사로 본 동서고금 문화

<굴뚝속의 호롱불> 10권을 발간하기까지의 과정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지금으로부터 20여년 전의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야할 것 같다.전북일보사의 고(故) 서정상 전사장님께서 전라북도 중등사립학교 법인 이사장 협의회장을 맡고 계시는 것을 계기로 뵐 수 있는 기회가 많았었다. 어느 때인가 우연히 미스전북 선발대회의 이야기 도중에 미녀는 삼대, 삼소, 삼백, 삼흑(三大, 三小, 三白, 三黑) 등 12개 요건이 갖춰야 한다라고 하였던 바 서 사장님께서 온고지신(溫故知新)의 코너를 만들어줄 터이니 지정 칼럼을 쓰겠느냐고 말씀하실 때에 많이 당황하여 빨리 답변을 드리지 못했었다.그 후로 많이 생각하고 고민을 했는데 마침 이사장 회의가 개최되었다. 서 사장님께 온고지신에 대한 투고를 하겠다고 말씀 드리고 1주에 2~3회씩 연재를 하게 되었다. 글을 쓰는 과정에서 어려움도 많았다. 국문학이나 시와 같은 문학을 전공하지도 않은 필자로서는 동서 고전이나 당시의 이슈가 된 화제를 빗대어 조명해야 기에 더욱 어려웠다.언젠가는 양귀비의 화장품이라는 제하로 글을 썼는데 화장품회사에서 오늘의 화장품이 양귀비가 만들어 쓴 화장품만도 못한 것이냐며 항의 전화가 오기도 했었다. 매사는 상대가 있기에 그것을 고려하여 쓰기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이렇게 힘들게 썼던 글을 신문에 한번 게재하고 버리기에는 필자의 입장에서는 너무나 아까워서 다시 모아 두었다가 지난 1999년 9월에 <굴뚝속의 호롱불>이라는 책명으로 2권을 발간하여 서울세종홀과 전주 상공회의소에서 출판기념회도 했다. 책을 발간할 때에는 전북일보 서창훈 회장님께서 축사도 해주셨다.그 다음에는 전북일보의 요청으로 온고지신이 아닌 고금반경(古今反鏡)이라는 제호로 계속 연재하여 2004년에는 5권을 추가하여 모두 7권을 발간하여, 역시 서울과 전주에서 출판회를 했고 지난 2013년에 마지막으로 3권을 추가하여 10권으로 끝을 맺게 되었다.굴뚝속의 호롱불은 연결된 장편 소설이 아니라 원고지 6~7매로 된 단편의 글로서 시사의 화제를 주제로 하여 동서고금의 사례들을 붙여 비교했다. 이를테면 장묘문화(葬墓文化)에서는 우리나라의 토장, 화장, 수목장의 유래와 통계, 법령 등을 기록하고 중국 티벳의 수장, 북한의 평장이 있는가하면 머지 않는 날에 우주나 달에도 묘지가 생길 것이라는 것과 세계 각국의 장묘풍습과 유래에 대하여 첨가하였다. 몽골의 일부에서는 시신을 절구지에 놓고 빨리 달리면 시신이 산산조각으로 길바닥에 떨어져서 조수가 앞을 다투어 주워 먹고 있으며, 중국의 일부에서는 시신을 자루에 담아 나뭇가지에 걸어 놓으면 부식되어 흘러내리는 곳도 있으며, 케네디 전 미국대통령의 경우는 묘전에 불을 키어 놓았는데 이 불이 오늘날까지 한번도 꺼지지 않고 켜 있다.한 개를 더 소개하자면 우리 사회에서 청문회가 크게 시중의 화제가 되고 있을 때에 썼던 것으로 조선조에서는 국가의 전복을 모의한 자와 부모에게 불효한자 등 큰 죄인을 오늘의 청문회장이라 할 수 있는 신문청(訊問廳)으로 불러다가 죄인의 진술을 듣고 죄목을 지은 것과 유럽에서도 제2차 세계대전 전에 오스트리아에서 행정절차법이 제도화된 일이 있었고 전후에는 독일에서도 제도화 됐다. 미국의 청문회는 직능분리 심사관 등의 규정을 두고 있는데 직능분리조에서는 원칙적으로 청문은 국회의원이나 정치인이 아니라 법률전문가여야 하고, 신문관의 신분과 직무상의 독립성이 보장됨은 물론 수사와 구속권까지 있기 때문에 특별 검사제와 비슷화게 운영되고 있다.위에서 장묘문화와 청문회 등 2개의 예를 대강 들어서 설명했는데 그와 같은 방식으로 1342개의 글로 <굴뚝속의 호롱불> 10권이 편제돼었다.전문가들이 보기에는 부족한 점이 많이 있으리라 생각되지만 필자의 입장에서는 심혈을 경주한 책이다. 칼럼 중에서 건강에 관계된 상식과 음식 등은 별도로 가려서 <건강요람>이라는 책명으로 1권을 발간했다.특별히 원고를 바로 책으로 편제한 것이 아니라 신문지상에 게재하였기에 그 과정이 신경이 쓰일 수 밖에 없었다. 원고를 써 놓고 행여 오자는 없는지, 그리고 이 글로 인해 피해를 입는 사람은 없는지를 여러 번 살펴보게 되었다. 필자 나름대로는 최선을 다했지만 문자매체를 멀리하고 영상매체만 가까이 하고 있기에 독자는 생각과 같이 많지 않은 것 같다.그러나 개중에는 탐독한 독자가 있음에 만족하며, 좀더 연구하고 잘 쓰지못한 점에 자책하고 있다. 어느 독자는 고등학생의 논술시간에 <굴뚝속의 호롱불>을 읽혔던 바 동서고금의 역사를 이해하는데 크게 도움이 되었다고 말씀하신 분도 있었다.집을 지어 놓고 보면 아쉬움이 있듯이 글도 써 놓고 나면 아쉬움이 많이 남는 것은 어느 필자나 동감일 것이다.△저자인 양복규 씨는 한약업사로 시작해 지난 1980년 동암고, 1988년 전북장애인복지관, 1993년 동암재활초중고를 설립했다.지난 2009년 전북도민의장, 2010년 국민훈장 목련장, 2013년 전북사회복지 대상 등을 수상했다.

  • 문학·출판
  • 기고
  • 2015.05.15 23:02

신정일〈홀로 서서 길게 통곡하니〉사랑하는 이 잃은 조선 선비들 가슴 처절한 '통곡의 글' 44편

슬픔은 인간의 본성이다. 본성이 근원적으로 표출되거나 승화될 때, 그 슬픔이 아름다움으로 나타난다. 뿐만 아니라 그 슬픔이 개인은 물론 한 사회를 건강하게 만드는 견인차 역할을 한다. 목 놓아 울고 났을 때 후련함 또는 맑은 정신과 해방감을 느끼는 것은 그런 연유이다.그러한 슬픔이 시공을 뛰어넘어 누구에게나 머물러 있다. 현존하는 것뿐만이 아니라 역사 속의 수많은 인물들의 삶 속에도 기쁨보다는 슬픔이 더 많다. 슬픔이 현실이고, 삶이라는 증거일 것이다.사람은 가장 행복하다고 느끼는 바로 그 순간 슬픔을 동시에 느낀다. 공자의 말이다.슬픔이 단지 슬픔으로만 끝나는 경우도 있지만, 그 슬픔이 너무 아름답게 승화되는 경우도 있다.언제인지 분간할 수 없는 어린 시절, 슬픔은 운명의 문을 두드리듯 내 곁으로 깊숙이 스며들었고, 그때부터 지금까지 슬픔은 내 곁을 떠나지 않고 머물러 있다. 슬픔도 힘이 된다. 슬픔은 나의 힘이라는 역설적인 그 슬픔의 힘으로 이제껏 버티고 살아왔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슬픔은 왜 생기는가?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도 물론 슬픔이지만 가장 커다란 슬픔은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에서 비롯되는 슬픔일 것이다.예로부터 가족이 죽어 슬픔을 묘사하는 말에는 대부분 아픔을 의미하는 통(痛)이 붙는다. 아버지를 잃은 슬픔은 하늘이 무너지는 고통과 같다는 뜻의 천붕지통(天崩之痛), 남편을 여읜 아내의 아픔은 성(城)이 무너져 내리는 듯한 고통이라는 붕성지통(崩城之痛)이 그 예이다. 서하지통(西河之痛) 역시 아들 잃은 부모의 고통을 전할 때 쓰인다. 서하(西河)라는 지방에 살던 공자의 제자 자하(子夏)가 아들이 죽자 너무 상심하여 눈이 멀었다는 데서 유래한 말이다.흔히 자식을 잃은 부모의 슬픔은 창자가 끊어지는 아픔, 단장지애(斷腸之哀)라고 하니 그 통증은 짐작도 불가능하다. 소설가 박완서는 외아들을 갑자기 잃고 난 후 부모의 슬픔을 기록한 글 한마디만 하소서에서 그 고통을 참척(慘慽)이라고 표현했다. 참척의 사전적 의미는 자손이 부모나 조부모보다 먼저 죽는 일을 뜻하지만 너무나 처절하고 참담해 가늠조차 안 되는 슬픔을 나타날 때 쓰인다.다산은 유배지인 강진에서 네 살짜리 막내아들 농아(農兒)가 죽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피를 토하는 듯한 심정으로 한 장의 편지를 쓴다. 여기에는 아픈 자식에게 아무것도 해줄 수 없었던 아버지의 애절함과 비통함이 담겨 있다.사랑하는 자식을 죽음으로 잃어버리는 고통은 말로는 도저히 형용할 수 없다. 그 죽음이 예기치 않은 갑작스러운 죽음일 때는 더더욱 그렇다. 전혀 손쓸 수 없는 상황은 상실에 대한 슬픔을 배가시키기 때문이다.조선 사대부들의 가슴 미어지는 슬픔과 통곡의 글들을 읽으면서 나는 그윽하면서도 명료하지 못한 슬픔의 실체를 보았고, 그래서 한권의 책으로 묶어 내고자 했다. 하지만 그 과정 중에 이 땅에서 시도 때도 없이 일어나는 사건(세월호를 비롯한 큰 재난)을 통해 가슴 에이는 통곡이 그치지 않는 현장들을 보며 밀려오는 슬픔으로 흐르는 눈물을 금할 수가 없었다.선비들은 사랑하는 이들을 잃은 슬픔을 좀체 겉으로 드러내는 법이 없었다. 자식을 잃어도, 아내를 잃어도, 지기(知己)를 잃어도 슬픔을 애써 삭이며 마음속으로만 울어야 하는 절제를 미덕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슴속에 똬리를 튼 애통함을 어찌할까. 이에 지엄하고 체면을 중시했던 선비들이 아닌 따뜻한 마음을 지닌 아버지이자 한 인간으로 돌아가 자식과 아내, 가족, 벗의 죽음을 통곡했던 선비들의 글을 모았다.이 책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정도로 사랑했던 자식과 아내, 가족, 벗의 죽음 앞에 미어진 가슴을 부여잡고 소리 없이 통곡했던 조선 선비들의 절절하고 곡진한 문장 44편을 담았다.자신의 묘지명을 직접 써달라고 했던 딸의 부탁을 들어주지 못하다가 딸의 1주기에 맞춰 애끓는 심사를 적은 신대우의 제문,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여섯 살 딸아이의 죽음은 모두 자신의 잘못이라며 단장의 아픔을 가감 없이 드러낸 이하곤의 글, 아들의 얼굴과 목소리를 더 이상 볼 수도 들을 수도 없음에 눈물이 끝도 없이 흐른다며 아들의 죽음을 통곡했던 글 등을 포함해서다.이 한 권의 책을 통해 유학과 경전에 익숙한 지엄한 선비가 아닌 한 인간으로서 맨얼굴을 한 선비들의 감춰졌던 속마음과 마주할 수 있을 것이다.우리는 누군가의 죽음 앞에 이렇게 애통해하고 슬퍼할 수 있을까?△신정일 씨는 도보여행가이자 문화사학자다. 사단법인 우리땅걷기 이사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세상을 바로잡으려 한다> <새로 쓰는 택리지>(10권) 등 50여권의 저서가 있다.

