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세 노인' 이젠 옛말
1300년 전, 중국의 시인 두보(杜甫)가 ‘곡강(曲江)’이란 시에서 외상술값이야 가는 곳마다 널려있지만, 인생이 칠십 년을 살기는 예로부터 극히 드문 일이라는 ‘인생칠십고래희(人生七十古來稀)’란 유명한 시구를 남겼다. 그 역시 47세에 이 시를 썼지만 60의 회갑을 맞지 못하고 59세에 죽었다.
옛날에는 평균수명이 낮아 60을 넘기기가 어려웠으며, 회갑을 지나면 덤으로 사는 것이라 하여 토정비결이나 운수도 보지 않았다. 우리 역시 해방 당시만 해도 평균수명이 겨우 50을 넘길 정도였기 때문에, 회갑잔치는 필수적이었고, 70의 고희를 맞으면 동리잔치 판을 벌일 정도로 희귀한 일이었다.
그런데 최근에는 70은 노인 취급도 하지 않을 정도로 아주 흔한 일이 되고 말았다. 나 역시 70을 넘기고도 아직 노인이라 생각지 않고 있으며, 칠십고래불희(七十古來不稀)의 정신으로 느긋하게 살고 있다. 그런데 마침 아들딸들이 ‘아버님이 70을 맞으셨다’고 잔치를 하겠다는 것이다. 나는 정색을 하고 한마디로 이를 거절하였다.
원래 나는 형식적인 의식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에, 옛날에 그 흔했던 박사학위축하연, 출판기념회, 회갑잔치 그리고 정년퇴임식까지도 전부 사양하여 두고두고 후학들이 서운하게 생각한 바 있다.
칠순잔치를 거절한 이유가 분명히 있다. 현재 우리나라 남성들의 평균수명이 75세이기 때문에 나는 아직 평균수명도 살지 못했는데 무슨 잔치냐는 생각이다. ‘그렇시다면 팔순에는 꼭 잔치를 하겠다’고 하였지만 이 또한 하지 않겠다고 선언하였다.
앞으로 10년 후가 되면 우리도 현재의 일본과 같이 남자의 평균수명이 80이 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잔치를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처지가 될 것이라고 했다. 만일 잔치를 하려거든 88의 미수(米壽)때나 하라고 큰소리친 바 있다. 그때 잔치를 받으려면 아무래도 건강하게 오래 살아야한다고 스스로 다짐하자니 혼자서도 웃음이 나올 지경이다.
옛날에 유럽에 가보면 노인들이 많이 눈에 띄었는데, 이제 서울거리에도 나 같은 노인들이 크게 늘어나고 지하철은 공짜지하철의 노인천국으로 변하고 있다. 주변에서도 실버타운·실버산업·실버세대·실버상품 등 새로운 생활풍속도를 자주 볼 수 있으며, 정년이 계속 단축되면서 ‘오륙도’나 ‘사오정’이 사회문제로 등장하고 있다.
노인이 늘어나지만 가정에서의 가족구성과 서열도 크게 변하고 있다. 우리와 같은 노인세대들은 젊어서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입지도 못하면서 자식들의 교육과 뒷바라지에 평생을 바쳐왔다. 그 결과로 아들딸들이 성공하여 일가를 이룬 것을 보면 대견한 생각이 든다.
그런데 성공한 자식 집에 가면 큰소리치며 대접받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그건 단 며칠뿐이라는 것이다. 자세히 보니 출세한 그 아들도 별 볼일이 없고, 큰소리치는 첫 번째 서열은 하나뿐인 손자이며, 두 번째는 며느리고 성공한 가장인 아들은 겨우 세 번째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네 번째는 할아버지인 자기일 것이라 생각했는데 천만에 말씀이다. 네 번째는 아침저녁으로 극진히 보살펴주는 강아지이고, 다섯 번째는 파출부이며, 여섯 번째는 할머니였으며, 자기는 겨우 일곱 번째였다는 것을 한참 후에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가정이 핵가족화 되면서 나를 포함한 노인들의 위상이 갈수록 추락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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