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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전북일보 신춘문예 : 당선작 - 동화] 지하철역 아이

뚜루루루 뚜루루루 . 열차가 들어오고 있습니다. 승객 여러분께서는 안전선 밖으로 물러서 주시기 바랍니다. 안내방송이 나오자마자 열차는 정리 된 책장의 책처럼 제자리에 착착 멈추었어. 그러고는 입을 벌려 몇 안 되는 승객을 토해놓기가 바쁘게 또 몇 안 되는 승객을 빨아들이고 꽁무니를 빼 버렸어. 그렇지 않아도 사람의 발길이 뜸 한 곳인데 열차가 지나간 역사는 정말 조용하고 쓸쓸했어. 나는 역 이곳저곳, 구석구석을 빈틈없이 비추며 승객들의 안전을 책임지는 일을 하고 있는 보안카메라야. 이 역사 안에 내가 보고 듣지 못하는 것은 거의 없어. 내가 이 역에 처음 설치되었을 때 사람들의 기대가 얼마나 크던지 어깨가 아주 무거웠지. 몇 년 전 까지만 해도 남의 물건을 훔치거나 이유도 없이 사람들을 괴롭히는 사람들을 잡는데 내 힘이 꼭 필요 했었지.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사람들은 새로운 도시로 떠나갔어. 이 역에도 점점 승객 수가 줄어들었지. 오고 가는 사람이 적은 이 역에서 난 정말 할 일이 없어. 얼마나 심심하고 지루하던지 하품을 하다가 깜빡 졸아 버린 적도 있지 뭐야. 게다가 요즘은 나이 탓인지 자주 졸음이 쏟아지는 것 같아. 대낮도 아니고 저녁도 아닌 오후 4시.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한 여자아이가 역 안을 두리번거리더니 주황색 의자에 앉았어. 누구랑 약속이라도 한 걸까? 손목에 차고 있는 키즈폰을 연신 들여다보며 시간을 확인하고 있었어. 열차가 들어오고 있습니다...... 안내방송이 나오자 열차는 긴 꼬리를 달고 의기양양하게 역에 도착했지만 내리는 사람도 타는 사람도 없었어. 그런데 그 아이는 여전히 의자에 앉아 있었어. 왜 이번 열차에 타지 않았을까? 누굴 기다리는 걸까? 열차가 부리나케 역을 빠져나가고 있지만 아이는 서두르지도 당황하지도 않았어. 여전히 키즈폰으로 시간만 보고 또 보았지.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여자아이는 역에 왔어. 가방을 메고 오는 걸 보니 학교가 끝나면 바로 여기로 오는 것 같았어. 여자아이가 가방을 열었을 때 눈을 크게 뜨고 봤는데 가방 안쪽에 하나 초등학교 3학년 1반 정기쁨 이라고 쓰여 있었어. 아이의 이름이 기쁨이라는 걸 그날 처음 알게 되었지. 귀여운 얼굴이랑 잘 어울리는 이름이라고 나는 생각했어. 그런데 하나초등학교를 역사 안에 있는 지도로 찾아보니 꽤 먼 거리에 있는 거야. 나는 조금씩 기쁨이에게 관심이 갔어. 왜 저 아이는 열차를 타러 오는 것도 아니고 누구를 만나는 것도 아닌데 이 먼 곳까지 매일 오는 것일까? 나의 궁금증은 솜사탕처럼 부풀어 갔어. 그날도 누군가를 아니면 무언가를 열심히 기다리는 기쁨이가 보였어. 심심한지 가방에서 공책을 꺼내 그림도 그리고 과자도 먹고. 그러다 열차 들어올 시간이 되면 하던 일을 멈추고 내 쪽을 쳐다봐. 기쁨이도 내가 보는 걸 알아차린 걸까? 맨 처음에는 기쁨이가 나를 쳐다본다고 생각했어. 그런데 가만 보니 내가 아니라 안내방송 소리가 나는 내 옆의 스피커씨를 쳐다보는 거더라고. 이보시오. 스피커씨, 저기 저 아이가 매일 와서 안내 방송이 나올 때마다 스피커씨를 쳐다보는데 혹시 까닭을 아시오? ...... 궁금해서 물어는 봤지만 스피커씨가 대답을 해줄리 없었어. 이 역사가 생기고 스피커씨와 내가 설치되던 그때부터 지금까지 내 말에 대답을 해 준 적이 한 번도 없었으니까. 지금은 구식 기계가 된 카메라와 스피커일 뿐이지만 우리도 한때는 최신식이라 불릴 때가 있었는데 말이야. 반짝이는 렌즈에 지금처럼 깜빡깜빡 잊어버리지도 않고 앞이 흐릿해 보이지도 않았지. 스피커씨도 광채 나는 진한 검정에 지금처럼 잡음 섞인 목소리가 아닌 깨끗하고 낭랑한 목소리였어. 하지만 지금은 우리 둘 다 흰 눈 같은 먼지를 켜켜이 뒤집어쓰고 초라해졌지. 한때는 우리도 빛나던 시절이 있었다고 생각하니 지나간 세월이 하룻밤 꿈만 같아. 이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대답 한번 제대로 해 주지 않는 스피커씨한테 서운해지려 해. 기쁨이가 돌아갈 시간이 가까워졌을 즈음 전화벨이 울렸어. 목소리가 크고 흥분한 걸 보니 전화 건 사람이 잔뜩 화가 났나 봐. 정기쁨, 너 어디야? 매일 학원 간다더니 어딜 쏘다녔던 거야? 친구 집에서 ... ... . 그때 기쁨이의 거짓말을 꾸짖기라도 하듯 다음 열차 도착을 알리는 안내방송이 역 안에 울려 퍼졌어. 너, 또 거기 간 거야? 엄마가 거기 가지 말랬지? 전화기 저편에서 여자의 목소리가 떨리는 듯 했어. 동시에 기쁨이의 얼굴도 붉어지고 금세 울 것 같은 얼굴이 되었지. ....... 정기쁨, 왜 대답이 없어? 엄마가 금방 갈 테니까 꼼짝 말고 기다려! 엄마와 통화를 마친 기쁨이의 어깨가 들썩였어. 이럴 때 눈물이라도 닦아줄 수 있으면 좋으련만 아니 어깨라도 토닥여 줄 수 있다면. 난 정말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는 구닥다리 카메라일 뿐 이었어. 얼마쯤 지났을까 누군가 급한 걸음으로 후다닥 계단으로 내려왔어. 그러더니 기쁨이를 와락 끌어안았어. 둘은 한 동안 말없이 울기만 했어. 그런데, 어? 저 얼굴 낯이 익어. 어디서 봤더라? 나는 흐릿해진 기억을 되짚어봤어. 내가 기쁨이 엄마를 처음 본 날도 기쁨이 엄마는 울고 있었어. 얼마나 울었던지 기운이 없어서 울다 쓰러 지다를 몇 번이나 반복했어. 기쁨이 엄마가 울게 된 이유는 전날 밤 사고 때문이었지. 우리 역에 역무원들은 낮과 밤으로 나누어 번갈아 일해. 유난히도 달이 밝았던 그날은 부역장님이 일하는 밤이었어. 마지막 열차만을 남겨둔 참이었지. 부역장님은 열차를 맞이하기 위해 플랫폼에 서있었어. 보통 그 시간엔 아무도 없기 마련인데 그날은 어떤 남자 승객 하나가 서 있었어. 그런데 자꾸 몸을 비틀비틀 했어. 그러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철로로 떨어져 버렸어. 그때 부역장님은 한 치의 망설임 없이 철로로 뛰어 내려갔어. 분명 방금 전에 열차가 들어온다는 안내방송을 들었을 텐데 말이야. 서둘러 술 취한 승객을 철로 밖으로 밀어냈어. 곧바로 열차가 들어오고 부역장님은 내 시야에서 사라졌어. 난 그때 너무나 놀라고 무서웠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었지. 다음날 사고 현장인 역에 찾아온 기쁨이 엄마는 울고 또 울었어. 그날 이후에 기쁨이 엄마는 여기에 다시는 오지 않았어. 역에서 일 년에 한번 부역장님을 위해 하얀 국화꽃을 준비하고 추모를 하지만 기쁨이 엄마는 한 번도 오지 않았어. 부역장님은 우리 역 목소리 미남이었어. 나도 역무원들끼리 하는 얘기를 들어서 아는 건데, 부역장님의 원래 꿈이 성우였는데 집안 사정으로 철도공무원이 되었다고 해. 그래서 우리 역 안내방송을 부역장님 목소리로 녹음해서 쓰고 있었어. 다른 역들은 모두 디지털 안내방송으로 바뀌었지만 우리 역만 아직도 사람의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야. 기쁨이가 바로 정강훈 부역장님의 딸이었구나. 이제야 퍼즐조각들이 맞춰지는 것 같았어. 아빠 목소리를 들으러 엄마 몰래 매일 같이 여길 온 거였구나. 나는 기쁨이에게 도움을 주고 싶었어. 하지만 나는 그저 역 안에서 일어나는 일을 찍는 카메라일 뿐이야.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나는 계속 생각했어. 한 가지 생각을 깊이 하다 보니 머리가 지끈 지끈. 이런, 눈만 잠깐 감았다 뜬 줄 알았는데 오랫동안 잤나 봐. 카메라가 꺼졌다고 난리가 났어. 요즘 자꾸 화면이 자꾸 꺼지던데 오늘은 아예 먹통이네요. 너무 오래돼서 그렇지 뭐야. 또 오작동하면 카메라를 교체해야겠는 걸........ 젊은 역무원들이 하는 얘기를 듣고 있자니 은근 부아가 치밀어. 내가 오래되기는 했지만 그래도 갖다 버릴 정도는 아닌데 말이지. 요즘 사람들은 고쳐 쓰는 일을 번거롭게 생각하는 것 같아. 내 고향 같은 이곳에서 아직은 떠나고 싶지 않은데 말이야. 그때 번뜩 기쁨이를 도울 좋은 방법이 떠올랐어. 내일도 또 오겠거니 기쁨이를 기다렸어. 그런데 엄마와 함께 집에 돌아간 후로 기쁨이는 오지 않았어. 정말 나이는 못 속인다더니 조금씩 눈앞이 흐려지고 자꾸만 졸린 데도 나는 눈을 크게 뜨고 기다렸어. 나에게 주어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아서 마음이 자꾸만 급해졌어.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걸까 걱정만 하던 어느 날. 드디어 기쁨이가 왔어. 나는 너무 반갑고 좋아서 어쩔 줄 몰랐어. 기쁨이는 어디가 아팠던 건지 조금은 야윈 얼굴이었어. 작아진 어깨에 달팽이집 같은 큰 가방을 메고 터덜터덜 걸어오더니 주황색 의자에 앉았어. 기쁨이는 오늘도 열차 들어오는 시간을 확인하는 것 같았어. 그러더니 안내방송이 나오자 작은 어깨를 들썩이며 훌쩍 거렸어. 아빠! 나는 크게 심호흡을 한 번하고 눈을 질끈 감았어. 그리고 온 정신을 집중해서 눈을 다시 떴어. 역사 안의 모든 카메라에 기쁨이가 나오게 하는 것이 바로 나의 계획이야. 사무실에서는 또 소란이 일었지. 아니, 이게 뭐야! 또 고장인 건가? 아주 멋대로 잖아! 지난번에 한 번 더 고장 나면 카메라를 바꿔달아 버리자던 젊은 역무원이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어. 왜! 무슨 일인가? 사무실 문을 벌컥 열고 들어온 사람이 내 몸을 살펴보기 시작했어. 모니터 속 기쁨이는 여전히 울고 있었지. 역장님 오셨습니까? 얼마 전부터 보안 카메라가 말썽이더니 오늘은 아예 이렇게 한곳만 비춘 채 먹통입니다. 아무래도 새 걸로 교체해야 할 것 같습니다. 알았네. 그런데 저 아이는 왜 저기서 혼자 울고 있지? 제가 무슨 일인지 알아보겠습니다. 역시 내 예상이 맞았어. 역장님의 지시로 역무원들이 기쁨이한테 서둘러 달려가는 모습이 보였어. 나는 무슨 일 있었냐는 듯 다시 카메라들을 정상으로 되돌렸어. 잠시 후 젊은 역무원 뒤로 두리번거리며 기쁨이가 따라들어 왔어. 역장님은 기쁨이에게 이것저것 물어보았어. 기쁨이는 작은 목소리였지만 울지 않고 또박또박 말하려고 애쓰는 것처럼 보였어. 대화를 마친 역장님이 서랍에서 무언가를 꺼냈어. 기쁨아, 아빠 목소리 여기에 담았으니까 언제든지 들으렴. 여기서 정말 울 아빠 목소리가 나와요? 역장님이 기쁨이 손에 작은 이동식 메모리 장치를 쥐어주자, 기쁨이는 봄꽃 마냥 살포시 웃었어. 나도 덩달아 너무 기뻤어. 카메라에 눈물샘이 있었다면 눈물이 날 정도였다니까. 나는 마지막으로 용기 내어 스피커씨한테 말을 걸었어. 저기, 나 오늘 좀 멋지지 않았소? ....... 마지막으로 잘 가라는 인사 정도는 할 수 있는 거 아니오? 치익 치지, 지직. /박영미 작가

