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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완규 교수의 '마한이야기'] (상) 보물로 지정된 봉덕리 금동신발

사적 제531호 고창 봉덕리 고분군에서 출토된 금동신발이 30일간의 공고기간을 거쳐 4월 21일 보물 제 2124호로 지정되었다. 완주 갈동유적의 세형동검 거푸집에 뒤이어 봉덕리 마한분구묘 유적에 출토된 금동신발이 보물로 지정됨에 따라 전북지역의 마한 문화의 위상을 재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 금번 금동신발의 보물지정과 관련하여 필자는 2009년도 봉덕리 고분군 발굴 당시의 책임자로서 많은 생각을 갖게 한다. 그것은 지방자치단체의 열악한 재정을 무릅쓰고 지역의 역사 문화적 정체성을 확립하고자 했던 단체장의 강력한 의지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발굴이었기에 지면을 빌어 당시 군수님과 담당자들에 경의를 표하고 싶다. 사실 봉덕리 1호분의 몇 개월에 걸친 발굴조사가 거의 마무리 단계까지도 매장주체부로 축조된 석실들이 대부분 도굴된 상태여서 출토유물 역시 대부분이 토기 파편뿐이었다. 그나마 수습된 중국제 청자의 작은 파편에서 조사단은 학술적 위안을 삼아야 했을 지경이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 했던가. 발굴조사가 마무리될 무렵에 분구의 동남 모서리 근처에서 도굴의 피해를 당하지 않은 석실 1기가 발견되었다. 조사결과 이 석실은 수혈식으로 이미 확인되었던 횡혈식과는 다른 구조의 석실이었는데, 만일 이보다 규모가 월등한 횡혈식 석실이 도굴의 피해를 당하지 안했다면 얼마나 화려한 부장유물이 우리와 마주할 수 있었을까. 참으로 안타까움을 넘어 고대사 복원의 진정한 사료를 무참히 짓밟아 버린 도굴의 만행에 분노마저 느끼게 했다. 마침내 석실 내부의 조사 일정을 정하고, 석실의 뚜껑돌을 들어올리기 전에 작은 틈새로 카메라로 촬영하여 내부를 살펴보니 부장된 유물들이 완전한 상태로 배치되어 있는 것이었다. 그 가운데 피장자 발치쪽에서 한 켤레의 금동신발이 시야에서 빛을 발하고 있었다. 순간 우리 조사단에서 수습할 수 없음을 직감하고 문화재청에 긴급 지원 요청하여 3일에 걸친 작업 끝에 국내에서 가장 완전한 형태의 금동신발을 수습할 수 있었다. 이외에도 은제머리장식, 소호장식유공호 및 그릇받침, 장식대도, 청동제 탁잔, 화살통, 중국제 청자, 각종 토기류 등이 부장되어 있었다.

  • 문화일반
  • 기고
  • 2021.04.27 18:00

[이승우의 미술 이야기] 아동화에 대하여 ②

생리 위생과 정신 위생이라는 말이 있다. 아이가 감기에 감염되면 정신없이 병원에 데리고 간다. 생리적 위생에 철저하다. 그러나 그런 부모들도 아이들의 정신 위생에는 무관심하다. 아이들 나름대로 불만과 스트레스가 쌓이는데 그것을 해소하여 주지 못하면 정신적으로 타격을 받게 된다. 아빠가 엄마에게 폭행을 할 때 바라보는 아이는 나름대로 평가를 하는데 힘이 없으니 응징할 수 없다. 이런 것들을 자발적으로 해소하여 주는 것이 그림이다. 특히 글을 아직 모르는 유아기에는 더욱 그렇다. 그림으로 옮겨지면 엄마를 크게 그리고 아빠의 손을 안 그리는 등으로 응징을 하여 불만을 해소할 수 있다. 힘으로 위축이 되는 친구와의 갈등도 친구와의 정이나 가족간의 정도 그런 식으로 표현하여 자기 세계를 구축해 간다. 화가를 시키기 위하여 미술 교육을 하는 것이 아니라 정서의 고른 발달을 위하여 미술 교육이 필요한 것이다. 어린이의 꽃 그림을 보면 대개가 해바라기와 튤립이다. 꽃의 정면은 해바라기를 측면은 튤립으로 표현한다. 그런데 어떤 아이는 튤립만 그린다. 언제나 세련된 꽃을 그리지만 날이 갈수록 다른 꽃을 그리지 못하는 자신에게 스스로 열등감을 느낀다. 그림을 거꾸로 그리는 아이도 있다. 엄마가 항상 자신의 앞으로 그림을 그려주니 반대편에서 바라 본 결과이다. 그림을 검정색으로만 그리는 아이도 있다. 엄마는 마치 큰일이라도 난 것처럼 호들갑을 떤다. 검정색 도화지를 주면 된다. 기억색(Memory Color)으로만 그리는 아이도 있다. 하늘은 하늘색, 땅은 땅색, 얼굴은 얼굴색으로만 그린다. 지금은 조각가로 꽤 알려진 아들이 초1때 학원과 학교의 커넥션으로 미술학원에 다닌 일이 있다. 마침 내가 미술학원에 간 날, 그 날의 주제는 아빠 그리기였다. 아들이 아빠 얼굴을 빨간색으로 그리는 것을 본 학원장이 얼굴을 왜 빨간색으로 하냐면서 친히 살색을 칠하라고 크레파스를 집어 주었다. 그 길로 아들을 데리고 나왔다. 그 아이의 아빠는 맨날 술에 절어 얼굴이 붉은 색이었던 것이다.

  • 문화일반
  • 기고
  • 2021.04.26 17:54

한지 조형예술가 박동삼 작가 ‘한지로 전주 치명자산 세계 최대 성미술품 제작’

