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구 무찌른 곳인데…허전 / "인근 피바위 등 역사교육장·관광자원화" 지적
황산대첩, 그 역사의 현장은 바로 남원이다. 이병채 남원문화원장과 함께 방송에서 집중 부각된 황산대첩 현장을 찾았다. 남원시가 귀중한 역사문화자원을 어떻게 활용하고 있는지에 대한 점검 차원이다.
남원시내에서 20㎞ 가량 떨어진 운봉읍 화수리에는 고려말 이성계가 왜구와 싸워 대승을 거둔 전적지인 ‘황산대첩비지’가 자리잡고 있다. 남원 황산대첩비지 안에는 황산대첩사적비, 황산대첩비, 파비각이 세워져 있다.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가 고려 우왕 6년(1380년)에 황산에서 왜구를 크게 무찌른 업적을 기리기 위해 선조 10년(1577년) 왕명을 받아 이곳에 황산대첩비를 건립했다는 ‘황산대첩비’, 일제강점기 때인 1943년 11월 조선총독부에 의해 파괴됐다가 1977년에 비각을 건립하고 파괴된 비석 조각들을 모아 안치했다는 ‘파비각’이 역사의 현장임을 다시한번 실감하게 했다.
하지만 남원 황산대첩비지는 왜구를 크게 무찌른 승전지 답지 않게 뭔가 허전한 모습으로 다가왔다.
이병채 원장은 “스토리텔링 부재 등 관광자원화 전략이 미흡한 것이 주된 원인”이라며 “성역화 작업 등 관광객들을 유도할 수 있는 지혜를 모아야 한다”고 주문했다.
황산대첩비지에서 1㎞ 가량 거리에 위치한 피바위는 역사의 물줄기 속에서 여전히 붉은색을 띠고 있다. 황산대첩 당시 왜장 아지발도와 왜군의 피가 바위를 붉게 물들였다는 피바위의 전설은 후세들의 산교육장으로 활용하기 위한 자원으로 충분해 보였다. 그런데 피바위 비석이 눈에 쉽게 띄지 않는 등 관광자원화 부각에는 의구심이 들 정도였다.
이병채 원장은 “남원은 풍부한 역사문화자원을 갖추고 있으나 이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피바위 역시 관광자원으로 뛰어난 매력을 지니고 있지만 외지인들은 쉽게 찾을 수 없다”면서 “남원시는 피바위 전설에 대한 안내문과 함께 입간판을 눈에 띄는 곳에 설치해 중요한 역사문화자원으로 활용해야 할 것”이라고 꼬집었다.
〈황산대첩〉
고려 말 우왕 6년(1380년) 8월, 왜구가 500여척의 선박을 이끌고 진포(군산과 서천 앞바다)를 통해 침입했다. 이에 고려 조정은 당시 최무선이 제조한 화약을 사용한 대포로 공격해 왜선을 모조리 불태워버렸다. 배를 잃은 왜구들은 전라도와 경상도 등 내륙지방에 들어가 약탈과 살상을 자행했다. 고려 조정은 이성계에게 왜구 토벌을 맡겼고, 이성계는 운봉 황산(해발 697m) 일원에서 왜구를 섬멸했다.
이성계는 승전 다음해인 1381년 황산을 찾아 전투에 참가한 사람들의 이름을 암벽에 새겼다. 또 조선은 1577년(선조 10년) 운봉읍 화수리에 황산대첩비를 세워 전승을 기렸다. 하지만 일제는 이 암벽과 비를 폭파하고 정으로 쪼아 글자를 식별할 수 없게 하는 만행을 저질렸다. 해방 후 대한민국 정부는 대첩비를 다시 세우고, 폭파된 비석 파편을 모아 ‘파비각’을 세워 역사를 바로 세웠다. 남원시와 운봉애향회는 매년 황산대첩의 쾌거를 기리는 행사를 개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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