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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력서] 국회의원 이광철 - 6월 항쟁 '한판의 축제'

2개월의 신혼 생활

연초부터 고 박종철 군에 대한 군사독재정권의 고문치사 사건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드디어 87년이 밝아왔다. 87년 벽두는 재야, 정치권, 청년학생, 시민이 모두 함께한 “2.7고박종철군국민추도회”, “3.3고문추방민주화국민평화대행진” 등으로 숨 가쁘게 흘러갔다.

 

나는 그해 4월 11일, 이재오, 박계동 등의 동지들이 하객으로 참석한 가운데 조촐한 결혼식을 올렸다. 다음날 우리는 사람들의 권유를 못 이겨 계룡산으로 신혼여행을 갔다. 그러나, 시대의 엄혹함이 신혼을 즐길 틈을 허락하지 않았다. 4.13호헌조치로 인해 다시 거리로 달려 나가야 했던 것이다.

 

한 동안 나는 결혼에 대해 경직된 관념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 같다. 돌이켜보면, ‘한가하게 연애나 할 때인가?’라는 편협함이나, 결혼한 선배, 동료들이 쉽사리 가치관을 포기하는 모습을 보면서 일종의 ‘경계의식’ 같은 그릇된 관념이 자리 잡은 것 같다.

 

그러다 문득, ‘한 사람조차 구체적으로 사랑하지 못하고, 어떻게 만인을 사랑한다고 할 수 있는가’라는 생각을 하게 됐고, 곧 결혼을 결심하게 된다.

 

신혼집은 예수병원 뒤편의 허름한 단칸방이었다. ‘후지카’ 곤로에, 작은 장롱과 찬장, 이불채가 살림의 전부였다. 그래도 언제나 신혼집은 사람들로 북적였고, 연일 집들이가 이어졌다.

 

그러나, 신혼생활은 채 2달도 가지 못했다. 6.10 대항쟁의 날이 있기 며칠 전 정보기관원들이 집을 급습한다는 제보를 받고 급히 몸을 피한 후, 한 동안 집에 돌아가지 못한 채, 카톨릭센터 별관에서 신문을 덮고 자면서 다가올 투쟁을 준비해야 했던 것이다.

 

전북/전주의 6월 항쟁은 다른 지역과 차별성이 있었다. 단순한 집회, 시위가 아니라 문화예술과 전통이 어우러진 대동한마당의 장이었다. 마당극, 정세토론, 촛불행진 등 각계각층의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결합된 시위현장은 잘 기획된 한판의 축제같기도 했다.

 

6.10부터 6.29까지 팔달로, 관통로는 그야말로 해방구였다. 끝이 안 보이는 인파로 뒤덮인 거리에서는 민주화에 대한 열망이 이글이글 불타오르곤 했다.

 

관통로 사거리에서는 매일처럼 대동한마당이 펼쳐졌다. 코아백화점 앞 육교는 시위대의 ‘연단’이었고, 육교 밑으로 길게 늘어뜨린 플래카드에 적힌 ‘님을위한행진곡’은 ‘도민의노래’였다.

 

시위 때마다 새로운 시민 연사가 등장해 현장열기를 뜨겁게 달구었고, 목사, 신부 등 종교인들은 시위대 앞에서 대오를 이끌었다. 중앙시장 상인들과 시민들은 시위대에게 먹을 것을 주고, 백골단에 쫓기던 시민, 학생들을 숨겨주기도 했다. 시위 때마다 자발적으로 수백만원씩의 성금이 걷혔고, 심지어 코아백화점 업주들까지 성금을 모아주었다. 우리는 그 성금으로 ‘민주광장’이라는 소식지를 만들어 배포하면서 항쟁을 독려했다.

 

나는 당시 전북민협 사무국장을 맡고 있었다. 이 대항쟁의 과정에서 나는 매일 매일의 투쟁을 기획, 총괄하면서 시위 때마다 연단에서 연설을 했고, 시위가 끝나면 다시 카톨릭센터로 들어가 내일의 투쟁을 설계했다.

 

군산, 이리(익산) 등 전북의 모든 지역이 항쟁으로 들끓었다. 군산 기지촌 여성들은 태극기를 몸에 휘감고 시위에 참여했고, 이리공단의 노동자들도 연일 거리에서 민주화를 외쳤다.

 

6월 민주대항쟁은 전 국민적 참여로 일궈낸 성과였다. 비록 한계가 있었지만, 6.29 선언을 이끌어내고, 우리 손으로 대통령을 뽑는 민주헌법을 쟁취해 낸, 역사적 쾌거였다. 무엇보다 항쟁의 과정에서 그 동안 억눌려 있었던 우리 국민의 역동성과 창조적 상상력이 발현됐던 것은 크나큰 성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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