23일 완주군에 있는 작업실에서 한지 조형예술가 박동삼 작가가 작품 작업을 하고 있다. /오세림 기자 한지는 재료라기보다 역사성과 정체성이 담긴 문화유산입니다. 우리 정신의 상징성과 포용력을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고유 유산인 한지로 작품을 많이 만들어 전 세계에 우리 문화의 가치를 드높이고 싶습니다. 천주교 전주교구청에서 성지의 정체성과 전주한지를 상징할만한 아이콘을 만들어달라는 요청을 받아, 한지로 성미술품 작업을 하고 있는 한지 조형예술가 박동삼 작가의 다짐이다. 지난 23일 완주군에 있는 작업실에서 만난 그는 마무리 작업에 몰두하고 있었다. 다양한 신자의 모습을 판각한 목판에 한지를 넣은 뒤, 이들을 주물처럼 다시 떠내는 과정이다. 완성된 작품은 부조형식의 입체적인 조형성을 갖는다. 작품명은 실루엣 124. 이름처럼 작품에는 교황청에서 시복을 기다리는 복자 124명이 두 손을 모으고 기도하거나 무릎을 꿇고 있는 실루엣이 묘사돼 있다. 눈에 띄는 특징이 있다. 사람 얼굴에 눈, 코, 입을 묘사하지 않고 반추상적으로 선으로만 오롯이 표현한 점이다. 박동삼 작가는 작품은 1801년 신유박해(辛酉迫害)등 당시 종교탄압을 겪은 순교자들의 모습을 표현했다며 주로 선을 이용해 인물을 반추상적으로 표현했고, 작업의 이미지는 대상이 가지는 디테일한 부분을 생략하거나 절제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작업의 근간은 기호의 해체로부터 시작되며 자유롭게 상상하는 기회를 갖는다고 부연했다. 작품이 완성되면 가로 18미터, 세로 5.2미터에 달하는 세계 최대의 현대적 성 미술품이 탄생한다. 지난 2019년 제작돼 경기도 의정부교구 성 프란치스코 성당에 걸린 아멘 작품이 있지만, 실제 규모로는 이 작품이 가장 크다는 게 박 작가의 설명이다. 작업 기간은 기획부터 완성까지 2년이 넘는다. 작품은 오는 5월 4일 전주 치명자산 성지에 지난해 신축된 평화의 전당 로비에 설치될 예정이다. 박 작가는 순교자들이 신앙을 목숨보다 소중히 여긴 이유를 오롯이 드러내는 게 작품의 본질이라며 이는 개별사람이 가지고 있는 가치관과도 연결된다고 설명했다. 즉 내 삶의 가치에서 가장 소중한 것을 찾는 작업이기도 하다고 강조했다. 작품의 재료로 쓰인 한지가 가진 경쟁력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한국 최대의 문화자산인 한지는 세계적인 예술작품으로도 거듭날 수 있다는 것이다. 박 작가는 바티칸이나 대영박물관 등에서 고문서 복원에 기존에 사용하던 일본 전통 종이인 와시보다 한지를 사용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고 화두를 던졌다. 이어 한지조형작품도 마찬가지로 독일, 미국 등 세계시장에서 인정받고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 역사성이 깊은 한지를 토대로 세계문화유산의 자산이 될 수 있는 예술작품을 현실화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 작가는 독일 국립카셀미술대학교에서 조형예술을 전공했으며, 손기정기념관건립 컨텐츠부문 자문위원, 한지산업지원센터(전주) 자문위원 등을 역임했다. 개인전은 Silhouette(갤러리 초이, 서울)을 비롯해 모두 14회를 열었으며, 단체전은 Human and Nature(Kim시 갤러리, 독일 키른) 등 국내외 전시에 다수 참여했다. 수상경력은 제8회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 동상, 독일 카셀미술대학교 Rundgang Preris, 동경국제트리엔날레 입선이 있다. 박 작가는 오는 10월 20일 이탈리아 로마에서 열리는 G20정상회담에 한지 조형전시작가로 초대받아, 작품을 선보일 예정이다.

  • 문화일반
  • 김세희
  • 2021.04.25 17:11

[임진왜란·정유재란 속의 전북] 전주 침공 막은 웅치전투

1592년 7월 진안과 전주의 경계인 웅치에서는 전주로 침공하려는 왜군과 이를 막으려는 관군의병 사이에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 바로 웅치전투이다. 웅치전투는 왜란 초기 어려운 전황에서 병참기지인 전라도를 사수한 전투들의 신호탄과 같은 성격을 지닌다. 실제 조선시대 인물들은 자신이 저술한 문집, 묘비의 행장에 전투의 성과를 높게 평가하고 있다. 당시 왜군도 웅치전투가 가장 큰 손실을 안겨준 전투로 인식했는데, 이는 당대 문헌사료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웅치전투의 실상과 역사적 의의는 크게 주목받지 못하고 있는게 현실이다. 이번 기사에서는 웅치전투 전개과정과 전장의 주역, 당시 중추인물인 유성룡의 평가, 임진왜란사에서 가지는 의의 등을 재조명한다. 1592년 4월 임진왜란 발발 직후, 전북은 한양과 함경도, 경상도와 달리 왜군의 공격목표에서 벗어나 있었다. 이 때문에 전라도 내 각 수령들은 미리 방어태세를 갖추고, 관군을 정상적으로 유지할 수 있었다. 조정은 전라관찰사 겸 순찰사인 이광에게 근왕병 10만 명을 이끌고 북상해 왜군을 방어토록 명했다. 전북대 사학과 하태규 교수는 당시 근왕병이 대규모로 출동할 수 있었던 것은 전라도가 다른 지역에 비해 안정적으로 관군을 정비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나 근왕병은 충청도 공주에서 한성 함락과 임금의 피난 소식을 듣고 전주로 돌아왔고, 6월 초 다시 북상했지만 경기도 용인에서 왜군에게 대패했다. 패배 원인은 농민출신 군인의 전투능력 부족과, 선조의 피난소식으로 인한 사기저하, 병력 동원에 대한 반발 등이 꼽힌다. 이때의 패배로 전라도에는 관군이 부족해지는 상황이 발생했다. 특히 전라병사 최원이 관군 2만 명을 거느리고 경기도로 다시 올라가 병력부족 현상은 가중됐다. 이런 가운데 한양을 점령한 왜군은 조선 8도를 분할 지배하려는 전략으로 전환했다. 결국 전라도가 공격대상에 포함됐고, 같은 해 5월 중순부터 공격이 시작됐다. 왜군 6번 대장 고바야카와 다카가게(小早川隆景)와 그의 부장 안고구지에케이(安國寺惠瓊)는 6월 무주 경계를 거쳐 금산 제원으로 쳐들어왔다. 당시 제원을 지키던 권종은 싸우다가 전사했고, 방어사 김종례와 곽영은 고산으로 퇴각했다. 같은 달 23일 금산성이 함락됐으며, 전라도는 왜군의 직접적인 위협에 직면했다. 전라감사 이광은 이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나주판관 이복남, 김제군수 정담 등을 웅치에 보내 방어하게 했다. 웅치는 진안에서 전주로 넘어오는 경계로 반드시 지켜야 할 요지였다. 당시 전 전주만호 황박도 의병 200명을 모아 웅치에 합류했다. 7월8일 웅치에서 본격적인 전투가 벌어졌다. 선조수정실록에 따르면, 정담, 이복남, 황박 등은 당시 왜군 수천 명을 상대로 칼을 휘두르고 활을 쏘며 정면으로 돌진했으며, 이 과정에서 왜군을 대거 죽였다. 그러나 조선군은 병력 수가 부족해 패배했다. 실제 전투는 패했지만, 당대 인물들은 전투의 성과를 높게 평가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왜군의 최종목표인 전주부성 점령을 막아내는 데 기여했기 때문이다. 실제 왜군은 웅치전투에서 전력을 대거 잃어, 전주 인근 안덕원 부근에서 전주부성을 정탐만 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전라감사 이광의 명령을 받아 남원에서 웅치로 가던 동복현감 황진과 관군이 안덕원에 있던 왜군을 격파했다. 그 결과 왜군은 진안으로 물러났다가 7월 17일께 금산으로 완전히 철수했다. 왜군이 당초 목표인 전라도 점령을 실패한 것이다. 임진왜란 당시 조정의 중추인물이었던 유성룡은 당시 상황을 기록한 <징비록>에서 적(왜군)은 정예병들을 웅령(웅치)에서 많이 잃어 사기가 많이 떨어져 있었다. 이 싸움으로 전라도 만은 홀로 온전했다고 했다. 당시 왜군들도 웅치전투를 가장 크게 패배한 전투로 인식하고 있었다. 당대 문신이었던 조익은 저서인 <포저집>에 (임란 이후) 일본 승려 화안이 부산에 왔을 때 이성구가 영위사로 파견돼 그를 접대했다. 그 승려는 일본이 대패한 전투 가운데 첫 번째로 웅치전투를 꼽았는데, 대개 자기네 명장(名將)이 죽었기 때문이라고 기록했다. 조선시대 한문4대가(漢文四大家)의 한 사람으로 꼽히는 택당 이식이 쓴 이광의 행장(죽은 사람이 평생 살아온 일을 적은 글)에는 왜적들 자신이 지금까지도 조선의 3대 전투를 이야기하고 있는데, 웅치의 전투가 그 중 하나로 일컬어지고 있다고 나와 있다. 최근 역사학자들은 임진왜란사에서 웅치전투가 지닌 역사적 가치를 재조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왜란 초기 어려운 상황에서 곡창지대인 전라도를 사수한 첫 전투여서다. 뒤 이어 발발한 이치전투도 승리할 수 있는 계기도 제공했다. 하 교수는 웅치전투 이후 벌어진 안덕원 전투와 연결선상에서 봤을 때, 임진왜란 초기 관군의 실질적인 첫 승리에 해당한다며 개전 초기 관군은 일방적인 패배를 면치 못했다고 설명했다. 게다가 이순신 장군의 한산도 대첩 이전 육상에서 거둔 첫 승리라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며 그 동안 호남이 이순신 장군의 수군에 의해서만 지켜졌다는 시각이 강했다고 부연했다. 국방대학교 노영구 군사전략학과 교수는 전주부성을 지켜내 왜란 당시 군량미가 부족해질 수 있는 상황에 대비할 수 있었다며 이후 조정은 전쟁에 필요한 군량미의 상당수를 호남지역에서 확보했다고 설명했다. 왜란당시 육상에서 활동했던 관군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바로잡을 수 있는 사례라는 주장도 나온다. 하 교수는 임란초기 경상도 수령이나 장수들이 비겁하게 도망하는 사례가 있어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육상 관군은 의병, 수군보다 별 다른 역할을 하지 못했다고 평가받는다며 그러나 전라도 관군은 미리부터 전열을 정비하고 있었으며, 웅치전투 역시 의병과 관군이 화합해서 이끌어낸 승리도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나종우 전북문화원연합회장(원광대 사학과 명예교수)도 다른 지역과 달리 전라도 의병은 공적인 개념에 입각해 관군과 정상적인 관계를 가지려고 노력했다며 그 결과 관군과 의병의 연합작전이 가능했으며, 관군에 자연스레 예속되는 의병도 많았다고 설명했다. △웅치전 주역 김제군수 정담 정담은 야성(평해)정 씨로 1583년 무과에 급제했다. 같은 해 여진족 3만 여 명이 함경도 북부를 침입한 이탕개(泥湯介)의 난을 평정하는 데 공을 세우고, 여러 벼슬을 거치다 1592년 김제군수로 부임했다. 당시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나주판관 이복남, 해남현감 변응정, 의병장 황박 등과 함께 웅치를 방어했다. 그는 전쟁이 벌어졌을 때 웅치에서 후퇴를 거부하고 결사항전을 주장해 종사관 이봉, 비장 강운박형길과 함께 장렬한 최후를 마쳤다. 정담의 활약상과 평가는 사료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서애 유성룡의 <서애선생문집>에는 전라도 웅치의 싸움에서 김제 군수 정담은 종일 힘써 싸워 적을 죽인 것이 헤아릴 수 없으나 끝내는 화살이 다해 군사는 패하고 자신도 죽었습니다고 나와 있다. 이항복의 시문집 <백사집>에는 그의 장인인 권율이 정담을 상찬하기까지 했다. 문집에는 장인 권율장군께서 말씀하시기를 세상 사람들이 내가 주도한 행주싸움의 공이 크다고 하나 사실은 전라도 웅치싸움을 주도한 정담이 가장 크고 다음은 행주 싸움이다라고 하셨다고 돼 있다. 1690년(숙종 16년) 그의 순절을 기리는 정려가 세워졌다. 병조참판에 중직되고, 영해 충렬사에 제향됐다. 시호는 장렬이다.

