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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창] 조선시대 격변의 역사가 있는 '삼인대'

현재 인기 절정을 누리며 세조때부터 연산군에 이르기까지 조선시대 정치적 격동의 시기를 다루고 있는 모방송국 대하 역사드라마 ‘王과妃’에 대해 순창지역민들은 남다른 감회로 지켜보고 있다.

 

그 이유는 이 드라마에서 성종의 둘째아들이자 연산군의 이복동생인 진성대군(瞋城大君)의 부인 신씨(愼氏)와 관련된 사연을 담은 삼인대(三印臺)가 바로 이고장에 있기 때문이다.

 

愼氏는 연산조때 좌의정을 지낸 신수근의 딸이다.

 

당시 연산군의 폭정이 극에 달하자 1506년(연산군 12년) 박원종(朴元宗), 성희안(成希顔) 등이 주동이돼 연산군을 몰아내고 진성대군을 추대해 왕위에 오르게 했다. 이른바 중종반정(中宗反政)이다.

 

그런데 중종반정을 주동하고 성공한 박원종 등 반정공신들은 신수근 일파가 반정을 반대했다는 이유로 숙청하고, 왕비 신씨까지 중종에게 폐비(廢妃)를 강요해 결국 폐출된다.

 

반정공신들은 중종 신씨를 폐출하고 윤여필(尹汝弼)의 딸인 숙의 윤씨(淑儀 尹氏)를 새왕비로 맞아들였으나 결혼한지 10년만인 중종 10년(1515)에 세상을 떠나게 된다.

 

정경왕후 윤씨가 세상을 떠나자 당시 순창군수 충암 김정(沖庵 金淨), 담양부사 눌재 박상(訥齋 朴祥), 무안현감 석헌 유옥(石軒 柳沃)등 세 사람이 비밀리에 지금의 군립공원인 강천산 계곡에 모여 과거 억울하게 폐위된 신씨(愼氏)를 복위시킴이 옳다고 각기 관인(官印)을 나뭇가지에 걸어놓고 죽기를 맹세하며 상소문을 올렸다.

 

이때 이들이 소나무 가지에 관인을 걸어놓고 맹세한 곳에 영조 20년(1744년) 당시 순창의 선비들이 비각을 세워 삼인대 (三印臺)라 명명했다.

 

그로부터 2백60년이 지난 영조 51년(1775년) 폐비된 신비(愼妃)는 복위돼 단경왕후(端敬王后)로 추대됐다.

 

이러한 사연을 담고 있는 삼인대는 순창군 팔덕면 청계리 강천사(剛泉寺) 바로 앞 냇가 건너편에 정면 1칸, 측면 1칸 규모로 자리잡고 있으며, 비각안에는 높이 157cm, 폭 80cm, 두께 23cm의 비(碑)가 세워져 있다.

 

삼인대는 1973년 6월에 지방문화재 제 27호로 지정돼 관리해오다 1994년 지역의 뜻있는 향토인과 세분선생의 후손들에 의해 삼인문화선양회가 구성돼 1995년부터 매년 9월에 삼인문화축제를 열어 세분선생의 충절을 기리고 있다.

 

김병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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