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꿈요? 모두가 행복한 세상이죠"
한때 한미 FTA 체결 등으로 인해 벼랑 끝으로까지 내몰렸던 진안 상전면 배넘실마을이 새로운 변화의 바람에 들썩거리고 있다. 그 중심엔 이 마을위원장을 맡고 있는 이춘식(51) 목사가 서 있다.
생산비도 건지지 못했던 배추 등 농산물을 제값에 팔리도록 한 것은 물론 해바라기 메이풀재배 등 공동수익사업을 통해 복지농촌의 근간을 만들어 낸 장본인이기도 하다.
농촌살리기운동도 버거울 터에 이 목사는 (사)가나안나눔터로 하여금 지체장애우들의 삶의 터전 제공과 함께 아이들을 입양해 건사하는 일까지 마다않고 있다.
채 50가구도 안되는 작은 농촌마을이 새 희망의 싹을 틔워갈 수 있었던 것도 이 때문이다.
이 목사가 금지마을과 양지마을 2곳이 통합된 배넘실마을과 인연을 맺은 때는 지난 1990년 8월. 총신대학원 졸업반 시절인 33세때 달랑 지도 한 장 들고 금양교회 전도사로 오면서부터다.
평소 동경해왔던 농촌생활인 탓에 기대 또한 컷지만 그가 목도한 농촌 현실은 분명 이상과는 괴리가 있었다.
애써 가꾼 배추밭을 갈아엎는 모습이 그렇고, 그나마 수확한 농산물도 제대로 된 판로를 찾지못해 중간도매상에 헐값에 넘기는 현실이 그러했다. 그야말로 "피폐된 농촌들녁 그대로였다"고 그는 회고한다.
목회도 중요하지만 진정 마을 주민들의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일이 더 시급한 과제임을 깨닫게 된 것도 이 무렵. 그래서 제일 먼저 시작한 일이 도농교류를 통한 직거래사업이다.
"한번은 한 농민이 배추를 갈아엎길래 무작정 달려가 작업을 중지시켰죠. '내다 팔아야 손해'라는 말은 귀에 들리지 않을만큼 작금의 농촌현실에 화가 치밀었기 때문"이라는 이 목사.
결국 점심까지 굶어가며 온 종일 전주시내를 돌고서야 1톤 트럭 1대분량의 배추를 모두 파는 억척스러움을 보였다. 밭떼기로 넘기면 포기당 80원에 불과한 배추가 200원의 제값에 넘겨진 것이다.
이 때문에 '배추목사'란 애칭까지 얻게 된 이 목사는 이에 그치지 않고 마을에서 생산되는 고추 감자 콩이며 할 것없이 모든 농산물로 직거래를 확대하기에 이른다.
피폐된 이 농촌마을이 비로소 그 토대 위에 올려질 무렵인 1996년, 그는 또 다른 일에 눈을 돌렸다. 어려운 이웃들의 안식처인 (사)가나안나눔터를 통해서다.
이곳엔 오 갈데 없는 무주택자나 장애인, 또는 '모두가 행복해지는 세상'을 꿈꾸는 이 목사와 뜻을 같이 한 사람 등 3세대 10명 남짓한 식구들이 모여살고 있다.
이들은 금양교회 유휴지를 기반으로 한 (사)가나안나눔터에서 도자기 장구, 부채 등을 제작, 판매하며 자립의 꿈을 키워가고 있다.
이들 뿐 아니라 나눔터 설립과 함께 입양된 불우 아동들도 그의 보살핌을 받고 있다.
13년전 전주시내 길거리에 쓰러진 할머니의 보호를 받던 세살배기 소년과의 인연이 그 계기가 됐다. 입양할 당시 이 소년은 할머니로부터 폭행 등 온갖 학대를 받으면서 정신불안증세까지 보이던 터였다.
그러던 소년이 지금은 반에서 1∼2등을 다툴만큼 학업 성적도 우수하고 여느 가정의 중 3 학생처럼 올곧이 성장하는 등 4명의 입양아들이 저마다 부푼 꿈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정작 이 목사에게는 나눔터 운영이 되레 걸림돌이 되기도 했다. '무능력자들을 끌어들여 동네 이미지가 안좋아진다'며 나눔터를 그만두던지, 아니면 목사직을 내놓으라는 주민들의 요구 때문이다.
"인생에 있어 가장 힘든 시기가 바로 그때였습니다. 한때는 정말 마을을 떠날려고 다른 장소를 물색한 적도 있었죠. 그러나 그럴 수 없었습니다. 아직 할 일이 남아있었기 때문이죠." 이런 연유로 나눔터사업을 마을공동체운동으로 전환한 이 목사는 '복지농촌마을가꾸기사업'을 통해 1교1촌 자매결연을 맺고 농산물직거래를 활성화하고 마을환경정비를 시작했다.
농로를 따라 마을 담장에 즐비한 벽화도 자매결연을 맺은 인천 가람고와 광주 동명고 학생들에 의해 그려졌고, 새롭게 시작한 배넘실선착장 등 체험장도 외지인을 끌어들이려는 목적에서 개설됐다.
이 목사의 끊임없는 자구노력은 결국 배넘실마을이 지난해 '전통테마마을'로 선정되는 쾌거로 이어졌고, 이를 지도한 전북농협과 정부로부터 모두 4억원의 인센티브까지 받게 되는 등 그 결실을 보고 있다.
"가진 게 없어도 행복한 세상, 그런 참된 세상을 만들고 싶을 뿐"이라는 이 목사는 "이제야 갈 길을 찾은 듯 하다"란 말로, 하늘이 내려준 천직임을 내비쳤다.
이 목사는 그러면서 "무일푼으로 시작한 사회복지사업도 그 뜻을 같이하는 지인(후원자)들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라며 이 일을 지속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준 후원자에 감사의 뜻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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