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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력서] 덕성여자대학교 이사장 이종훈 - 촌티 고교생

다람쥐 쳇바퀴 생활

1997년 8월 모교 군산고에서 특강을 하고 있는 필자. (desk@jjan.kr)

전쟁 중에 증조부모 모두 돌아가시고 숙부들은 결혼하여 분가하고 고모들도 출가하여 식구들이 줄어들 줄 알았는데, 동생들이 계속 태어나 대가족은 계속되었다. 증조부와 조부 그리고 아버지 모두 전형적인 농촌의 선비셨으며, 어렸을 때 증조부의 서당과 향교에서 백일장을 여는 것을 본적도 있다. 이러한 분위기가 나로 하여금 직업의식을 약하게 만들었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장래 희망도 별로 없어서 공부하다 자연스럽게 대학교수가 돼 학자의 길을 가게 된 것 같으며, 집사람도 그런 인연으로 선택하게 됐다. 아들과 두 딸도 모두 그 영향을 받아서인지 대학인이 되었다.

 

중학교와 다른 고등학교에 입학했기 때문에 모두 생소하고 친구도 전혀 없어 학교생활은 재미도 없었다. 그저 다람쥐 쳇바퀴 도는 식으로 기차통학을 반복하였다. 전쟁 중이라 경제적인 여유도 점점 없어졌고 학교 내에서의 생활도 촌티를 벗어나지 못하는 전형적인 샛님이 되었다. 지금 생각하면 젊은 청년이 무엇이 두려워서 자신의 비전과 야망 하나 키우지 못했는지 후회도 된다. 스스로 그때의 내 자신을 평가한다면 유능하지도 못하고 현명하지도 못한 평범한 학생이었다. 그렇다고 무능한 것 같지는 않았지만 분명히 어리석은 모습이었다.

 

특히 고등학교 때는 이방인 신세가 되어 의욕도 없어졌고, 더욱이 담임선생님들과도 각별하지 못하여 무미건조한 학교생활을 했을 뿐이다. 다행스럽다면, 특별히 영어를 잘한 것도 아니었는데 아주 엄격하셨던 정락선 영어 선생님으로부터는 각별한 사랑을 받았다. 나는 지금까지도 그분을 찾아뵙는 스승으로 기쁘게 모시고 있다.

 

3학년이 되어서도 장래의 희망과 대학의 전공분야를 정하지 못했는데 경제과목에 취미가 생겨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때만 해도 흔히 접하는 회사나 은행 그리고 금융조합이 무엇인지 잘 몰랐는데, 경제과목을 통해서 비로소 그 역할을 짐작하게 되었고, 궁금했던 사회물정을 이해하기 시작하였다. 산업과 직업과 직종도 알게 되었으며, 이것이 바로 세상을 알게 하는 것이라 생각하여 경제공부에 취미를 갖게 되었다.

 

초등학교 때나 중학교 때는 지리과목을 좋아했다. 농촌마을이 생활의 전부였던 나는 지리과목을 통해 새로운 세상을 알게 되었고 그러면서 스스로 탐구도 하게 되었다. 초등학교 때 이미 서울지도에 관심이 있었는데, 군산·이리·전주 등 두 글자의 지명과는 달리 서울의 영등포·노량진·이태원 등 세 글자로 된 지명도 신기하게 생각되었다. 일본·중국은 물론이고 세계지도를 그려보기도 했다. 그러나 신기하지만 거기에서 큰 의미를 느끼지를 못했는데, 경제과목은 공부를 하면 할수록 무언가 큰 뜻을 알게 되는 것 같아서 좋아했다.

 

그래서 대학에서는 경제학을 공부하기로 마음먹었는데, 조부께서는 ‘어떻게 먹고살기 위해 상과대학을 가느냐!’는 것이었다. 남자가 큰 뜻을 가지고 법과대학에 가라고 강조하셨다. 사농공상(士農工商)의 의식이 강하셨지만, 나는 직업으로서의 법관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았고 그때 권력에 대한 저항도 있었던 터였다.

 

결국 대학입시공부를 제대로 하지도 못하고 실력이 부족하여 소위 좋은 대학에 들어가지 못했다. 그대신 때마침 이리에 피란 내려온 중앙대학교의 분교에 입학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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