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양숙(덕진동 청소년문화의 집 관장)
.... 언니에게
주변이 온통 푸르른 논과 밭 밖에 보이지 않던 고향에서 대학에 진학하고자 1983년에 전주로 왔지.
언니는 이미 초등학교에 다니는 남동생과 자취를 하면서 직장에 다니고 있었지.
아침마다 연탄불에 따뜻한 밥과 석유곤로에 국을 끓여 정성들인 밥상을 차리고 남동생과 나를 돌봐주었지.
저녁에는 졸고있는 나를 깨워 공부를 하게 했지.
그러던 어느날 언니는 좋은 배필을 만나 결혼을 하고 군산에 신접살림을 차렸지.
언니는 음식도 잘 만들고 뜨개질도 잘하고 살림살이도 억척스럽게 잘 했지.
내가 대학다닐때 알바비 벌기위해 언니와 나는 뜨개질을 했고 (나는 옆에서 쬐끔 도왔지만)그래서 언니는 지금도 가끔씩 어깨가 아프다고 하잖아.
사랑하는 나의딸 지은이는 지금도 언니만 왔다가면 맛있는 음식을 해 준다고 이모가 자주 오기를 바래지.
인생은 삶은 내맘과 뜻대로만 이루어지지 않을때가 더 많은 것 같애.
내가 중간에 굉장히 어려움이 많았잖아.
그럴때 언니는 넓은 마음으로 기댈 수 있게 해 주었지.
그 덕에 난 다시 일어나기 위한 몸부림을 쳤지.
나에게 주어진 운명이라면 거부하지 말고 부딫히자.
최선을 다해서 성실하게 노력하자.
포기하지 말자. 난 할 수 있어. 난 할 수 있어....를 몇 번이고 되 뇌이며 열심히 살았지.
내가 힘들고 어려울때 기댈수 있는 언니가 있어서 지금의 내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 같아.
그런데 그동안 한번도 고맙다는 말을 못했어.
마음으로는 항상 고맙고 감사하고 미안한데 표현하지 못했던 내 마음을 이제야 언니와 형부에게 사랑을 듬뿍 담아서 두분 행복하게 사세요 로 대신할게.
/정양숙(덕진동 청소년문화의 집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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