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희(수필가)
바람이 다리미질 하듯 부드럽게 부는 날 자네와 나는 40년 만에 전주 고속버스터미널에서 만났네. 그리고 곧장 마이산으로 갔지. 자네가 마이산에 올라 신비스러워 할 때, 나는 그만 이갑룡 처사의 돌탑 앞에서 주서앉고 말았다네. ‘내 인생의 돌탑은 무엇인가?’ 화두 같은 스스로의 질문에 ‘늙도록 허공만 더듬었는가’ 하는 마음에서였네. 별을 달기 위한 계급의 탑을 쌓는 사람, 재테크의 탑을 쌓은 친구, 학문의 탑을 쌓은 벗 등, 열심히 살아온 이웃의 공든 탑에 비해 만년필 한 자루로 허물어지는 ‘글탑’을 쌓겠다는 자신이 마냥 부끄러웠다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자네 같이 일찍이 홀로 된 어머니와 성심으로 살아온 벗이 있다는데 있어 불어나는 미안함이었네. 이제 세월 흘러 살인죄도 이해가 되고 자식을 버린 부모도 용서가 될 나이에 우리의 우정이 소통되었네. 엊그제 북녘 땅을 달려가던 철마만큼 대견한 일이 아니겠는가.
광현이 친구, 소유가 작아 보이고 겸손이 커 보일 때 나는 행복하다네. 우리 자주 만날 수 없을 바엔 편지라도 주고받으며 지내세. 그리움의 대상이 있다는 게 살아 있음의 확인이요 존재의 까닭수가 되니까.
/김경희(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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