  • 문화일반
  • 김세희
  • 2021.04.25 16:59

남원시립김병종미술관, 제3회 청소년진로 아트캠프 개최

남원시립김병종미술관이 시각예술분야에 재능 있는 청소년을 위한 축제 제3회 청소년진로 아트캠프를 개최한다. 아트캠프는 서울대학교와 홍익대학교 그리고 지역작가들을 연계한 영재창의미술 교육으로 이뤄질 예정이며, 캠프는 중고등부의 경우 8월 여름방학기간 주말 시간을 활용, 초등부는 5월부터 11월 중 16주 간 매주 토요일에 진행될 예정이다. 특별히 이번 캠프에서는 예술 인재를 위한 다양한 교육프로그램이 이뤄질 예정으로 청소년들이 많은 관심을 갖고 있는 분야인 웹툰과 관련, 인기리에 방영 중인 놓지마 정신줄 나승훈 작가의 특별강연도 준비돼있다. 이로써 애니메이션을 실제 제작해 볼 수 있는 기회와 놓지마 정신줄에 나오는 독특한 캐릭터들의 시끌벅적한 에피소드를 흥미롭게 만나볼 수 있을 예정이다. 이밖에도 이번 캠프에서는 도통초등학교(교장 이문숙)에서 진행하는 창의미술프로그램도 이색적으로 만나볼 수 있다. 초등부를 대상으로 멘토를 이뤄 소통하는 것은 물론, 남원과 김병종 작품을 주제로 시를 쓰고 시에 어울리는 그림을 그리게 해 오는 8월 15일에 시낭송과 시화전을 선보일 계획이다. 또한 캠프에서는 현대미술 탐구 그리고 김병종교수 회화의 한 분야인 닥종이 판화를 제작해 보는 프로그램도 마련돼있다. 남원시립김병종미술관 관계자는 이번 영재아트진로캠프가 창의성과 인성을 겸비한 인재를 양성하는 풍부한 미술교육의 장이 되길 바란다면서 이번 캠프에서 미술을 기반으로 한 인문, 과학, 문화 등 융복합 예술 교육을 충분히 제공하겠다고 말했다. 지원자 신청은 오는 초등부는 23일, 중고등부는 5월 3일까지, 중고등부 20명과 초등부 30명, 총50명(사회적 배려 계층 10%)을 모집할 계획이며, 모든 교육과정은 무료이다. 보다 자세한 사항은 미술관 또는 카카오채널에 문의하면 된다.

