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으로 진정한 역사 이해가 가능할까
■ 제시문〈자료1〉 플라톤 : 지난번에 공자 선생님을 찾아뵈었더니 '노자'라는 분께 예에 대해 물어본 적이 있다고 하시던데, 공 선생님이 말씀하시는 분과 선생님의 모습이 다르더군요. 어찌 된 일입니까?노자 : 또 그 이야긴가? 자넨 너무 따지길 좋아하는군. 도대체 그걸 확인해서 뭐 하게?플라톤 : 역사만큼 객관적이어야 하는 것은 없습니다. 선생님 나라의 이웃 조선에서는 왕이라도 사관의 기록에 간섭하지 못했다고 하던데, 그건 참 대단한 일입니다. 객관적인 기록이 있어야 제대로 된 역사의 이해가 있을 테니까요.노자 : 자네는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군. 도대체 기록된 사실이라는 게 얼마나 되겠는가? 그래, 바로 저 마그리트의 그림이 그걸 잘 보여주는군. 역사적 사실이란 게 바로 그림 속의 그림과 같은 것이네. 마치 딱 들어맞아서 사실인 듯이 보이지만 실제 그 그림 뒤의 풍경이 그림 속의 그림과 같을까? 결국 우리는 몇 가지 사실만으로 상상하는 것이 아닐까? 역사는 역사가에 의해 재구성된 해석이지, 사실이 아니네.플라톤 : 그렇지 않습니다. 비록 감각이 속일지라도 그것을 통해 이데아를 찾을 수 있듯이, 우리는 기록을 검토하고 연구함으로써 진정한 역사 이해도 가능한 겁니다. 선생님과 만날 때마다 논쟁이 붙는군요. 『스무살을 위한 철학 청바지 2』(김창호 엮음, 웅진 지식하우스)〈자료2〉이 작품은 벨기에 출신의 초현실주의 거장 르네 마그리트의 《인간의 조건》이다. 캔버스는 어느 한 방의 창가를 담고 있다. 그리 강렬하지 않은 빛이 들어오는 한가로운 창가. 여기까지는 누구나 인식할 수 있는 친근한 장면이다. 하지만 그 창가에 떡 하니 버티고 있는 또 하나의 캔버스를 인지하는 순간, 캔버스 안에 또 하나의 작품이 있다는 점이 관람객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캔버스 안의 그림은 바로 창문 밖의 풍경. 그렇다면 관람객은 창가에 배치된 캔버스에 그려진 풍경을 보는 것인가, 아니면 창 밖의 풍경을 보는 것인가? 아니, 이 작품 속의 캔버스도 온전히 바깥 풍경이라고 확신할 수 있는가?캔버스라는 평면에 현실 세계라는 입체를 담는 과정은 이른바 '환영'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말 그대로 캔버스에 담긴 현실 세계는 실제로 존재하는 것을 그린 것이지만 평면화했다는 이유로 실제로는 존재할 수 없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 이러한 '환영'에 대한 해석의 역사가 어떻게 보면 회화사의 주된 내용이라고 할 수 있다. 『월간미술』(황석권 글)〈자료3〉 역사가가 처해 있는 곤경은 인간의 본성을 반영한다. 인간은 아주 어린 유아기나 아주 늙은 노년기를 제외하고는 전적으로 자기 환경에 완전히 매몰되지 않으며, 무조건 거기에 예속되지도 않는다. 또한 이와는 반대로 환경으로부터 완전히 독립적일 수 없고 그에 대해 무조건적인 지배자일 수도 없다.인간과 그가 처한 환경의 관계는 역사가와 그의 연구 주제의 관계와 같다. 역사가는 사실의 천한 노예도 아니요, 억압적인 주인도 아니다. 역사가와 그가 다루는 사실의 관계는 평등한 관계, 주고받는 관계이다. 역사가란 자기의 해석에 맞추어서 사실을 만들어 내고, 또한 자기의 사실에 맞추어서 해석을 만들어 내는 끊임없는 과정에 종사하고 있는 것이다. 둘 중 어느 한쪽만을 우위에 놓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역사가는 사실의 잠정적인 선택과 그 선택을 이끌어 준 잠정적인 해석,-그것이 타인에 의한 것이건 자기 자신에 의한 것이건-이 둘을 가지고 일을 시작하는 것이다. 