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규(전북대 사학과 교수)
하버드대학서 생각한 것들
(5) 중국, 일본 그리고 한국
언제부터인지 우리는 ‘동아시아’라는 말을 즐겨 쓰고 있다. 그리고 ‘한, 중, 일’이라는 무의식중의 나열 속에서 우리가 중국이나 일본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이 생각은 일본이나 중국에서 직접 그들과 생활을 해보아도 바뀌지 않는 것 같다. 독도문제로, 역사교과서 문제로 그들과 부딪힐 때 우리는 더더욱 그렇게 된다.
그러나 동아시아를 벗어난 이곳 미국에서는 그렇게 생각되지 않는 것은 왜일까? 특히 동아시아와 관련된 연구소에 있다 보니 한국에서는 잘 의식되지 않던 일본이 세계 2위의 경제대국이라는 사실, 중국이 미국에 필적하는 강국이라는 사실이 너무나 많은 곳에서 실감된다.
전체적으로 미국에서 아시아의 지위는 과거보다 더 빠르게 향상되고 있다. 그 실태는 무엇보다 대학들의 커리큐럼 속에서 쉽고 또 확실하게 반영되어 나타난다. 2차세계대전 이전만 해도 소수에 불과하던 아시아관련 강좌가 1990년대 중반에는 154개 조사대학 중 147개대학에서 개설되었다는 통계가 있다. ‘한, 중, 일’의 유학생이 차지하는 비율도 해마다 늘어나 하버드의 경우 유학생 중 약 21%를, 국가별로는 140여국 중에서 중국이 캐나다에 이어 2위(378), 한국이 3위(244명), 일본은 7위(135)를 차지한다.
그런데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대학에 개설된 강의 중에 다수가 중국과 일본을 위주로 하고 있고 한국은 상대적으로 적다는 점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현재 미국의 웬만한 대학에는 ‘동아시아학’(East Asian Studies)이라는 전공이 있고 여기서 한국에 관한 강의가 같이 이루어지지만, 이 때 한국을 주제로 한 졸업논문은 인정되지 않는 곳이 적지 않다는 사실이다. 이유는 한국을 전공으로 지도할 만한 교수가 없기 때문으로 보인다.
과연 하버드나 규모가 큰 대학들에서는 한국학 교수들이 있고 한국전공의 논문도 지도가 가능하다. 하지만 여기서도 한국학의 위상은 열세를 모면하기 어렵다. 하버드의 경우 ‘동아시아 문명 및 언어학과(East Asian Languages and Civilizations = EALC)’에 소속된 교원 44명 중 교수 급 28명의 전공 비율은 중국 14, 일본 11, 한국 3명으로 되어 있다. 이 비율은 다른 대학에서도 대동소이한 것으로 보이며 이에 준해서 학과의 개설과목 수, 도서관의 장서 수 등이 결정된다고 보아 좋다. 이것이 미국이 생각하는 한, 중, 일에 대한 인식도를 반영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현재 미국인들이 생각하는 중국의 존재감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이며, 또 그들의 일본에 대한 관심은 이상할 정도로 높은데다가 일본 스스로 풍부한 자금으로 후원하고 있기 때문에 대학에서 관련 강좌와 교수 수는 늘어나고 있다. 이에 비해 한국의 경우는 미국의 입장에서 볼 때 연구의 필요성이 떨어지고 밖으로부터의 지원도 딸리는 형편이다. 하지만 중국과 일본의 현재의 지위가 오로지 미국의 지원으로 결정됐다고 보는 것은 오해이다. 하버드에서 본격적인 중국학은 이제 50년, 일본은 35년 정도의 연륜을 지녔고, 그 사이의 발전과정을 보면 대학 측의 지원은 생각보다는 크지 않고 교포사회나 정부의 지원과 관심이 상당히 컸음을 알 수 있다. 정식으로 출범한지 이제 10년 정도가 되는 하버드의 한국연구가 어떻게 발전해 갈지, 관련자들의 이야기로는 한국정부도 교포사회도 관심이 많이 부족하다는 것이 중론이다. (끝)
/김성규(전북대 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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