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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치백의 一日五話] 1951년 1·4후퇴로 서울 중공군 손이통일기회 놓쳐

1637년 치욕의 전란 병자호란 발발

◎ 1월 4일

 

①중공군 침입 1·4후퇴

 

6·25 한국전쟁 때 우리 국군이 북한 전역을 점령하여 남북통일이 달성될 찰라, 1950년 11월 중공군이 인해전술로 대거 남침했다. 이에 유엔군은 다시 후퇴하여 1951년의 오늘, 서울은 중공군의 손에 들어갔다. 이를 이른바 ‘1·4후퇴’라고 한다. 그후 반격으로 3월 16일 다시 탈환했다.

 

②치욕의 병자호란 발발

 

우리 역사상 임진왜란과 더불어 치욕의 전란이었던 ‘병자호란’이 일어난 것은 1637년(음 1636.12.9)의 오늘이었다. 조선 16대 인조 때의 이 난리는 청나라의 군신관계를 맺자는 요구를 반대한데서 일어난 것이다. 당시 인조는 남한산성으로 피하고, 마침내는 삼전도에서 항복했다.

 

③조선은행 수송차 습격

 

1920년의 오늘, 당시 한국은행 회령(함북)지점의 현금 수송차가 돌연 습격을 받았다. 이때 탈취당한 현찰은 무려 15만원의 거액이었다. 오늘날의 화폐가치로 보면 수 10억원에 해당된다. 이는 간도 국민회 임국정, 한상호, 윤준희 의사들이 군자금을 조달하기 위한 것이었다.

 

④그림 형제의 독일어 사전

 

독일의 언어학자이며 아동문학가 그림 형제는 전 16권의 ‘독일어 사전’을 만들었는데 그 첫 교정본이 나온 것이 1852년의 오늘이었다. 이날은 형 야곱의 생일이기도 했다. 이 사전의 전부가 완성된 것은 그들이 세상을 떠난 지 무려 91년 후인 1949년이었다.

 

⑤군벌 등에 공직 추방령

 

1945년 종전 후, 일본에 진주한 맥아더 사령부에서는 과거 군벌 및 그에 동조한 자들을 민주화에 부적절하다고 공식에서 추방령을 내렸다. 당시 추방된 자는 무려 20만 3600명에 달했다. 이중에는 전직 내각총리를 비롯하여 현직 대신(장관)도 포함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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