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 냄새가 시고 향기롭게 그러나 서글프게 섞여 있는 시월의 햇발을 받고 앉아 이렇게 편지를 쓰고 있으니 새삼스럽게 여러가지가 고맙기만 합니다.”
<혼불> 의 저자인 고 최명희 작가가 화가 김병종 교수에게 보낸 장문의 편지가 발견돼 관심을 모으고 있다. 혼불>
길이 1m 30㎝(폭 20㎝)에 이르는 이 편지는 마치 조선시대 규방 문학의 한 편린을 본 듯 한지에 또박또박 단아한 글씨를 세로형으로 썼다.
최 작가가 문단에 데뷔하던 39년 전 1980년 10월 10일에 화가에게 쓴 이 글에는 자신의 근황과 화가에 대한 일상적 안부뿐 아니라 단호하고 절절한 작가 정신의 결기까지 담겨져 있어 문학적 사료로서도 그 가치가 높을 것으로 보인다.
문장은 마치 혼불의 한 장(章)을 펼친 듯 소설적 분위기와 흡사하며, 오래된 서간뭉치들 속에서 작고시인 김영태와 섬진강 시인인 김용택, 동양사학자 민두기 선생, 철학자 도올 김용옥 선생 등의 편지들과 함께 발견됐다.
김 교수는 최명희 작가를 지난 1980년 1월 중앙일보에 신춘문예의 시상식장에서 처음 만나 인사를 나누었다고 한다. 그 해 신춘문예에 최 작가는 ‘쓰러지는 빛’을 주제로 단편소설 당선자였고, 김 교수는 ‘지붕 위에 오르기’라는 작품으로 희곡 분야 당선자였다.
김 교수는 당시 그림보다는 거의 연극에 빠져 보낸 시절이었다고 술회했다. 김 교수가 남원이 고향인 것을 안 최 작가가 남원의 사매면이 외가이며 여고생 때 방학이면 그 외가에 가서 글을 쓰곤 했다는 이야기를 했다는 것,
김 교수보다 6년 연상인 최 작가는 고향의 문단 선배로서의 종종 안부와 함께 집필의 정황까지도 소상히 전해주곤 했다고 한다.
김 교수는 “최 선생님은 너무도 아까운 나이에 세상을 떠나셨지만 그 육체적 삶의 연한과는 관계없이 문학적 삶은 생생하게 지속되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다만 문학관 안의 콘텐츠들을 한 번씩 정비하고 이번과 같은 발굴 자료들을 바꿔가며 전시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어 “개인 의견이지만 문학관 안의 남원지방의 민속자료들은 장차 민속박물관에 이관하여 별실로 혼불민속자료관으로 독립시키고 현재의 문학 자료들과는 분리했으면 한다”고 의견을 피력했다.
한편 김 교수가 이번에 발굴한 장문의 편지글은 곧 남원의 혼불문학관에 기증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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