  • 문학·출판
  • 기고
  • 2021.12.29 15:21

[2022년 전북일보 신춘문예 : 당선 소감 - 동화] 박영미 작가 “울림 있는 글로 아이들의 감성 어루만져줄 것”

신춘문예 동화 당선자- 박영미 작가 한때는 소설가가 꿈이었기에 동화는 아주 쉬운 떡 먹기라는 어리석은 생각으로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미 세상 풍파에 찌든 어른이었고, 제가 쓴 동화에 아이들의 이야기는 아주 희미했습니다. 그렇게 몇 년을 동심이라는 것과 끝나지 않는 술래잡기를 했습니다. 이번 당선 소식을 접하고 동심의 그림자 정도는 찾았다는 생각에 작게나마 안도의 한숨을 쉬어봅니다. 어쩌면 동심을 찾는 술래잡기는 이제부터 진짜 시작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조바심 내지 않고 조심스러운 걸음으로 한발 한발 가볼 것입니다. 제가 포기하지 않는 한 이 놀이는 끝나지 않을 테니까. 길고도 어두운 현실의 벽에 부딪혀 동화가 도저히 써지지 않을 때 당선 소식을 접했습니다. 포기하지 말고 더 써보라는 기적 같은 응원이라고 생각해 보겠습니다. 앞으로도 재미보다는 울림이 있는 글로 아이들의 감성을 어루만져주는 글을 쓰고 싶습니다. 몇 번을 다시 봐도 부끄럽고 서투른 글을 뽑아 주신 전북일보 심사위원님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김정옥 선생님, 김정민 선생님, 동화세상 글벗들과 저의 제1독자인 남편 전대원, 아들 준우와 이 영광을 함께 하고 싶습니다. /박영미 작가 △박영미 작가는 전남 여수 출생이다. 2009년 일본 류코쿠 대학교에서 동양사학과를 졸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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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12.29 15:21

[2022년 전북일보 신춘문예 : 당선작 - 시] 빈집

빗속에 집이 잠겨있다 태풍이 온 나라를 휩쓸었지만 빈집은 날개를 접고 흔들리지 않았다 식구들은 모두 전주로 떠나버리고 덩그러니 혼자 남은 빈집 퇴행성관절염에 어깨 한쪽이 내려앉은 채 기울어 가는 생을 붙들고 있다 빈집의 담장을 지나다보면 허옇게 바랜 집이 손을 저으며 말을 걸어온다 평생 걸어온 길의 기울기와 그 길로 져 날랐던 가난과 고단함에 대해서 빈집은 미처 다 하지 못한 말들을 빈 방에다 새긴다 행간마다 피어나는 유폐의 점자들 마당 우물터로 목마른 잡초들이 조촘조촘 들어서고 버리고 간 장독대엔 혼잣말이 웅얼웅얼 발효 중이다 죽은 참가죽나무에 앉아 종일 귓바퀴를 쪼아대던 새소리도 날아가고 귀가를 서두르는 골목 일몰의 욕조에 몸을 담근 빈집이 미지근한 어둠으로 눈을 닦는다 종일 입술을 다문 대문을 빈집은 몇 번이고 눈에 힘을 주어 밀어 보지만 끝내 대문 여는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마당 깊은 곳까지 어둠이 차오르면 빈집은 눈을 들어 별자리를 더듬는다 식구들이 몰려 간 서남쪽 하늘 별이 기울 때까지 눈을 떼지 못한다 사람들이 빠져나간 자리에는 들쥐가 들어앉아 새끼를 낳았다 이따금 달빛이 새끼들의 털을 핥아주고 갔다 들쥐는 빈집의 뒷다리를 갉아 먹으며 자라고 집은 제자리에서 우물처럼 늙어간다 빈집의 늑막 아래로 어둠이 점점 차오른다 /박수봉 작가

  • 문학·출판
  • 기고
  • 2021.12.29 15:21

[2022년 전북일보 신춘문예 : 당선 소감 - 시] 박수봉 작가 “시의 길은 말없이 인내하며 살아가는 삶의 뒷모습 따라가는 것”

신춘문예 시 당선자 박수봉 작가 보라색 공원관리 조끼를 입은 사내들이 나무 줄기를 자르고 있었습니다. 나무는 지난 계절을 잃고 바람을 흘리며 우두커니 서 있었습니다. 그런 나무 곁에서 문득 내가 줄기 잘린 나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시퍼렇게 뻗어 가는 시의 줄기를 잃고 자꾸 움츠러드는 제 모습이 나무를 닮았다며 허전함의 지평을 늘이고 있을 때 당선 통보를 받았습니다. 전화를 끊고, 다시 수변 공원 나무들을 보러 나섰습니다. 매서운 한파에 뭉툭하게 가지가 잘린 나무들이 즐비하게 어두워지고 있었습니다. 나무의 잘린 부분을 어루만지면서 저는 제 시가 가야할 길을 더듬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잘리고, 꺾이고, 찢겨가면서도 말없이 인내하며 살아가는 삶의 뒷모습을 따라가는 것이 시의 길임을 어렴풋이 느끼면서 천천히 공원을 걸었습니다. 저의 움츠러든 손목에 힘을 실어주신 심사위원들께 머리 숙여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이름이 더욱 무거워졌음을 염두에 두고 열심히 쓰겠습니다. 그리고 작년에 최종심에서 낙선하고 우울해 할 때 낙선주라며 담근 술을 따라주며 격려를 아끼지 않던 오산의 문우들 감사합니다. 그리고 저를 사랑하는, 제가 사랑하는 모두에게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 박수봉 작가는 전북 장수 출생으로, 경기대학교를 졸업했다. 지난 2018년 최충 문학상에서 최우수상을, 2021년 중봉 조헌 문학상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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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12.29 15:21

[2022년 전북일보 신춘문예 : 심사평 - 시] “주관적 정서의 객관화, 소통 잊지 않은 작품"

심사위원 민윤기(서울시인협회 회장), 이병초(전북작가회 회장) 전주에 펑펑 함박눈이 쏟아지겠다고 예보된 날 신문사로부터 본심에 올라온 14편의 시를 전달받았다. 이름을 지운 응모자의 시편들은 자아와 세계의 화해 불가능을 확신하는 비규범성이나 이질적인 것들의 혼돈 등을 과하게 드러내지 않았다. 혼종적 욕망이 들끓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지금의 시단 풍토와 다르게 뜻하는 바가 분명했고 시어들 개개의 인상과 소리 맵시가 어울려 새 형상을 짓는데 인색하지 않았다. 응모작 중에서 <괄호 밖의 사람들>, <빈집>, <편의점 라이프>, <오래 머무르는 풍경>, <바람의 건축> 등의 작품을 오래 들여다봤다. <괄호 밖의 사람들>은 괄호 안의 사람들을 궁금하게 함과 동시에 모래가 환기하는 삶의 황폐성을 떠올리도록 하고, <오래 머무르는 풍경>에 적힌 경작금지라는 팻말과 누군가는 스며들고 또 누군가는 닮아간다라는 구절은 시 읽는 즐거움을 주었다. <편의점 라이프>와 <바람의 건축>도 심사위원들의 시선을 끌었다. 숙고 끝에 <빈집>을 당선작으로 결정했다. 태풍을 피해서 모두가 떠난 빈집, 삶의 내력과 유폐된 시간을 감당하는 의인화는 고단한 시간을 견딘 타인의 이야기, 동시대 모두의 사연으로 읽혔다. 평생 걸어온 길의 기울기에 어울린 빈집의 서사는 시 공부를 열심히 한 흔적도 보였다. 시는 주관적 정서의 객관화이며, 소통이라는 점을 잊지 않고 시적 형상화에 공력을 들인 <빈집>의 시인, 당선을 축하한다. /심사위원 민윤기(서울시인협회 회장), 이병초(전북작가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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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12.29 15:21