  • 문학·출판
  • 기고
  • 2015.04.17 23:02

자연과 인간의 공존을 위해…

여행은 일상과 일탈의 경계선상에 있다. 일상에서 벗어나 낯선 곳으로 여행을 감행한다. 때로는 같이, 때로는 따로. 돌아올 수 있을 만큼 여행을 한다. 다시 올 곳이 있기에 여행은 아름답다. 그리고 나는 지금 뉴질랜드로 떠난다.뉴질랜드는 보고 싶은 욕망을 채우기에 충분한 곳이다. 뉴질랜드에 매력을 느끼는 것은 목가적인 풍경일 게다.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의 전원적인 삶을 꿈꾸는 사람에게 충분히 매력적이다. 이런 목가적인 삶을 가능케 한 배경은 자연환경이다. 산, 바다, 호수, 빙하, 계곡, 온대우림 등으로 이뤄진 자연환경은 우리의 시선을 잡아두기에 충분하다. 어릴 적 이발소에 걸려 있던 풍경사진의 모습이 곳곳에 넘쳐난다. 유럽인이 몰려와 산지를 개간해 농목지로 만들기는 했지만, 그래도 자연을 완전히 거스르지는 않고 있다.뉴질랜드의 자연은 참으로 보기에 좋다. 뉴질랜드 여행은 그 자연 속으로 들어갈 수 있게 해주고, 자연과 더불어 더디 사는 사람을 목격하게 해준다. 이 여행에서 뉴질랜드 남섬을 중심으로 자연과 조화를 이루고 사는 사람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때로는 훼손된 자연 생태를 복원하고자 노력하는 모습도 목격했다. <뉴질랜드 생태기행>은 우리가 앞으로 나아갈 좌표를 보여주고 있다.중국의 열하를 여행하면서 박지원이 하인에게 처음 보는 사물이 있으면 비록 잠자거나 먹을 때라도 반드시 고하라고 일렀듯이, 뉴질랜드 남섬의 남녘 지방을 두루 다니면서 부지런히 눈으로 보고, 사진으로 담고, 다시 글로 표현했다.이 여행은 EBS 세계 테마 기행 뉴질랜드 편의 촬영을 목적으로 시작했다. 뉴질랜드 남섬의 자연과 문화를 취재하고 여행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는 중에 남섬의 환경생태, 자연과의 조화, 그리고 우리의 미래 등을 눈여겨보고, 이들에 대해서 생각했다.책은 남섬의 관문인 크라이스트처치 공항에 도착하며 시작한다. 그 후 크라이스트처치부터 카이코우라, 쿡 산, 퀸스타운, 테 아나우, 밀퍼드 로드, 밀퍼드 사운드, 다웃플 사운드, 남섬의 끝인 스튜어트 섬까지 곳곳의 여정을 그대로 담았다. 다시 크라이스트처치 공항의 탑승 트랩에 몸을 실으며 끝마치는 이 책을 따라가다 보면, 뉴질랜드 생태 여행에 동행하는 듯한 느낌이 들 것이다. 이 책을 통해 영화 속 풍경이 눈앞에 펼쳐지는 곳, 뉴질랜드의 생태를 간접 체험해 보면 당장이라도 떠나고픈 욕망이 솟구칠 것이다.여행은 낯선 곳에서 생각의 깊이를 더해 주는 매력이 있다. 카잔차키스는 <스페인 기행>에서 이 세상을 돌아다닌다는 것, 그것은 새로운 땅과 바다들, 새로운 사람들과 사상들을 보는 것이고, 여행을 기록하는 것은 오만한 자아를 인간이라는 고통 받는 편력 군대 속으로 던져 담금질하여 부드럽게 만드는 것이다고 했다. 뉴질랜드 남섬을 여행하면서 환상적인 자연경관을 보았다. 또 자연 속에서 인간의 오만한 자아를 생각해 보았다. 그곳에서의 관찰과 느낌을 이 책에 담아 기록으로 남기고 싶었고, 글로 옮기며 나를 부드럽게 하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자연 밖에서 자연이 주는 벅찬 감상만을 누리고 있었다.이 책과 함께, 뉴질랜드의 생태기행을 하면서 다양한 생물들과 자연이 어우러져 있는 천연의 숲을 보길 바란다. 그리고 우리가 자연의 일부이고, 자연의 지배자가 아니라 자연과 아름다운 조화를 추구하는 책무를 지닌 존재임을 확인해보길 바란다. 나무와 새와 작은 이끼들이 그 자체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닌, 생태계라는 이름으로 우리와 함께 더불어 사는 존재임을 느껴보길 바란다. 따라서 이 책은 자연과 인간이 공존함에 있어 앞으로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해 주기도 한다.△이경한 전주교육대학 교수는 전북교육포럼 대표, 한국지리환경교육학회 편집위원장, 전북혁신학교운영위원회 위원장을 지냈다. 현재 참여자치전북시민연대 공동대표, 한국지리환경교육학회 부회장, 한국국제이해교육학회 편집위원장, (사)교육종합연구소 이사 등으로 활동 중이다. <열린 지리수업의 이론과 실제>, <지리교육학 강의> 등의 저서가 있다.

  • 문학·출판
  • 기고
  • 2015.04.10 23:02

박병섭 〈해모수 이야기〉"건국 신화, 진정성 가진 역사"

역사의 이념에는 2가지 의미가 결합돼 있습니다. 하나는 사실, 다른 하나는 기록입니다. 전자는 레오폴트의 폰 랑케의 있었던 그대로의 과거를 밝히겠다는 역사가의 사명 제시로 나타납니다. 후자는 칸트의 현상계, 슐라이에르마허의 텍스트 해석학, 알튀세르의 인식의 대상처럼 기록을 통로로만 이용하고 사실로 나간다는 역사가의 사명 의식으로 나타납니다.<해모수 이야기>(전남대학교출판부)는 후자의 관점에서 건국 신화를 술이부작(述而不作)한 논리역사학으로 분석했습니다. 이것은 전자의 관점 가운데 극단적 고고학의 이념과 극적으로 대비됩니다. 이 방법은 텍스트 해석학, 현상학, 계보학 등과 가깝습니다.이어 여기서 과학적 방법의 의미를 생각해 보자면 역사 연구란 이야기를 통해 연속된 사건들을 검증분석하며 종종 인과 관계를 연구합니다. 과학은 물질적 관계, 수학적 정식 그리고 경험적 확인을 필요로 하고 가설연역적 방법으로 A-E-I-O 진술들 사이의 논리적 관계를 분석합니다.<해모수 이야기>는 논리적 방법과 자연과학적 방법을 사용합니다. 이 전통은 논리실증주의, 포퍼의 허위가능성 이론, 쿤의 과학혁명의 구조, 햄펠의 가설연역적 방법의 전통을 따릅니다. 진리론에서는 정합설과 대응설을 지지합니다.이 책에서 다루는 신화는 적어도 3종류의 의미가 있습니다. 첫째 신화이자 역사, 둘째 조작된 신화이면서 역사, 셋째 과장된 성공이야기로서 신화입니다.첫째는 현재 티베트의 달라이 라마 14세의 경우처럼 당대의 인식으로서 신화가 있습니다.둘째는 역사 속에 후대 지배자의 이익을 반영해 조작된 선조 이야기가 추가된 것입니다. 고려 왕건의 역사에 그 직계 선조이야기가 추가된 식입니다.셋째는 단재선생의 풍찬노숙 독립운동의 신화처럼 대일항쟁기 독립운동 동안 단 한 번도 일제의 방향을 향해서 고개를 숙여본 적도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는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의 무용담이나 그 선조를 다룬 용비어천가에서 볼 수 있습니다<해모수 이야기>는 환인-환웅-단군-해모수-동명-주몽/박혁거세의 건국 신화가 첫째의 경우인 신화이면서 역사일 수 있는 후보라고 간주합니다.역사관에서 사실 역사로서의 역사와 기록으로서의 역사는 고려 이후 별다른 차이가 없습니다. 양자 사이의 차이는 건국신화를 바라보는 관점에서 극적으로 다릅니다. 건국 신화에 대한 기존의 관점으로 역사학자와 신화학자의 문제설정 혹은 패러다임은 다음과 같습니다.역사학자는 건국 신화가 후대 지배자들이 자신의 권력을 정당화하기 위해 조작한 것으로 이해합니다. 주몽의 경우 기록 내용이 서로 다르다는 증명할 수 없는 패러다임을 가정합니다. 신화학자는 부여에서 흉년이 들면 왕을 갈아야 한다는 <삼국지>의 부여조 기록이 당대 권력의 역학관계를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만큼 부여 왕권의 약화라는 상징 속에서 현실을 반영한다는 문제 설정을 가정합니다.<해모수 이야기>는 주어진 기록에 대해 어떤 선험적 가정도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불필요한 가설은 버리는 오컴의 면도날(Ockham s Razor)을 선호합니다. 역사 기록은 역사적 사실이 있었다고 믿는 자가 남긴 기억에 대한 전승입니다. 우리가 가진 기록이 실제 있었던 과거 이야기인지는 알 수 없다 해도 누군가 그런 내용을 믿어서 그런 기록의 역사책을 남겼다는 것 자체는 부정할 수 없습니다. 즉, 역사책을 통해 건국이야기의 기억으로서 의식적인 역사를 추적할 수 있습니다.역사책의 건국 신화는 누군가가 건국자의 신성한 건국과정을 믿고 서술한 것입니다. 우리는 건국자가 자칭 신인(神人)이라고 주장했을 때 진정성을 가지고 말했는지 사기 치는 기분으로 말했는지를 평가하고, 또 전승자가 그것을 신뢰하는 차원에서 전승하였는지 허구적 거짓을 창작하는 기분으로 전승했는지 평가해야 합니다. <해모수 이야기>는 건국 신화에서 환인-환웅-해모수-동명-주몽 등은 진정성을 가진 신인 전승이라고 봤습니다.이 책은 한국고대사의 계통을 환인의 대동사회, 환웅의 대인국, 단군의 고조선의 삼경 연맹체, 해모수의 북부여, 동명의 졸본부여, 주몽의 고구려의 계보로 이어진다고 주장합니다.일부 사람들이 걱정하는 과도한 국가주의의 해악이 발생할 여지는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의 사료에 대한 술이부작(述而不作) 으로 해소했습니다. 식민 사학도 논리역사학을 통한 새로운 영역을 개척해 빠질 수 있는 우를 범하지 않았습니다.△박병섭 씨는 전북대 철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해 전남대 강사로 근무하고 있다. 2008~2013년 캐나다 퀸즈대에서 다문화주의 등을 연구했다. 단군학회의 편집이사, 철학연구회의 감사 등을 역임했다. 저서는 <고조선을 딛고서 포스트고조선으로>(2008), <이주민과 다문화가정과 함께 하는 다문화주의 철학>(2008) 등이 있고, 역서는 <다문화주의 개론-자기언어의 정치-(윌 킴리카)> (20 13) 등이 있다.

