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칼럼] 대화의 단절, 대화의 어긋남 - 김동건
몇 년 전만 해도 이런 저런 시리즈들이 유행 한 적이 있었습니다. ‘사오정 시리즈’, ‘최불암 시리즈’,‘덩달이 시리즈’, ‘참새 시리즈’, ‘만득이 시리즈’ 등등... 그런데 이런 시리즈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하나의공통점이 있음을 알게 됩니다. 즉 이런 유머들은 하나같이 시대의 현실을 정확히 반영하고 있는데, 좀 더 구체적으로말하면, ‘의사소통의 단절’이라는 시대적 현상을 반영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사오정 시리즈가운데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사오정이 T.V를 보고 있다. 엄마가 몇 시냐고 묻는다.사오정은 MBC라고 대답한다. 엄마는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되었냐고 반문한다.” 왜 이런 이야기들이 유행을 했을까요? 논리도 맞지 않고, 의미도 없는, 말장난에 불과한 이야기들이.... 말은 사회 구성원들간의 약속입니다. 즉 언어에는 약속과 믿음이 전제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대화불통'과'대화 엇갈림'을 소재로 삼고 있는 유머가 유행된다는 것은 우리 사회에 이와같은 약속과 믿음이 깨어지고있음을 반증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또한 사오정 시리즈에서처럼 한쪽에서 묻는 말에 엉뚱한 대답으로일관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상대방도 즐기고 있습니다. 양자 모두 딴소리하는 것을 묵인하고있다는 것입니다. 아마도 이와같은 현상은 우리 주변에 일방적으로 자기 이야기만 하고, 다른 사람의 말은 듣지않는 현상에 대한 조롱과 풍자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그러고 보니 요즘 정말, 대화가 되지 않는 현실을 많이보게 됩니다. 특히 부모와 자식 간에 대화가 되지않는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게 됩니다. 그래서 서로 자기가 하고 싶은 말만 하고는 귀를 닫아버립니다. 그러니 늘대화가 통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대화의 단절’, ‘대화의 어긋남’... 이와같은 현실에 적응하기 위해 사람들은 독특한 처세술을 배우게 됩니다.자기의 속마음을 감추는 법도 배웁니다. 말이 통하지 않으니까 진실한 이야기를 삼가게 됩니다. 사람들을 많이만나고, 많은 이야기를 나누기는 합니다. 그런데 대부분 쓸데없는 이야기들뿐입니다. 열심히 웃어가면서이야기하지만, 뒤돌아서면 허전하기만 합니다. 이렇게 해서 많은 사람이 함께 모이기는 모였지만, 저마다‘외로운’ 사람들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외로움은 무엇입니까? 마음과 마음을 깊이 주고받을 수있는 사람이 내 주위에 없을 때 오는 아픔이요, 내 진심이무시될 때 느껴지는 마음이기도 합니다. 주위 사람들은 많은데, 아무도 나에게 관심을 가져주지 않을 때 느끼는감정이 바로 외로움인 것입니다. 얼마전 버지니아 공대에서 일어난 총기사건으로 인해 우리 사회는 엄청난 충격을 받았습니다. 32명의 목숨을 앗아간범인이 한국계 청년으로 밝혀지면서, 이런 저런 반성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이 청년에 대한이야기를 들으면서 마음이 아팠던 것은, 그의 성장 과정이 너무도 외로운 삶이었다는 사실 때문이었습니다. 그에게는친구가 없었습니다. 아무도 이해하지 못하고, 아무에게도 이해받지 못했던 삶을 살았다고 합니다. 결국 그 청년의정신적 방황의 끝은 비극적 사건으로 결말지어지고 말았습니다. 어쩌면 이런 귀결은 당연한 결말인지도모르겠습니다. 늦었지만 이 사건을 계기로 더 이상 우리 사회에서 대화의 단절, 대화의 어긋남이 일상적인이야기가 되지 않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오히려 이처럼 병든 사회를 치유하기 위해 서로의 이야기에 귀를기울여야 할 때입니다. 그래서 외로운 사람들에게 사랑의 손길을 내밀어야 할 때입니다. /김동건 목사(전주중부교회 원로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