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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잔 있으면 가득 채워 마시고 싶을 뿐" 고은시인

21년 대장정 연작시집 '만인보' 탈고

"소회요? 이백의 시에 보면 '달 아래 잔을 비워놓지 말라'는 시가 있는 데…. 어디 빈 잔이 있으면 가득 채워 마시고 싶을 뿐입니다."

 

원로시인 고은(74)이 한국문학사상 최대의 연작시집인 '만인보(萬人譜)'(창비)를 탈고했다. 시인은 27일 "최근 '만인보' 24-26권을 출간했다"며 "나머지 네 권도 이미 초고를 모두 끝냈다"고 밝혔다.

 

1980년 여름 남한산성 육군교도소에 수감 중 착상했다는 '만인보'는 우리 민족의 수많은 인간상을 시를 통해 형상화하려는 시도에서 계획됐다. 1986년 봄 시인은 모두 3천500편으로 완결하겠다는 공언과 함께 1-3권을 세상에 내놓으며 20여 년에 걸친 대장정의 깃발을 올렸다.

 

1988년 4-6권, 1989년 7-9권이 잇따라 나왔고 10-12권이 7년 만인 1996년 나왔다. 다시 1997년 13-15권, 2004년 16-20권, 2006년 21-23권이 출간됐고 그리고 1년7개월여 만인 최근 24-26권이 발간됐다.

 

이번에 새로 펴낸 24-26권에는 모두 395편의 시가 수록됐다. 그동안 출간된 각 권에 수록된 작품 수는 평균 130여 편 안팎. 내년 초 출간될 마지막 네 권을 제외한 1-26권에 수록된 시편은 줄잡아도 3천400여 편에 이른다.

 

김용직 서울대 명예교수는 "이 연작시집에서 고은은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우리 사회 전 구성원들을 다뤘다"며 "시집에서 노래된 사람들의 숫자는 4천명에 육박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한국문학사를 통틀어 최대 연작시"라고 '만인보'를 평가했다.

 

시인은 이날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21년 간에 걸친 대장정을 완수한 소감을 "빈 잔이 있으면 채워 마시고 싶을 뿐"이라며 "어느덧 20년이 넘어버렸다. 본래는 이렇게 오랫동안 쓰려고 했던 것은 아닌데"라고 말했다.

 

시인이 인용한 이백의 시는 "빈 술잔을 가지고 달을 대하지 말라/ 하늘이 내게 주신 재능은 반드시 쓰일 곳이 있으니"라는 내용의 이백의 절창 '장진주(將進酒)'를 의미한다.

 

시인은 그러나 "(세월이 흐른 덕분에) 80년 대를 다른 시각에서 바라볼 수 있었다. 다른 시대를 살아본 눈으로 그 당시를 파악하는 것이 그 시대의 눈으로 보는 것 보다 종합적이고 온전한 접근이 가능했다"며 "어떻게 보면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이야기하기도 했다.

 

초고를 끝낸 마지막 네 권은 보완.수정할 부분이 남아있고 출판사 사정을 감안해 내년 3-4월 쯤 출간할 예정이다.

 

시인은 마지막 네 권의 내용에 대해 "가파른 1980년 대를 살아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현재까지를 망라하게 될 것"이라며 "현재 뺄 것은 빼고 더할 것은 더하는 등 최종 정리 작업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시인은 벌써 '만인보' 이후의 작품도 구상 중이다. 시인은 "다음 작품은 형이상학적인 세계로 나아가볼까 한다"며 "아시아의 고대 철학이나 그 이후의 여러 사상들을 녹여낼 생각"이라고 설명했다.

 

"머릿속에서 자꾸 그런 것들이 먼저 써달라고 야단입니다. 시집 분량은 200자 원고지 1천500-1천600장 정도가 될 것 같아요."

 

'만인보' 마지막 권이 나오는 2008년은 시인이 등단 50년을 맞는 개인적으로 매우 의미가 있는 해다. 시인은 등단 50년을 맞는 감회를 "다시 처음부터 시작하고 싶은 기분"이라고 말했다.

 

"마침내 시인 생활 50년을 맞습니다. 그것은 제가 이제까지 지나온 길을 되돌아봐야 할 시점이기도 합니다. 내가 모국어로, 모국의 은혜로 살아왔기에 그런 것을 되돌아보는 시기입니다. 25살에 시작해 이제 75살이 됐으니…. 다시 영점에서 걸어가야겠습니다."

 

"원래 꿈이 화가였다"는 시인은 내년 6월께 인사동에서 등단 50년을 기념하는 자그마한 그림전시회도 하나 마련할 계획이다. 직접 그린 서예 작품과 서양화 등을 선보일 예정이라고 한다.

 

한편 이번에 출간된 24-26편에서 시인은 다양한 스님들의 삶과 행적을 좇으며 신라시대부터 근대에 이르는 한국의 불교사를 복원한다.

 

시인은 '기와스님', '영규', '벽암 각성' 등의 시를 통해 탈속한 고승들의 고매한 정신을 뒤좇는가 하면 '자장', '친일승 몇대' 등에서는 세속적인 욕망에 눈먼 승려들의 삶을 통해 잘못된 역사를 일깨우기도 한다.

 

'견훤', '기황후 권세', '공녀' 등에서는 권력의 무상함과 역사의 아이러니를, '전두환' 등에서는 군사정권의 잔혹성에 대해 비판하는 등 기존 '만인보'에서 보여줬던 역사적 인물들에 대한 조명작업도 잊지 않았다. '미녀 이소사', '한 소년대장' 등 이름없는 민초들의 삶에 대한 묘사는 특히 감동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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