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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세종 애민정신 오롯이⋯군산 옥구읍성 가치 높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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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2년조선시대 고지도에 그려진 옥구읍성. /이미지출처=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옥구읍성은 극심한 왜구들의 침입에 백성을 지켜야 한다는 세종의 애민정신에 의해 세워진 것으로 알려졌다.

군산대학교박물관 참고문헌을 보면 군산시 옥구읍 상평리에 위치한 옥구읍성지는 조선시대 옥구현의 행정적‧군사적‧문화적 중심이었다.

옥구읍성 축성 시기는 조선시대 세종 4년(1422) 10월이며, 옥구연안 광월산 능선을 따라 축조돼 행정과 방어를 위한 최적의 형태를 갖췄다.

둘레는 대략 1.6㎞로 추정되며, 현재 길이 1300m 높이 4~8m 내외의 토축 성벽과 순심로가 비교적 양호하게 남아있다. 

세종은 이곳에 30여 개의 관아 시설을 배치했으며, 수령과 관리들이 근무한 것으로 전해진다.

성 안에는 옥구향교가 자리하고 있고, 신라 말 대학자 고운 최치원 선생의 자천대가 1934년 옮겨와 향교 내에 자리하고 있다.

 ‘문종실록’, 문종 1년(1451)의 기록에 언급된 축성 규모는 성곽 둘레 1511척, 높이 9척, 여장 높이 2척 수300개, 문3, 옹성 없고, 우물 1개가 있다. 

또한 1481년 편찬된 ‘동국여지승람’에는 옥구읍성의 성곽 둘레가 2058척, 높이 8척이라 했으며, 중종 19년(1524)증·개축되어 둘레 3490척, 높이 12척으로 기록되었다. 

성곽의 용척은 포백척으로 46.73㎝이므로 둘레 1630m, 높이 5.6m이다.

이러한 옥구읍성은 일제강점기 시대에 동헌이 있던 자리에 옥구군 공립보통학교가 들어섰으며, 이후 상평초로 이어져 운영되다가 현재 폐교된 상태다.

문정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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