[2022년 전북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 소설] 이불

향이 너무 독하지 않아요? 퇴근길에 들른 수연은 그새 두 번이나 내게 물었다. 당연히 내가 동의할 것이라는 표정이었다. 집 안은 거실 베란다에서 행운목 꽃이 뿜어내는 향기로 가득했다. 한 뼘쯤 도막진 행운목을 사다가 수반에 담아주고 나중에 다시 화분에 옮긴 건 그 애였다. 베란다로 가 꽃을 피운 걸 신기해하더니, 요모조모 살펴볼 새도 없이 꽃향내에 진저리를 치며 거실로 뛰어들어왔다. 꽃은 저녁 무렵 피었다가 이튿날 아침에 다물었다. 그만큼 향기도 짙어지는 시간이었다. 좋기만 하구나. 나는 정말 아무렇지 않았다. 갸웃하는 수연의 얼굴에 언뜻 딱해하는 빛이 스쳐갔다. 이모도 어쩔 수 없이 노인이네, 말하지 않아도 그런 의미일 터였다. 나는 그저 꽃대를 따라 뭉쳐 핀 볼품없는 흰 꽃이 분내보다 향긋하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십 년 넘게 행운목 화분에 물을 주면서도 그게 꽃을 피울 수도 있다는 걸 생각해본 적이 없었으니까. 그 탓에 수연이 올 때마다 공기청정제부터 뿌려대며 수선을 부려도 집 안에 괴어 있다는 퀴퀴한 냄새가 늘 긴가민가하듯 꽃향기 또한 정체를 알기까지는 시간이 더뎠다. 내 눈에 꽃대가 들어왔을 때는 이미 자잘한 꽃망울이 제법 벌어진 뒤였다. 수연은 차라리 평소의 구중중한 냄새가 낫다고 했다. 꽃향내가 향수 냄새처럼 메스껍다는 것이었다. 나는 어머니를 닮아 젊은 시절 립스틱 향내에도 멀미를 했다. 여덟 살 터울의 동생인 수연의 엄마를 건너뛰어 수연도 그랬다. 수연이 특히 못 견뎌하는 건 향수 냄새였다. 버스나 지하철에서 근처 누군가가 향수 냄새를 풍기면 모처럼 잡은 자리도 포기하고 멀찌감치 피해간다고 했다. 내가 낳은 삼남매 중에서는 향내에 예민한 아이는 없었다. 나는 떨어진 기력만큼이나 코가 무뎌진 뒤로는 웬만한 냄새쯤은 순하게 길들이고 사는 편이었다. 거실 창문을 닫지 그러니. 나는 수연이 사온 호박죽을 쇼핑백에서 꺼내며 말했다. 그럴까? 나를 거들려고 식탁 쪽으로 오던 수연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꽃향내가 아니더라도 시월 저녁은 창문을 열어놓기에는 서늘했다. 그러나 거실 창가로 간 수연은 창문에 손을 대는가 싶더니 그냥 돌아섰다. 겨울에도 창문 한 귀퉁이를 열어놓고 지내는 내 갑갑증을 떠올린 듯했다. 수연은 주방 쪽으로 되돌아오며 어쨌든 행운목 꽃이 핀 건 내게 길조라며 좋아했다. 제집에 있는 것도 꽃대를 내미는지 살펴봐야겠다고 했다. 도막진 걸 살 때 내 것을 함께 샀고, 뿌리를 내려 화분에 옮긴 것도 비슷한 시기였다. 하지만, 꽃이 핀다면, 아무래도 꽃대를 잘라버려야겠죠? 아무리 좋은 징조를 예고한다 해도 이 향내를 어떻게 견디겠냐고 했다. 나는 그런 수연에게 타이르듯 말했다. 얘야, 모진 손이 꽃을 꺾는 법이란다. 향내가 독하다 한들 저대로 세상 보러 나온 걸 해쳐서야 되겠니? 수연은 더 대꾸하지 않았다. 오늘은 수연의 봉급날이었다. 낮에 전화를 걸어 누룽지백숙으로 유명한 인근의 맛집을 예약하겠다는 수연에게 나는 호박죽이나 사오라고 일렀다. 이종들 생일이 죄다 이달이잖니. 시월에 애를 셋이나 낳았으니 삭신이 오죽 쑤시겠냐. 우스개처럼 덧붙였다. 수연은 실망하면서도 퇴근하자마자 빛의 속도로 달려갈게요, 라고 명랑하게 말했다. 수연이 교사로 일하는 초등학교는 서울 외곽에 있었다. 내가 사는 신도시에서 멀지 않은 거리였다. 수연이 전자레인지에 호박죽을 데우고 냉장고에서 서너 가지 반찬을 꺼내 식탁을 차렸다. 달착지근한 호박죽이 입맛에 썼다. 나박김치는 국물이 시고 무 숙채는 양념이 가라앉아 마르고 싱거웠다. 수연은 퍽퍽 수저질을 하는데도 어쩐지 깨작거리는 느낌이었다. 반찬 탓이려니 하면서도 눈빛으로 수연을 나무랐다. 수연은 고갯짓으로 행운목이 있는 베란다를 가리켰다. 넌 결혼할 맘이 영 없는 거니? 올해 지나면 마흔 쪽으로 부쩍 휘어질 텐데. 누군들 나일 안 먹나요? 지지고 볶는 거, 좋아하는 사람들이나 하라죠 뭐. 얜, 결혼을 취미로 하니? 재밌게 사는 사람들도 얼마나 많은데. 말해놓고 보니 잔소리였다. 언제부턴지 나는 수연을 만나면 당연하다는 듯 결혼 얘기를 입에 올렸다. 제 엄마를 대신해 간섭할 의무라도 있는 것처럼 굴었다. 뻔한 길이 싫으면서도 문득 돌아보면 그 길에 깊숙이 들어와 있듯 사람 사는 일은 매사가 그런 것 같았다. 소녀 시절에는 동네 아주머니들의 낭자한 웃음소리를 경멸했다. 까마귀나 까치가 깍깍대는 소리처럼 조심성이 사라진 웃음소리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중년의 어느 날 내 웃음 속에서 깍깍 소리를 발견하곤 정말 깍깍거리고 웃었다. 나도 말 많은 노인네가 되고 싶었던 건 아니었다. 호박죽 한 그릇을 억지로 비웠다. 생목이 오르는 걸 꾹 참았다. 수저를 내려놓으며 수연 아빠의 안부를 물었다. 안성에서 배농장을 하는 수연 아빠는 오 년 전 동생이 암으로 죽은 뒤 바로 재혼했다. 고등학교 때 인근 여학교에 다니던 풋사랑 상대였다. 남편과 사별하고 안성 시내에서 작은 식당을 하고 있던 여자였다. 여자는 재혼하면서 식당을 접고 수연 아빠의 농장일을 돕고 있었다. 제 오빠처럼 재혼에 시큰둥하지는 않았지만, 수연은 그들 신혼부부가 이듬해 새집을 지어 옮겨간 뒤로는 발을 끊다시피 했다. 동생의 흔적이 완벽하게 지워진 듯했다. 새집에 다녀와선, 섭섭함보다도 아빠의 하이모 가발이 좀 낯설었을 뿐이라며 수연은 어깨를 으쓱했다. 그들의 서로에게 익숙한 모습이나 애도 기간 없는 다정함 같은 것도. 여름에 태풍으로 낙과가 심해 올해 배농사는 형편없는 모양이었다. 가끔 제 아빠와 통화라도 하니 다행이었다. 겨우 죽 먹은 설거지에 시간을 들인다 했더니 수연은 조리대며 개수대까지 꼼꼼히 닦고 있었다. 올 때마다 하는 짓이었다. 며느리들도 들어가길 꺼려 거실에서만 뱅뱅 도는데 수연은 내 부엌살림에 스스럼이 없었다. 개수대 부근에서 시궁창 냄새가 난다거나 냉장고 바닥에 눌어붙은 푸성귀를 떼어내며 투덜거려도 늘 깔끔하게 치워놓곤 했다. 나는 수연을 쫓아다니며 부엌이 더러울 수밖에 없는 이유를 변명했다. 귀찮아서라고 한마디면 끝날 말이 쓸데없이 길어졌다. 수연은 텔레비전이나 보라고 하더니, 생각났다는 듯 남은 죽은 꼭 데워 먹으라고 당부했다. 수연이 사온 죽은 호박죽 말고도 종류별로 넉넉했다. 늦기 전에 집으로 돌아가라고 수연을 채근했다. 아니면 내일 아침 출근은 여기서 하라고 일렀다. 수연은 꽃향내 타령을 하면서도 아홉시 뉴스가 끝날 즈음에야 일어섰다. 제가 사온 죽으로 저녁을 때워 보내려니 미안했다. 수연이 구두에 발을 꿰며 심상한 척 나를 돌아보았다. 수진 언니 생일엔 월차 내려고요. 저도 언니 보러 가야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눈두덩이 뜨거워져 텔레비전으로 시선을 돌렸다. 딸아이 수진의 생일은 아흐레 뒤였다. 수진의 나이도 이제 마흔을 넘기고 두 해가 지났다. 텔레비전에서 내일의 날씨를 전했다. 설악산과 오대산은 단풍이 절정이었고 내일도 전국은 가을볕이 눈부실 예정이었다. * 마을버스에서 내려 아파트단지 안으로 걸어들어가며 몇 번이나 멈춰 섰다. 심장 수치는 정상이라는데 여전히 숨이 찼다. 지난해 협심증 수술을 받곤 꾸준히 약을 먹고 있었다. 담당 의사는 이번엔 와파린 양을 조금 줄여서 처방했다고 했다. 피를 묽게 해 혈관 속에서 핏덩어리가 생기지 않게 해주는 약이었다. 손가방이 두 달치 약으로 불룩했다. 병원에서 정기검진을 받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관리만 잘하면 백 살까지 너끈하리라는 의사의 말이 지나친 농담처럼 언짢게 들렸다. 지금도 몸 따로 마음 따로 움직여 부딪치고 성할 날이 없는데, 백 살까지라니 끔찍했다. 물론 젊고 친절한 의사가 잘못한 것은 없었다. 집으로 꺾어드는 모퉁이 벤치에 낯익은 얼굴들이 앉아 있었다. 이옥련과 김선희가 먼저 나를 알아보았다. 이옥련이 와서 앉으라는 뜻으로 비어 있는 옆자리를 톡톡 쳤다. 벤치는 두 개가 니은자 모양으로 놓여 있었다. 오후 볕이 좋으니 노인정으로 가지 않고 거기 모인 듯했다. 벤치에 그늘을 드리운 느티나무 잎이 그새 노릇했다. 노파들은 잎이 노릇한 느티나무 아래 무심히 모여들어 지저귀는 새들 같았다. 맘보가 없으니 이옥련이 허전해 보였다. 맘보는 초가을 찬 바람이 돌기 시작할 때 폐렴이 더쳐 세상을 떠났다. 한 번도 본 적은 없지만 맘보춤을 잘 춘대서 노인정에서 불리던 이름이었다. 둘은 어릴 적의 연과 얼레처럼 늘 짝패로 붙어 다니곤 했다. 나는 노인정 회원은 아니었고 벤치에서 이들을 알게 됐다. 그러잖아도 다리를 쉬려던 참이었다. 나는 이옥련의 옆으로 가서 앉았다. 함께 있던 중년 여자가 명함을 내밀었다. 이불집 광고 명함이었다. 여자는 집집마다 명함을 꽂아놓고 가는 길이라고 했다. 아파트 노파들 사이에선 여자네 이불집이 꽤 알려진 모양이었다. 맘보도 봄에 이 집에서 이불 했잖어. 이옥련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봄에 묵은 솜을 틀어 새로 이부자리 했다고 자랑이더니 두 계절 만에 저세상으로 가버렸다는 얘기였다. 하긴 맘보야말로 제일 좋은 이불 덮었지. 김선희가 맞장단을 쳤다. 맘보는 신도시에서 가까운 공원묘지에 묻혔다. 여자가 준 명함을 살펴보았다. 다솜이부자리, 솜틀공장과 이불공장을 갖춘 직거래 침구 전문업체라고 씌어 있었다. 두꺼운 목화, 명주, 양모 솜을 최신 기계설비로 소비자의 기호에 맞게 고쳐드립니다. 이불 맞춤 일체, 침대 커버, 혼수품 전문 병원에 가기 전 온 집 안을 헤집고 찾던 그 명함과 똑같은 것이었다. 현관문 틈에 끼워놓은 것을 잘 간수해두었는데 그곳이 어딘지는 영 떠오르지 않았다. 할 수 없이 노파들에게 물어보기로 하고 찾기를 포기했다. 목화솜이 열 근 있는데, 오래된 거라. 나는 말을 더듬었다. 어떤 뻐근한 감정 같은 것이 한꺼번에 몰려와 설명하기가 어려웠다. 여자가 반색했다. 솜을 타면 묵은 솜도 보송하게 살아나는데, 오래된 건 상관없다고 했다. 오히려 귀한 목화솜을 지금까지 가지고 있었냐며 놀라워했다. 열 근이면 이불이랑 요 해서 두 채씩은 나오겠구먼. 이옥련이 거들었다. 짐작대로였다. 예전 같으면 한 채를 만들 양이지만 요즘은 아파트 생활 기준으로 얄팍하게 두 채를 지었다. 여자가 재촉하듯 내 팔을 잡았다. 새삼 망설임이 그늘처럼 밀려왔다. 나는 입술을 앙다물곤 자리에서 일어났다. 작은방으로 여자를 데려갔다. 두 개의 마대에 담긴 목화솜이 붙박이장 한쪽에 얌전히 놓여 있었다. 오래됐지만 최상품이라고 여자가 말했다. 어쩌면 이렇게 보관을 잘하셨어요? 여자의 감탄이 빈말 같지는 않았다. 딸에게 혼수이불을 해주려 마련했는데 여태껏 쓸 일이 없었노라고 여자에게 말했다. 더 묵힐 수도 없어 솜이불이나 해주려 한다고 떠듬떠듬 말을 이었다. 시대가 달라진걸요. 저희 딸도 결혼은 선택이라 하네요. 여자가 이해한다는 듯 웃었다. 거실로 나오며 여자가 다시 말했다. 따님이 내켜하지 않으면 저한테 파세요. 값은 후하게 쳐드릴게요. 나는 손을 내저었다. 수연에게 휴대전화를 걸어 여자와의 약속 날짜를 정했다. 이틀 뒤 토요일 오후에 여자와 수연이 집으로 오기로 했다. 하루 수업이 끝나고 교무실에서 일을 보고 있던 수연은 느닷없는 솜이불 이야기에 어리둥절해했지만 사연은 나중에 들려달라며 장난스럽게 말했다. 당연히 내 것인 줄 알고 있었다. 샘플책을 보고 겉감을 골라야 했다. 그럼 목화솜은 모레 따님 만난 뒤 실어갈게요. 여자가 말했다. 여자는 궁금해서 묻는 건 아니라는 듯 지나가는 말처럼 물었다. 그런데 따님이 따로 사나 봐요. 하긴 직장이 멀면 출퇴근하기가 힘드니까. 나는 가만히 웃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여자는 그제야 집 안에 감도는 꽃향내를 맡았는지 안노인이 계신 집은 냄새부터 다르다며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 자리에 누웠으나 잠이 오지 않았다. 잠이 오지 않으니 생각들이 갈피 없이 몰려왔다. 그 생각의 줄기 하나가 머릿속에 괴어 움직이지 않았다. 그리고 어떤 결론을 내렸다. 두 사람의 방문이 굳이 내일일 이유가 있겠냐고, 좀 더 나중에 해도 늦지 않으리라는 것이었다. 불현듯 정신이 들며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거실로 가 불을 켜고 텔레비전 전원을 눌렀다. 그새 심야 뉴스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나는 그 밤에 꼭 해야 할 일이 있는 사람처럼 작은방으로 달려갔다. 그대로 밤을 지새우게 된다면 그 생각의 줄기 하나가 또다시 찾아들지도 몰랐다. 두 개의 마대가 정확히 닷 근씩인지는 기억나지 않았다. 남편한테서 한쪽 무게가 약간 세다고 들은 것도 같았다. 작은방 붙박이장에서 그것을 꺼내 하나씩 거실로 옮겼다. 한 손으로는 어림없어 주둥이에 양손을 모아서 들었더니 넘어질 것처럼 걸음이 뒤뚱거렸다. 아닌 게 아니라 먼저 것이 조금 더 묵직했다. 남편은 뭐든 저울에 달아보는 습관이 있었으니 그의 말이 틀리지는 않을 거였다. 지금도 창고에는 장대저울이며 앉은뱅이저울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모두 시어른들이 농사지을 때 쓰던 물건이었다. 마대는 색만 바랬을 뿐 깨끗했다. 두 자루 다 끈을 풀어보았다. 이불집 여자와 미리 풀어본 것은 꼭 동여매지 않아 느슨했다. 목화솜은 노르스름하게 변색되어 있었다. 타지 않은 날솜 그대로 스무 해 가까이 보관해왔으니 그럴 만도 했다. 보송보송하고 희디희던 첫 모양과 감촉이 아련했다. 한 줌 쥐어보곤 도로 내려놓았다. 주둥이를 여며 현관 쪽 구석으로 치웠다. 나는 더 늦기 전에 잘한 일이라고 중얼거렸다. 지레 부린 수선 탓에 숨이 차고 어지러웠다. 그것도 일이라고 티를 냈다. 마대를 꺼내다 몸이 쏠리며 붙박이장에 부딪혀 어깨에 시퍼렇게 멍이 들었다. 와파린을 복용하면서부터는 멍이 쉽게 들었다. 수연은 와파린이 두 잎짜리 작은 연둣빛 식물이 떠오르는 이름이라고 했지만 내 몸에 종종 푸른 멍을 남겼다. 주의해야 하는데 자주 잊었다. 한번은 부엌에서 거실로 전화를 받으러 가다가 고꾸라진 일도 있었다. 전화벨은 울리고 마음은 다섯 발짝 가 있는데 발이 두 발짝만 나갔다. 