  • 문학·출판
  • 기고
  • 2015.04.03 23:02

[이병창 '몸의 심리학'] 멈춤·휴식이 있어야 온전한 건강 누린다

건강의 핵심은 몸의 부드러움에 있고 행복의 핵심은 맘의 가벼움에 있다. 이 책에서 이 두 주제를 다루었다. 또 인체를 전기 에너지와 빛의 존재로 이해하는 영적 전승의 지혜들을 통해 몸 속에 각인 되어있던 신경회로의 상처들을 이해하면서 치유해온 과정의 기록들을 담았다. 이미 몸 안의 부위마다 첩첩이 쌓여있는 스트레스가 삶에 어떤 부정적 영향력을 미치는지를 파악하고, 신체장기의 독특한 의미에 대하여 설명해 보고자 했다. 나아가 몸이 보내는 신호와 이야기를 어떻게 잘 알아차릴 수 있는지 안내하여, 자신의 몸을 함부로 대하는 오늘의 현실에 대안을 제시하고자 했다.삶의 순간순간마다 일어나는 경험들은 단순 기억으로 남아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일이 일어났던 순간의 감정과 함께 몸에 저장되어 있다. 그 경험들이 반복되어 일어나거나, 강력한 충격으로 경험되어질 때 몸의 특정 부위의 장기와 신경회로에 상처로 남게 된다. 그 상처는 인간의 창조력을 죽게 하고, 삶을 시들게 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척추의 가장 아래에 위치한 기저 차크라(base chakra)는 신체적 강인함과 생존을 관장한다. 아이들이 무엇인가를 감출 때 본능적으로 꼬리뼈 부근으로 손이 가는 것을 볼 수 있다. 자신이 감추고 싶은 비밀과 수치심의 에너지가 모이는 곳이 꼬리뼈 부분이기 때문에 항문과 천골을 중심으로 한 부근의 긴장과 상처는 인간 의식 성장은 물론 사랑의 감정과 행동의 온갖 장애를 불러오게 된다. 따라서 자기 자신으로부터 자유로운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감추고 싶어 하는 비밀스런 수치심의 근원을 정화할 필요가 있다.인간이 인간일 수 있는 전제는 몸이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어떤 체험도 몸이 있어야 가능하다. 따라서 자신의 몸 이상의 귀한 것은 지상에 존재할 수 없다. 천하를 다 얻는다 해도 오늘 밤 죽게 된다면 그것들이 무슨 유익이 있겠는가. 그럼에도 사람들은 자신의 몸을 학대하고 고통을 주는 방식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마음은 있지만 실제로 자신의 몸과 마음을 스스로 보살펴서 건강한 몸 상태를 만들려하지 않고 있다.인간 의식의 각성은 몸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자신의 몸을 무시하는 사람은 삶의 에너지가 왜곡될 수밖에 없다. 인간의 삶이 시들어가고 불행해지는 것은 바로 이 에너지의 왜곡에서 시작된다. 우리는 몸에 대한 사랑과 존경을 회복하기 위해서 몸에 대한 이해와 통찰을 깊이 할 필요가 있다. 몸을 이해하고 정화 하는 일은 차원 높은 의식으로 가는 작업을 위한 필수적인 과정이기 때문이다.건강한 몸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게으른 생활습관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노력과 지속적으로 밀려드는 스트레스를 어떻게 대하고, 이미 누적된 스트레스의 응어리를 어떻게 풀어 낼 것인가에 대한 구체적 방안과 체험이 필요하다. 몸은 상처와 질병으로부터의 자연적인 회복에 놀라운 능력을 가지고 있고, 인간은 스트레스에 대한 몸의 반응을 스스로 조정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바로 이 능력을 제대로 이해하고 활용한다면 성인병 대란에 시달리는 오늘의 현실에 돌파구가 열리게 되리라 확신한다.어떤 상황에서도 마음을 편안하게 하고, 남의 평가에 연연하지 않으면서 하늘이 주신 자신의 소명을 성실하게 감당하는 것을 안심입명(安心立命)이라 한다. 동서고금의 성현들의 가르침은 험한 세상에서 어떻게 평안을 찾고 누릴 수 있는가에 대한 지혜에 집중하고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오늘의 상황을 돌아보면 삶이 짐이 되고 몸이 무거운 고통이 된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다.국민소득은 높아진다 하는데도 여전히 보람도 희망도 없이 생존에 급급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이웃들이 얼마나 많은가. 회사에서 퇴출되지 않을까, 남들이 무능하다고 생각하지 않을까하는 조바심에 시달리며 일하는 사람들에게 기쁨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미래에 대한 두려움에 근거한 근심과 걱정, 과거에 매인 회한과 자책, 온갖 질병에 대한 불안감에 시달리는 것이야말로 이 시대의 무거운 짐이 아닐 수 없다.안심(安心)은 숨을 편안하게 하는 안식(安息)에서 나오고 안식은 멈춤과 정지(停止)에서 나온다. 무거운 짐을 지고 가는 삶의 길에서, 안심과 안식을 얻고자 한다면 먼저 멈추어야만 한다. 그리스어의 뜻으로 보면 멈춤과 안식(anapausis)은 동의어이다.인간의 삶에 멈춤과 휴식이 없다면 브레이크 없는 자동차와 같이 위험해진다. 일제 치하와 625라는 폐허를 딛고 오늘의 경제성장을 이루기까지 우리 민족은 엄청난 질주를 해왔다. 요즘의 현실은 그에 대한 부작용을 힘겹게 겪고 있음을 총체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것은 안심과 안식이 사라진 사회에 대한 재앙일 것이다.△ 이병창씨는 전주 인근에 있는 경각산 불재 마루, 살리기 수련원에서 데카그램(Decagram)과 숲 치유 등의 수련을 안내하고 있다. 전북작가회의, 세계시문학회. 한국크리스챤시인협회 회원이자, 국제데카그램협회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나의 하느님이 물에 젖고 있다> <메리 붓다마스> <에니어그램을 넘어 데카그램으로>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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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02.13 23:02

이마리씨 동화 〈버니입 호주 원정대〉"더 넓은 세상 향해 또 다른 모험 떠나세요"

한 번 해보는 거야!그래요. 무슨 일이든 하면 됩니다. 세상은 넓고 신나는 일로 가득 차 있으니까요. 넓고 멋진 세상은 계속 어린이 여러분의 모험을 기다리고 있답니다.호주원정대의 모험은 부산 유엔평화공원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언젠가 그곳을 방문했을 때는 추적추적 비가 내리는 가을날 이었어요. 잘 정리된 잔디밭과 비석 사이를 걸으며 한국전에 목숨을 잃은 참전용사들을 생각했지요. 슬프고도 아름다운 가을이었답니다.한 바퀴 돌다 보니 묘소를 휘돌아 좁은 수로를 따라 걷게 되었지요. 그곳을 유심히 들여다보니 금붕어들의 천국이었는데 참전용사 중 제일 어린 17세 호주소년 돈트를 위한 수로라고 쓰인 팻말이 눈이 띄었어요.갑자기 가슴에 전기가 오듯 찌르르 아팠어요. 그 어린 소년 돈트가 호주에 계신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어머니 노래를 즐겨 불렀다는 내용을 알게 되었지요. 그때부터 커다란 눈의 돈트가 뭔가 나에게 말하는 것 같은 생각이 강하게 일었어요. 그러던 중 호주 도서관에서 동화 버니입을 읽다가 우연히 버니입이 내 마음에 들어앉았지요. 이상하게도 돈트소년이 버니입을 통해 나에게 많은 이야기를 해주는 듯했어요. 그리고 단숨에 호주에서 버니입 이야기를 써내려갔습니다.글을 쓰면서 호주의 아름다운 날씨에 매혹되기도 했고, 자연을 보호하는 호주인 들에게 감탄하기도 하고, 원주민을 학대했던 일부의 나쁜 백인들에게는 울화통이 치밀기도 했지요. 사랑하는 어린이들에게 호주라는 거대한 남반구를 모두 보여주고 싶은 욕심도 들었지만 다음을 기약하며 일부만을 풀어내기로 했지요. 그래서 한국의 성진이, 은하, 호주와 한국인 사이의 혼혈인 클레어, 그리고 호주 원주민 눌라 등, 완전히 다른 네 아이가 버니입을 찾아 원정을 떠난답니다. 성진이가 부산유엔평화공원에서 호주참전 용사였던 호주 할아버지에게 버니입 목걸이를 선물 받은 후 버니입을 찾아보리라 굳게 결심을 한 후 친구들의 도움을 받게 되는 거지요. 정말 그 목걸이를 쥔 순간부터 성진은 이상하게도 용기가 생기고 두려움이 없어지는 것 같았어요.버니입은 호주 우표에도 등장하는 우리나라 도깨비 비슷한 상상의 동물이지요. 때로는 정의의 동물로, 때로는 무서운 식인 파충류로 알려져 있으니까요. 그렇지만 호주 원주민들은 버니입을 정의의 동물로 굳게 믿고 있었지요. 백인이 원주민 아이들을 사냥하거나 교육시킨다는 명목으로 원주민 부모에게서 떼어놓을 때마다 원주민을 도와주려고 나타나는 정의의 동물이라고요. 실제로 호주정부에서 버니입을 생포하는 사람에게 거대한 상금을 건 적도 있을 정도였으니까요.그렇듯 호주의 특이한 자연 속에서 어려움을 겪던 아이들이 화해와 우정을 쌓아가지요. 또한 남반구에 있는 호주의 자연 환경이나 위치의 특이한 점이 어린이들 마음을 두근거리게 만든대요. 호주에서는 해가 도는 방향이 어느 쪽일까 생각해본 적 있나요? 또한 우리나라에는 없는 사암동굴 체험도 해볼 수 있으니 꿩 먹고 알 먹는 셈이겠지요. 이산화탄소를 줄이는 식물을 생각해본 적 있나요? 모험을 하면서 자연에서 배우고 깨닫게 되는 신기한 자연의 질서들이 새록새록 새로워진답니다.또한 이 모험을 통해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는 힘, 서로를 용서할 줄 아는 너그러움, 용기를 가지고 도전하는 마법을 깨쳐가게 되지요. 두려움이란 결국 자기 마음속에 있으며 마음먹기 나름이라는 진리도요. 아슬아슬한 모험을 하면서 책을 덮는 순간 여러분은 용기와 자신감으로 가득해진 당당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될 거예요.이제 더 넓은 세상을 향해 또 다른 모험을 떠나보세요. 세상은 항상 크게 팔 벌려 여러분을 기다릴 테니까요. 무엇이든 어디든 그냥 가보고 해보는 겁니다. 약속할거죠?한 번 해보는 거야! 반드시 할 수 있습니다. 꿈은 꼭 이루어집니다.△이마리(본명 이정환) 작가는 전주 출신으로 해외도서를 번역하다 동화작가로 전향했다. 제5회 목포문학상에 〈악동 음악회〉, 제3회 통일창작동화공모전에 〈똥쟁이 아기 두루미와 철모 할아버지〉가 당선됐다. 〈버니입 호주 원정대〉는 제3회 한우리문학상 대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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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10.31 23:02