  • 문화일반
  • 신기철
  • 2021.04.20 19:46

[최완규 교수의 '마한이야기'] 중국·일본의 주구묘

주구묘는 한국, 중국, 일본에서 모두 발견되고 있는 분묘이지만, 그 출현 시기나 명칭, 그리고 각각 구조특징을 달리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주구묘, 중국은 위구묘(圍溝墓), 일본의 경우는 방형주구묘라 불리는데, 기본적으로 무덤 주위에 도랑을 파서 돌린 축조 방법은 동일하다. 중국의 위구묘는 1959년에 산시(山西) 허우마치아오춘(侯馬橋村)에서 최초로 발견되었는데, 1969년 이 유적에서 군집을 이루고 있음이 또 다시 확인되었다. 이후 섬서성과 산서성, 안휘성, 절강성 등 넓은 지역에서 많은 수의 위구묘가 발견되었고, 그 시기는 춘추말기 진(秦)에서 당나라에 걸쳐 축조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중국의 위구묘는 춘추중기부터 진나라까지 릉원제도의 발전과 특성에 따라 발전되어 왔는데, 주구를 한 단위의 릉원으로 여기고 국군(國君)이 중심인 릉원의 출현을 반영한 것으로 여겼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 알려져 있는 춘추 전국시대 진공(秦公)이나 진왕의 릉원에는 대부분 주구가 돌려져 있다. 1964년 일본 동경 하찌오(八王子)시 우쯔끼(宇津木)에서 처음으로 4기의 주구묘가 발견되었을 당시에는 일본의 학자들도 이 유적의 성격에 대해 잘 인식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 명칭을 환구상특수유구(環溝狀特殊遺構)로 명명할 정도였다. 그 후 주구의 내부에서 작은 구슬과 토기편이 발견되고, 낮은 분구가 축조된 양상을 고려하여 분묘임을 인식하고 방형주구묘라는 명칭을 부여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일본에서 주구묘는 평면 형태에 따라 방형주구묘와 원형주구묘로 구분하며, 야요이시대를 대표하는 분묘로서 일본 전역에서 8000기 이상 조사되었다. 일반적으로 일본의 주구묘는 기나이(畿內)지방을 중심으로 야요이 전기에 축조되기 시작하여 전역으로 확산된 것으로 보고 있다. 3세기후반 이후 방형주구묘는 전방후원분으로 변화하면서 그 규모가 커지고 고분시대에 들어서게 된다. 한국에서 주구묘가 발견되기 이전에는 일본의 주구묘는 중국의 위구묘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것은 중국 진나라 때에 일본으로 이주한 사람들의 자손들이 그들의 전통에 따라 축조한 것으로 보았다. 그 근거로서는 일본에서 가장 이른 시기의 주구묘가 후쿠오까(福岡)의 히가시오다(東小田)의 미네(峰)유적으로 유적 근처에는 진나라에서 불노장생초를 구하러 바다 건너왔다는 서복(徐福)의 전설이 있는데, 이때에 서복과 같이 건너온 사람들의 후손에 의해 축조되었다고 보는 것이다. 최근 연구결과 마한지역에서 발견된 주구묘의 상한은 청동기시대 중기에 해당하는 송국리문화 단계까지 소급될 수 있다는 견해들이 발표되고 있다. 따라서 일본 주구묘의 기원은 중국이 아니라 마한에서 찾을 수 있으며, 일본 야요이시대의 새로운 문화는 마한지역에서 건너간 집단에 의해 주도적으로 형성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최완규(전북문화재연구원 이사장)

  • 문화일반
  • 기고
  • 2021.04.20 17:55

풍석문화재단, UCC공모전 종료, 5개 분야 수상작 선정

풍석문화재단(이사장 신정수)과 풍석문화재단 우석대학교 음식연구소(소장 곽미경)는 제3회 조선셰프 서유구 전통음식 경진 UCC 공모전 6개 분야 수상작들을 선정하고 공모전을 마무리했다고 19일 밝혔다. 수상작은 풍석문화재단 상 3인(팀), 오뚜기 상 4인(팀), 네이버상 4인(팀), 우석대학교 상 4인(팀). 전북일보 상 4인(팀), 참가상 82인(팀) 총 101인(팀)이다. 문화체육관광부 후원으로 오뚜기와 네이버, 우석대학교, 전북일보사의 협찬으로 진행된 이번 공모전은 지난 1월 11일부터 2월 28일까지 네이버TV 플레이리그를 통해 약 50여 일 간 진행됐다. 공모전에는 김치, 포, 떡, 술, 꽃음식, 과자 등 다양한 음식을 주제로 한 105개의 작품(101명)이 출품됐으며, 뛰어난 영상미와 함께 자연 속, 일상생활 속에서 〈정조지〉 속 우리 전통음식이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따뜻한 작품이 다수 포함돼 있었다. 이번 공모전은 조선 최대의 음식백과사전 <임원경제지>속 일곱 권인〈정조지〉와 이를 알기 쉽게 복원해 소개한 <조선셰프 서유구> 시리즈에 소개된 전통음식 레시피를 직접 요리해 보고 소개하는 영상 공모전으로, 풍석 서유구와 〈정조지〉를 비롯한 우리의 전통음식을 대중에게 널리 알리고 영상 공모라는 특성을 활용해 세계 각국의 다양한 사람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고자 기획됐다. 다음은 수상작 명단. △ 풍석문화재단 상 - 미나리 김치와 대합 그리고 메추라기 구이(화양연화), 꽃을 품은 밀전우와 녹두차(100GOM 백웅), 밀전모과와 모과장(김현선) △ 오뚜기 상 - 종이로 숭채만두 만들기(은하수미술관), 밀전우방 1 연근 꿀 조림(황보수민), 말린 국화꽃을 묻힌 경단(호밍), 단순하지만 자극적인 불맛! 각종 채소 구이와 온조탕(와니피디아) △ 네이버 상 - 제주 바다에서 배꿀조림, 밀전리방(제빵왕 김딴딴), 구면(무 칼국수) 만드는법(다이닝테이블), 밀전모과방(빙슈), 속이 편한 무떡(브롱부부)- △우석대학교 상 - K-샤퀴테리 : 돈설로 만든 한반도 전통 샤퀴테리(아조그), <일일주>편(휘호), 고구마 막걸리 만들어 드세요, 다만..(김동건), 무떡(내복병)과 강귤차(몽상가소피씨) △전북일보 상 - 서유구 선생님의 과사두(봉이정), 봉수탕(김준), 꽃보다 고운 저피병(행봉꽁), 과사두(박혜정)-전북일보 상 △참가상 - 달콤한 복분자 꿀조림과 배 꿀조림(달콤써니) 외 81인(팀)

  • 문화일반
  • 백세종
  • 2021.04.19 17:52

[이승우의 미술 이야기] 아동화에 대하여 ⓛ

허버트 리드(Herbert Read, 1893~1868)는 과거 수십 년간에 어린이 예술에 대한 인식은 온 세계에서 혁명적으로 높아가고 있다. 우리들이 향유할 수 있는 예술은 교육의 한 방법이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단순한 교육이 아니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어린이들이 예술성을 갖고 있다는 것은 그 정신 발달에 필요한 시각의 상(像)과 형태의 상에 의하여 자기를 표현하는 것을 말한다. 그들의 회화적인 언어는 그들 자신의 권리를 나타내고 있는 증거이다. 성인의 표준에 의하여 판단을 내려서는 안될 것이다. 그것은 어린이만이 갖고 있는 커뮤니케이션의 한 수단이다. 그것에 의하여 성인은 어린이를 이해할 수 있고 또 어린이의 주위 환경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예술이란 오늘 얻어진 특수한 산물이 아니다. 따라서 우리들은 소수의 예술적 재능을 지닌 어린이를 발굴하여 소수의 예술가 육성을 위한 교육을 할 수는 없다. 우리들은 모든 어린이들을 예술가로 보아야 할 것이다. 이미 예술가인 모든 어린이들을 예술가로 봐줄 것을 강조하고 장려하는 이유는 그들의 감정을 충분히 발달시키며 균형있는 발달을 위해 필요하다.라고 그의 저서 평화를 위한 교육에서 밝히고 있다. 페스탈로치(Johann Heinrich Pestalozz,i 1746~1827)도 미술교육에 대하여 감각을 예민하게 하며 사물을 명확히 관찰할 수 있는 관찰력을 키워주고 이해력과 정신력을 배양시키는데 필요한 교육이라 하였다. 어린이들은 그리고 만들고 꾸미면서 상상력을 높인다. 웅덩이 고인 물에 종이배를 띄우고도 상상력만은 오대양 육대주를 누빈다. 그러니 그 미술 교육이 선생님을 주제로 이루어진다면 매우 위험하다. 어린이가 주체가 되어야 한다. 선생님은 다만 미술 활동을 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하고 동기유발을 강하게 시켜주는 것에 신경을 써야 한다. 선생님이 교육하는 미술은 기술상의 문제는 해결될 수 있지만 어린이들의 상상력이나 창조력은 그만큼 감소되기 때문이다. 피카소(Pablo Ruiz Picasso, 1881~1973)의 창조된 예술은 언제나 서툴다는 말을 상기해야 한다. 모방된 예술은 세련될 수는 있어도 창조력이 떨어진다.

