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효준(전북도립미술관장)
도대체 미국 부자들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지난 15일, 세계 첫번째 갑부이며 마이크로소프트사를 창업한 빌 게이츠가 일선 은퇴를 선언하고 자신과 부인 명의의 자선 재단 일에 전념하겠다는 발표를 하여 세상을 놀라게 하였다. 그로부터 채 2주가 지나지 않아 세계 두번째 부자인 워렌 버핏이 자기 재산의 85%인 370억달러(35조원)를 사회에 환원하고 그 80%를 빌 게이츠 부부의 자선재단에 기부하겠다는 발표를 하여 더욱 세상을 놀라게 하였다.
두 사람은 고율의 상속세를 완전 폐기하려는 공화당 중심의 움직임에 대해 반대 운동을 주도하기까지 한다. 워렌 버핏은 “거대한 부가 세습되는 것은 우리가 평평하게 만들어야 할 경기장을 더욱 기울어지게 만들 것이다”라고 하였다. 버핏의 아들은 부를 세습하지 않은 채 경영에 참여하며 사진 등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에서 활동할 것이라고 한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세계 최대의 아이스크림 재벌 배스킨 로빈스의 유일한 상속자였던 존 로빈스가 자신의 부와 명예를 완전히 포기하고, 각종 유제품, 축산물 관련 업계의 감춰진 진실을 알리고 대중의 의식과 습관을 바꾸려는 저술과 강연 활동에 앞장서는 환경운동가로 변신한 경우도 있었다.
빌게이츠의 결단은 전통적 기부문화에 큰 변화를 불러올 것으로 예상되었고 워렌 버핏의 결단으로 그 예상은 적중되었다. 한편 세계인의 식습관에 존 로빈스가 끼친 영향은 상상을 초월한다. 이들의 공통점은 무엇인가? 그들의 충격적인 결정은 기업 이미지 제고나 홍보효과 증대나 여론 무마 면피용이나 절세의 방편으로 행하는 사회사업의 정도를 넘어섰다는 것이다. 그들은 이윤 극대화라는 시장 논리의 제한 없는 확산과 침투 현상에 대해 문제를 던진 것이다. 시장(市場)의 광포한 수레바퀴에서 내려, 시장에서 사라진 ‘인간의 얼굴’을 되찾고자 하는 의지를 강하게 표출한 것이다.
최근 학교 급식 파동이 일었다. 원가 최소화를 통한 이윤 극대화라는 시장 논리가 최우선시 될 수밖에 없는 시대이다. 자칫 금과옥조인 시장 논리에 밀려 반드시 지켜져야 할 가치가 실종되곤 한다. 어찌보면 예견된 결과이다. 한편 엄청난 종류와 양의 화학합성물이 다양한 식품에 첨가되는데, 치열한 경쟁 속에 속임수가 난무하고 소비자는 제대로 판단할 수 없어 폐해가 확산된다. 역시 ‘원가 최소화’라는 시장 논리에 함몰되어 ‘나나 내 가족은 절대 안 먹을’ 식품을 시장에 내 놓은 결과이다.
그런데 어느 중학교에서는 학교 책임자의 관심과 성의와 열성으로 그 흔한 비리 하나 없이 학생들이 좋아하는 깨끗하고 안전한 급식을 제공하기도 한다. 식품 첨가물 업계 최고의 해결사였던 일본인이 어떤 계기로 첨가물의 유해성을 알리는 전도사로 변신하여 그가 저술한 책이나 방송 프로그램을 통해 우리가 그 실상을 알게 되었다. 이들 역시 광포한 시장의 수레바퀴에서 한발 벗어나 현실을 직시한 이들이다.
‘시장(市場)’은 인류 최고의 발명품이다. 그러나 그것은 만능이 아니다. 그리고 인간계의 모든 분야를 망라하지도 못한다. 문화 예술 부문도 시장 논리에 온전히 종속될 수 없는 분야이다. 문화 예술 부분이 시장에서 경쟁력을 잃어갈 때 지원도 필요하고 그 지원에 힘입어 자생력을 갖도록 지난한 노력도 있어야 할 것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시장에 인간의 얼굴을 되찾아주는 과업”에 문화와 예술이 앞장섰으면 하는 바람이 든다. 시장에서 한 걸음 떨어져, 세상에 감춰진 진실을 드러내고 대중을 각성시키고 우리들의 삶의 가치와 행태를 바꾸는데 일조하는 문화 예술이 절실히 요구되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최효준(전북도립미술관장)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