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원 김주열 열사 묘역 찾은 학생, 뙤약볕 도시락 / "지지부진 추모공원화사업 서둘러야" 한목소리
지난 25일 마산 제일여고 학생 80여명이 민주 성지 답사 차원에서 남원시 금지면 옹정리에 자리한 김주열 열사의 묘역을 방문했다. 학생들은 참배를 마치고 김주열열사기념사업회 관계자들로부터 김 열사에 대해 배움의 기회를 가졌다. 김 열사의 고향이자 뼈가 묻힌 남원이 민주정신을 배울 수 있는 중요한 공간으로 부각된 셈이다.
하지만 학생들의 이날 방문에 적잖은 문제점이 노출됐다.
뙤약볕에 그늘이 전혀 없고 쉼터도 마련돼 있지 않아 학생들의 현장교육에 불편이 초래된 것이다. 도시락을 먹을 수 있는 공간도 마땅치 않아, 학생들은 추모각 건물 밖 '그림자 그늘'에 의지해 겨우 식사를 할 수 있었다. 이는 화장실, 주차장, 휴양시설, 녹지 등을 조성하는 김주열 열사 추모공원화사업이 재정 및 관심 부족으로 9년째 터덕거리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김주열열사기념사업회 관계자는 "초·중·고 수학여행단과 현장학습단이 이 곳을 찾아 민주정신을 배울 수 있기를 바란다. 하지만 학생들에게 부끄러운 현실을 보여줄 수 밖에 없는 상황이 안타깝다"면서 "학생들이 열사의 고향이자 민주 성지인 남원을 찾아 역사교육을 제대로 받을 수 있도록 지금부터라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1944년 10월 7일 남원시 금지면 옹정리에서 태어난 김 열사는 금지동초등학교의 전신인 용정국민학교 6회 졸업생(1950년 4월1일∼1956년 3월21일)이다. 열사는 고향에서 금지중학교까지 졸업한 뒤 1960년에 마산상고로 유학길에 올랐다. 김 열사는 같은 해 3월15일에 부정선거를 규탄하는 시위에 참가했다가 행방불명됐고, 27일만인 4월11일 오전 11께 마산 중앙부두에서 오른쪽 눈 부위에 최루탄이 박힌 참혹한 시신으로 떠올랐다. 그의 주검은 4·19혁명으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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