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100여명 홀로노인 점심 대접…원불교 고창교당 여성봉공회·자원봉사자들 참여
'한식날 성묘하니 백양나무 새 잎 난다. 농부의 힘드는 일 가래질 첫째로다. 점심밥 잘 차려 때 맞추어 배 불리소. 일꾼의 처자권속 따라와 같이 먹세. 농촌의 두터운 인심 곡식을 아낄쏘냐.'
조선후기 다산 정약용의 둘째아들 정학유가 쓴 '농가월령가'중 3월령이다. '미물(微物)도 때를 만나 즐거워하는' 시기인 한식(寒食)에 한겨울 동안 훼손된 조상의 묘를 손보며 예를 갖추는 성묘와 함께 농촌의 후한 인심을 묘사돼 있다.
함께 살아가는 이웃에 대한 도타운 정을 나누는 선현들의 풍습과 정신을 하루도 빠짐없이 10년째 이어가는 곳이 있다. 고창읍 관통로에 자리한 '한 권속 효도의 집'. 옛 조상들이 일꾼뿐 아니라 그 권속까지 배불리 먹였듯이 '한 권속 효도의 집'은 홀로 사는 노인들에게 따뜻한 점심을 무료로 나눠주고 있다.
'한 권속 효도의 집'을 통해 10년째 소외계층에 무료급식을 이어오고 있는 이들은 원불교 고창교당 여성봉공회(회장 안영우). 지난 2004년 4월 1일 문을 연 이 시설에서 점심을 해결하는 노인은 하루에만 100~130명에 달한다.
이 가운데 거동이 불편한 노인 78명에겐 봉공회원들과 자원봉사자들이 순번을 정해서 직접 배달한다. 원불교 고창교당 정상훈 교감은 "고창 관내를 5곳으로 나눠 매일 자원봉사자들이 할머니 할아버지를 찾아뵌다"면서 "점심을 나눠주는 것은 물론 말동무, 그리고 건강 여부까지 점검하는 일석삼조의 시간이 바로 이때"라고 말했다.
이 시설의 일상은 아침 8시부터 시작된다. 하루 100인분이 넘는 점심과 도시락을 준비하다 보니 이른 아침부터 서둘러야 한다. 오전 10시 따뜻한 도시락이 준비되면 당일 봉사자들이 나와 각 면단위 지역까지 빠짐없이 순회한다. 멀게는 차량으로 30분까지 가야한다. 이들은 도시락 하나로 하루를 드시는 분들이 있다는 이야기를 접한 뒤에는 밥은 물론 반찬까지 수북하게 담아낸단다.
도시락 다음은 이 식당에서 끼니를 해결하는 노인들을 위한 점심상. 국과 반찬 만들기가 마무리될 즈음인 10시 30분께부터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발걸음이 이어진다. 배식시간이 1시간은 족히 남았는데도 삼삼오오 모여든 이들은 식탁에 둘러앉아 이야기 꽃을 피운다.
"모양성 앞에서 시내로 자리를 옮긴 뒤 이곳을 찾는 분들이 더 늘었어요. 병원과 시장 등이 가까워 읍내 분들은 물론 면단위 어르신들까지 찾아오시는 거죠. 점심을 든든하게 잡수시는 분들이 많아질 수록 더 힘이 나요."
무료 급식 첫날부터 지금까지 한차례도 빠지지 않고 자원봉사에 나섰다는 이경원(60)씨는 아프고 힘들 때도 있지만 점심을 기다리는 어르신들 얼굴이 생각나서 힘을 내 식사준비를 한다고 밝혔다.
이씨처럼 10년 세월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이곳에서 자원봉사한 김도원화·한진선씨 등을 포함한 봉공회원과 도시락 배달을 자처하고 나선 자원봉사자들까지 합하면 한 해 동안 이곳에서 사랑나눔을 실천한 이들은 300명을 훌쩍 넘는다. 이들은 점심이 끝난 뒤 다음날 식사를 위한 뒷정리를 마무리하면 오후 2시를 훌쩍 넘긴단다.
'한 권속 효도의 집'이 강산도 변하게 된다는 10년 세월에도 쉼 없이 사랑 나눔을 해온 데는 원불교 고창교당의 교도들과 자원봉사들의 든든한 지원과 관심 때문에 가능했다. 지자체와 국고에서 지원되기는 하지만 사랑 나누기는 항상 넘치기 보다는 모자라기 마련이다.
정상훈 교감은 "부족한 부분은 교도들이 십시일반으로 쌀과 반찬은 물론 성금까지 쾌척하는 것으로 해결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 권속 효도의 집'에서 나누는 따뜻한 밥 한 끼로 싹틔운 사랑 나눔이 한식날 새잎을 틔운 백양나무 만큼이나 싱그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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