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왕 늦었으니 여유라도 갖자
나는 학생들에게 진정한 학자이자 스승이고자 거듭 다짐했다. 연구와 교육에 있어서 우리나라에는 나보다도 훌륭한 교수가 많지만 그분들이 여러분의 스승은 아니다. 나 역시 다른 대학에서 강의하고 있기 때문에 그 중에는 여러분보다 훌륭한 학생들이 많지만 나의 제자는 아니라고 강조했다. 다시 말하면 나와 여러분은 교수와 학생의 관계가 아니라 스승과 제자의 관계라는 것을 첫 시간에 선언한 것이다.
모든 면에서 제자들의 스승이 되기 위해 노력하였으며, 그 결과로 끈끈한 사제지간의 정을 만들어 대학생활의 보람을 느끼면서 정년을 맞게 되었다.
나는 이 글의 첫 회에서 특별하지도 못한 보통사람이라고 강조한 바 있지만, 나는 보통사람 중에서도 항상 늦게 출발하고 뒤떨어진 지각생이라고 생각하면서 살아왔다. 대학의 강사도 늦게 시작했으며, 외국유학도 30세가 훨씬 넘어서 떠났다. 따라서 박사학위도 다른 사람에 비해 뒤늦게 딴 것은 말할 필요도 없으며, 그 결과로 교수도 40세가 넘어서 늦게 시작하게 되었던 것이다. 더욱이 결혼 역시 남보다 늦어 아들딸을 늦게 둔 것은 물론이고, 생활기반 역시 다른 사람보다 늦게 잡을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나는 항상 인생의 지각생이라고 생각하며 이왕 늦었으니까 오히려 서둘지 않고 차분히 여유있게 살아가기로 마음 먹었다. 다른 교수들에 비하여 연구활동도 부족하였고 사회활동은 더욱 늦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유학기간은 군사독재시기였으며, 귀국 후의 80년대에도 반민주적인 독재정권이 이어지면서 대학사회는 온통 민주화투쟁과 이를 탄압하는 최루탄 정국으로 얼룩진 시기였다.
나 역시 동경대학에서 경제학을 공부했다는 빌미로 유형무형의 감시와 탄압을 받아 사회활동을 할 수 없는 처지였다. 나는 당시의 이러한 사회적인 여건을 감안하고 학생지도는 물론이고 연구와 저술활동만으로 지각생의 부족함을 보충하는데 노력하였다. 때마침 경제성장에 따라 대외무역이 활발해지고 외자유치의 필요성이 높아지면서 일본경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기 시작하였다.
당시의 한국경제는 오늘날과는 달리 중국과 러시아와의 국교가 단절된 상태였고 유럽과의 대외무역도 미미하였으며, 동남아시아와도 경제협력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라 미국과 일본에 크게 의존하고 있었다. 특히 일본과의 관계는 점차 확대되어가는 추세였다. 이에 따라 자연스럽게 대기업에서의 일본경제에 관한 강연 요청이 많아져서 생각하지도 않게 바쁜 생활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내가 일본에서 6년간 공부하면서도 일본경제를 전공하지 않았기 때문에 일본경제를 체계적으로 강연하기에는 역부족이어서 다시 일본에 다니면서 일본경제를 본격적으로 공부하였다.
이를 토대로 일본경제의 형성과 변질(제국주의화) 그리고 성장과 발전을 총정리한 500쪽에 달하는 ‘일본경제론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라는 책(法文社)을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출판하여 경제계와 학계가 일본을 객관적으로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기도 하였다. 모든 것이 지각생이 된 나로서는 다른 사람을 뒤쫓아 열심히 살다보니 인생의 마감도 지각생이 되어 오래오래 살 것이라는 여유도 갖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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