제4회 혼불문학상 수상 박혜영 작가 〈비밀정원〉 양반 모습으로 채운 한 시대의 빈 퍼즐

소설 〈비밀정원〉은 화자인 이요의 23살까지를 쓴 소설이다. 이 소설은 주인공이 성장하는 1960년대와 1970년대를 지나 1980년대 초반까지를 시대적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 시대는 전쟁 후 급격히 들어온 서구 문화가 봉건의 잔재와 혼재하고 유교적 질서가 생활과 관습에 잔존하고 한편으로는 민주와 자유의 물결이 냉전의 이념과 대치하고 있었던 때다. 그러한 시대를 배경으로 이 소설은 노관이라는 강원도 지방의 한 종가를 중심으로 등장인물들의 성장과 사랑, 우정을 그렸다.노관이라는 종가에서 할머니는 종가의 대를 잇기 위해 폐결핵을 앓는 병약한 장자의 결혼을 서두른다. 상대 집안의 선거 빚과 가세의 몰락으로 빠르고 강력하게 혼사를 결정하고 진행하나 거기에는 연인의 애달픈 이별이 잠복해 있다. 남은 연인의 긴 구애와 사랑, 이루지 못하고 마는 애절한 운명, 그리고 아이들의 성장 이야기가 슬프고 아름답게 펼쳐진다.이 소설에서 이야기하고자 한 것은 한 시대를 살고 사라져 간 사람들의 발자취를 남기고 싶었다. 역사가 선으로, 연대기로 그 기록을 남긴다면 예술과 문학은 그 역사라는 테두리 안에 그 내용물을 채워가는 일이다. 역사적인 큰 줄기에 꽃을 피우고 열매를 거두는 일, 향기를 내는 일이 예술이고 문학이 아닐는지.근대소설이 민중과 소외된 자, 소수자에게 특별히 많은 관심을 기울인 바가 있지다만 그들과 똑같이 그 시대에 존재했을 양반, 상층민의 관심은 오히려 배제되었다. 양반은 〈양반전〉, 〈삼대〉, 〈태평천하〉, 〈대하〉 등에서 풍자나 야유의 대상이었지 그들의 심중을, 사고를 제대로 드러낸 소설이 드물었다. 양반은 부패한 기득권층이고 명분 위주의 무기력한 층으로만 폄하되기도 했지만 그 평가가 적절한 면도 있다.그 시대의 빈 퍼즐을 채우고 싶었다. 그래서 양반가에 주목했다. 그들의 삶의 양식과 사고방식, 관습과 분위기를 제대로 이야기하고 싶었다. 1960~70년대 한학자 양반가에서 성장해 그런 배경 설정에 자신이 있었다. 그러니까 이 소설은 가장 익숙한 시간과 공간을 이용한 셈이다.이 소설 속 인물들은 그들만의 시간 속에서 영원히 산다. 독자가 책을 펼치고 말을 걸 때야 비로소 그들은 세상과 대화를 한다. 한 시대에 대해 예술가들이 많이 이야기할수록 그 시기의 그림은 더욱 세밀해지고 선명해진다. 한 역사적 시대를 악보로 더욱 많은 노래들이 연주되었으면 한다.좋은 책의 기준은, 읽기 전의 자신과 읽고 난 후의 자신이 뭔가 달라지는 것이라 한다.〈비밀정원〉을 읽고 난 뒤 무언가 달라져 있기를 현명한 독자들에게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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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10.17 23:02

김용옥, 손바닥수필 〈관음108〉삶은 苦海의 자맥질 참회하며 觀世音하다

한 사람이 알면 얼마나 알며 한 사람이 살면 얼마나 살랴. 손바닥수필 〈관음108〉(수필세계사)을 쓰면서, 적어도 자신의 인생이라도 알자고 문학의 덕성을 빌려 사유했다.현대인에게 예수는 에디슨만큼 큰 편익을 주지 못했다. 스티븐 호킹이 블랙홀이론을 설하건 부정하건, 천동설이나 지동설에도 관계없이 먼 과거처럼 지구는 여전히 돌고 있다. 이상적인 민주주의 국가들도 매양 부정부패한 정치 속에 분열되고 있으며 종교인이 범람할 지경이어도 지구상에 온전한 평화란 없다. 그 혼란 속에 나는 이순을 넘었다.그 긴 시간의 흐름 속에 만난 인연들이 모여서 내 인생의 살과 뼈를 이루었다. 첫 인연은 좋은 부모요, 두 번째 인연은 종교심이요, 세 번째 인연은 동반자인 책과 예의 삶을 견디게 해준 등대요 지팡이요 스승이다. 나는 허방을 딛는 듯이 늘 비틀거렸다. 산다는 것은 고해(苦海)의 자맥질이었다.나는 세 개의 관상동맥을 시술하고 뼈 마디마디 관절염으로 시달리면서, 의약의 도움으로 조금 더 살게 되었다. 정신 차려 육십갑자 인생을 돌아보니 제대로 산 것 같지 않아 잠을 줄이며 정진한 마음공부라도 제대로 정리해 보고 싶었다. 한 깨달음으로 백百을 꿰뚫는다고 교만을 떨면 아무것도 못 얻는다. 그래서, 잘못 살고 헛되이 살고 어리석게 산 인생을 참회하는 심사로 산책소요하며 관세음(觀世音)하기 시작했다. 만물과 인간마다 두루 스승이었다. 진즉에 알았으면 잘 살았을 거라고 생각하겠지만, 살아 보아야 겨우 깨닫기라도 하는 것이다.인간과 만물은 무엇이고 어떤 의미인가? 어떤 인연으로 나와 맺어지는가? 고해인생이란 게 이렇게 별 볼일 없는 것인가? 끊임없이 질문하는 일이 대답을 얻게 했다. 지금 이 자리에 서기까지 나는 등에 칼을 맞기도 하고 타인을 도구 삼아 복을 얻기도 했다. 세상살이는 요지경이었고 요지경이므로 관세음을 한 것이다.날마다 부지기수의 글이 쏟아진다. 그러나 수없이 많은 글을 다 읽지 못한다. 현대인은 볼거리 놀거리로 살기에도 시간이 모자라기 때문이다. 그런 이들이 1분쯤 글 한 꼭지 얼른 읽고, 자식과 부모가 함께 머리와 가슴을 열고 대화하고 소통하면 좋겠다.사람은 하루에도 오만 가지 생각을 하는 존재다. 자물쇠도 열쇠도 없는 두뇌와 마음에 드나드는 생각이 사람을 평강하게도 괴롭게도 한다. 그 보이지도 잡히지도 않는 것들을 생활 속의 언어로 붙잡았다. 사람꽃을 만나고, 최고최대의 도서관인 자연을 읽고, 종교심과 예술관을 정리하며 관음 한 편 쓸 때마다, 우선 나 자신부터 거듭났다. 관음108번째는 어머니의 십훈(十訓)이다. -남의 것은 똥보다도 더럽다. 한 입 갖고 두 일 하고 두 귀로는 한 일밖에 못한다. 참을 인(忍) 셋이면 살인도 면한다. 봄처럼 부지런해라.-등등, 어머니가 자랄 적에 우리 형제들에게 이르신 말씀 그대로 썼다. 아주 쉬운 그 말씀이 삶의 진리요 철학인 걸 이제야 깊이 깨달은 것이다. 〈관음108〉은 나 자신을 교육하고 재창조하는 과정이었다.지금 이 글을 쓰는 내 한 날의 소망은 지혜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이다. 공부해서 아는 사람이 아니라 사유해서 지혜를 낳은 사람을 만나는 것이다. 이런 진정성으로 쓴 5매 내외의 손바닥수필을 수필전문잡지 〈수필세계〉에 3년간 연재했다. 그것을 대구에 있는 출판사 수필세계사에서 손바닥수필집 〈관음108〉로 상재해 주었다.나는 시인, 수필가이기 전에 늘 읽는 자다. 하루라도 읽지 않으면 잘못 산 거 같다. 읽고 사유하는 사람이 사람답게 살 것이다.*시인이자 수필가인 김용옥 씨는 중앙대 영문과를 졸업했으며 〈시문학〉으로 등단했다. 〈누구의 밥숟가락이냐〉 등 4권의 수집과, 〈생각 한 잔 드시지요〉 등 8권의 수필집, 화사집 〈빛 마하 생성〉을 냈다. 한국pen위원회 언어보존위원. 〈수필세계〉 편집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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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09.19 23:02