  • 문화일반
  • 기고
  • 2021.04.19 17:49

군산문화재단 설립 ‘시동’

군산문화재단 설립에 시동이 걸렸다. 군산시는 민선 7기 공약사항인 군산 문화재단 설립 준비를 위한 첫 걸음으로 재단 설립 타당성 검토 연구용역 착수보고회를 가졌다고 19일 밝혔다. 이번 연구용역은 전북연구원(책임연구자 김동영 박사)이 맡는다. 전북연구원은 오는 8월말까지 문화예술 진흥을 위한 정책추진기관으로 재단의 역할조직인력예산 등의 구성은 물론 운영방안과 경제성수행방식의 적절성파급효과 검토 등을 목적으로 연구 활동을 벌일 계획이다. 이를 통해 군산시 문화예술 현황 분석과 재단의 역할 및 필요성, 비전 및 운영방안 연구 등 지역의 특수성과 차별성을 고려한 재단의 기본모델을 도출해 낸다는 방침이다. 또한 재단 설립 기초조사, 국내 지역문화재단 사례 등에 대한 문헌환경분석과 주민전문가 의견 수렴 등을 거쳐 초중장기 대상사업과 향후 5년간 지방재정에 미치는 영향 등도 조사할 예정이다. 시 관계자는 문화재단의 설립은 가장 먼저 주민과의 공감대를 넓히는 작업이라며 시의 하부기관이라는 잘못된 인식을 버리고 재원과 문화정책 면에서 독립성을 갖춘 문화플랫폼 기능을 가진 차별화된 문화재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편 군산문화재단 설립의 필요성은 지난 2010년부터 제기됐다. 당시 시는 지역 문화예술의 체계적인 시스템 구축과 문화 활동 활성화 등를 위해 100억원 규모의 군산 문화재단 설립을 추진한 바 있으나 이후 더 이상 진전되지 못했다. 그러다가 지난 2018년 강임준 시장이 공약사업으로 내놓고, 지난해 3월 군산시의회에서 군산문화재단 설립 및 운영에 관한 조례안이 통과되면서 탄력을 받은 상태다.

  • 문화일반
  • 이환규
  • 2021.04.19 17:20

개인레슨, 학원 등 국립민속국악원 3명 규정 위반

남원에 있는 국립민속국악원 단원들이 코로나19 확산세 속 규정을 위반하고 겸직과 외부활동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18일 국민의힘 김예지 의원실이 문화체육관광부 등에게 제출받은 국립예술단체 단원 복무점검(겸직외부활동) 결과 자료에 따르면, 국립국악원 산하 민속국악원 단원 3명이 겸직외부활동 규정을 위반한 것으로 나타났다. 예술단체 단원을 포함한 공무원 복무관리 규정을 보면, 외부활동은 사전 허가를 받아야 하고 보수로 받는 금액도 신고해야 한다. 이런 규정을 따르지 않고 외부에서 개인 레슨, 학원 강의 등을 한 경우엔 단체에서 징계할 수 있다. 이에 따라 위반자 3명 가운데 1명이 징계, 2명이 주의를 받았다. 문체부는 보고서에 예술단체에서 자진신고자 등 가벼운 사안은 구두 또는 서면으로 주의 조치를 했으며, 이보다 사안이 무거운 경우 경고했다며 다만 일정기간 반복되거나 근무 시간안에 외부활동을 했을 경우 견책, 감봉, 정직 징계를 했다고 밝혔다. 코로나 시국에 부적절한 행동이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실제 국립발레단 단원 3명은 지난해 2월 자가격리 기간에 특강 또는 해외 여행을 가서 논란이 된 사례가 있다. 전북 민간공연기관 관계자는 기관과 민간예술단체 구성원들도 코로나19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 경제적으로 여러운 상황에서도 여러 활동들을 자제하고 있다며부적절한 사례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규제보완의 필요성도 제기된다. 국립단체의 임금 수준을 보완하거나 외부 활동 자체를 양성화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와 함께 민간단체에 속한 예술인들의 어려움까지 고려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피아니스트 출신인 김예지 의원은 기본 수당 등 처우가 좋지 않아 외부활동을 하는 단원들이 많다면서 다만 국립단체에 소속되지 못한 예술인들의 입장도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해결책을 내놓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근무시간 내 활동은 엄중히 점검하고 금지해야 하지만 근무시간 외 활동은 점검 강화만이 아니라 예술 분야별기관별 특성과 현실을 반영한 논의가 필요하다며 국립예술단체에 소속되지 않은 예술인들에 대한 상생 방안을 고려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부연했다. 앞서 문화체육관광부는 올해 김 의원실에 자료를 제출하기 전 2018년 1월부터 지난해 3월6일까지 국립국악원, 국립발레단, 국립중앙극장 등 17개 예술단체를 대상으로 국립예술단체 단원 복무점검(겸직외부활동) 조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 6개 단체에서 179명의 위반 사례가 있었으며, 위반자는 국립민속국악원 상위 기관인 국립국악원이 69명으로 가장 많았다.

  • 문화일반
  • 김세희
  • 2021.04.18 17:21

고창군, 공공미술 프로젝트 마무리

고창군의 공공미술 프로젝트가 성공적으로 마무리됐다. 고창군 공공미술 프로젝트 사업은 국가시책사업으로 코로나19로 침체된 지역 예술계에 지속적 창작활동을 지원하고, 평범한 일상 공간을 군민들의 쉼과 휴식의 문화공간으로 재생하기 위해 추진됐다. 이번 프로젝트는 지난해 8월부터 도예, 회화, 목공, 조각 등 다양한 분야의 8개 작가팀과 지역미술가 42명이 지역주민들과 소통하며 함께했다. 각 마을별 프로젝트로는 △호암신월마을(고창읍)=별을 따자, 희망. 아이들이 꿈을 잡는 형태의 기둥을 제작. 사람의 형상 속에 마을주민들의 소망을 적은 돌을 넣어 공동체를 상징하는 작품 제작 △모양천북동촌동산마을(고창읍)=모양성 성곽을 모티브로 한 모양성 우편함(고비) 설치 △할매바위(아산면)=암벽가 모습을 송악으로 조경하고, 조명을 설치해 밤에도 감상할 수 있는 그린바우 자연 조형물 설치 △마명마을=버스 정류장을 색다르게 꾸미고, 벽면에 주민이 직접 참여한 칠보작품 전시. 주변엔 마을안녕을 기원하는 도자 솟대를 설치 △운곡습지자연생태공원=수달, 다람쥐, 사슴, 고라니 등 동물의자 10점을 제작 설치해 아이들이 놀며 앉아 쉬어갈 수 있는 휴식공간 제공 △화산마을(심원면)=하모니2121. 주민들이 함께 어울려 대대손손 번영하기를 바라는 염원 담은 석재조형물 제작 △신기마을(신림면)=빈 집의 구석진 공간을 문화공간으로 재창조 등이다. 군은 이번 공공미술 작품을 통해 그간 무의미했던 마을공터, 빈집, 레저 공간을 새로운 시각으로 재탄생시키면서 인지도 제고와 함께, 지역 명물장소로 자리매김하길 기대하고 있다. 백재욱 군 문화예술과장은 이번 공공미술 프로젝트를 통해 낡고 후미진 공간이 예술가들의 손을 통해 힐링공간으로 새롭게 태어났다며 코로나19로 위기에 처한 지역 예술인들에게 작으나마 힘이 되고 군민들의 일상 가까이에서 위로를 받을 수 있는 문화적 명소가 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 문화일반
  • 김성규
  • 2021.04.18 17:03

