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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칼럼] 잘 늙는다는 것 - 송년홍

송년홍(전주 동산동성당 주임신부)

우리 본당에서 지난 3월부터 어르신들을 위한 문화교실을 시작했다. 65세 이상 되신 분들이 한자리에 모여서 동아리 활동도 하고 점심도 함께 먹고 오후에는 노래교실, 요가 그리고 만들기 등의 프로그램을 가진다. 그런데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바쁘다고 한다. 젊어서는 자식들 키우고 뒷바라지 하느라 자신의 시간을 가지지 못했는데 늙어서는 손자를 돌보느라 시간이 없단다.

 

어르신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지나온 삶이 새겨진 어르신들의 얼굴을 보면서 잘 늙는다는 것이 무엇인가 생각하게 된다. 늙었으니까 이제는 대접을 받고 살거나, 그동안 모아둔 재산이 있다면 이제는 그것을 사용하면서 편안하게 사는 것이 잘 늙는다는 것일까?

 

우리 본당 두 할아버지를 보면서 잘 늙음을 생각해보았다. 한 할아버지는 30년 동안 아내 병수발을 하고 있다. 아내가 파킨슨병으로 쓰러져서 움직이지 못하게 되자 손수 밥을 지어서 먹이고, 목욕도 시키고, 휠체어에 태워서 산책도 시켜주신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사나 회합에 빠진 적이 없다. 집안청소도 할아버지가 당연히 하신다. 그러면서 짜증한번 내지 않고 오히려 정성스럽게 아니 사랑스럽게 아내를 보살핀다.

 

또 한 할아버지는 우리 본당에 매일 출근을 하신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매일 오셔서 성당 구석구석을 다니시며 청소를 하신다. 덕분에 우리 성당이 많이 깨끗해졌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참 열심히 하신다. 한 번에 나에게 내가 이 본당에 있는 동안 그리고 할아버지가 살아있는 동안 성당에 나와서 항상 청소와 정리를 하시겠단다. 그리고 내가 좀 도와주려고 하면 자신의 일을 빼앗는 것이라면서 절대로 못하게 하신다. 고마울 따름이다.

 

물론 이 두 할아버지 말고도 홀로 손자를 돌보는 어르신들도 있고, 하루 종일 일해서 그 품삯으로 다 큰 자식들 뒷바라지 해주는 어르신들도 있다. 평생을 다른 사람 뒷바라지 해주면서 사는 게 바로 늙음의 찬양이다. 나만 생각하면서 다른 사람 돌볼 시간도 없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더 그렇다. 이제는 자신의 노년의 삶도 즐겨야 하지만 평생 동안 자식을 위해서 헌신하는 그 모습이 바로 늙음의 찬양이다. 사는 게 힘들다고 자식을 버리고 고향을 버리고 떠나버리는 젊은 세대와는 달리 피붙이를 사랑하고 땅을 사랑하는 모습이 늙음의 찬양이다.

 

늙음의 찬양은 몸이 늙어가는 것을 서글퍼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더 젊어져서 삶이 완숙함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다. 내가 아닌 내 주위에 있는 존재들에게 관심과 눈길을 주면서 내가 살아온 날에 감사하고 앞으로 남은 날을 충실히 살기를 노력하는 것이다. 몸은 여러 군데가 아프지만 얼굴이 온화해지고 눈빛이 따뜻해지는 어르신의 모습이 바로 늙음의 찬양이다.

 

/송년홍(전주 동산동성당 주임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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