역사가가 연구하는 동안 사실의 해석 그리고 사실의 선택 및 정리, 이 두 가지는 상호 작용을 통하여 미묘하면서도 어느 정도 의식하지 못하는 변화를 겪는다. 그리고 이 상호 작용에는 현재와 과거 사이의 상호 관계도 포함된다. 왜냐하면 역사가는 현재의 일부이고 사실은 과거에 속하기 때문이다.역사가와 역사상의 사실은 서로에게 필요하다. 자신의 사실을 못 가진 역사가는 뿌리가 없는 쓸모없는 존재이다. 역사가가 없는 사실은 죽은 것이며 무의미한 존재이다. 이리하여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대한 나의 답은 결국 다음과 같다. "역사란 역사가와 사실 사이의 지속적인 상호 작용의 과정이며,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이다." 『역사란 무엇인가』(카)〈자료4〉 역사란 무엇인가? 인류 사회의 '아(我)'와 '비아(非我)'의 투쟁이 시간으로 발전하고 공간으로 확대되는 심적(心的) 활동 상태의 기록이니, 세계사라 하면 세계 인류가 그렇게 되어 온 상태의 기록이요, 조선사라 하면 조선 민족이 이렇게 되어 온 상태의 기록이다.무엇을 '아'라 하며 무엇을 '비아'라 하는가? 깊이 팔 것 없이 얕이 말하자면, 무릇 주관적 위치에 서 있는 자를 아라 하고 그 밖의 것은 비아라 한다. 이를테면 조선인은 조선을 아라 하고 영국러시아프랑스미국 등을 비아라고 하지마는 그 나라들은 저마다 제 나라를 아라 하고 조선을 비아라고 하며, 무산 계급(無産階級)은 무산 계급을 아라 하고 지주나 자본가를 비아라고 하지마는 지주나 자본가는 저마다 제붙이를 아라 하고 무산 계급을 비아라 한다.이뿐 아니라 학문, 기술, 직업, 의견 등 그 밖의 무엇에든지 반드시 본위(本位)인 아가 있으면 아와 대치되는 비아가 있고, 아 가운데 아와 비아가 있으면 비아 가운데에도 아와 비아가 있다. 그리하여 아에 대한 비아의 접촉이 잦을수록 비아에 대한 아의 분투가 더욱 맹렬하여 인류 사회의 활동이 쉴 사이가 없으며, 역사의 전도가 완결될 날이 없다. 그러므로 역사는 아와 비아의 투쟁의 기록인 것이다. 『조선상고사』(신채호)■ 쟁점 논제1. 논술 논제〈자료1〉의 '노자'와 '플라톤'의 역사에 대한 입장이 서로 다르다. 〈자료3〉과 〈자료4〉의 역사를 보는 관점의 차이를 서술하고, 역사기록으로 진정한 역사 이해가 가능한지 〈자료2, 3, 4〉의 내용을 종합적으로 활용하여 논술하시오.2. 면접 논제역사와 역사 소설의 차이를 객관성이란 측면에서 비교하여 설명하시오.■ 쟁점 확대하기1. 이데아이데아를 철학에 처음?끌어들인 사람은 플라톤이다. 플라톤은 이데아를 영원하고 불변하는 사물의 본질적인 원형(原形)이라고 보았으며, 구체적인 현실의 사물은 단지 이데아의 모사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또한 현실에 존재하는 사물들은 끊임없이 변화하며 일시적인 속성을 지니지만, 이데아는 불변하며 항구적인 속성을 지닌다고 보았다. 그리고 진정한 철학자는 가시적인 사물의 세계가 아닌 사물의 본성과 원형에 대한 인식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두산백과』2. 우리는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는가마그리트는 실제와 환영에 대한 상호 관계를 탐구한다. "우리는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는가. 세상이 단지 정신적 표현으로서 우리 내부에서 경험되는 것일지라도 우리는 세상을 외부의 것으로 여긴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현재 발생하고 있는 일을 과거에 놓는다. 그리하여 시간과 공간은 일상의 경험이 고려하는 단 하나의 그 정제되지 않은 의미를 상실한다."고 말했다. 그러기에 '내부'와 '외부'의 접점인 창문이라는 '경계' 사이에서 모호해진 우리의 인식 세계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것을 권유한다. 