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성원(원불교 수계농원 교무)
며칠 전 경북 청도에 있는 한옥학교에 구들교육을 다녀왔습니다.
구들은 수천 년 동안 우리민족이 개발한 난방법으로 추운겨울을 따뜻하게 지낼 수 있었던 것은 물론이고 아궁이의 타는 불을 이용하여 취사도 겸했던 우리민족의 주거문화에 있어서빼 놓을 수 없는 소중한 건축물이었습니다. 지금은 산골마을에서도 구들 놓으러 가보면 나이70-80되는 노인들이 구경할 정도로 잊혀져가고 있지만 말입니다.
이렇게 사라져 가는 구들을 배우기 위해 초청한다니 만사를 제쳐두고 갔습니다. 생각보다 젊은 분들이 많았습니다. 우리의 전통주거 문화인 한옥과 구들을 배우기 위한 열정이 대단하여 동질감을 가졌던 가슴 뿌듯한 하루였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러한 열정만으론 따뜻한 구들방을 얻을 수는 없다고 했습니다. 모든 사물에는 까닭 있게 보면 우리에게 깨침을 주는 소중한 진리가 숨어 있듯이 구들 또한 마찬 가지이니, 쩔쩔 끓는다는 구들의 따뜻함의 표현 속에서 우리가 얻어야할 깨침을 얻자고 했습니다. 구들 놓는 방법을 아무리 잘 배워도 골 고루 따뜻한 방하나 제대로 놓을 수 없는 것은 이러한 깨침을 얻지 못했기 때문이라 했습니다. 좋은 구들장을 구하고 아궁이와 굴뚝을 아무리 잘 만들어 아궁이의 불길이 활활 잘 타오른다고 해서 방이 골고루 따뜻하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아궁이의 뜨거운 불길을 방전체로 골고루 잘 나누어 주는 기관인 불목을 잘 만들어 주어야 방이 골고루 따뜻하기 때문입니다. 아궁이의 뜨거운 불길을 잘못 나누면 어느 곳은 너무 뜨거워 사람이 견딜 수 없고 어느 한쪽은 불길이 잘 미치지 않아 방이 차가워 사람이 생활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구들에 대하여 진정으로 깨침을 얻은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너무도 당연하여 다 알지만, 깨치지 못하면 누구도 쉽게 터득 하지 못 하기 때문입니다.
뜨끈뜨끈한 구들방 아랫목에 이불 한 장 깔고 모든 가족이 발 담그고 웃음꽃 피울 수 있는 구들의 미학은 바로 그 열쇠가 불나누기에 있다는 것을 알고 깨쳐야 즐길 수 있다는 것을 가르치고 왔습니다.
이것이 다만 구들에만 국한 하겠습니까?
우리 사회도 구들과 다를 바가 없다고 봅니다. 가끔 우리농원 언덕에 서서 눈앞에 펼쳐져 있는 공단을 바라보고 거리에 나가보면 참으로 풍요롭다 못해 넘친다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꽉 들어선 공단 숲은 쉬지 않고 무엇인가 만들고 있습니다. 아침 저녘이면 수많은 자동차로 길 건너에 있는 논밭도 둘러 볼 수 없도록 넘쳐 납니다. 거리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수많은 네온 불빛은 밤낮이 없습니다. 이 넘쳐나는 이면에 가슴이 시리고 어려운 이웃이 수없이 많음을 잊지 않았으면 합니다. 너무 성장에만 치우친 나머지 우리사회 전체가 균형있는 분배에 소홀하지는 않은지 살펴보았으면 합니다. 어려워 하는 농민 노동자와 어려운 이웃들을 보고 있노라면 구들생각이 납니다. 활활 타는 뜨거운 불길이 골고루 나누어져 어느 한쪽은 너무 뜨겁고 어느 한쪽은 너무 차가운 구들방이 아니라, 골고루 쩔쩔 끓는 구들방 같은 미학을 우리사회가 배웠으면 합니다.
/안성원(원불교 수계농원 교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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