전성옥 씨〈판소리 깊이듣기 - 적벽가〉민중과 함께 한 예술 대중에 더 다가가야

소리판에서 좌상(座上)이 소리꾼에게 묻는다.적벽가를 부를 줄 아십니까?파격도 보통 파격이 아니다. 반상(班常)의 구분이 엄연히 살아있던 시대에 양반(兩班)이 상인(常人)인 소리꾼에게 경어를 쓴다는 것은 사회적 통념상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물론 소리꾼 중엔 어전광대(御前廣大)가 되어 당상관인 정삼품의 관직을 받은 이도 있다. 그러나 그 벼슬은 명예직에 불과했다. 계급적 신분 역시 면천(免賤)은 될지언정 양반이 경어를 쓸 정도의 신분상승은 기대할 수 없었다. 양반이나 중인 출신인 비가비라 할지라도 소리꾼 대다수가 하층민이었기에 함께 휩쓸려 천대받기 십상이다. 아직 배우지 못했습니다.좌상의 어투가 달라지며 하대하기 시작한다. 그럼, 춘향가는 할 줄 아는가?그것도 모릅니다.좌상은 이제 소리꾼을 아예 대놓고 무시한다. 심청가는 할 줄 아냐?판소리 전성기 때의 일화다. 필자가 박동진 명창(朴東鎭 1916~2003) 생전에 그에게서 들었던 이야기다. 적벽가가 얼마나 귀한 대접을 받았는지를 강조할 때 박 명창은 이 얘기를 꺼내곤 했다. 이렇게 높임을 받던 적벽가가 판소리의 전반적인 퇴조 속에서 제일 먼저 절멸의 위기를 맞고 있다. 일제 강점기 때부터 지속되고 있는 소리판의 여성화 탓이다. 적벽가는 웅장하고 씩씩한 호령조의 가장 남성적인 판소리여서 여성화된 소리판에서 멀어져 갈 수밖에 없었다. 적벽가 사설은 한문체나 한시 등으로 짜인 대목이 많아 판소리 전승자나 청중 모두 어렵게 여기는 것도 이유 중의 하나다. 그래서 자칫 전승을 소홀히 하면 적벽가는 박제되어 소리박물관에서나 찾게 될 날이 올 수도 있다.역설적으로 판소리의 세계화가 이루어진다면 적벽가가 첨병 역할을 하게 될 것으로 기대한다. 적벽대전은 그 내용이 동양 3국뿐 아니라 서양까지 널리 알려진 얘기여서 적벽가라는 새로운 예술형태로 세계인의 가슴 속에 쉽게 파고들 수 있다. 19세기 프랑스의 대문호 빅토르 위고(Victor-Marie Hugo)가 쓴 소설을 뮤지컬로 만든 레미제라블이 세계무대에서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듯이 적벽가를 앞세워 세계 문화시장에 진출할 수 있다. 누구는 적벽가가 중국 얘기가 아니냐고 할지 모른다. 적벽가는 〈삼국지연의〉를 단순히 판소리화한 것이 아니다. 적벽대전의 줄거리를 씨줄로, 우리민족의 정서를 날줄로 다시 짠 우리의 예술이다. 적벽대전의 얼개가 우리의 장단과 가락이라는 새로운 옷을 입으면서 전혀 다른 형태의 예술로 모습을 바꾸었다. 탈바꿈의 과정을 거치면서 한층 격조 높은 판소리 예술로 재탄생한 것이다. 중국인들이 적벽가를 들으면 시샘을 해도 단단히 할 일이다. 자기 나라 얘기를 가져다가 이웃 나라에서 독창적인 예술로 만들었으니 말이다. 졸저 〈판소리 깊이듣기 - 적벽가〉는 판소리의 전승 유형을 소개하고 이를 서로 비교 분석하면서 적벽가를 쉽고 깊이 있게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기 위해 구상했다. 이를 위해 적벽가 중 가장 길고 짜임새가 있다는 평을 받는 박동진 명창의 1974년판 적벽가 완창음반 사설을 중심 텍스트로 삼았으며 이를 23개 대목으로 나눴다. 그리고 대목 순서에 따라 사설을 소개하고 주석을 달았으며 각 대목마다 소리풀이란 항목을 따로 두었다. 적벽가의 사설은 박동진 명창이 녹음한 소리를 채록, 전라도말을 포함해 들리는 그대로 표기했으며 한자를 병기했다. 사설 가운데 의미가 통하지 않거나 불분명한 부분은 무형문화재 조사보고서의 내용으로 보완했다. 그리고 주석을 달 때 특정 단어의 풀이보다는 사설 전체의 흐름과 이해에 중점을 뒀다. 간추려 소개한 고사도 그 같은 맥락을 따랐다. 소리풀이는 앞서 소개한 대목의 판소리 유파 별 창법과 장단 등의 특성, 판소리 어법(語法)과 미감(美感) 등 판소리 고유의 예술성을 설명했다. 따라서 졸저는 특정 대목만 따로 떼어 읽어도 되게끔 구성했다. 또 통독하면 적벽가 전체를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 판소리 전성기 때 귀한 대접을 받던 적벽가의 매력(魅力)은 과연 무엇일까? 졸저 〈판소리 깊이듣기 - 적벽가〉는 그 매력을 탐구하는 과정의 소산이랄 수 있다. 또 판소리 감상의 즐거움을 쉰세대가 신세대에 전하고 싶었다. 위대한 문화유산을 온전히 넘겨주는데 일조해야 한다는 의무감마저 느꼈기 때문이다. 독자들이 이 책을 통해 판소리의 맛과 멋을 조금이라도 접해 호기심이 인다면 소리판을 직접 찾지 않을까? 필자의 소박한 바람이다.판소리가 본디 민중의 희로애락과 함께한 예술이었음을 되새긴다면 대중과 멀어지는 판소리는 더 이상 존재의 의미가 없다. 판소리가 대중에게 보다 가깝게 다가가기 위한 여러 노력들이 뒤따라야 한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점점 더 높아지고 있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저자 전성옥 씨는 연합뉴스 로 활동하며 판소리에 대한 애정을 쏟았다. 〈역주본 춘향가〉 〈판소리 기행〉 등의 저서를 냈다. 연합뉴스 방콕특파원과 전북취재본부장을 거쳐 현재 기획위원으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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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원용
  • 2014.09.12 23:02

소설가 이성수 씨 〈구수내와 개갑장터의 들꽃〉손화중 통해 본 동학농민혁명 정신

동학농민혁명은 수십만의 인물이 참여하였다. 혁명의 정신과 가치는 그들이 흘린 땀과 피의 산물이다. 그렇지만 행적이 잘 알려지고 조명된 인물은 전봉준, 김개남 등 극소수에 불과하다. 저자는 이런 현실이 안타까워 일반에 알려지지 않은 인물과 사실들에 주목했다. 만약 손화중의 가담이 없었더라면 고부민란으로 끝났을 동학농민혁명이었다. 손화중은 동학농민혁명의 전반을 기획하고 연출했던 인물이지만 그는 전봉준 김개남 보다 덜 알려져 있다. 그래서 〈구수내와 개갑장터의 들꽃〉의 주인공으로 손화중을 선택했으며 주변인물의 행적을 탐색하여 조명했다. 그가 활약했던 지역을 중심무대로 삼았다. 비록 소설이지만 상상에만 의존하지 않았다. 역사가가 밝혀낸 사실을 바탕에 깔고 남아있는 여백을 상상으로 매웠으며 사실이 갖는 딱딱함을 미학적 감성으로 풀었다. 손화중 외에도 홍낙관, 송문수 등 실존인물을 200여명이나 등장시켰다. 그 동안 반란으로 매도되어 숨죽여 살아 왔던 참여자와 후손들의 억눌린 숨결이 유난하게 느껴져서 되도록 많은 인물의 행적과 숨겨진 사실을 끄집어냈다. 손화중을 통해 지식인의 고뇌와 역할을 그렸다. 손화중의 휘하에서 광대의 신분으로 천민부대를 이끌었던 홍낙관을 통해서는 신분사회의 모순을 파헤쳤다. 가공인물이지만 객주 이덕만과 일본인 가와모토를 등장시켜 자본의 힘과 외세의 영향을 살폈다. 또 무장구수내 기포와 의병의 배후지로 지목되어 일제에 의해 강제로 폐쇄된 개갑장터와 석교포구를 통해 민중들의 설움과 갈등을 재현했다. 아무리 중요한 사실과 인물이라도 기록되지 않으면 전설이나 풍문이 되고 만다. 수많은 사람들의 피와 땀이 모여 만들어낸 혁명이지만 따로 떨어지면 그 가치를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기에 떨어져 나간 조각을 소설의 형식으로 찾아 맞춰 동학농민혁명을 그렸다.조선의 후기사회는 극심한 혼돈의 시기였다. 유교를 중심으로 형성된 가치와 규범에 균열이 생겨 일어난 현상이다. 가장 주목해야 할 사실은 자본이 정치에 개입하기 시작했고 돈이 끼어들자 모든 것이 변해 너도나도 돈을 쫓았다. 요즘으로 말하면 일당독재의 시기였다. 세력의 균형이 깨져서 권세가들의 횡포와 전횡이 극에 달했다. 그들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돈이 필요했고 매관매직을 공공연히 자행하였다. 그들에게서 관직을 산 자들은 탐관오리가 되었다. 학정과 수탈이 조직적으로 조장된 셈이다. 또 권세가들은 외세와 결탁하여 뱃속을 채우기에 바빴고 도처에 만석꾼이 생겨났다. 어떤 자본에서도 도덕과 윤리를 찾아 볼 수가 없었다. 돈에는 무지막지함만 있을 뿐 나라와 백성은 없었다. 오로지 약육강식의 논리만 작동하여 500년이나 유지되어 왔던 신분질서마저 흔들거렸다. 결국 그 여파의 피해는 정보에 어둡고 힘이 없는 백성들에게 고스란히 돌아갔다. 민중들의 삶은 처참했고 탈출구가 없었다. 하소연 할 곳조차도 없었지만 견제 받지 않는 권력의 눈에는 아무 일도 아니었기에 원성에 귀 기울이기보다는 억누르기에 바빴다. 이때 동학의 평등사상이 백성들 사이에 퍼져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정도령의 출현으로 이씨 조선이 망할 것이라는 정감록의 예언에 모두 솔깃했다. 그 당시 동학은 기댈 곳 없는 백성들에게 큰 어깨였다. 손화중은 호남지역에서 가장 신망이 높고 세력이 큰 동학지도자다. 정감록의 예언에 맞물려 그에게 거는 기대로 동학 교인들이 모여들었다. 전설의 선운사 석불비결록 탈취를 계기로는 일반 백성들의 기대와 요구마저 구체화되기 시작했다. 그의 명성은 날로 높아져갔다. 한편 전봉준은 고부군수 조병갑의 재임명에 반발하여 고부민란을 일으켰다가 실패하고 무장현으로 숨어들었다. 여러 차례의 설득으로 손화중과 함께 무장현 구수내 마을에서 동학농민군 4000여명을 이끌고 기포하기에 이른다. 소설은 1899년의 흥덕 영학당사건에서 끝을 맺었다. 동학농민군은 관군의 힘으로 진압되지 않았다. 막강한 일본군의 전략과 전술의 힘으로 진압되었다.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었다. 역사는 돌고 돈다는 말이 있다. 요즘을 들어다 보면 120년 전과 달라진 것이 별로 없다. 자본의 윤리와 도덕이 점점 고약해져 간다. 권세가들은 진실을 왜곡하여 민중들의 눈과 귀를 가리고 권세를 이용해 재산을 모은다. 양심의 가책을 느끼기는 커녕 그러지 못하는 것을 오히려 아쉬워하는 지경이다. 고부민란도 조병갑의 재임명이 도화선이다. 친일파들이 도처에 발호하며 드러내놓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균형이 점점 깨지고 있어 조선후기사회와 닮은 구석이 너무 많다. 자칫하다가는 균형을 잡으러 국민들이 나서야 할지 모를 일이다. 소설을 읽은 독자들은 동학농민혁명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고 하며 교양도서로 선정되어서 더 많은 사람들이 읽었으면 좋겠다고 한다.동학농민혁명의 정신과 가치로 무장한 균형 잡힌 국민들이 많아져 역사가 반복되지 않았으면 좋겠다.△소설가 이성수 씨는 고창 출신으로, 장편소설 〈꼼수〉〈혼돈의 계절〉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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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08.29 23:02