이 말은 '내부'와 '외부'를 분리해 작품을 보는 것이 애초에 불가능하다면, 그리고 그러한 불가능한 인식이 이 작품을 통해 팽배해졌기에 관람객은 창가 앞 캔버스에 그려진 풍경과 실제 밖의 풍경에 대한 구분에 확신을 가질 수 없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처음부터 이 둘의 경계가 모호하다는 것이 이 작품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경계'가 아닐까? 그 모호함을 인정하는 것이야말로 '초현실'을 인식하는 가장 근접한 해답이 아니냐는 말이다. 『월간미술』(황석권 글)3. 역사의 종말론최근 역사 이론에서의 종말론은 일본계 미국인 정치학자 프랜시스 후쿠야마가 쓴 『역사의 종말』이라는 책을 통해 제기되었다. 이 책은 이념사적 발전 과정에서 볼 때 자본주의, 자유주의는 더 이상 새로운 이념으로 발전해나갈 수 없으며, 따라서 우리가 살고 있는 자본주의와 자유주의 사회가 현실에서는 다소 불충분할지 모르지만 이념적으로는 역사의 완성이라고 주장한다. 여기에서도 마찬가지로 '종말'은 인류의 파멸이 아니라 역사의 완성이라는 의미로 상용되고 있다. 그러나 낙관적 관점이든 비관적 관점이든 종말론적 역사 이론은 더 이상 역사가 발전하지 않는다는 판단에서는 견해를 같이하다. 낙관점 관점에서는 역사가 완성되었기 때문에 역사의 진보가 있을 수 없다고 주장하는 반면, 비관적 관점에서는 인류가 파멸하기 때문에 역사의 진보가 없다고 주장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을 뿐이다. 그러나 어쨌든 이 두 가지 종말론은 역사에 대해 더 이상의 진보를 부정한다. 『스무살을 위한 철학 청바지 2』(김창호 엮음, 웅진 지식하우스)4. 역사순환론역사의 과정은 혼란한 시기와 안정된 시기가 서로 교체되면서 반복되는 것이라는 순환론이 한 사회의 역사를 파악하는 유용한 관점일 수 있다. 하지만 이와 같은 관점은 한 사회 혹은 한 문명의 역사 과정을 조망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역사를 통해 의미를 발견하고 이를 발판으로 미래 사회의 비전을 제시하는 데에서는 무력하다. 더욱이 역사 과정이 혼란과 안정을 반복한다는 틀 또한 일종의 결정론을 전제하고 있다.이와 같은 이론적 약점 이외에도 역사가 순환한다고 보는 견해는, 역사 순환의 개념을 동일 사회나 역사 단위에 적용하는 것이 아니라 상이한 문명단위에 포괄적으로 적용함으로써, 정치적 의미를 부여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20세기 초반에 동아시아의 사상가들은 서세동점의 상황에서 민족적 역량을 강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타락한 서구 문명이 결국에는 도적덕으로 건전한 동아시아 문명에 의해 대체될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스무살을 위한 철학 청바지 2』(김창호 엮음, 웅진 지식하우스)■ 쟁점 기출문제[2011 카톨릭대 수시논술]1. 역사왜곡에 대한 지문 (가)와 (나)의 관점 차이에 대하여 논하라. (띄어쓰기 포함 350~400자 / 30점)2. 지문 (다)를 활용하여 지문 (나)에서 지적하는 역사왜곡의 문제점에 대하여 논하라. (띄어쓰기 포함 550~600자 / 50점)[면접] 2012 전북대 역사교육과학생이 나중에 역사 연구자가 되어서 현재의 이명박 정부의 치적에 대한 역사적 평가를 한다고 가정해보자. 그러기 위해서 어떤 사료를 이용하고 어떤 방법을 사용할 것인지 설명하시오.■ 학생 글과 교사 총평1.학생글역사를 바라보는 것은 두 가지 측면이 있다. 플라톤과 노자는 서로 주장이 서로 달랐다. 플라톤은 우리나라의 객관적인 사관기록을 들어 객관적인 역사를 말을 하였다. 