만세 부르는 모양새로 엎어지곤 광대뼈 부근에 피멍이 들어 한동안 바깥출입도 못 했다. 상처를 본 수연이 놀란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건강하던 엄마를 대장암으로 잃고 난 뒤 누군가 다치거나 아픈 모습을 보는 것이 견디기 어렵다고 그 애는 말했다. 수연 엄마는 나의 막냇동생이었다. 우리는 비교적 이른 나이에 부모를 여의었고 그 때문인지 수연 엄마는 나를 친정어머니처럼 따랐다. 내일 이불집 여자와 만난 수연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새삼 신경이 쓰였다. 어제저녁 퇴근하고 집에 돌아온 수연에게 전화로 간단히 설명했을 때 그 애는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 애에게 의사를 묻지 않았다는 사실이 그제야 짚어졌다. 주고 싶다는 내 마음에만 열중한 탓이었다. 수연의 말이 귓가에 되살아났다. 이모, 너무나 감사한데요. 근데 그것이 저한테 와도 되는 걸까요? 수진 언니에게 주려던 용도로 쓰이지 못한다면 이모가 실망하실 거라고 했다. 나는 심야 뉴스가 끝나고도 한참 동안 마대 주위를 서성거렸다. * 토요일이었다. 수연과 이불집 여자는 오후 세시에 올 터였다. 냉장고에 변변한 음료수 하나 없었다. 비우고 채워 넣는 일이 느슨해지면서 냉장고는 빈 배로 지낼 때가 많았다. 아파트단지 앞에 있는 마트로 나섰다. 수연과 이불집 여자에게 대접할 만한 것을 사올 요량이었다. 오늘도 볕이 좋았다. 노인네 살기에 딱 좋은 날이었다. 햇빛만 쐐도 살갗으로 살아갈 힘이 쏙쏙 스며들 것 같았다. 공연히 눈에 물기가 돌았다. 헐거워지는 건 오래 신은 신발만이 아니었다. 어느 때부턴가 헛도는 나사처럼 감정도 잘 죄어지지 않았다. 단지 초입에 있는 101동이 진입로 건너로 마주 보였다. 남편과 함께 가꾸던 텃밭이 그 어름에 있었다. 목화솜은 거기서 수확한 것이었다. 괜찮은 시절이었다. 나는 아직 사십대였고 건강한 주부였다. 남편은 조만간 은행 지점장이 될 예정이었으며, 아이들은 청죽처럼 푸르디푸른 나이였다. 대학에 다니다 입대한 큰아이는 신도시 북쪽의 부대에 배속되어 군 생활 중이었고 작은아이는 의대 예비과정 학생이었다. 그리고 막내, 수진은 고등학생이었다. 공부에 지쳐 원숭이처럼 두 팔을 늘어뜨려 보이곤 했으나 잘 웃는 버릇과 싱그러움까지 어쩌지는 못했다. 남편은 이곳 토박이였다. 텃밭은 시어른들의 것이었다. 그분들은 신도시가 조성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차례차례 돌아가셨다. 남편이 신도시 지점에 발령받고 우리가 그 부근의 아파트에 이사해 살고 있을 때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이곳은 신도시 외곽의 농촌 지역이었다. 첫 봄에 우리는 텃밭에 무엇을 심어야 할지 갈팡질팡했다. 오랫동안 도시 생활에 익숙해진 탓이었다. 게다가 둘 다 농촌에서 자라선지 농사일의 고단함을 먼저 떠올렸다. 작은 밭 하나를 놓고 겁을 냈다. 우리는 한쪽에 상추와 치커리 따위 푸성귀를 심었다. 그리고 생각해낸 것이 목화였다. 나의 고향에서는 그때도 밭 한 귀퉁이에 목화를 심었다. 그것으로 식구들의 이부자리를 만들기도 했지만 해마다 얼마씩 모았다가 딸들에게 혼수이불을 해주었다. 나는 그게 흉내내고 싶었다. 수진이 결혼할 때 직접 가꾼 목화솜으로 이불을 해주고 싶었다. 딸을 둔 부모라면 마땅히 그래야 하는 것처럼 남편과 나는 의견이 일치했다. 우리는 화초 다루듯 목화를 가꾸었다. 꽃을 피우고 다래를 맺고 목화솜으로 피어나는 과정을 어여쁘게 지켜보았다. 텃밭 농사는 오래가지 않았다. 신도시가 커지면서 이곳도 개발되었기 때문이다. 남편과 나는 목화 가꾸기에 점점 자신이 붙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우리는 그사이 모은 목화솜을 마대에 담아 쓰일 날을 헤아리며 보관해두었다. 텃밭을 포함해 들판은 곧 아파트 숲으로 변했고 우리도 그때 우선 분양을 받아 이곳으로 옮겼다. 남편의 고향 마을로 돌아온 셈이었다. 자동차 경적이 연거푸 울렸다. 택시가 멎더니 차창으로 중년 사내 얼굴이 튀어나와 짜증을 냈다. 할머니, 빨간불에 건너시면 어떡해요. 몇 번이나 미안하다 말하고는 길을 건넜다. 마트는 마을버스가 다니는 이차선도로 건너에 있었다. 도로가 한적한 편이어서 아파트 사람들은 차만 다니지 않으면 신호를 곧잘 무시했다. 파란불이 켜져도 주위를 둘러보고 한 박자 늦춰서 건너라던 수연의 당부가 떠올랐다. 그 애는 가끔 나를 그렇게 상늙은이 취급했다. 돌아올 때는 도로가 텅 비어 있는데도 그 애 말대로 했다. 바퀴 달린 것만 보아도 몸이 후들거리던 시절이 되짚어지며 새삼 몸서리가 났다. 101동을 쳐다보며 진입로에 들어섰다. 멀리 108동 쪽으로 이옥련이 걸어가고 있었다. 그 뒤편으로 노인정이 있었다. 이옥련은 아마 한 시간도 안 돼 영감 점심밥을 차려야 한다며 일어설 것이었다. 이옥련은 죽은 맘보를 부러워했다. 맘보의 남편은 적당히 먹고살 것을 남겨주고 젊다 싶은 나이에 세상을 떴다. 맘보의 기억 속에 남편은 등허리가 꼿꼿하고 새치 몇 개 뽑아내면 염색하지 않아도 검은 머리 빽빽하던 중년 남자였다. 자신의 남편처럼 끼니때마다 밥을 차려 바쳐야 하는 잔소리 많은 영감이 아니었다. 내게 수진이 늘 스물다섯 꽃다운 처녀인 거나 마찬가지였다. 사흘 뒤면 수진의 생일이었다. 마흔두 살의 수진은 어째 상상 속에서도 그려지지 않았다. * 아들들은 수진의 생일에 못 올 모양이었다. 맏이는 그날 참석하지 않으면 안 될 중요한 회의가 있었고, 이태 전 아프리카로 의료 활동을 떠났던 둘째는 아예 그곳에 눌러앉았다. 안부 전화를 걸어온 맏이에게 슬쩍 비춰보고 나서야 맏이가 수진의 생일을 기억조차 못 한다는 걸 알았다. 맏이는 평소 골프조차 흥미보다는 업무와 관련해 어쩔 수 없이 친다고 했다. 남편이 죽고 나서는 수진의 생일에 가족 모두 모이는 일이 뜸해졌다. 내게도 무덤덤해진 자식들에게 수진의 생일을 기억해달라고 바라는 건 부질없는 짓이었다. 내리사랑은 있어도 치사랑은 없는 법이었다. 알아야 할 것은 언제나 너무 늦게 깨달아졌다. 치사랑을 바쳤어야 할 분들은 이 세상에 없고 내리사랑을 주고픈 이들은 내게서 그것을 원하지 않았다. 맏이와 통화를 마치고 집 안을 치웠다. 수연과 이불집 여자가 손님이라도 되는 듯 모처럼 집안일에 열중했다. 거실 베란다를 비로 쓰는데 행운목 부근이 끈적끈적했다. 옆에 있는 화초들도 잎이 번들거렸다. 행운목 꽃에서 흘러나온 끈끈한 액이 주변에 떨어진 것이었다. 꽃대는 꼭대기와 옆구리에서 나온 것 두 개였다. 꽃숭어리 무게가 버거운지 둘 다 잎사귀에 얹히듯 휘어져 있었다. 꽃대가 기대고 있는 이파리에도 투명한 액에 작은 꽃잎들이 들러붙어 있었다. 분무기로 물을 뿜어 화초 잎을 닦아냈다. 개나 고양이만 발정이 나는 건 아닐 터였다. 뜬금없는 상상에 낯을 붉혔다. 꽃이 피고 열매를 맺는다는 건 아름다운 일이었다. 수연이 사온 전복죽을 데워 점심을 먹었다. 입이 깔깔해 도통 맛을 알 수 없었다. 수연의 정성을 생각해 몇 수저 넘겼다. 잠깐 소파에 누웠다. 정신은 우물처럼 맑은데 몸이 한없이 무거웠다. 이렇게 계속 가다 보면 어느 순간 무거워진 몸을 감당하지 못하고 영혼이 쑥 빠져나가는 것일 터였다. 시월엔 애를 셋이나 낳았지. 뼈 마디마디가 죄다 물러난다 한들 그게 뭐 이상한 일이라고. 기운이 없으니 자꾸 헛된 생각이 스며들었다. 나는 눈을 감지도 않았는데 꿈같기도 한 허방 속으로 걷잡을 수 없이 빨려들어갔다. 나 같으면 화장할 시간에 밥 한술 더 뜨겠다. 출근하는 수진의 등에 대고 내가 혀를 찬다. 아침밥은 뜨는 둥 마는 둥 하더니 수진은 머리 손질부터 화장까지 공들인 게 표가 난다. 게다가 생일 밥상 아닌가. 미역국도 먹는 시늉만 한 애가 트렌치코트에 머플러까지 두르고 현관문을 연다. 어쨌거나 그렇게 차려입으니 제법 사회인 티가 난다. 수진은 대학을 졸업하고 두 해째 직장에 다니고 있다. 앳된 얼굴이 불만이더니 오늘의 화장과 차림은 마음에 드나 보다. 저녁에 말씀드릴게요. 수진은 싱글거리며 집을 나선다. 곧바로 현관문이 빼꼼 열리고 수진이 고개를 디민다. 엄마, 미안해요. 수진이 사라진다. 현관의 도어록이 잠긴다. 삐리릭. 나는 현관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수진의 젊음이 눈부셔 그 애가 불고기며 잡채며 생일 음식에 손대지 않았다는 것을 잊는다. 아침 반찬으론 사실 과하다고 남편에게 말한다. 가슴에서 불덩이 같은 게 치밀었다. 나는 화들짝 놀라 몸을 일으켰다. 캄캄해진 눈앞에서 도어록 버튼이 반 바퀴 돌아 제자리에 멈췄다. 동시에 도어록 버튼음도 멎었다. 먼저 살던 집 도어록 버튼은 유난히 소리가 또렷했다. 엄마, 미안해요. 수진의 목소리가 귀에 울렸다. 단풍색 트렌치코트가 어둠 속에서 점점 부풀며 다가오더니 싱글거리는 아이 얼굴이 그대로 내 얼굴 전체로 스며들었다. 나는 냉장고로 달려가 찬물을 꺼내 벌컥벌컥 마셨다. 수진이 저녁에 돌아와 하려던 말은 끝내 듣지 못했다. 그날 저녁의 약속만 아니었다면 수진은 무사했을까? 나는 대답을 얻지 못한 채 오래도록 내 안의 피멍에 주먹질을 했다. 아이를 치고 달아난 운전자에게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저주란 저주는 죄다 퍼부었다. 경찰에선 어떤 단서도 찾지 못했고 남편과 내가 내건 현수막은 그해 가로수가 모조리 잎을 떨어내고 겨울바람이 불 때까지 이면도로 가에서 저 혼자 펄럭였다. 집에서 겨우 두 블록 거리였다. 아이가 사고를 당한 시간에 나는 주중의 텔레비전 드라마를 보고 있었다. 아이의 소개팅에 철 지난 낭만을 덧씌우곤 공연히 들떠 있었다. 생일날의 소개팅을 부추긴 건 나였다. 그 애의 눈부신 젊음이 아까워서였을까. 다음 날로 미루려는 아이에게 미루지 말라고, 생일날 누군가를 만난다면 엄마와 아빠처럼 특별한 추억이 될 수 있을 거라 바람을 넣었다. * 잠에서 깨어났을 때는 안방의 내 침대에 누워 있었다. 수연과 이불집 여자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응급실로 모셔가려 했다고 수연이 말했다. 나는 수연에게 이불 겉감을 골라보라고 했다. 여자가 그래도 될까 하는 얼굴로 샘플책을 내밀었다. 수연이 두세 가지를 골라서 보기 편하게 내 눈 가까이 대주었다. 단색에 디자인이 점잖은 것이었다. 내가 좋아할 만한 것이었다. 수연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짐작이 갔다. 네 취향대로 골라보렴. 자세를 고쳐 앉는 수연에게 내가 말했다. 잠깐 수연의 눈빛이 흔들렸다. 그러더니 뭔가를 결심하듯 입술을 꼭 다물고 샘플책 몇 장을 넘겼다. 나는 그런 수연에게 말했다. 이제는 네 것이란다. 혼수이불이면 좋겠다는 말은 애써 참았다. 나도 말 많은 노인네가 되고 싶지는 않았다. 어떤 녀석과 지지고 볶는 일에 재미를 가져보는 쪽도 하나의 선택일 수 있겠지만. 수연의 표정이 환해졌다. 수연은 제 침대 커버에 맞춰 단순한 줄무늬를 고르겠다고 하더니 갑자기 바꿨다. 자잘한 꽃무늬가 들어간 것으로 분홍색과 푸른색 두 가지를 정했다. 선물은 역시 꽃이겠죠. 수연이 웃으며 너스레를 피웠다. 그쵸, 그쵸. 센스 있으시네. 이불집 여자가 소리내어 웃었다.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어쩐지 울음이 터질 것만 같았다. 여자가 주문서를 만들고 수연에게 영수증을 건넸다. 완성된 이부자리는 수연의 집으로 배달해주기로 했다. 일주일쯤 걸릴 거라고 여자가 말했다. 아, 그런데 따님이 아니셨어요? 여자가 수연과 나를 번갈아보며 물었다. 엄마를 자꾸 이모라 부른다고 여자에게 대답했다. 수연이 내게 눈을 흘겼다. 하긴 이모는 반쯤 엄마니까요. 여자가 말했다. 수연이 여자를 따라 나갔다. 여자와 함께 목화솜 마대를 엘리베이터에 옮기고, 밖으로 나가 여자의 차에 실어주고 돌아올 터였다. 몸인지 마음인지 한구석이 허물어지는 느낌이었다. 나는 그 느낌 속에 담긴 후련함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수연은 밤에도 집에 돌아가지 않았다. 예정에 없이 자고 가는 일이 없는 아이였다. 내일이 일요일이니 상관없다고 했다. 나는 어지러울 뿐 견딜 만했다. 수연은 마치 나를 자리보전하고 누운 환자처럼 대했다. 저녁때는 씻겨주겠다며 수선을 부렸다. 실랑이 끝에 나는 지고 말았다. 대신 세수만 하기로 했다. 세숫대야에 물을 담아 방으로 가져오겠다는 걸 억지로 말렸다. 수연이 욕실에서 세숫대야에 따듯한 물을 받았다. 나는 욕실 문 앞에 순한 아이처럼 앉아 있었다. 수연이 내 목에 수건을 둘렀다. 아주 어릴 적 이렇게 해준 이는 어머니였을까, 할머니였을까. 기억 속에서 삼베수건을 둘러주던 어떤 손길이 생생했다. 수연이 세숫물을 내 앞으로 가져왔다. 세면대에서 비누를 내리며 말했다. 자, 우리 정옥이, 손 씻고 세수하자. 나는 얼굴을 앞으로 빼고 눈을 꼭 감았다. 수연의 손이 어릴 적 누군가의 손길처럼 얼굴에서 시원하게 움직였다. 비누 거품을 내어 씻은 뒤 손으로 물을 퍼 헹구었다. 눈앞으로 말간 가을볕이 지나간다 싶더니 어느새 나는 울먹울먹하고 있었다. 나는 젖먹이가 으앙 하고 우는 것처럼 소리내어 울고 말았다. 울음소리는 어딘지 산비둘기 소리와도 닮은 듯했다. 그것은 구슬픔의 뿌리까지 함께 토해내는 소리였다. 수연은 이번에는 손을 씻자고 했다. 군데군데 검버섯이 돋은 내 두 손을 잡아 세숫대야에 담갔다. 기름기 없는 피부가 수연의 손길에 따라 밀려다녔다. 울음은 참을수록 흑흑 소리가 커졌다. 수연은 다시 물을 받아 손과 얼굴을 헹궜다. 수연은 내 울음은 아예 달랠 생각이 없는 모양이었다. 마른 수건으로 물기를 닦아주곤 거실로 가더니, 행운목 꽃향내가 향수 냄새보다 독하다고 투덜거렸다. 다행히 제집에 있는 것은 꽃이 필 기미 따윈 보이지 않는다며 좋아했다. 그러고 보니 오늘 수연이 꽃향내에 넌더리내기는 처음이었다. /방희진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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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12.29 15:21