전북대 'SSK 개인기록연구실' 〈압축근대와 농촌사회〉개인기록 통해 본 '압축성장'의 현대사

20세기 중반 이후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여러 나라들은 매우 큰 폭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하였다. 동아시아의 이처럼 유례없는 압축 성장은 당연히 세계적으로 학술적, 정책적 관심의 대상이 되어, 그 원인에 대한 많은 연구가 이루어졌다. 그간의 연구 성과를 아주 간단하게 요약하면, 압축 성장의 핵심 동력은 국가에 있다. 즉 서구사회와 달리 이미 강력하게 구축되어 있었던 국가의 관료기구, 대중과 시장을 설득하고 동원할 수 있었던 국가의 능력, 국가 관료의 근대적 마인드 등이 동아시아의 빠른 성장을 가능하게 한 주요 요인이라는 것이다.전북대학교 SSK 개인기록연구실 연구팀이 주목하고 있는 연구의 주제는 동아시아의 압축 성장이 개인, 마을 공동체, 지역사회에서 드러나는 양상이다. 예를 들면 국가에 의해 계획된 근대화 정책이 구체적인 현장, 즉 지역사회, 마을, 그리고 마을 주민과 어떤 방식으로 만나게 되는가, 주민들은 근대화 정책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해석하는가, 그리고 지역사회의 단위에서 국가(정책)과 마을(주민)의 만남이 어떤 결과를 만들어내는가 하는 것이 우리 연구팀의 주요 관심이다. 이것은 동아시아의 경제성장에 대한 그 동안의 연구들과는 관점과 방법론에서 뚜렷한 차이를 지닌다. 주로 거시 지표를 중심으로 전체 사회의 성장과 변화를 추적하는 기존의 연구와 달리, 우리 연구팀은 거시 지표에서는 드러나지 않는 작은 사람들의 삶 속에서의 변화를 들여다본다. 그 자그마한 생활세계 속에서 비로소 지역사회와 마을 공동체 내에서 진행된 구체적인 근대 경험이 모습을 드러낼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연구팀이 주목한 자료는 개인기록, 특히 한 개인이 스스로의 생활을 기록한 일기이다. 일기는 한 개인이 자신의 경험과 생각들을 적어놓은 사적인 기록이다. 그러나 일기를 쓰는 개인의 경험과 생각들은 자신이 속한 사회문화적 환경 속에서 이루어지고 형성된다. 따라서 일기는 한 개인이 보고 듣고 느낀 바를 통해서 과거의 역사적 사건이나 사실들을, 당시의 시공간적 상황에서 가장 생생하게 복원할 수 있는 중요한 사회적 자원이다. 조금 개념적으로 정리하면 일기는 변화하는 사회와 문화 속에서 개인의 물질적, 사회문화적, 정신적 위치 정보를 담고 있기 때문에, 전체 사회 또는 민족국가 수준의 사회변동과 지역사회 및 공동체 수준의 변동 사이의 상호작용 과정을 개인의 경험을 통해 보여준다. 또한 일기는 하루하루의 일상을 시간 순서로 정리한 시계열 자료이다(어떤 공식자료도 하루 단위로 수십 년간의 역사를 기록하지는 않는다). 즉 일기는 총체적이고 역사적이며 현장적이고 구체적이다.지난 3년간 우리는 임실군 신평면의 한 농민, 최내우(1923-1994)의 일기(〈창평일기〉)를 해독, 입력, 해제, 출판하면서 보냈다(전북대출판문화원, 이정덕 외) 〈창평일기〉는 1969년부터 1994년까지 약 26년 동안의 일상을 하루도 빠짐없이 기록한 놀라운 기록이었다. 일기 속에는 개인, 가족, 마을공동체 세계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근대화의 물결 속에서 그들이 경험하는 국가와 시장, 문명, 도시, 이념 등이 세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즉 일기 속의 세계는 개인과 마을이 접촉하고, 수용, 적응, 대응하는 근대, 즉 해석된 근대의 세계이다. 이 책은 연구팀이 3년 동안 현대 지역사의 자료창고인 일기 분석을 통해 얻어낸 결과를 묶은 첫 번째 성과물이다. 책은 크게 2부로 나뉘어 있다. 1부는 일기를 비롯한 개인기록에 접근하는 연구팀의 시각과 연구방법을 정리하였다. 그리고 2부에서는 〈창평일기〉의 내용을 통해서 한국사회의 압축근대와 지역사회 및 주민 생활의 변화를 분석한 글들을 모아 실었다. 이 책을 통해서 일기 속의 세계에서 발견되는 지역 현대사가 현대 한국사회의 성장과정과 어떻게 다른지, 또 어떻게 결합되어 있는지를 소소하게 발견해가는 즐거움이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국가의 제도와 법률 너머에서 마을사회만의 질서와 윤리가 작동하고 있음을 발견하고, 국가가 권장하는 농업 기계화, 신품종 및 새로운 농업기술에 직면한 농민들의 인식과 수용태도를 확인하는 것도 새롭다. 또한 국가의 거대한 개발정책이 마을주민을 어떻게 설득해서 추진해 가는지, 주민들은 또 이것을 어떻게 해석하고 대응하는지를 살펴볼 수도 있다.서구의 한 역사학자에 의하면, 개인기록은 그동안 역사학과 사회과학에서 간과되었던 작은 사회변동이 보다 근본적인 변동을 이끌어내는 방식을 이해하는 데 유용한 자료이다. 이 말은 공식적인 역사에 자신들의 목소리를 담지 못했던 평범한 사람들의 삶이 전체사회의 큰 역사와 연결되어 있고, 결국 평범한 사람들에 의해 역사는 만들어지는 것이라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 책은 이러한 인식에 기초한 지역 현대사 분석의 한 매듭이면서, 향후 보다 다양한 자료들 간의 비교를 통해 시간적, 공간적으로 확장된 범위에서의 비교분석을 시작하기 위한 출발점이기도 하다.△필자 이성호 씨는 전북대 SSK개인기록연구실 전임연구원으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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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08.22 23:02

전홍철 교수〈돈황 민간문학 담론〉고대 중국 역사·예술 수수께끼 풀어낸 돈황 문서 추적

돈황은 광활한 중국 대륙의 서쪽 끝에 위치한 오아시스 도시로 1,500년 전 서역으로 가는 관문이었다. 돈황(敦煌, Dunhuang)의 돈(敦)은 크다(大也), 황(煌)은 성대(盛也)하다는 뜻으로, 엄청 나게 크고 휘황찬란한 도시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옛 도시 돈황에 도대체 무엇이 있었기에 그리 대단하고 휘황찬란했었을까? 환지구적 문명 교류의 통로요 실크로드의 전략적 요지인 돈황의 보물은 바로 세계 최대의 불교 보고 막고굴(莫高窟)의 벽화와 미스터리 가득한 두루마리 필사본들이다. 미스터리가 가득한 돈황 필사본은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 소위 막고굴 제17굴 장경동(藏經洞)에서 대량으로 발굴되었다. 전 세계 중국학 연구자들을 깜짝 놀라게 한 미스터리 필사본들은 발견 후 정리되는 과정에서 돈황 문서(敦煌文書)로 불렸으며, 이로부터 돈황학(敦煌學)이 탄생하게 된다. 돈황에서 우연히 발견된 문서들은 이후 고대 중국의 역사, 음악, 미술, 체육, 음식 등 각 분야에서 수수께끼로 남아 있던 수많은 의문들을 해결해주는 마법의 열쇠가 되었으며, 중국문학사 분야도 마찬가지였다. 돈황 문서는 한국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먼저 신라의 구도승(求道僧) 혜초(慧超)가 지은 <왕오천축국전(往五天竺國傳)>의 필사본이 돈황 문서더미에서 발견되었으며, 최근에는 원효 스님이 저술한 <대승기신론소(大乘起信論疏)>의 8-10세기 필사본이 발굴 공개되어 고대 한국과의 연관성을 다시금 확인시켜 주었다. 돈황 고문서 중 한국 고대 문학과 가장 깊은 관련이 있는 것은 판소리(板聲,Pan-So-Ri)처럼 운문과 산문을 엇섞어 사용하고 있는 변문(變文)이다. 2014년 대한민국 학술원 우수학술도서로 선정된 이 책은 중국문학사에서 운-산문 서사 방식의 최초 사례를 보여주는 변문(變文)이 중국 소설사와 희곡사에 어떤 영향을 끼쳤고, 한국의 불교계 강창문학과 어떤 연관이 있는지를 상세히 밝히고 있다. 이 책은 모두 2부로 되어 있는데, 1부는 필자의 논문을 2부는 해외논문 번역을 싣고 있다. 1부에서 필자는 한중 양국의 불교계 강창문학을 연행연극을 위하여 성립된 극본적 문학이며, 강설낭독보다는 강창설창이 우선되는 대본문학으로 보고 논술하였다. 또 중국문학사를 한족(漢族)이 주체가 되는 엘리트 문화 전통에서 탈피하여 민간문학의 관점에서 여러 문학사적 현상을 새롭게 해석하고자 하였다. 특히 동아시아 소설 전통 속에 감추어져 있는 민중 구비창작의 고대적 형식들과 그 미적 가치를 추적하였다. 2부에서는 돈황문학 연구에 있어 미국, 일본, 중국을 대표하는 학자인 펜실베니아대학의 Victor H. Mair, 교토대학의 김문경(金文京) 교수 그리고 중국 온주대학의 왕소순(王小盾) 교수 3인을 논문을 번역 삽입하여 전 세계 돈황문학 연구의 성과를 소개하였다. 현재 한국중국희곡학회 회장과 우석대 공자아카데미 원장을 맡고 있는 필자는 올해 안에 세계 최초로 돈황변문집 완역본을 펴내기 위해 마지막 교정 작업을 진행 중이다. 또한 중국과 관련된 전북문화유산 조사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고, 판소리형 전세계 공연예술을 찾아나서는 판소리로드 해외 답사도 꾸준히 진행하고 있다. △우석대 유통통상학부 전홍철 교수는 주로 돈황학과 중국문화에 대한 글을 쓰고 있으며, 주요 저서와 역서로는 <돈황 강창문학의 이해>(소명), <돈황과 동아시아문학>(신성) ,<중국통을 향해 걷다>(차이나하우스), <돈황문학사전>(소명), <당대 변문(唐代 變文)>(소명)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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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08.08 23:02

