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호섭(전북산악연맹회장)
우리에게 노래 가사로 잘 알려진 킬리만자로의 표범은 헤밍웨이의 소설 '킬리만자로의 눈'에서 처음 등장한다. 만년설로 뒤엎인 산 정상에 진짜 표범이 살고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소설에 의하면 킬리만자로 정상 부근에 분명 말라 얼어붙은 표범의 시체가 하나 있었다.
"표범은 무엇을 찾고 있었던 것일까?"라고 스스로 의문을 제기하면서 시작되는 이 소설은 주인공이 사냥을 나섰다가 죽음의 고비에 이른 삶의 극한에서 지난날을 회상하며 비로소 인생에 대해 눈을 뜨게 되는 내용이다.
짐승의썩은 고기만을 찾아다니는 하이에나가 아니라 표범이고 싶다는 조용필 노래의 대사 역시 "나는 지금 지구의 어두운 모퉁이에서 잠시 쉬고 있다"며 방황속의 희망을 이야기하지만 끝내는 "산에서 만나는 고독과 악수하며 그대로 산이 된들 또 어떠리"라며 자조섞인 독백으로 끝을 맺는다.
염세적이기는 하지만 인생에 대한 의미를 다시금 생각하게 만드는 소설이요, 대사가 아닐수 없다.
흔히 인생을 등산에 비유한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일단 오르막과 내리막이 분명하다는 게 인생과 꼭 닮았다.
어디 그 뿐인가?
정상이라는 목표에 집착하다보면 주변경치를 보지못하고 지나치듯, 살면서 삶의 무게에 눌려 이웃을 잊고 지내는 날이 또 얼마나 많은가?
올라가는 길 보다 내려오는 길을 더 조심하라는 등산수칙 역시 인생의 지침과 가르침에 있어 차이가 없다.
이런 시각으로 본다면 정상이 등산의 목표일 수는 있어도 등산의 끝이라고 단정지을 수는 없을 것 같다.
정복을 시샘하는 장애물은 오르막과 내리막을 가리지 않고 도처에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유능한 산악인은 정상에 오르면서도 하산을 위해 30%의 체력을 남겨두는 걸 잊지 않는다.
정상에 오르려는 욕망은 원천적으로 정복의 유혹에서 비롯된다.
누구도 대신해줄 수 없는 고난과 고통을 극복하고 난 다음에 누리는 희열은 오직 정복자의 몫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접근을 허락하지 않는 세계적 암봉에 도전하는 산악인들은 누구보다도 더 등반의 위험에 대해 잘 아는 사람들이다.
그러면서도 이들은 왜 위험을 무릅쓰는 것일까?
이에 대한 대답은 자신과의 싸움에서 결코 지지 않으려는 남다른 의지와 집념에 서 찾아야 할 것이다.
한 번의 실패도 없이 성공한 인생은 찾아보기 쉽지 않다.
실패하는 것 보다 도전하지 않는 것이 더 부끄러운 일이라고 했다.
그들은 도전하기 위해, 실패하지 않기 위해 수많은 시간을 준비한다.
준비하지 않으면 오를수 없고, 대비하지 않으면 내려올 수 없는 게 산이기 때문이다.
자고나면 위대해지고 자고나면 초라해지듯 희망과 절망 사이에는 간격이 없다.
오르막과 내리막만 있는 게 산이요, 인생이다.
하지만 똑 같이 올라가고 똑 같이 내려오는 것이 아니기에 등산의 묘미가 있고, 인생의 맛이 있는 것이 아닐까?
이분법적 논리 안에도 수많은 함수가 존재하고 있어 오르는 길도 각기 다르고 내려오는 길도 각기 다르다.
중요한 것은 정상에서 끝나는 인생은 드물다는 것이다.
원하던 원치 않던 내려거야 하는 것이 산이요, 우리네 인생이다.
진정 산에서 인생을 배운 사람이라면 하이에나처럼 구차하게 짐승의 썩은 고기를 찾아 헤매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산의 겸손을 온몸으로 터득한 사람이라면 내려오는 길을 두려워 하지도 않을 것이다.
생각 없이 산길을 걷다보면 발밑만 보게 되어 자칫 길을 잘 못 들 때가 있다. 또 같이 가던 사람과 헤어져 온 산을 헤맬 때도 있다.
산악인들은 이 때 지도와 나침반을 꺼내 자신의 위치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한다.
누구나 자신의 인생지도 어딘가를 지금 자나고 있을 것이다.
세상이 싫어지고 삶이 고단할 때 한번쯤 자신의 인생지도를 꺼내놓고 현재의 위치와 나아갈 방향을 확인해 볼 일이다.
/엄호섭(전북산악연맹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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