[2022년 전북일보 신춘문예 : 심사평 - 동화] “탄탄한 이야기 전개와 동화다운 문장이 미덕”

신춘문예 동화 심사위원 이준관(아동문학가) 예심을 거쳐 본심에 올라온 작품들은 모두 만만치 않은 저력을 보여주었다. 소재는 결손 가정, 불법 체류 외국인 가정 등 다양했다. 전반적으로 동화의 기본 요소를 고루 갖춘 수준작들이었다. 다만, 희망과 위안을 주는 따뜻하고 훈훈한 감동의 참신한 동화가 눈에 띄지 않아서 조금 아쉬웠다. 자바시, 같이 가자!는 불법 체류 외국인 노동자 가정의 아이를 다룬 작품이다. 축구를 통해 외국인 아이를 이해하고 가까워지는 과정이 자연스러웠다. 그러나 특별한 이야깃거리가 없어 밋밋하고 평범한 것이 흠이었다. 마법의 바지는 보육도우미 할머니와의 사랑의 교감을 구수한 사투리를 섞어 정감 있게 그려냈다. 할머니의 사랑의 힘을 상징하는 마법의 바지 설정도 좋았다. 그러나 할머니의 갑작스런 죽음이 너무 작위적이어서 설득력이 약했다. 마법사 김유진은 안 좋은 기억들을 지우고 싶은 아이의 내면 심리를 세련된 문장으로 생동감 있게 그려냈다. 슬픈 기억을 지우는 행위를 통해 아픔을 치유하고 극복해 가려는 아이의 내면을 섬세하게 묘사했다. 구성이나 문장도 무난했지만 기존의 동화에서 흔히 보았던 발상과 설정이라서 참신성이 떨어졌다. 당선작으로 뽑은 지하철역 아이는 위험에 처한 승객을 살리고 목숨을 잃은 아빠를 잊지 못하고 지하철역에 찾아오는 아이의 이야기다. 의인화된 보안 카메라의 시선을 통해 아이의 슬픔과 아픔을 비춰주는 설정이 돋보였다. 아빠의 목소리를 찾는 결말도 감동의 여운을 주었다. 탄탄한 스토리 전개와 동화다운 문장도 미덕이었다. 궁금증을 자아내게 하는 도입부와 잔잔한 울림이 있는 후반부의 결말도 좋았다. 지하철 의인 가족의 슬픔과 그것을 극복해 가는 아이의 이야기를 애틋하고 잔잔한 감동으로 그려낸 좋은 작품이었다. /심사위원 이준관 (아동문학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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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12.29 15:21