[황갑연 외 '인문고전읽기'] 동서양 아우른 13편의 고전 인문학 가치 찾아내다

인문학의 위기! 신물 나게 들어본 소리이지만, 언제 인문학이 위기가 아닌 적이 있었던가? 그렇다면 인문학은 무엇인가? 필자는 인문학은 인간이라는 존재의 삶에 궁극적인 문제를 던지고 다양한 출구를 통하여 그것을 해소하는 과정과 관련된 학문 활동이라고 생각한다. 인문학에는 결정된 답이 없다. 인문학이 인간의 삶에 관한 궁극적인 성찰과 해소에 관한 활동이라면 인문학은 몇 권의 인문학 서적을 읽고서 그것과 관련된 정보나 지식을 습득하는 교양 수준에 그쳐서는 안 되고 자신의 일상적인 삶에 그것을 적용해보고 문제 해결에 다양한 출구를 스스로 제시하였을 때 인문학의 가치가 발현될 수 있을 것이다.전북대 출판문화원에서 출간한 〈인문고전읽기〉는 전북대 인문대학 재직 교수와 강의전담교수 13인에 의해 저술된 교양강의 교재이다. 흔히 고전에 인생의 답이 있다고 하지만, 절대 한 권의 고전으로서는 만족할 수 있는 답을 찾을 수 없다. 그렇다면 몇 권에서 찾아야 하는가? 이는 숫자 놀음이 아니다. 〈인문고전읽기〉는 한 학기 강의 분량에 맞추어 저술되었기 때문에 소개된 고전이 많지는 않다. 동서양 고전을 6대 7로 구성하여 철학과 문학을 위주로 총 13권의 고전을 소개하였다. 모든 고전 소개에 동일한 형식을 제시하였다. 우선 강의교재이기 때문에 학습목표를 소개하고, 다음 주요 용어작가의 생애와 시대배경텍스트해제더 읽어 볼 거리더 생각해 볼 거리참고문헌 순으로 소개하였다. 텍스트해제에서 고전의 중핵을 소개하고 있기 때문에 이것만을 보아도 그 고전의 핵심 내용은 충분히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소개된 고전은 다음과 같다. 〈맹자〉(맹자)〈채근담〉(홍자성)〈오디세이아〉(호메로스)〈소크라테스의 변론〉(플라톤)〈하이쿠 기행〉(바쇼)〈당시 삼백수〉(손수)〈태평천하〉(채만식)〈삼국연의〉(나관중)〈돈키호테〉(세르반테스)〈햄릿〉(셰익스피어)〈젊은 베르터의 고통〉(괴테)〈변신〉(카프카)〈이방인〉(카뮈). 1학기 강의 직후 강의만족도 설문조사를 해보니 흥미로운 사실이 발견되었다. 가장 인기가 높은 고전은 그리이스의 영웅 오디세우스의 귀향 모험기인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였다. 그런데 오디세이아에 관한 이해 수준은 가장 낮았다. 왜 그럴까? 만화 그리이스 로마 신화의 영향 때문인 것 같다. 만화로 그려진 그리이스 로마 신화는 재미있지만, 신화 속에 내재된 서양인들의 가치관에 대해서는 올바르게 파악하려는 노력이 부족했던 것 같다. 우선 오디세이아에는 아레테(arete), 즉 덕이라는 개념이 출현하는데, 일반적으로 동양인들이 갖고 있는 개념과는 상당히 다르다. 아레테는 인간뿐만 아니라 사물 일반의 훌륭한 혹은 좋은 상태를 의미한다. 훌륭한 전투 기능을 발휘하는 전사도 덕을 갖춘 사람이고, 직물을 잘 짜는 사람도 역시 덕을 갖춘 사람이다. 이러한 덕을 통하여 공동체 전체의 운명을 담당하는 사람이 바로 영웅인 것이다. 다음으로 학생들에게 관심의 대상이었던 작품은 바쇼의 하이쿠였다. 하이쿠는 일본어 5,7,5음의 총 17음으로 된 일본의 정형 서정시이다. 가장 짧은 시이지만, 단순하고 쉬우면서도 계절과 감정 그리고 풍물 등을 간결하게 묘사한다. 이러한 하이쿠는 우리말에도 얼마든지 응용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말로는 더욱 짧게 묘사할 수밖에 없지만, 그것을 통하여 학생들의 어휘 사용능력을 제고할 수도 있다. 가장 비인기 고전은 〈당시 삼백수〉였는데, 원인은 딱 한 가지이다. 즉 한자의 고통 때문이다. 사실 한자는 인문학의 전유물로 생각하지만, 자연과학과 너무나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자연과학의 원리와 법칙은 모두 한자로 구성되어 있다. 따라서 한자의 의미만 알고 있어도 자연과학의 원리와 법칙의 개괄적인 의미는 알 수 있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소크라테스의 변명〉으로 알려져 있지만 〈인문고전읽기〉에서는 변명 대신에 변론으로 수정하였다. 변명은 사실관계를 회피하는 인상을 주지만, 소크라테스는 법정에서 자신에게 제기된 고발과 고소인 그리고 아테네 시민들에게 당당하게 자신의 삶과 철학을 개진하면서 자신에게 부과된 죄목들을 하나하나 반박하였다. 따라서 당연히 변명이 아니라 변론이어야 한다. 또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작품도 이곳에서는 〈젊은 베르터의 고통〉으로 표기하였다. 사실 고전은 현대 우리의 삶과 결코 격리되지 않았다. 진리와 가치는 본래 시공의 제한을 받지 않는다. 맹자의 교우 관계를 보면 이점을 바로 알 수 있다. 맹자는 당시 천하에서 교우할만한 사람을 찾지 못하면 옛사람의 서적으로 통하여 그와 교우할 수 있다고 한다. 그것을 맹자는 상우(尙友)라고 하였다. 이처럼 고전은 우리의 가까운 벗의 교훈 혹은 인생담인 것이다. 필자는 고전을 읽으면서 해석의 적부(適否) 문제에 너무 신경 쓸 필요는 없음을 강조하고 싶다. 동양고전만을 보더라도 학술회의장에서 오역 문제로 가끔 다투기도 하지만, 이는 전문학자 혹은 주석(註釋)쟁이의 몫이고, 고전에서 독특하게 계발 받은 것이 있다면 그것이 고전에 대한 자신의 이해인 것이다. 물론 바뀔 수는 있지만, 적어도 그 시간만큼은 자신과 고전이 그 방식에 따라서 교통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고전의 매력이다. △대표 집필자인 황갑연 교수는 중국유가철학을 전공한 전북대 철학과 교수다. 한국양명학회 회장과 전라문화연구소장을 지냈으며, 전북대출판문화원장 보직을 맡고 있다. 〈동양철학과 문자학〉 〈공맹철학의 발전〉 등의 저서와, 〈심체와 성체(心體與性體)〉 번역서가 있다.

  • 문학·출판
  • 김원용
  • 2014.07.25 23:02

이영환 〈아버지의 부모역할과 아동발달〉아버지, 헌신자에서 양육자로

대부분의 사회에서 아버지는 자녀를 직접 돌보기보다는 어머니가 자녀를 잘 돌볼 수 있도록 지원하는 간접적 방법으로 자녀 양육에 참여하여 왔다. 이러한 아버지의 역할은 산업혁명을 거치면서 생계유지자로서의 도구적 역할이라 규정되어 왔으며, 어머니는 돌봄의 주체로서 표현적 역할을 담당해 왔으며, 아동학의 주요 연구주제도 어머니가 아동발달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가에 초점을 두어 왔다. 그러나 20세기 말 기혼여성의 취업 증가 현상은 가족의 삶과 아버지 역할에 변화를 가져 왔다. 더 이상 아버지는 자녀양육에서 잊혀진 헌신자가 아니라 자녀의 삶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적극적 양육자로 인식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제 우리사회의 키워드는 아버지이며, 대중매체에서 묘사하는 아버지 모습은 친구같은 아버지, 양육적인 아버지이다. <아버지의 부모역할과 아동발달>은 과거의 좋은 아버지가 좋은 부양자였다면, 오늘날, 그리고 미래사회에서 좋은 아버지는 어떻게 정의될 수 있을까, 충분히 좋은 아버지가 되고 싶어 하는 남성들에게 국가와 사회는 무엇을 어떻게 지원하여야 하는가 하는 문제를 담고 있는 책이다.〈아버지의 부모역할과 아동발달〉은 모두 4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에서는 진화론적 관점과 사회문화적 관점에서 아버지를 살피고 있다. 수컷이 아버지가 되는 진화적 과정을 살피면서 인간과 동물을 구분하는 새로운 단서로서 아버지의 돌봄을 이야기한다. 거의 모든 조류와 포유류의 경우 번식을 위한 짝짓기가 끝나면 수컷은 새끼에 대한 투자를 중단하지만 인간 아버지는 지속적으로 자녀를 돌보며, 특히 부부관계가 끝난 뒤에도 자식에게 계속 투자하는 유일한 종인 것이다. 또한 아버지에 대한 사회문화적 기대는 어머니 역할에 비해 매우 다양하다. 가부장적 아버지, 생계부양자 아버지, 양육적인 아버지 등 아버지 모습은 시대의 흐름과 사회문화적 변화 속에서 진화되어 왔으며 지금도 진화중이다. 2부에서는 한국 아버지의 부성(父性) 찾기를 시도하였다. 전통사회의 아버지는 가장으로서 자식들의 엄격한 훈육자였으며, 1960년대 산업화 이후에는 생계부양자 역할이 강조되었다. IMF를 거치면서 아버지들은 가부장적 권위의 쇠퇴와 실직, 가족으로부터의 소외와 삶의 고단함을 말하기 시작하였다. 아버지가 생계부양자 역할에 버거워하고 있는 반면, 어린 자녀를 둔 기혼여성의 취업 증가라는 사회적 변화에 따라 아버지의 자녀양육참여는 피할 수 없는 시대적 요구이다. 아버지들에게 자녀 돌봄에 대한 책임은 일과 대체되는 것은 아니며, 아버지의 일에 자녀 돌봄이라는 영역이 추가되는 것이다. 오늘날의 한국 아버지들은 자녀를 위해 더 많은 시간 일을 해야 하지만, 자녀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이 좋은 아버지라는 양립하기 어려운 갈등에 마주하고 있는 셈이다. 3부에서는 아버지가 아동발달에 미치는 직접적, 간접적 영향에 관한 연구들을 정리하였다. 아버지의 양육 참여는 자녀의 사회?정서 및 성격 발달, 인지 발달과 성취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며, 아버지 자신의 심리적 성숙과 조화로운 부부관계 및 친밀한 아버지-자녀 관계 형성에 긍정적이다. 특히 3부 9장에서는 아버지-자녀관계에서 관심을 두어야 하는 9가지 이슈를 다루고 있다. 세상에 태어나서 첫 1년 동안 어린 아기가 아버지를 통해서 세상에 대한 신뢰를 배우는 애착발달에 대한 설명, 걸음마 시기 자녀와 쉽게 상호작용하기 위한 자녀의 기질에 대한 이해, 자녀양육에서 아버지의 온정과 통제 등 9가지 이슈는 아버지들이 아동발달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양육적 아버지가 되는데 중요한 팁을 제공한다.4부에서는 21세기 아버지인 새로운 아버지를 위한 제언을 하고 있다. 오늘날의 아버지들은 좋은 부양자를 넘어서 자녀의 삶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하고자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생활수준의 향상과 자녀양육비용의 상승으로 생계유지자 역할이 오히려 더 강조되고 있으며, 사회적경제적 성공을 이루지 못한 아버지들은 가족을 제대로 보살피지 못한다는 좌절감에 빠져들게 한다. 반면 어머니의 급격한 취업률에 비교하여 아버지의 자녀양육참여는 증가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오늘날의 아이들은 과거의 아이들보다 부모와 함께 하는 시간이 현저하게 감소되었다. 세계 여러 나라들이 아버지들이 자녀 양육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도록 하기 위해 어떤 정책들을 펼쳤지 살피면서 아버지가 자녀출산과 양육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가족정책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앞으로의 사회는 어머니의 취업이나 이혼의 증가와 같은 가족구조의 변화로 인해 어머니 없이 성장하는 아동은 더욱 많아질 것이다. 아버지의 양육 참여를 이끌기 위해서는 아버지들 스스로 자녀양육 참여의 필연성과 중요성을 인식하여야 하며, 이를 지지하기 위한 정책적, 법적, 제도적 뒷받침이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이다.*저자는 전북대 아동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한국보육지원학회장을 지냈다. 〈마음의 힘 키우기〉(공저) 〈사이좋은 친구, 함께하는 우리〉(공정) 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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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07.18 23:02