장수군 꿈꾸는 예술터 조성사업 진행 갈등

폐교한 장안초등학교(장수군 소재)를 문화예술교육 전용공간으로 조성하는 꿈꾸는 예술터사업이 시행주체들의 갈등으로 지체되는 모양새다. 사업 시행주체인 장수문화예술협동조합(이하 조합)과 이들과 근로계약을 맺어온 전)꿈꾸는사업단이 지난 2월 취임한 조합 신임 이사장이 실시한 감사와 업무지시를 두고 마찰을 빚고 있기 때문이다. 꿈꾸는 사업단은 이사장의 행동이 자격 없는 감사와 월권행위라고 주장하고 있고, 조합은 적법한 절차였다고 반박하고 있다. 전북 문화예술계는 이를 두고 문화예술교육을 위한 지역 거점사업을 추진하는 만큼 빠른 시일 내에 갈등을 해소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13일 장수군 등에 따르면,꿈꾸는 예술터는 폐교된 장안초등학교를 활용해 운영하고 있는 장안문화예술촌을 문화예술교육 전용공간으로 전환하는 사업이다. 이 공간에서는 지역의 예술(교육)가들이 문화예술교육 콘텐츠를 개발할 수 있도록 지원할 계획이다. 사업은 4월부터 본격적으로 추진된다. 그러나 해당 사업을 앞두고 시행 주체들의 갈등으로 지체되는 모양새다. 전)꿈꾸는 사업단은 꿈터 사업이 조합과 이사장의 비상식적인 행동으로 한 달이 넘게 멈추었지만 장수군청은 지속적으로 방관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사업단은 이사장은 등기도 되기 전인 지난 2월 22일 사무실을 점검하고, 3월 23일까지 자격 없는 감사를 진행했다며 이 기간 동안 우리는 사무실에 출근하지 못했고, 이사장의 직권남용과 월권행위는 계속됐다고 부연했다. 이어 사업단은 업무를 진행하기 위해 최대한 노력했으나 이사장이 본인의 허락 없이 업무를 진행할 경우 불이익이 발생할 수 있다는 협박까지 했다고 했다. 또 장수군청에 이런 상황을 보고하고 도움을 요청했으나 장수군은 어떤 중재나 상황 파악조차 이뤄지지 않았다며 사직서를 제출한 2일까지 장수군청, 사업단, 조합 면담은 한 차례도 없었다고 했다. 반면 조합은 이를 반박하고 있다. 이서하 이사장은 이사장으로서 업무지시를 한 것이고, 감사 등 모든 절차는 변호사의 법률자문과 노무사의 자문을 받고 진행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사업단에서는) 사무실에 출근하지 못했다고 하는 데, 조합은 열쇠를 제공받고 근무를 하라고 얘기했다며 오히려 (사업단이) 출근을 안 했다고 주장했다. 또 감사가 끝난 뒤, 대화하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여러 차례 전화와 문자를 했다며 (사업단에서) 왜 이런 입장과 태도를 취하는 지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장수군청 관계자는 사태를 방관하지 않았고, 사업단하고 조합이 대화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드려고 노력을 했다며앞으로도 서로 잘못된 부분은 사과하고 수용할 수 있도록 갈등을 중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도내 예술계 관계자는 자칫 양측 간 기득권 싸움으로 비춰질 수 있고 문화예술 생태계 조성에도 전혀 도움이 안된다며양측이 지혜롭게 갈등 국면을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문화일반
  • 김세희
  • 2021.04.13 19:05