[2022년 전북일보 신춘문예 : 당선 소감 - 소설] 방희진 작가 “진심에 닿는 언어 찾기에 게으르지 않을 것”

신춘문예 소설 당선자 방희진 작가 신춘문예 시즌이 되었을 때 응모에 다소 회의적이었습니다. 몇 차례 낙방해 본 경험 때문일까요. 하지만 곧 마음을 고쳐먹었습니다. 이건 축제이고, 축제에 나가 춤을 추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처럼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춤 솜씨가 형편없은들 잘 추려고 축제에 나가는 것은 아니지 않냐고 저 자신을 설득시켰습니다. 축제가 다 끝났다고 여기던 때에 뜻밖에 당선 소식을 들었습니다. 놀람과 설렘의 감정이 뒤엉켜 한동안 허둥거렸습니다. 누군가 저의 춤을 봐준 이가 있다는 것이 신기했습니다. 기왕이면 다음번에는 조금 더 근사하게 춰 보자, 그런 다짐을 하고 있던 참이었으니까요. 오랫동안 소설은 제게 신 포도였습니다. 돌아보면 그런 왜곡된 사랑이 우습기만 합니다. 지나친 사랑이 빚은 참사일까요. 지금은 저 나름의 자기 암시 같은 것을때때로 해 봅니다. 정면을 바라봐. 뒷걸음치지 마. 여전히 부족하고 소설이 주는 고통도 만만치 않지만, 더 나은 실패 쪽으로 한 걸음만이라도 더 나아가보고 싶기 때문입니다. 소설을 쓰다 보면 언어는 늘 미끄러지고 인물의 진심에 가닿지 못했다는 안타까움에 잠을 설치곤 합니다. 인간과 인간사의 탐구라는 소설의 명제를 논하기에는 저는 아직 애송이에 지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그런 명제에 다가가기 위해 늘 깨어 있겠습니다. 진심에 가닿는 언어를 찾기에 게으르지 않겠습니다. 심사위원 선생님들께 감사드립니다. 한 번 네 글을 써보라고 기회를 주신 것이라생각합니다. 끝까지 가보겠습니다. 문학의 길에서 만난 스승과 문우들, 고맙습니다. 아둔한 눈이 조금이나마 뜨였다면 그것은 모두 그들 덕분입니다. 함께 파고를 건너온 가족에게도 감사를 전합니다. 이제는 별이 되신 부모님께 오늘의 기쁨을 바칩니다. △방희진 작가는 충남 서산 출생으로, 동국대학교 국문학과를 졸업했다. 이후 출판사에서 편집 일을 했다. 현재 프리랜서 편집자로 불교 역주 서적을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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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12.29 15:21

[2022년 전북일보 신춘문예 : 심사평 - 소설] “잘 다듬어진 문장, 정갈하면서도 맛깔스럽게 읽히는 문체가 작품의 큰 미덕”

짧은 분량에 어울리는 글감과 주제의식, 인물과 사건의 탄탄한 구성, 깔끔하게 다듬어진 문장. 이는 단편소설의 기본적인 요건이고 미덕이다. 소설 습작 과정도 이런 점들에 초점을 두고 이루어진다. 심사위원이 갖고 있는 잣대 또한 그것이다. 전체 응모작 가운데 본심에 오른 작품은 <모범에 대하여>부터 <미결>, <배출>, <소리없는 방>, <스벅 1호점 한정판 머그잔 구매기>, <이불>, <탈곡기>, <해왕성엔 다이아몬드 비가>, <화이트 칼라의 색깔 노트>, <흉터>까지 모두 열 편이었다. 한 편만 가려 뽑는 심사여서 각각의 작품들이 갖고 있는 장점보다는 흠결을 앞서 들춰볼 수밖에 없었다. 추억담을 지루하게 늘어놓는 식의 구성이 산만한 글이나 문장 훈련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작품이 안타깝게도 절반을 넘었다. 읽는 재미가 돋보여도 결말을 느슨하게 처리하거나 현실감이 떨어지는 사건을 전개해서는 독자의 공감을 얻기 어렵다는 점도 아울러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심사위원들의 수고를 크게 덜어준 작품이 <이불>이다. 암으로 엄마를 잃은 조카와 교통사고로 하나뿐인 딸을 여읜 큰이모가 적절한 거리를 두고 서로의 아픔을 보듬어 주면서 살아가는 모습이 절제된 언어에 얹혀 따뜻하게 다가온다. 단편소설다운 구성력 또한 탄탄하다. 잘 다듬어진 문장, 정갈하면서도 맛깔스럽게 읽히는 문체 역시 이 작품의 큰 미덕이다. 그간의 습작 과정이 얼마나 치열했는지를 엿볼 수 있었다. 이 작품을 쓴 작가가 앞으로 써나갈 소설이 벌써 기대된다. /심사위원 송준호 우석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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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12.29 15:21

김철규 개인전 '인체풍경-주름'

인체주름은 결정되어 타고 나는 것도 아니고 자연스럽게 시간의 흐름에 따라 인체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주름은 삶의 리얼리티이며 한 인생이 살아온 긴 시간의 기록이고 그 누구의 관여가 없는 진실의 흔적이다. (작가노트 중) 김철규 작가가 내년 1월 3일부터 1월 14일까지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1층 아트갤러리에서 개인전 '인체풍경-주름'을 연다. 작가의 말에 따르면 이번 전시는 '주름이 담아내고자 하는 의미과 가치를 생각하는 시간'콘셉트로 기획했다. 나이는 들었지만 현재의 삶을 사랑하고 긍정적으로 바라보자는 의미를 담았다. 주름은 유한한 삶의 허무함을 드러내는 이야기가 아니라 삶의 변화와 확장이라는 게 작가의 설명이다. 김 작가는 "주름이 담아내고 있는 의미를 재해석하는 전시"라며 "추함이 아닌 아름다움으로 인지변화를 꾀하며, 초월적 변화로 포용적이고 진취적인 방향을 지향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인간의 주름이 아름다움으로 인지되는 세상의 가치관을 상상해보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김철규 작가는 군산대 미술학과에서 서양화를 전공했으며, 홍익대 대학원에서 회화를 전공했다. 군산대 대학원에서는 조형예술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개인전 23차례 열었으며, 기획 및 단체전은 '편린(片鱗), 없어진 존재들' (전북도립미술관기획/서울관), '노동 정신을 만들다'(한국전통문화의전당), '천년전라기념 전라굴기展(전) (전북도립미술관기획) 등 170여회 참여했다. 전북청년작가위상작가상, 전북 미술대전 대상 및 우수상, 온고을미술대전 최우수상 등을 받았다. /김세희 기자

  • 전시·공연
  • 김세희
  • 2021.12.28 19:31

전북미술협회 회장 백승관 후보 당선

백승관 씨 전북미술협회 제20대 회장 선거관리위원회는 백승관(54) 후보가 회장으로 사실상 당선됐다고 27일 밝혔다. 백 당선인은 당초 회장 선거일인 내년 1월 8일에 당선 증을 교부받고 3년 임기에 들어가게 된다. 이날 선거관리위원회는 최미남 후보가 사퇴함에 따라 단일후보로 선거 없이 백 후보 선출을 결정하고 최 후보의 사퇴를 전북미협 회원에게 알렸다. 미협관계자는 이날 28일 전북일보와 통화에서 "최 후보가 사퇴하면서 백 후보가 자동적으로 회장으로 선출됐다"고 밝혔다. 앞서 전북미협 회장 선거는 전북지역 미술협회 회면 1300여명이 직접선거를 통해 회장을 선출하는 절차를 거렸으며 지난 20일 후보 등록이 마감됐다. 또 사단법인 전북미술협회를 만들어 문체부 공모사업 등 사업권을 확보하고 회원들의 일자리 창출과 재원을 마련하며 국제아트페어 추진단을 신설해 전북국제아트페어를 유치한다는 구상이다. 도내 기업 및 상공인, 유관기관과 협력해 메세나 후원회를 설립하고 작품판매, 작품대여, 행사 후원 등 지속적인 지원 여건을 조성할 계획이다. 아울러서 전북미술인센터 건립, 회원작품 판매 사이트 운영, 전북미술협회 신물발행 등을 추진해 전북미술협회를 새롭게 만들겠다는 다짐이다. /김세희 기자, 박현우 인턴기자