향토문화연구인 정평모씨 〈성명학 기행〉시대 따라 변화되는 이름 진화과정 분석

요즘 불경기가 계속되다보니 취업이나 생계불안, 불투명한 미래걱정으로 사주, 점, 관상, 수상을 보러 다니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성명학도 한 축을 형성하여 대중의 인기를 독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매스컴에서 방영되고 있는 현실이다.출생신고로 이름을 등록하는 일은 시구읍면동에 신고하면 되지만 개명은 법원의 문턱을 직접 넘어야 한다. 그러나 요즘은 개명이 쉬워졌다. 원하는 이름으로 쉽게 개명할 수 있게 하라는 대법원 추가결정이 있은 후 부터이다.필자는 이 책에서 성명학이 절대적인 것이 아니고 사주의 보완관계로서 성명학이 운용된다고 강조했다. 특히 작명가분들에게는 편협 된 작명이론과 소홀함을 경고하고, 일반 독자들에게는 보완을 중요시함으로서 집착과 맹신(盲信)을 경계하도록 권장했다.이 책은 입문, 기행, 실전작명, 이론 편으로 구분하여 편집했다. 필자 자신이 호적과 가족관계 등록업무를 담당하면서 주민들과 나눈 따뜻한 대화를 경험담으로 실었다. 또한 기행 편에서는 장수지역에서 활동하는 작명가들을 만나 뵙고 그들이 전수하는 비전을 진솔한 기행담으로 기록했다. 특히, A B C D설로 나뉘어져 갑론을박하는 성명학 이론을 심층 분석함으로서 보편성과 학문의 일치점을 찾아 방향을 제시했다.이 책은 일반 작명가들과 같이 자신의 이론을 정리하여 책으로 편집한 것이 아니라 각각의 작명이론을 분석하여 성명학의 바른 해석을 제시하고자 한 독특한 편집이다.필자는 현직 공무원이다. 따라서 인용하고 있는 자료 또한 공부상으로 관리되고 있는 실증 자료를 활용했다. 시대를 따라 변화되는 이름의 진화 과정을 분석해 보고, 공무원, 수형인, 검사장에 이르는 이름을 성명학 이론에 붙여서 비교도 해 보았다. 전현직 대통령들의 이름을 주역으로 해설한 부분은 독자들의 이목을 집중시키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박근혜 대통령 선천수 42良弓絶絃 來賊何防 좋은 활에 줄이 끊기니 오는 도둑을 어찌 막을까.天地發動 求于盛策 하늘과 땅이 발동하니 구하면 계책을 얻으리라.因人成事 豈非碌碌 사람으로 인하여 일을 이루니 어찌 푸르지 아니하랴.福星來助 高名雨世 복성이 도우러 오니 이름이 높아 세상에 비를 내린다.박근혜 대통령 후천수 54名魁桂籍 紫府文章 빼어난 이름을 과거급제에 올리니 문장으로 관청에 출입한다.日中爲市 橫財豊足 밝은 낮에 시장을 여니 횡재하여 풍족하다.金鳴玉振 其聲大遠 금옥의 귀한 이름을 떨치니 그 소리가 크고 멀리 들린다.才高文章 靑雲力能致 재주와 문장이 높으니 능력과 힘이 출세에 이른다.이 책은 그동안 장수문화지에 Ⅰ,Ⅱ,Ⅲ,Ⅳ호로 연재가 되어 지역민들의 호응은 물론 검증을 거친 책이다. 출판을 위해서 그동안 보완 수정을 함으로서 그 깊이가 돋보일 것이다.공무원도 자기 분야에 대해서 책 한 권 정도 펴낼 수 있는 전문성을 갖추어야 한다고 본다. 일처리를 신속하게 끝내는 메마른 감성보다는 업무를 민원인과 함께 공감하면서 즐기기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향토문화연구인 정평모씨(59)는 장수 출신으로, 전라북도와 지역혁신협의회 공동으로 개최한 지역혁신대회에서 대상과 동상을 동시에 수상했다, 족보 인물사 단행본 〈화지산〉, 꽁트 〈진주 빛 30년 사랑〉 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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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06.27 23:02

양병호 교수 〈인지시학의 실제비평〉현대문학 연구자 위한 이론·비평서

책이 쏟아진다. 책 공해라는 말도 나온다. 그러나 책 대부분에는 저자의 혼이 담겨 있다. 본보는 저자로부터 저술의 동기와 배경, 내용을 듣는 기획을 마련했다. 책에 대한 이해를 넓히는 자리가 될 것이다.국내에서 인지시학에 대한 연구가 촉발된 것은 90년대 중반 인지의미론자인 조지 레이코프, 마크 터너 등의 저서가 번역되면서부터다. 이후 언어학 분야에서는 인지의미론 영역이 활발하게 연구되었고, 문학 분야에서는 은유 연구를 중심으로 인지의미론을 문학에 적용한 연구들이 대거 발표되었다. 본래인지시학이라는 용어가 처음 사용된 것은 이보다 앞서 1983년 헝가리 출신의 연구자 르우벤 춰에 의해서였는데, 이것이 국내에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2004년부터다. 이때부터 인지시학은 초기 은유 연구에서 벗어나 시어 및 운율, 시에 사용된 시나리오, 개념적 혼성 공간 등에 관한 연구, 소설에서의 문체, 인물, 플롯 및 우화에 관한 연구 등을 포함하는 폭넓은 스펙트럼을 가진 하나의 시학을 형성하기 시작하였다.인지시학(Cognitive Poetics)은 시인의 생각과 정서가 어떻게 텍스트로 기호화되는가, 독자가 시 텍스트를 어떠한 절차와 과정을 거쳐 인지하는가에 주목한다. 이와 같은 인지적 절차를 규명하고 연구하기 위해 인지시학은 언어학뿐만 아니라 심리학, 컴퓨터과학, 생물학, 문화인류학, 정신분석학 등을 넘나드는 제학문적 입장을 취하는 문학에 대한 새로운 사유 방식이다. 따라서 인지시학을 원용하여 시를 해석하고 이해하는 것은 이해주체자의 주체적인 의미의 구축과 탐색을 통해 창조적 이해에 도달할 수 있다. 인지시학에서 주목하는 것 중의 하나가 은유 연구인데, 은유는 단순한 언어 표현의 문제가 아니라 온갖 것들에 대한 사고의 문제라는 것이 인지시학의 입장이다. 인간의 개념 체계는 본능적으로 은유적이다. 하나의 사물을 인지할 때 다른 사물이 지니고 있는 형태나 속성 중 그와 비슷한 것을 선택하거나 인접적인 것을 상호 결합시키면서 이를 인지하는 것이 보편적인 현상이다. 그리하여 은유는 사물의 감춰진 속성을 인지하는 주요한 도구적 기능을 담당한다. 이렇게 인간의 개념 체계의 중요한 기능을 담당하는 은유가 인지적 패러다임에서 매우 중심적인 관심사가 된 것은 다름이 아니라 은유의 토대가 인간의 경험 속에 뿌리내리고 있다는 점 때문이다. 인지시학은 언어 구조의 비자의적이며 동기화된 성질을 강조하여 주목한다. 따라서 은유의 체험적 바탕에 대한 언급은 흔히 제기되는 문제인 언어와 문화 사이의 관계에 대한 의미 있는 논의를 촉발시킨다. 국내 인지시학의 안내자로 전북대 이기우 교수를 꼽을 수 있는데, 1994년 번역된 <시와 인지>를 비롯하여 많은 인지시학 관련 저서들을 번역하였다. 그러한 흐름을 지금은 전북대 국어국문학과 시문학 연구팀이 이끌어가고 있으며, 이미 다수의 학위 논문 및 소논문들이 발표되었다. 필자와 연구자들이 이번에 공동으로 번역 출간한 <인지시학의 실제비평> 또한 그러한 연구의 연장선에 있으며, 현재도 서너 건의 번역 및 저술 작업이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그 동안 국내에 소개된 인지시학 관련 서적들은 대부분 인지시학 방법론에 대한 개론서 수준이었다. 그러나 이번에 출간된 이 책은 그간 현대문학 분야에서 연구되어 온 인지시학 이론들을 직접 작품에 적용하여 분석한 12편의 실제 비평을 모아놓은 책이다. 하나의 이론으로서 자리매김한 인지시학을 실제 작품에 적용한 것으로 향후 인지시학 연구의 활성화에 폭넓게 기여할 것으로 자랑하고 싶다.이 책을 구성한 12명의 저자들은 편집자인 제라드 스틴, 조안나 개빈스를 비롯하여 피터 스톡웰, 엘레나 세미노, 르우벤 춰 등 현재 세계 인지시학 분야를 이끌고 있는 핵심 연구자들이며, 필자와 함께 번역에 참여한 김혜원, 신현미, 정유미 연구자 또한 인지시학 분야에서 활발하게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 신진 연구자들이다.<인지시학의 실제비평>이 일반인들에게는 아직 생소한 인지시학을 널리 알리고, 해당 분야 연구자들에게는 획기적인 길잡이 역할을 했으면 좋겠다.△ 전북대 양병호 교수(국문과)는 <시문학>으로 등단한 시인이며, <구봉서와배삼룡> <간의공터> <한번 참말로 맑게 반짝이더라> <그러나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등의 시집을 냈다. <한국 현대시의 인지 시학적 이해> <시여 연애를 하자> <그리운 시 여행에서 만나다> <한국현대문학의 이해> 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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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06.20 23:02
문화섹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