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주군 동학농민혁명 학술연구 용역 최종보고회서 비정, 국가문화유산 지정 제안
반봉건·반외세의 기치를 걸었던 동학농민혁명 삼례 2차 봉기지로 현 삼례동부교회 자리가 비정됐다.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은 23일 우석대학교 W-SKY23에서 열린 ‘완주군 동학농민혁명 학술연구용역 최종보고회’에서 2차 봉기의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지목하지 못했던 봉기지를 문헌기록과 현장 정밀검증 등을 통해 삼례 동부교회 일대로 비정했다고 밝혔다.
재단에 따르면 삼례 2차 봉기지는 전봉준 장군의 재판기록(<전봉준 공초>) 등 여러 문헌에 삼례역참으로 나와 있으나 삼례역참의 정확한 위치를 놓고 그동안 의견이 분분했다.
재단은 삼례역참 자리인 봉기지 비정을 위해 <본교역사> 등 문헌기록에 나오는 역참의 개략적 위치를 설정하고 사료상 지리적 특징을 분석했으며, 1910년대 지적원도의 필지경계와 현재 지형을 분석했다. 여기에 일제강점기 건물(심상소학교) 흔적과 구전이 일치한 삼례 동부교회 일대를 봉기지로 최종 확정했다고 설명했다.
전봉준 장군은 당시 재판에서 삼례에서 일본 공격의 거사를 의논했으며, 도로가 네 곳으로 통하고 역촌이 있어 삼례를 봉기지로 선택했다고 재판관 질문에 답했다. 삼례역은 단순 경유지가 아닌 2차 봉기의 실질적 본부(대도소)였고, 봉기에 모인 숫자가 4000명 이상이었으며, 서울 진격의 출발점이었다는 사실은 <전봉준공초>외에 주한일본공사관 기록 등 여러 문헌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날 용역보고에서 용역을 맡은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은 완주군은 삼례 2차 봉기 외에도 수천명의 동학교도가 삼례역에 모여 교조 최제우의 억울함을 호소한 교조신원운동, 동학농민군과 관군·일본군이 고산에서 벌인 전투지와 화약제조지, 우금치 패전 후 3개월간 처절하게 항쟁했던 대둔산 최후 항전지 등 동학농민혁명 관련 지리적·역사적 핵심 장소들이 완주군에 있으나 이들 역사에 대한 연구와 유적 보존이 미흡하다고 지적했다.
실제 도기념물로 지정된 대둔산 전적지의 경우도 전적비와 최후 항전지 위치가 상이하고 탐방로가 없어 안내자 없이는 탐방이 어려운 상황이며, 다른 유적지는 대부분은 유적지인지 표식조차 없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 같은 실정에서 재단은 이번에 비정한 삼례역참 봉기지와 고산 전투지의 문화유산 지정을 우선 정책과제로 제시했다. 또 삼례~고산을 잇는 `동학농민혁명 순례`을 개발해 역사교육장 및 관광자원으로 활용하고, 완주동학의 위상을 재정립할 수 있도록 완주군-기념재단-지역주민이 참여하는 상설협의체 구성을 제안했다.
유희태 완주군수는 “이번 학술연구는 완주군이 동학농민혁명 역사에서 차지하는 위상과 역할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의미 있는 성과다”며,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사적 지정 검토와 유적 정비, 교육·전시·기념사업 등 다양한 정책으로 확장하겠다”고 밝혔다.
완주=김원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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