[전북문학관 지상강좌 - 한국문학의 메카, 전북] (44) 시대를 직시하고 구원(救援)을 노래하다, 석정(夕汀) 연구의 대가, 허소라 시인

시인 허소라(許素羅, 본명은 형석(衡錫), 1936-2020)는 1936년 3월 12일 전북 진안군 진안읍 군상리 499번지에서 부친 허재혁과 모친 송순엽의 3남 5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시인은 금산중앙초와 금산동중학교, 금산농업고등학교를 졸업하였고, 1960년 전북대학교 문리과대학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으며, 고려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과정을 거처 1988년 경희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시인은 전주신흥고와 군산수산전문대학에서 근무한 바 있으며, 1984년부터는 군산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후진 양성과 문학연구에 매진하다가 2001년 퇴직하였다. 군산대의 대학신문 주간, 대학원장 등의 보직을 맡아 대학발전에 이바지했고, 고려대학교 교류교수와 대만국립정치대학 객원교수, 중국연변대학 조문학과 객좌교수로 활동하면서 우리 문학을 해외에 알리는 데 많은 역할을 하였다. 시인의 글쓰기는 전북고녀(현 전주여고)에 다니는 누나에게 편지를 쓰면서부터 시작되었다. 남보다 일찍 글을 깨우친 그는 고사리손으로 누나에게 편지를 보냈는데, 누나의 친구들이 이를 칭찬하자 더욱 고무되어 열심히 편지를 썼다고 한다. 어려서부터 독서와 습작으로 막연하게나마 문학에의 꿈을 키워나가던 시인은 전북대학교에서 신석정 시인을 만나면서부터 인생과 문학의 전환기를 맞게 되었다. 스승 석정은 시인에게 시업(詩業)에 평생을 바치려면 저만한 인격, 저만한 자세, 저만한 애정을 지녀야겠구나 하는 객관적인 표본이 되었다. 석정 선생도 시인에 대한 사랑이 각별했으며, 소라(素羅)라는 필명을 지어주기도 했다. 시인은 1959년 8월 『자유문학』에 「지열」, 「피를 말리는 」, 「도정」 등 시 세 편이 추천되면서 등단했다. 1964년 첫 시집 『목종』을 출간한 이래 『풍장』, 『겨울나무』,『아침 시작』, 『겨울밤 전라도』, 『누가 네 문을 두드려』, 『이 풍진 세상』 등을 출간했다. 산문집으로는 『흐느끼는 목마』, 『파도에게 묻는 말』, 『숨기고 싶은 이야기』와 평론집 『못다 부른 목가』 등을 펴냈다. 석정의 시 세계를 동경해왔던 시인은 저평가된 스승의 문학사적 위치를 바로잡기 위해서 한평생 석정 문학 연구에 매달렸다. 이러한 공로로 시인은 전라북도문화상과 전북대상, 백양촌문학상 등을 수상한 바 있다. 석정 시인과 맺은 인연은 석정 시인의 사후에도 이어졌다. 석정문학회 설립, 신석정문학제 개최, 『석정문학』발간, 신석정 전집 간행, 석정문학관 건립 등에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다. 2009년에는 『조선일보』에 신석정의 미발표시 「인도의 노래」를 발굴하여 공개하였다. 또한, 시인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목가시인, 서정시인으로 알려진 신석정 시인을 시대의 굴곡과 민족의 수난을 외면하지 않은 현실참여 시인, 또는 저항시인인 점을 일깨웠다. 시인은 늘 이렇게 다짐했다. 40여 년간 석정 선생 연구만 해왔는데, 석정이 목가시인으로만 알려진 점이 늘 가슴에 아렸어요. 푸성귀로 덮어 씌워져 있는 가시면류관을 벗기고 싶었습니다.라고. 허소라 시인은 1974년 7월 스승의 장례식이 끝난 뒤, 석정의 유품을 정리하면서 표지도 없이 심하게 파손된 시집 여백에서 13편의 미발표 시를 발굴하였다. 이 작품들은 석정(夕汀)이 암장(暗葬)해 놓은 저항시였다. 가택 수색이라도 당할 경우를 대비하여 들키지 않기 위한 석정 선생 나름의 고육책이 파손된 시집의 속의 여백이었던 것 같다. 시인은 일생의 스승이요 어버이 같은 석정에 대한 존경과 사랑하는 마음을 夕汀 스승 시비 앞에서라는 부제가 붙은 「달을 보며」라는 시를 통해서 다음과 같이 나타냈다. 나보다 먼저 온 풀벌레 울음이 하얀 달빛을 실어내고 있었다 아무리 마다 하고 마다 해도 세상은 지저귀며 다가왔다가 이윽고는 침묵으로 떠난다 보름달 바라보며 기울이시던 술잔, 오석(烏石)이 대신하여 세월을 떠받들고 밤마다 첨벙이던 어둠이 더듬더듬 연못을 빠져나와 음각(陰刻)의 비문 속으로 숨으면 산을 향해 길게 드리운 그림자 하나 단 몇 줄로 요약된 생애를 성큼성큼 건너뛰며 영원 쪽으로 가고 있다 누워 있음과 서 있음의 차이 그러나 눈 감아도 산이 되고 나무가 되어 우리를 겹겹으로 다스리나니 -「달을 보며」 허소라 시인은 그의 마지막 시집 『이 풍진 세상』을 펴내면서 첫 시집 『목종』(1964)의 자서(自序)를 쓸 때는 세상에 내놓는 최초의 연서인 양 수줍고 설레었는데, 근 20여 년 만에 내놓는 제8 시집의 자서(自序)를 쓰려니 마치 마지막 유서를 쓰는 듯 만감이 교차한다.라고 하였다. 오하근 평론가는 시인은 이 시집을 통하여 그가 살아온 능욕의 구렁텅이에서 시대를 건지려 노력했고, 젊은이들의 기지와 풍자로 시대상을 조명하였으며, 또한 노년의 예지와 사랑으로 평화와 평등을 설파하였다라고 평가했다. 또한, 시인의 삶은 아래 시 「진달래」에서 보듯 한세상으로 덮씌워 은폐되고 실제로 존재가 상실된 세상에서 은근과 끈기의 삶을 추구했던 것 같다. 진달래 타는 넋 봄도 지천으로 다발지고 사랑 그리운 날 너를 보니 한세상 진하게 글썽이고 -「진달래」- 허소라 시인은 지난해 12월 16일, 향년 84세로 영면하였다. 당시 김남곤(전 전북일보 사장) 시인의 「소라여, 소라여!」라는 조시(弔詩)의 내용처럼 지금쯤 허소라 시인은 그립던 석정(夕汀)님을 만나 목마 타고 흐느끼는 어여쁜 밀어들을 더 고운 이야기로 꽃피우고 있을 것이다. 참고자료 : 이준호 <허소라, 자기 구원과 시대를 증언하는 시> /송일섭 전라북도문학관 학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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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4.13 18:13

[최완규 교수의 '마한이야기'] 주구묘의 성격

한국에서 주구묘의 발견은 마한의 분묘문화를 정확하게 이해하게 되었고, 나아가 백제문화와 뚜렷이 구별되는 마한문화의 정체성 확립에 기준이 되는 매우 중요한 고고학 자료라는 점에서 큰 의의를 찾을 수 있다. 그리고 주구묘의 발굴조사를 통해 출토된 토기들은 마한 토기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으며, 주구묘가 분포하는 공간적 범위는 마한의 정치 문화의 영역과 일치되고 있다는 점이다. 주구묘의 축조 방법을 보면, 우선 주구(도랑)를 굴착하여 그 흙으로 낮은 분구를 쌓아 무덤의 외형을 만든 다음, 분구의 중앙에 토광을 되파서 매장부를 만들고 시신을 안치한 후 다시 흙으로 성토가 이루어진다. 그렇기 때문에 일반적인 무덤에서처럼 시신을 지하에 안치하는 것이 아니라, 지상에 안치하게 되는 것이다. 또한 주구에서 옹관이 안치된 예가 있고, 분구의 대상부에서도 옹관이 안치된 예가 있어 다장도 이루어진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곧 직계 혈연관계에 의한 가족장적인 성격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주구묘는 마한 성립기의 토광묘와는 전혀 다른 속성을 가지고 있어 두 묘제는 계승적 관계 속에서 발전된 것이라 할 수 없다. 곧 토광묘와 주구묘는 분묘 축조 전통이 전혀 다른 집단에 의해 축조된 것임을 알 수 있는데, 토광묘는 중국 동북지방에서 철기문화와 점토대토기문화를 가지고 내려온 집단의 산물로 볼 수 있다. 이를 뒷받침하는 문헌 자료로는 『삼국지』와 『후한서』에 기록된 고조선 준왕의 남천 기사라 할 수 있다. 『후한서』 위서 동이전 한조에 조선왕 준(準)이 위만에게 패하여 자신의 남은 무리 수천을 거느리고 바다를 건너와 마한을 공격하여 쳐부수고 스스로 한왕(韓王)이 되었다. 준의 후손이 절멸되자 마한 사람이 다시 자립하여 진왕(辰王)이 되었다라 하여 고조선 준왕계와 마한계는 계통이 다름을 적시하고 있다. 한반도 서해안 일대에는 마한 성립 이전에 청동기 문화의 중기에 해당하는 소위 송국리 문화가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었는데, 주요 특징으로는 원형 집자리와 계란 모양의 송국리형 토기를 들 수 있다. 그런데 보령 관창리, 서천 당정리, 익산 영등동 등을 비롯한 주구묘 유적에서는 송국리 문화의 유적들과 중복되어 발견되었다. 특히 주구 내에서 송국리 토기편들이 확인되고 있어 송국리 문화 단계에 주구묘가 특정지역에서 축조되고 있을 가능성이 충분하다. 특히 목관 나이테 분석에 의해 기원전 445년으로 밝혀져 일본에서 야요이시대의 가장 이른 시기의 주구묘인 효고현(兵庫縣)의 히가시무코(東武庫) 2호분에서 출토된 한반도계 송국리형 토기는 일본 주구묘의 기원이 한반도에 있으며, 한반도 주구묘의 축조연대도 송국리 문화단계까지 소급될 수 있는 증거라고 할 수 있다. 결국 한반도 서해안 일대에 뿌리 깊게 자리하고 있었던 청동기시대 중기의 송국리 문화단계에 이미 주구묘가 축조되고 있었고, 그것은 한(韓)문화의 뿌리라 말 할 수 있는 것이다. 마한 성립기 중심세력인 고조선계 준왕의 절멸이후 새로이 등장하는 마한의 중심세력은 한의 기층세력으로 새롭게 부활한 주구묘 축조집단으로 볼 수 있다. /최완규 전북문화재연구원 이사장