  • 문화일반
  • 김세희·박현우
  • 2021.12.28 19:31

[2021 전북문화계 결산] 2. 인물‧문화시설

올해 전북문화계 중 인물문화시설 분야는 반가운 소식들이 많았다. 송재영‧장문영 명창이 전북도 무형무화재로 동시에 인정을 받았다. 판소리의 역사와 전통을 보존계승할 전주대사습청도 공식 개관했다. 한국연극협회 전북지회는 제59회 대한민국연극인축제 in 서울&제14회 대한민국 연극대상에서 다양한 분야에서 다양한 분야에서 수상하는 성과를 거뒀다. ㈔전주대사습놀이보존회 송재영(61) 이사장과 전북도립국악원 창극단 장문희(45여) 수석단원이 이일주(85여)가 지난 5월 명창의 뒤를 이을 공식 후계자로 인정을 받았다. 전북도는 지난 5월 7일 무형문화재위원회에서 이같이 확정한 사항을 도보에 고시했다. 도보에 따르면, 송 이사장과 장 단원 모두 보유자 인정 1단계2단계심사에서 우수한 평가를 받았다. 1단계 심사는 전승 활동 실적, 전승 기량, 대상자 평판, 건강 상태, 전승 기여도, 2단계는 심사 실기 능력, 교수 능력, 시설장비 수준, 전승 의지 등을 평가했다. 그러나 국악계에서는 한 문파에서 후계자 2명이 나온 건 이례적이라는 평가를 내놨다. 이에 도는 무형문화재 보전 및 진흥에 관한 법률에 의거해 공정하게 심사했다는 입장이다. 도 관계자는 2년 전 법령이 바뀐 이후 중복지정이 가능해졌다며 태평무,승무 등에서 무형문화재로 여러 명이 지정된 사례가 있다고 말했다. 다만 도 차원에서 중복 지정된 사례는 처음이라고 전했다. 한 문파에서 후계자 2명이 나온 사례를 두고는 자치단체는 무형문화재 보전 및 진흥에 관한 법률에 의거해서 심사를 한다며관련법이 개정 후 2018년부터 한 문파에서 여러 명씩 보유자가 나오는 사례가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태평무 같은 경우 한 스승의 밑에서 4명의 보유자를 지정했고, 이매방 선생 문하에서는 승무 2명, 살풀이 2명의 보유자가 나왔다고 설명했다. 한편 도는 지난 4월 이옥희(이일주씨 본명) 바디 판소리 심청가 전북도 무형문화재 보유자로 송 이사장과 장 단원을 지정(인정) 예고했다. 바디는 판소리에서 명창이 스승에게 전수받은 다듬은 판소리 한바탕 전부를 의미했다. 전주대사습놀이의 역사와 전통을 보존계승할 전주대사습청이 공식 개관했다. 전주시는 지난 11월 25일 전주대사습청에서 김승수 전주시장과 강동화 전주시의회 의장, 송재영 사단법인 전주대사습놀이보존회 이사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전주대사습청 개관식을 개최했다. 이날 개관식에서는 전주대사습청 건립 경과보고와 현판식 등이 진행됐으며, △지전춤(김덕숙) △가야금병창(강정열) △판소리(김나영) △경기민요(이호연 외 4명) △북춤(채향순) 등 축하공연도 마련됐다. 전주대사습청은 기존 전주소리문화관 부지(1315㎡)에 건물 면적 486㎡ 규모의 지상 1층 건물로 건립돼 △대청마루 △소리마당(150명 이상 수용) △오정숙 전시관 △연습실(4개) △연못정자(관광객 쉼터) 등을 갖췄다. 한국연극협회 전북지회가 지난 25일 서울 대학로 예술극장에서 열린 제59회 대한민국연극인축제 in 서울&제14회 대한민국 연극대상에서 2021 베스트작품상, 자랑스러운 연극인상(단체-개인 부문), 감사패, 젊은 연극인상 등 대거 수상했다. 2021 베스트작품상으로 선정된 극단 자루의 <고도리 장미슈퍼>는 도심을 떠나 낯선 마을 고도리에서 지내는 두 주인공의 이야기다. 마을 사람들이 수상하다. 하늘이 반으로 쪼개지는 소리와 벼락이 치고, 마을의 전기까지 끊기고, 폭우로 강물이 불어나 마을 밖과 통하는 유일한 다리가 잠기게 되면서 마을 안에 고립되는 내용이다. 자랑스러운 연극인상 단체 부문에 61년 동안 유구한 연극 여정을 이어온 극단 창작극회가 선정됐다. 지난 1961년 박동화 씨 창단 이래 현재까지 170여 회에 이르는 공연을 통해 연극 여정을 이어오고 있다. 시대적 요구와 예술의 역할에 대한 책임 있는 행동으로 응답하고자 노력하는 단체다. 자랑스러운 연극인상 개인 부문에는 전춘근 씨가 선정돼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지난 1985년부터 지금까지 전주시립극단 상임단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현재 극단 까치동 대표를 맡고 있다. <오이디푸스왕>, <트로이의 여인들>, <고목> 등 100여 편의 연극과 <누가 내 머리에 똥 쌌어?>, <호랑이님 나가신다> 등 인형극도 다수 제작하고 연출했다. 감사패는 故 유영규 씨에게 돌아갔다. 그는 1979년 창작극회 대표, 1994년 전북연극협회장, 1996년 월간 전북연극 발간, 지역 소극장 살리기 운동 전개 등 다양한 활동을 했다. 이 밖에도 <나루터>,<여운>, <꽃신>, <삽 아니면 도끼> 등 다수 작품에서 출연 및 연출을 맡았다. 젊은 연극인상은 유가연 씨가 받았다. 창작극회 단원이자 교육연극창작연구소 씨앗의 대표다. 한국연극협회 전북지회 특별상, 한국연극협회 전북연기상과 엘림연극상, 전북연극제 우수연기상 등을 수상했다. /김세희 기자, 박현우 인턴기자

  • 문화일반
  • 김세희·박현우
  • 2021.12.28 19:31

한국연극협회 전북지회, 대한민국연극인축제-연극대상서 대거 수상

한국연극협회 전북지회가 지난 25일에 대학로 예술극장에서 열린 제59회 대한민국연극인축제 in 서울&제14회 대한민국 연극대상에서 2021 베스트작품상, 자랑스러운 연극인상(단체-개인 부문), 감사패, 젊은 연극인상 등 대거 수상했다. 2021 베스트작품상으로 선정된 극단 자루의 <고도리 장미슈퍼>는 도심을 떠나 낯선 마을 고도리에서 지내는 두 주인공의 이야기다. 마을 사람들이 수상하다. 하늘이 반으로 쪼개지는 소리와 벼락이 치고, 마을의 전기까지 끊기고, 폭우로 강물이 불어나 마을 밖과 통하는 유일한 다리가 잠기게 되면서 마을 안에 고립되는 내용이다. 자랑스러운 연극인상 단체 부문에 61년 동안 유구한 연극 여정을 이어온 극단 창작극회가 선정됐다. 지난 1961년 박동화 씨 창단 이래 현재까지 170여 회에 이르는 공연을 통해 연극 여정을 이어오고 있다. 시대적 요구와 예술의 역할에 대한 책임 있는 행동으로 응답하고자 노력하는 단체다. 자랑스러운 연극인상 개인 부문에는 전춘근 씨가 선정돼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지난 1985년부터 지금까지 전주시립극단 상임단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현재 극단 까치동 대표를 맡고 있다. <오이디푸스왕>, <트로이의 여인들>, <고목> 등 100여 편의 연극과 <누가 내 머리에 똥 쌌어?>, <호랑이님 나가신다> 등 인형극도 다수 제작하고 연출했다. 감사패는 故 유영규 씨에게 돌아갔다. 그는 1979년 창작극회 대표, 1994년 전북연극협회장, 1996년 월간 전북연극 발간, 지역 소극장 살리기 운동 전개 등 다양한 활동을 했다. 이 밖에도 <나루터>,<여운>, <꽃신>, <삽 아니면 도끼> 등 다수 작품에서 출연 및 연출을 맡았다. 젊은 연극인상은 유가연 씨가 받았다. 창작극회 단원이자 교육연극창작연구소 씨앗의 대표다. 한국연극협회 전북지회 특별상, 한국연극협회 전북연기상과 엘림연극상, 전북연극제 우수연기상 등을 수상했다. 한편 본 행사는 한국연극협회가 공연예술의 모태가 되는 연극의 저변 확대를 위해 매년 말 치러지는 연극계 행사 중 하나다. 한 해 동안 공연된 연극 중 우수한 작품을 선정하여 예술가를 독려하고 연극계의 새로운 출발을 다지는 화합의 장을 마련하는 등 연극의 진흥 발전에 기여하고자 진행되고 있다. /박현우 인턴기자

  • 문화일반
  • 전북일보
  • 2021.12.28 19:31

[최완규 교수의 '마한이야기'] 유통의 거점 '부안 백산성' 1

사적 409호 백산성이 위치하고 있는 부안군 백산면 용계리의 백산은 표고 47.4m의 높지 않은 구릉이지만, 주변에 드넓은 평야가 펼쳐져 있어서 먼 거리까지 조망하는데 매우 좋은 자연 지리적 조건을 갖추고 있다. 동쪽으로는 인접해서 직강화가 이루어진 동진강이 서해로 흐르고 있으며, 서쪽으로는 직선거리 1.6km 정도 떨어져 고부천이 서해로 흘러들고 있다. 또한 이 유적을 중심으로 남쪽으로는 고부, 동쪽으로는 신태인, 북쪽으로는 김제로 통하는 육로 교통의 요지라 할 수 있고, 서쪽으로 동진강과 고부천을 통해 서해로 통하기 때문에 해로와 육로를 연결하는 교통의 요충지라 할 수 있다. 백제 멸망 후, 부흥운동 전개과정에서 지원군으로 바다를 건너온 왜군을 의자왕의 아들인 풍장왕(豊璋王)이 직접 백촌(白村)에 나아가 맞으리라는 기록이 「일본서기」에 보이는데, 백촌이 바로 백산성에 해당한다. 또한 백산성의 정상부 평탄지대에는 동학혁명기념탑이 세워져 있는데, 이곳은 1984년 갑오동학 농민전쟁 당시에 동학군이 혁명의 기치를 들었던 이른바 백산기포(白山起包)의 역사적 현장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죽창을 들고 이곳 백산으로 모여들었던 흰옷 입은 농민들의 당시 상황을 앉으면 죽산, 서면 백산이라고 표현한 것을 보면 얼마나 많은 농민들이 이 전쟁에 참여했는지 짐작된다. 이와 같이 백산성이 백제 부흥운동이나 동학농민전쟁의 거점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교통의 요충지라는 지리적 요인이 가장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백산성은 백산의 정상부를 감싸고 있는 테뫼식 산성으로 전체 둘레는 1,064m에 달하며 평면 장축 길이는 358m, 폭 230m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왔다. 이 산성에 대해서는 3차에 걸쳐 발굴조사가 실시되었는데, 당초 예상되었던 백제시대의 성벽은 확인되지 않았다. 1차 조사에서는 정상부에서 원삼국시대 집자리 1기와 구석기시대 문화층과 청동기시대의 유물포함층과 방어시설로 판단되는 3중의 다중환호가 경사면을 따라 굴착되었음이 확인되었다. 2차 조사에서는 원삼국시대 주거지 17기, 시대미상의 석관묘 1기, 구상유구와 주혈군이 확인되었다. 출토유물은 완, 발, 장란형토기, 시루, 주구토기 등 자비용기가 주를 이루고 있으며, 이외에도 방추차, 철도자, 옥 등이 출토되었다. 특히 자연유물로는 쌀, 밀, 보리, 조, 콩, 팥 등의 탄화작물종자와 다양한 잡초종자, 동물의 뼈 등이 다량으로 출토되었다. 그 중에서도 다양한 종류의 곡물류는 이곳이 바로 농산물의 집산지로서 유통의 거점이 되었다는 사실을 뒷받침하는 적극적인 자료라고 볼 수 있다. 한편 2차 조사의 주거지 4기에서 나온 탄화작물과 1차 조사에서 출토된 탄화 목제에 대한 방사성탄소연대 측정결과, 북서쪽 주거지들은 2세기 전반에서 3세기 전반에 해당하고, 남동쪽에 밀집된 주거지의 연대는 3세기 전반에서 4세기 중반으로 나타나고 있어서 인근에 위치하는 벽골제의 초축연대나 영원면 일대의 분구묘 연대와 대체적으로 일치하고 있다. 특히 3차 조사에서는 해발 39-43m에서 4중의 환호가 확인되었고, 그 가운데 2호와 3호의 환호 사이 해발 약 42m에서 2기의 집자리가 발견되었다. 이러한 자료들을 종합해 볼 때, 사적 제409호 백산성의 성격은 백제시대의 태뫼식 산성이 아니라 환호로 둘러싸인 유통의 거점과 같은 특수목적의 유적으로 재정리되어야 할 것이다. /최 완 규(전북문화재연구원 이사장)

