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4년 1월10일 정읍 고부에서 촉발된 동학농민혁명은 백산대회, 황토현 첫 승전, 무장기포, 전주 입성, 전주화약, 삼례 2차 봉기, 공주 우금치전투, 완주 대둔산 최후 항전에 이르기까지 약 1년 간 전국을 휩쓴 반봉건 민주 투쟁, 반외세 일제 침략에 맞선 독립운동이었다.
그러나 동학농민혁명 전개 과정에서 일제 침탈에 거세게 맞선 도화선이 된 완주 삼례 2차 봉기와 대둔산 최후 항전이 여태껏 국가지정문화재(사적)로 인정받지 못하고, 특히 2차 봉기 삼례 역참터의 경우 기념물 지정조차 안된 채 방치, 완주군을 비롯 정계와 학계의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12일 완주군에 따르면 동학농민혁명 관련 전북지역 국가지정문화재(사적)는 정읍 황토현전적지와 전봉준선생 고택지, 그리고 부안 백산성 등 3곳이다. 다른 지역 사적지도 충남 공주 우금치전적지, 전남 장성 황룡전적지 등 극소수에 불과하다. 전국 130여 개에 달하는 동학농민혁명 전적지 등 관련 유적과 유물에 남겨진 증거가 불충분하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동학농민혁명은 이제 과거와 달리 국가기념일로 제정돼 3회째를 맞았고, 일제에 항거한 독립운동, 그리고 헌법에 그 숭고한 정신을 넣는 작업, 유네스코 세계기록문화유산 등재까지 추진될 정도의 위상을 가졌다.
이런 가운데, 1894년 9월8일 교주 최시형이 일제의 국권침탈에 맞서는 반외세의 기치 아래 무력 봉기를 선언하고, 제2차 봉기의 중심지로 세웠던 완주군 삼례는 국가지정문화재는커녕 시도지정기념물 지위도 확보하지 못한 실정이다.
2차 봉기장소인 옛 삼례 역참터를 제대로 특정하기 힘들다(증거 불충분)는 이유 등으로 완주군 등 모두가 지난 수 십 년 간 손 놓고 있었기 때문이다.
고산지역 접주 최공우 등 50여 명이 최후 항전을 벌인 대둔산 항전지가 2015년 시도지정기념물로 지정됐을 뿐이다.
외세로부터 나라를 지키기 위해 전국에서 모여든 동학군이 2차 봉기한 역사적 장소 삼례, 동학군 최후 항전지 대둔산 모두 국가지정문화재로서 그 가치가 차고 넘친다는 것이 역사학계는 물론 지역사회의 시각이다. ‘증거 불충분’만 내세울 것이 아니라 지역 정·관계는 물론 학계의 지속적 관심과 노력이 아쉬운 상황이다.
동학농민혁명재단 이형규 이사장은 지난 11일 언론 토론회에서 “2차 봉기장소인 삼례는 매우 중요한 곳이다. 지역에서 관심을 갖고 사적지로 지정될 수 있도록 하면 좋겠다”고 지적했다.
완주군 관계자는 “도시개발이 진행돼 수많은 건물이 들어서 있는 바람에 삼례 역참터를 특정하기 어렵다 것이 그동안의 경과였다. 향후 학술대회 등을 통해 그 의미와 가치를 조명하고, 삼례 역참터를 찾아 나서는 등 국가지정문화재 승격을 모색 하겠다”고 밝혔다.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