  • 문화일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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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4.13 18:02

“개성 만점 손글씨로 쓴 편지·일기 뽐내요”

전국 초등학생 여러분! 나만의 독특한 손글씨로 글쓰기에 도전하세요! 혼불기념사업회와 최명희문학관, 전북일보사가 대한민국 최고의 개성 만점 손글씨 주인공을 찾는다. 올해로 열다섯 번째인 대한민국 초등학생 손글씨 공모전. 한글의 우수성과 아름다움을 알리기 위해 지난 2007년부터 매년 열고 있는 이 공모전은 스마트폰에 익숙해진 초등학생들이 우리 말과 글의 소중함을 경험하고 느낄 수 있는 더없이 소중한 기회다. 지난해는 전국 125개 학교(전북 39개교, 전북 외 86개교)에서 1246명의 학생이 1320편의 작품을 응모했다. 14년 동안 4만6000여 편의 작품이 출품됐을 만큼 손글씨를 콘텐츠로 활용한 초등학생 공모전 중 최고의 대회로 인정받고 있다. 특히 지난해에는 코로나19로 소중한 사람들을 만나지 못한 아쉬움과 의료진을 향한 감사의 글이 많이 응모돼 큰 울림을 줬다. 올해 공모전 역시 자신의 손글씨로 정성스럽게 쓴 편지와 일기가 대상이다. 멋있고 특별한 손글씨를 가졌거나 자신의 손글씨를 뽐내고 싶은 초등학생이면 누구나 참가할 수 있다. 참여를 원하는 학생은 최명희문학관 홈페이지에서 신청서를 내려받아 작성한 후, 5월 1일부터 9월 11일까지 방문 또는 우편(전주시 완산구 최명희길 29)으로 제출하면 된다. 대상 수상자에게는 전라북도교육감상을 주는 등 113명의 학생에게 상장과 상품을 선물한다. 수상 작품은 손글씨블로그와 최명희문학관 페이스북인스타그램에 게재되고, 10월 19일부터 3개월 동안 최명희문학관 마당에서 전시된다. 최명희문학관 전선미 학예사는 한 글자 한 글자 정성을 다해 글을 쓰면서 자신의 글씨에 새겨진 마음을 살피고, 평생 만년필 쓰기를 고집했던 소설가 최명희의 삶과 문학 열정을 느꼈으면 한다고 말했다.

  • 문화일반
  • 문민주
  • 2021.04.12 17:52

무주·장수·순창예총 설립 ‘속도’

소재호 전북예총 회장 한국예총 전북연합회(전북예총)가 무주장수순창예총 설립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전북예총 소재호 회장은 12일 숙원사업인 무주장수순창예총 설립을 매듭짓겠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 13일 각 지역예총 설립 추진위원장을 위촉할 예정이다. 지역예총 설립 추진위원장에는 무주군 전선자, 장수군 오영하, 순창군 장교철 씨가 각각 선정됐다. 이들은 각 지역 내 문화예술단체와 협력해 지역예총 설립을 추진하게 된다. 예총은 지역 문화예술 발전을 위해 행정적 지원과 정책적 연구, 각종 행사 교류와 문화예술 사업을 추진하는 단체다. 현재 전북예총은 10개 협회(건축국악무용문인미술사진연극연예영화음악)와 11개 시군지부(전주군산익산정읍남원김제진안고창부안완주임실)로 구성돼 있다. 무주장수순창은 예총이 설립돼 있지 않다. 예총이 설립되려면 장르별 3개 협회가 중앙으로부터 인준을 받아야 한다. 인준 조건은 협회마다 다르다. 현재 순창은 국악문인미술협회가 인준을 받아 설립 조건을 갖췄다. 장수는 국악문인협회, 무주는 문인협회가 인준을 받은 상태다. 소재호 회장은 지역예총이 설립되려면 지방자치단체의 협조가 필요한데, 3개 지역 모두 예총 설립에 적극성을 보이고 있어 어렵지 않게 설립이 이뤄질 것으로 전망한다고 밝혔다.

  • 문화일반
  • 문민주
  • 2021.04.12 17:52

[이승우의 미술 이야기] 신처럼, 황제처럼, 노예처럼

콘스탄틴 브랑쿠지 '입맞춤' 편안한 여행을 최고의 사치로 여기는 루마니아의 은자 브랑쿠지(1876-1957)의 작업실에는 네가 예술가임을 잊지 말아라. 신처럼 창조하고, 황제처럼 주문하고, 노예처럼 일 하라.라는 글이 있었다 한다. 어쩌면 게을러질 수도 있는 자신을 다잡아 가는 글귀로 이만큼 처절하도록 절실한 말은 흔치 않다. 파리의 작업실에서 브링쿠지 자신을 역사적인 조각의 거장들과 비교하며 존경하는 숭배자들에게 그러지들 마. 그 작품들은 밥벌이로 만들어진 것들이야. 젊은 시절의 나 역시 그 모든 시간을 밥벌이와 해부, 그리고 모방이나 재현 속에서 손쉽게 그러나 스스로는 독창적이라는 생각 속에서 일을 했지. 그러다가 어느 날 나는 부끄러웠어. 묘지의 비석으로 한 쌍의 부부를 닮게 만들었는데 그것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가를 깨닫게 된 거야. 닮은 것 보다는 서로 사랑했으나 이제는 땅 속에 묻혀 있을 모든 부부의 마음과 닮은 어떤 것을, 그 영원을 표현해야 했다는 말이지. 자신이 혼자서 일을 시키는 황제가 되고. 죽어라 일만하는 노예가 되고. 그것도 모자라 신과 같이 창조해야 된다는 주문처럼 그는 제자도 조수도 없이 평생을 혼자서 만들고 부수고 다시 만드는 과정을 되풀이 하며 보냈다. 그러면서 그가 그토록 노력하는 것에 걸맞게 상당히 빠른 시간에 원시적이고 본질적인 양감으로만 재현되어서 불필요한 군더더기를 모두 벗어 버린 형태, 또는 기하학적인 형태에 접근하고 있었다. 1908년 파리에 온지 4년 만에 그는 몽빠르나스의 묘지에 있는 입맞춤으로 그의 미래를 예고하고 있었다. 루마니아의 목동이었다가 미술학교의 최우수 학생이었다가 루마니아의 메달과 상금을 독차지 했다가 좁은 환경에 한계를 느끼고 더 넓고 더 좋은 환경을 찾아 파리까지 걸었다. 별을 이불 삼아 노숙을 하며 무작정 걷다가 병을 얻어 류네빌에서 머물고 있을 때 파리의 루마니아 친구가 2루이를 보내주어 기차를 탈 수 있었고 1904년 7월 14일 지친 몸을 끌고 파리에 입성했다. 그래서 그는 평생 편안한 여행을 원했고 파리의 기차 시간표를 모두 외웠으며 나의 생애를 돌아보면 기적의 연속이었다는 말을 남길 수 있었다.

  • 문화일반
  • 기고
  • 2021.04.12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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