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전북역사문화학회 연구용역 통해 주장 / "최제우 동경대전 집필 등 사상적 이론 완성"
남원시가 연구용역을 통해 ‘남원이 동학농민혁명운동의 성지’라는 입장을 발표해 눈길을 끌고 있다.
남원시는 동학의 창시자인 최제우가 동경대전을 집필했고 동학이라는 명칭을 정식으로 사용하기 시작하는 등 사상적 이론을 완성한 곳은 남원이라고 5일 밝혔다.
시는 최제우와 동경대전 주요 집필장소인 은적암, 김개남 장군을 비롯해 남원에서 활동한 동학농민군의 체계적 정리와 역사적 재평가를 위해 지난해 4월 (사)전북역사문화학회(회장 나종우)에 연구용역을 맡기고 최근 최종보고회를 가졌다.
시는 연구용역에서 남원지역 동학과 관련한 사진과 자료 등을 국내외에서 270건 이상 찾아냈다고 설명했다.
연구용역에서는 △남원 동학과 관련한 인물들의 후손들과의 체계적인 면담 및 조사 기록 △가칭 남원동학농민혁명기념관 건립 △동학 관련 기념행사의 연례적 개최 △동학 관련 유적지 문화재지정 등재 추진 △동학 관련 유적지와 연계한 관광코스 개발 △지속적인 학술연구·학술대회 개최와 남원 동학농민혁명의 자료집 발간 등의 필요성이 제기됐다.
시는 이 연구용역결과를 바탕으로 남원 동학의 위상 제고, 시민 자긍심 고취 등의 방안을 마련하기로 했다.
〈남원시가 발표한 남원 동학〉
남원 동학은 1861년 12월15일 동학의 창시자인 최제우가 광한루 아래 오작교 주변에 머물면서 서형칠 등 6명에게 포교하면서 비롯됐다.
최제우는 이후 교룡산성에 있는 은적암(덕밀암)으로 거처를 옮겨 동학의 중요 경전인 ‘논학문’, ‘권학가’, ‘도수가’, ‘검가’ 등을 저술했다.
이 가운데 1862년 1월에 지은 ‘논학문’에서 동학이라는 명칭을 처음으로 기술했다.
이후부터 동학이라는 명칭으로 포교가 시작돼 남원이 동학 제2의 성지가 됐다.
이후 동학농민군들의 전주성 점령과 전주화약체결로 각 고을에 집강소가 설치될 때, 동학의 대접주 김개남이 1894년 6월25일 남원에 입성했다.
이때부터 남원은 전라좌도지역을 통치했고, 전봉준은 전라감사 김학진과 회담 후 7월9일경 남원에서 여러 접주들과 만나 의논해 7월15일경 수만명의 교도들이 참석한 남원대회를 열면서 49일간 머물렀다.
이때 김개남은 5영을 설치하고 정비해 11월에 북상했다. 김개남이 북상하자 운봉의 박봉양 민보군과 방아치에서 전투를 벌여 농민군이 참패를 당했고, 김홍기 등 동학지도자들이 체포돼 처형됐다.
류태홍은 500여명의 병력을 이끌고 순천 방면으로 달아나 온갖 고초를 겪으면서 살아남았다.
동학정신은 일제항일운동으로 이어져 남원 교도였던 김형진은 김구와 함께 독립운동에 참여했다.
남원 동학정신은 자유당 독재 정권에 저항하는 정신으로 이어져 김주열 같은 열사를 배출했다.
동학혁명의 정신이 일제시대 항일운동으로 이어지고 해방이후 독재에 저항하는 민주정신으로 이어진 예는 남원이 유일하다고 할 수 있다.
류태홍의 진술로 최병현이 기술한 ‘남원종리원사부동학사’는 남원 동학의 위상을 높이는 중요한 자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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