그가 말한 근거는 이데아다. 우리가 역사적 기록을 앎으로써 이해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반면에 노자는 마그리트의 그림을 들어 해석을 중요시한 역사관을 들었다. 마그리트의 그림은 우리가 그의 그림을 관찰함으로써 환영을 만들어내고 그 환영이 실제로 존재할 수 없는 한계를 넘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두 학자를 제외하고도 이 문제의 대해 생각한 두 명의 저명한 사람이 있다. 카는 역사는 객관적이고 주관적인 것이 아니라 이 두 가지가 대화한다고 본다. 카는 객관적이지 못한 역사는 뿌리가 없는 역사라 하였고 해석이 없는 역사는 죽은 것과 마찬가지라 하였다. 즉 역사는 한 쪽의 의견으로 치우친 것이 아니라 적절히 들어가는 것이라 본 것이다. 또 신채호는 역사가 주체적 민족사관으로 보았다. 역사는 내가 속한 그룹과 아닌 그룹의 투쟁 즉 아 와 비아의 현재의 투쟁이라 본 것이다. 역사는 객관적이다. 일단 모든 역사는 객관적인 사실에서 시작을 한다. 카가 말한 ' 역사란 과거와 현재와의 대화이다'를 보면 일단 객관적인 과거가 있어야 주관적이 해석을 추가할 수가 있다. 또 역사는 역사가의 잠정적 선택의 따라 쓰여진다고 카는 말을 했다. 하지만 역사가들의 선택은 공통적인 성격을 지닌다. 한국전쟁만 보아도 역사가들의 해석은 다를지라도 한국의 근대사를 말을 할 때 빼놓진 않는 부분이다. 신채호의 투쟁을 보면 투쟁은 그 당시 시대의 사실이다 예를 들어 광주 민주화 운동은 그 당시 사람들에겐 주관적인 해석보다는 그 당시의 사실이다. 사실은 객관적인 것이다. 이러한 것들을 보면 객관적인 것은 역사의 본질이며 이러한 본질을 알면 진정한 역사의 이해가 가능하다.김용준(전주 전라고 2학년 )2. 교사 강평 △독해요약력〈자료1〉에서 노자는 상상의 역사, 해석의 역사를 말한다. 즉 역사의 기록이 주관적임을 말하고 있다. 노자의 주장은 곧 수많은 현상의 선택적 기록이므로 마그리트의 그림처럼 착각하며 받아들이는 것이 역사란 입장이다. 역사의 기록으로 역사의 본질을 보기 어렵다는 주장이다. 이에 반해 플라톤은 감각을 통해서도 사물의 본질적인 원형인 이데아를 볼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는 곧 감각에 의존한 사실의 기록일지라도 이를 통해 진정한 역사 이해가 가능하다고 해석할 수 있다. 카의 입장은 선택과 대화로 역사를 설명하고 있다. 역사에서 역사가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신채호의 역사는 투쟁의 기록이라는 점에서 주체적인 민족사관에 바탕을 둔다. 역사는 해석이며 투쟁의 기록이지만 의미있는 해석이며 기록이기 때문에 역사의 진정한 이해에 도달할 수 있다는 측면이 있다. 김용준 학생의 글은 역사가 객관적인 기록에서 시작을 하며, 역사가들의 선택은 공통적인 보편성을 가지기 때문에 객관적이라고 주장한다. 결론에 대한 전제가 설득력을 지닌다. 또한 전체적으로 글이 간결하다.△논리력논증은 전제와 결론으로 이루어지며, 전제가 충분하고 참이어야 한다. 더 나아가 예상되는 반론에 대한 잠재우기까지 나아갈 때 완벽한 글에 가깝다.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전제가 설득력을 지니지만 일부의 기록으로 나머지를 상상, 해석하는 문제에 대한 언급은 없다. 이런 점을 보완하면 더 좋은 글이 될 것이다. 몇 가지 예를 든 점도 칭찬할 만하다.△표현력논술은 생각을 전하는 글이다. 모순처럼 보이지만 문장이 간결하면서 필요한 내용을 충분히 써야 한다. 학생의 글은 문장이 간결하다는 점에서 좋은 글이라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달랐다'는 '다르다'는 형식을 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