  • 문화재·학술
  • 기고
  • 2021.12.28 19:31

[이승우 화백의 미술이야기] 가장 거만한 사내1-쿠르베

여기에 빛바래고 낡아 뜯겨진 달력이 하나 있다고 하자. 어떻게 그릴 것인가. 아니 그보다 먼저 어떻게 볼 것인가. 가슴 벅찬 나의 청춘을 잔혹하게 지워버린 세월의 무상함으로 볼 것인가? 아니면 감정의 증폭없이 보이는 그대로 그릴 것인가. 저 앞에 벌거 벗은여인을 인간이 발견한 최고의 아름다움으로만 볼 것인가? 누구를 위해서? 아니면 생긴 그대로 허리에, 턱밑에 세월의 찌꺼기처럼 올라붙은 삼겹의 군살을 그냥 그대로 객관적 눈으로 볼 것인가. 학자처럼 사유하는 눈으로 볼 것인가. 이도 아니면 일반대중의 현실적인 평범한 눈으로 볼 것인가. 한 시대, 한 공간의 한 가지 사물을 어떻게 보고 무엇을 느끼느냐에 따라 결과는 엄청난 차이를 보일 것이다. 부르주아는 봉건제도를 파괴시키고 다시 프롤레타리아에 의해서 도전을 받는다 했다던가? 프랑스 대혁명 이후 새로운 세상으로의 변화가 두드러지게 전개되면서 미술인들 일각에서도 현실적이고 사회적인 민주화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사회적으로 상류사회를 형성했던 사람들이나, 귀족적 취미를 지향하는 획일성이나 공식적 상황의 추종에 빠져버린 아카데미즘은 새로운 세력으로 등장한 시민계급에 의하여 그 논리적 가치를 도전받게 되었다. 이제 이들을 이해하고자 하는 미술 양식은 우아하고 세련된 것이 아니라 충동적이고 통속적인 현실의 반영했을 것이며, 간접적인 우회가 아니라 실용적 결과를 중요시 하는 것이었다. 이런 일련의 사상들이 동조를 얻고 집단을 형성하게 된다. 쿠르베(Gustave Courbet 1819-1877)의 작품 전시가 계기가 되어 일반인들에게 알려진 사실주의(Realism)가 바로 그것이다. 그가 '돌 깨는 사람들'이라는 작품을 제작했을 때의 일이다. 지금까지 보아왔던 이상이나 상상에 의한 것이 아니고, 일상의 평범한 생활 단면을, 그나마 선택받지 못했던 사람들을 그린 것에 대해 의아해하는 사람들에게 이 사람아, 그것은 내가 꾸며낸 것이 아니야. 내가 늘 산책할 때 그 불쌍한 사람들을 본다네. 그 상태에서 그 사람들의 인생이 시작되고 또 그렇게 인생이 끝난다네. 농부들은 내가 이 그림을 많이 그리는 것으로 아는데 그 이상의 그림을 어떻게 그리겠는가? 라고 한 말은 그대로 그가 표현하고자 했던 사실주의적 입장을 설명하고 있다.

  • 문화일반
  • 기고
  • 2021.12.27 19:24

[2021 전북문화계 결산] 1. 전주국제영화제, 전주세계소리축제

올해 전북 문화계도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코로나 19를 피해갈 수 없었다. 장기간 지속된 코로나19로 각종 공연과 행사에 제약이 따르면서 예술계에선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했다. 예술계는 코로나19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 정부 지침을 철저하게 따르면서 객석 거리두기로 공연을 진행했다. 공연장을 찾지 못하는 도민을 위해서는 촬영한 영상을 각 단체 홈페이지나 유튜브에 올려서 제공했다. 이런 노력덕분에 전주국제영화제와 전주세계소리축제 등 대규모 행사를 무난하게 치를 수 있었다. 고무적인 소식도 있었다. 특히 문화제 분야에서 성과가 돋보였다. 남원‧두락리 고분군에 대해서는 세계유산등재신청서가 지난 3월 세계유산센터(프랑스 파리) 완성도 검사를 통과했다. 유산 등재는 내년 6월 최종 확정될 전망이다. 다만 일본서기에 나온 기문 국명을 등재신청서에 기술한 뒤, 시민단체로부터 식민사관 문제가 제기된 부분은 검토해야 할 과제다. 전북 임진왜란사의 중요 전적지인 웅치전적지에 대한 국가사적 승격 지정도 문화재청에 신청했다. 다사다난했던 올해 전북 문화계를 돌아본다. 올해 전주국제영화제와 전주세계소리축제는 코로나19 확산세에도 불구하고 무난하게 치를 수 있었다. 각 공연장에서는 방역지침을 철저히 준수하면서 현장 공연을 진행했고, 공연장에 오지 못한 도민을 위해서는 영상을 제공했다. 고무적인 성과도 있었다.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상영했던 영화 다수가 제42회 청룡영화상을 받았으며, 실내 공연을 중심으로 예술제로 전환을 시도한 전주세계소리축제도 호평을 받았다. 코로나19 상황에서 온오프라인 병행으로 치러진 전주국제영화제는 양적질적으로 성장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세계 48개국에서 나온 194편(해외 109편한국 85편) 영화가 관객과 만났으며, 관객 수는 오프라인 관객 1만410명, 온라인 관객 9180명으로 총 1만9590명으로 집계됐다.(지난 5월 8일 폐막일 기준) 매진율도 93%를 기록, 흥행에 성공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특히 상영관 전체의 3분의 1만 개방한 좌석을 두고 매일 예매 경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부대행사도 큰 호응을 얻었다. 특히 올해 처음 시작한 지역 밀착프로그램 골목상영과 J비전상 등을 두고 긍정적인 평가가 나왔다. 5일 동안 6회에 걸쳐 영화의 거리, 동문예술거리, 남부시장 하늘정원에서 영화 5편을 상영하는 골목상영은 궂은 날씨에도 끝까지 자리를 지켜준 관객들이 많았다. 다만 폐막 이틀 전 코로나19 확진자 발생은 아쉬운 점으로 꼽혔다. 상영관 좌석 30% 입석 허용, 방영 후 10분 뒤 입장 불가 등 방역수칙을 강화했지만, 관객 1명과 자원봉사자 1명이 확진판정을 받았다. 이로 인해 폐막 결산행사 등 일부 행사가 취소되고, 폐막식은 축소 진행됐다. 한편 전주국제영화제에 상영된 영화 다수가 제42회 청룡영화상에서 수상하는 성과도 거뒀다. 영화상 18개 부문 가운데 여우주연상('세자매' 문소리 배우), 여우조연상('세자매' 문소리 배우), 신인남우상('낫아웃' 정재광 배우), 신인여우상('혼자사는 사람들' 공승연 배우), 단편영화상('오토바이와 햄버거') 5개 부문을 석권했다. 청룡영화상 시상식은 지난 11월 26일 서울 여의도 KBS홀에서 열렸다. 올해 20주년을 맞은 전주세계소리축제(이하 소리축제)는 실내 공연 중심으로 26개의 작품성 있는 공연들을 중점배치, 예술제로의 실험적인 무대를 선보였다. 예술제로서의 실험적 과도기, 안전과 방역을 최우선으로 둔 목표는 비교적 성공적으로 달성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전통의 원형을 보여주는 프로그램은 깊고 충실해졌으며, 콜라보나 변형을 통한 전통의 확장은 과감하고 다채로워졌다. 특히 아르헨티나에서 온 아스토르 피아졸라 퀸텟은 아쟁의 김영길 명인과 협연을 통해 새로운 레퍼토리를 탄생시켰다. 또 전통연희 품바에 현대적인 사운드와 무용을 입힌 다크니스 품바, 국악기와 민요를 적극 도입해 새로운 안무를 짠 국립현대무용단 등은 새로운 팬덤을 형성했다. 대중공연인 강허달림, 전주를 만나다와 선우정아도 가야금과 대금, 해금 등 지역 전통음악가들과의 협업으로 소리축제의 색깔을 입히는데 동참했다. 온라인 관람 문화도 정착시켰다. 올 소리축제는 객석의 30%만 열고, 온라인 생중계를 병행했다. 이에 따라 내년부터는 위드 코로나시대에 대비, 온오프라인의 적절한 병행, 관전 포인트 개발 등에서 차별화를 꾀하는데 여력을 쏟겠다는 방침이다. 박재천 집행위원장은 내년에는 예술성과 축제성, 온라인과 오프라인, 디지털과 아날로그 등 지난해부터 고민해 온 여러 이슈들을 하나로 모아 새로운 변화를 현실화하는 첫 해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 문화일반
  • 김세희
  • 2021.12.27 19:24

이성옥 작가 개인전 ‘Another Garden(타자의 정원, 모두의 정원)’ 개최

이성옥 작가가 오는 30일까지 청목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연다. 이번 전시는 Another Garden(타자의 정원, 모두의 정원)을 주제로 한다. 꽃 이미지, 식물의 형상 등이 담긴 작품 30여 점이 전시된다. 이성옥 작가는 그리기, 새기기, 찍기 등 판화의 복잡하고 힘겨운 과정을 실행하면서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개척해 나가는 중이다. 그는 피나무 목판, 고무 판화는 물론이고 베니어합판, 스티로폼 판을 사용하는 등 순금박 콜라주 혼합 작업을 함께하고 있다. 이 작가는 철 따라 수많은 꽃이 지천으로 피고 지던 고향과 어머니의 꽃밭을 보고 누리면서 자연에 대한 감성과 아름다운 세상에 대한 감각으로 온몸으로 느끼며 자랐다. 이러한 유년 시절의 기억 덕분에 이 작가가 오래도록 정원이라는 모티브에 집중할 수 있었다. 그는 작가 노트를 통해 인생의 마지막 가치는 정원을 가꾸는 일이다., 언제 읽었는지 기억조차 없는 책 속의 한 구절을 늘 마음에 품고 산다며 마음속에 내재한 어지러운 상념들을 비우고, 태우고, 버리며 내가 갈망하는 것은 무엇인가. 후회는 실행하지 않음의 결과와 무모한 실행의 결과, 두 가지일 것이다. 나는 다시 한번 실행의 버튼을 누르고 말았다고 전했다. 이성옥 작가는 미국, 프랑스, 폴란드, 러시아 등 국내외에서 20여 회의 개인전을 개최했다. 300여 회의 단체전에 참여하고, 중국 서안 실크로드 국제전, 미국 시카고 교류전, 한러 교류전, 한중 교수 초대전 등 다양한 국제전에도 참여해 활약했다. 대한민국미술대전 운영 심사위원, 한국미술협회 판화분과 이사 등을 역임했다. 현재 한국미협 전북지회 부회장, 사단법인 아트워크 이사장, 러시아 게르첸 사범대학 초빙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박현우 인턴기자

  • 전시·공연
  • 전북일보
  • 2021.12.27 19:24

전북예총 '전북예술문화60년사' 발간

(사)한국예총전북연합회(회장 소재호)가 창립 60년을 맞아 전북의 예술문화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전북예술문화60년사' 를 발간했다. ​ 전북예술문화60년사는 1962년 전북예총 창립부터 올해 제24대 소재호 회장에 이르기까지, 전북예총 10개 협회 12개 시군예총의 역대 발자취를 담고 있다. 또 전북예술문화를 빛낸 인물과 전통예술문화, 문화재 현황, 지역문화축제, 문학 속 전북이야기 등도 수록하고 있다. 책은 22개 단체 22명의 집필위원과 도내 기자들의 특별 원고로 엮었다. 1편은 전북예총의 설립과 발전과정 ‧ 사진으로 보는 전북예총, 2편은 10개협회의 창립 및 주요사업과 변천과정, 3편은 12개 시군예총의 설립과 주요사업 및 발전과정, 4편은 전북예술문화의 현주소를 담고 있다. ​ 소재호 회장은 발간사에서 "평생을 전북예술문화발전을 위해 열정으로 노력하고 이끌어주신 역대 지회장님과 선배님들의 노고를 잊지 않겠다며 예향전북의 자존심을 지키고 전북예술문화의 재도약을 위해 1만 3000여 회원들이 한마음으로 품격 있는 예술 활동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밝혔다. 송하진 도지사는 축간사에서 60년사 발간을 계기로 자긍심을 높이고 빛나는 성장을 주춧돌 삼아 성숙의 100년을 향해 힘차게 도약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 문학·출판
  • 김세희
  • 2021.12.27 19:24
문화섹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